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8화 (18/240)

<내 상태창 2개 - 18화>

17. 클래스를 얻다(4)

아, 이건 좀.

너무하잖아.

스페셜 클래스라고 내가.

아무리 D급이라도 그렇지 병아리가 뭐냐?

“삐이이야약! 삐이이야약!”

너도 너무하다는 거냐?

날아다니는 병아리.

샛노란 털에 붉은 털이 드문드문 나 있고, 몸 전체가 미약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예전 불사조의 육체는 몸 전체가 불이어서 뭔가 생물 같은 느낌이 안 들었다면, 이 병아리 모드는 털도 달리고 살도 있어, 보이는 게 진짜 병아리 같았다.

불사조는 날 바라보다가 이마를 찡그리고는 내 머리 쪽으로 순식간에 날아왔다.

“뺙뺙뺙뺙!”

“아. 아파, 이놈아!”

작은 부리로 내 이마를 쪼는 불사조 녀석.

병아리가 애교로 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진짜 아찔한 통증이 이마 뚫리는 줄 알았다.

다섯 방 정도 치고 다시 나랑 떨어져서 계속 뺙뺙거리며 화를 낸다.

아! 마력 없는 걸 어쩌라는겨.

같이 성장하자니깐. 흠흠.

“아…… 귀여워…….”

라이아나가 옆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불사조를 바라보았다.

귀엽긴 귀엽다.

애초에 병아리가 귀여움으론 탑급 생물 아니던가.

거기에 작은 날개로 파닥파닥 날아다니고 붉은 무늬도 멋스럽고 불을 지피며 스스로 발광하고 있고.

“삑삑…… 삑삑…….”

라이아나가 자신을 쳐다보는 걸 알자 고개를 푹 숙이며 삑삑거리는 병아리.

제스처가 나 다시 데려가요, 하는 것 같았다.

아. 이거 이러다 야반도주하는 거 아냐?

“불사조 도망가진 않나요?”

“어머.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지금 불사조에게 영혼 중개자님은 부모나 마찬가지예요. 갑작스럽게 힘이 빠져서 좀 투정 부릴 수도 있지 도망가고 이런 걸 걱정하시다니. 너무하세요.”

“아, 뭐. 펫 시스템 이런 거도 있나 해서…….”

“무슨 펫 시스템이요! 생물을 키우는 게 게임인가요?”

지금 지구 최강 B등급에 스킬도 넘겨주는 여자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도망은 안 가나 보다.

“불사조야, 이리 온. 아빠가 마력 강화해 주마.”

“삑?”

“남은 스탯 포인트가 있거든. 마력 몰빵한다.”

이젠 균등 분배 안 해도 되겠지.

질서 영역 3포인트와 중립 영역 4포인트를 모두 마력에 몰빵했다.

그러자 불사조 병아리의 몸이 갑자기 확 불타올랐다.

“삐약! 삐약!”

붉은 병아리가 좋아서 파닥파닥한다.

눈이 웃고 있다.

으이구. 귀엽긴 귀엽네.

불길은 다시 멎었지만 원래 미약하게 타오르던 불이 좀 강해졌다. 몸도 조금 커졌고.

이러면서 발전하는 건가? 내 마력량이 중요하네…….

“어머. 정말 잘하셨어요.”

“삐약아. 좀만 참아라. 아빠랑 같이 금방 크자.”

“삐약이라니…… 그게 이름이에요?”

라이아나가 곱게 눈을 흘겼다.

애는 뭔 표정을 해도 예쁘네.

“불사조는 신수예요. A급 신수. 반신급이라고요. 지금은 어리지만 금방 커질 텐데 삐약이라뇨.”

“크면 또 좋은 이름 지어 주면 되죠. 지금은 딱 삐약입니다.”

라이아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뭐라고 확 말은 하고 싶은데 차마 못 하고 참는 표정이었다.

“하아…… 그래 주인이 그런다는데…… 삐약아. 빨리 커서 좋은 이름 받자. 알았지?”

라이아나는 삐약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상하게 말했다. 삐약이도 좋아서 삐약삐약 울었다.

주인은 난데 뭔가 소외되는 느낌인데.

둘이 아주 껴안고 볼 비비고 좋아 죽었다.

엘프들이 시간을 보고 헛기침을 하자 그제야 애정 행각이 멈췄다.

“앗.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네요. 이제는 돌아가야겠어요.”

그래. 미모를 보는 건 즐거웠지만 이러다 진짜 삐약이 데리고 튀는 거 아닌가 싶었어. 이만 가렴.

“예. 아폴론의 선물 감사했습니다.”

“아폴론께서 중개 스킬의 강화를 최우선으로 목표로 하고 정진해 나가라 조언하십니다. 김지호 각성자님은 인간의 한계에 금방 도달할 테니 영격의 상승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하시고요.”

대신의 조언인가.

중개 스킬로 인해서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은 만큼 안 그래도 이 스킬 업그레이드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더 많은 신들과 중개 계약을 맺고 SP를 더 얻을 수 있다면 날로 먹고 얼마나 좋아. SP 이자도 늘어나고.

그리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영격 상승을 해야 한다는데, 인간의 한계가 뭔지…… 스탯 최대치가 있나?

일단 지금은 능력치를 올리면서 고위 등급을 노리자.

다른 세계의 김지호처럼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언 감사합니다. 유념하겠습니다.”

“예. 다음에 보는 날까지 건강하시길. 삐약이도 또 보자. 건강해야 해!”

“삐약! 삐약!”

삐약이가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보챌 줄 알았는데, 어른스럽게 라이아나에게 날개를 흔들고는 내 머리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철퍼덕 주저앉는 삐약이.

몸에 불길이 타오르는데 머리카락이 이상하게 불에 타오르지 않았다. 신기하네. 진짜 불이 아니라 이펙튼가?

“삐! 삐!”

“그래 집에 가자.”

경매장이 파하고 협회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왔다.

차가 출발하기 전 운전기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김지호 각성자님. 혹시 지금 사시는 곳이 불편하지는 않으십니까?”

“원룸요? 뭐 좀 좁긴 하죠.”

“혹시 지금 사시는 곳이 불편하시다면, 저희 협회 건물 근처의 고급 오피스텔에 머무르셔도 된다고 하십니다. 협회장 직속 직인이 찍힌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하하. 협회장님 뭐 이런 것까지 신경 써 주시고. 참. 신경 써 주셨는데 감사히 받아야죠. 오늘 들어가도 되나요?”

“예. 당연하죠.”

이것도 스페셜 클래스가 누리는 혜택의 일환인가.

운전기사가 차를 세운 곳은 협회에서 한 블록 건너편에 있는 고급 주상 복합.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더니 이 건물의 건물 맨 꼭대기로 안내해 줬다.

강남대로가 훤히 보이는 드넓은 창.

복층 구조에 1층은 방도 4개에 욕실도 2개였다.

거기에 테라스도 있어서 나가서 빌딩 숲을 바라보며 와인 한잔하기도 딱 좋은 분위기.

거실 벽걸이 티브이는 벽을 다 매울 정도로 크고 킹사이즈 침대도 맘에 들었다.

참…… 이런 날은 한잔해야 하는데.

이런 좋은 집을 얻은 날에 전화할 상대가 남자밖에 없다니 슬프구나.

-어.

“진성아 뭐 하냐.”

-나 강남에서 길드원들이랑 술 파티 중인데? 넌 강시아 씨랑 밥 먹냐? 흐흐?

“흐흐가 뭐냐 흐흐가. 그런 사이 아니다. 형 협회에서 집 무상 대여해 줘서 술 한잔하려고 했는데 다음에 먹어야겠구먼.”

-뭐? 나는 그런 거 없던데. 같은 D급인데 뭐냐. 이 차이.

“궁금하면 다음 술자리에서 말해 주마. 낄낄.”

-와! 이거 협회에 항의해야겠구먼!

“형이 특별해서 그래. 술자리서 이야기해 줄게.”

-아. 노비스 특별 직업 얻었냐 설마? 하…… 궁금하지만 도저히 빠질 수가 없는 상황이네. 오프 때 보자.

쩝. 혼자 술을 먹어야겠구먼.

내 대인 관계의 처참함에 대해 반성을 하면서 삐약이에게 집을 맡겼다. 그리고 건물 1층의 편의점에서 소주 2병에 맥주 다섯 페트병을 사 왔다.

술은 소맥이야. 드워프도 인정했어.

혼자 처량하게 티브이 앞에서 술을 말며 가요 프로그램을 보았다. 마침 섹시 걸그룹이 야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화염 전차 소환과 무한 정력이 같은 A급이란 말이지.”

“삐약?”

“삐약아. 이상하지 않냐? 어떻게 그 위엄 넘치는 화염 전차와 무한 정력이 같은 급 스킬이지?”

“삐약.”

남들이 보면 병아리한테 말 거는 미친놈으로 보이겠지만 나름 이 불사조는 말을 알아듣고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설레설레 젓기도 하고. 반응이 아주 쏠쏠해 말 거는 보람이 느껴졌다.

“그래. 한번 ON해 보겠어.”

어차피 주변에 여자도 없고.

걸그룹 섹시 댄스도 솔직히 라이아나 보고 와서 그런지 별로 감흥이 없다.

이런데 무한 정력을 틀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무한 정력 LV2 스킬을 ON합니다.]

별 변화 없는데?

라고 생각한 순간 걸그룹 섹시 댄스가 눈에서 클로즈업되더니 하반신 특정 부위에 피가 콱 몰리기 시작했다.

어. 자, 잠깐. 이거 반응이 이리 빨랐나?

거기에 이거 내 사이즈가 아닌데? 뭐, 뭔가 커……!

[명경지수가 발동합니다.]

갑자기 밀물처럼 쏠렸던 피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욕망.

차분한 마음. 현자가 된 듯한 느낌.

잠시 내 것이 아니었던 크기와 두께가 떠올랐지만 그런 잡념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와! 욕망이 명경지수로 제어가 가능하구나.

그럼 ON해 둬도 되겠어.

이제 ON한 채로 수련을 하면 어찌 되는지 봐야지.

“삐이이이약! 삐약삐약!”

근데 갑자기 머리 위에 있던 삐약이가 날아다녔다.

삐약일 보니 전신에서 불길이 화르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강해지는 불의 기세.

이거 혹시 삐약이한테도 영향이 가나?

[폴룩스가 생명의 상징인 불사조와 정력이 만났으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합니다.]

[아우렐리아가 스킬을 계속 유지하면 불사조의 성장이 빨라질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와.

개똥도 약에 쓴다더니 무한 정력이 이런 데서 쓸모 있을 줄이야……!

날아다니는 삐약이를 보며 같이 신나서 소맥을 퍼마시고.

티브이 채널을 돌리며 하반신 밀물 썰물을 느꼈다.

역시 아까 느꼈던 크기는 착각이 아니었어.

무한 정력의 쓸모…… 하나 더 발견했군. 흠흠.

그래도 자꾸 섰다 줄었다 하는 느낌이 좀 피곤해서 테라스 밖으로 나섰다.

강남대로의 풍경은 인공적인 불빛으로 반짝이면서도 황량한 느낌이었다.

딱히 좋은 풍경은 아니군…….

유리잔에 든 소맥을 마시며 뭐 할까 고민하다가 인벤토리에서 공략집을 꺼냈다.

그 안에는 새로운 내용이 표기되어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능력치가 이번엔 질서 진영 능력치가 총합 3 정도 올라 있었고, 중립 진영 능력치도 신체 C--, 기예 C--로 상승해 있었다.

하루에 쌓인 SP는 100 정도.

아폴론까지 합세하자 질서 진영 SP가 80 정도고 중립 진영 SP는 20 정도였다.

SP는 일단 모아서 프리미엄 상점을 이용하자고 생각했다.

거기에 영혼 중개 스킬 강화의 힌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능력도 오르고 장비도 보강했고, 피닉스도 생겼고 스킬도 여러 개 받았다.

이쯤 되자 빨리 던전을 돌고 싶었다. 영혼 약탈자의 스킬도 한번 확인해 볼 겸.

그래서 협회에 가니 나를 비롯해서 던전 돌려고 온 신입 D급 헌터 20명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대기하니 직원이 나와 우리를 안내했다.

팻말도 없는 방에 숨겨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곳은 협회 최상층이었다.

최상층은 방이 나누어지지 않고, 단 하나의 드넓은 공간이었다.

천장은 새까만 밤하늘 같았고 별처럼 반짝이는 것이 가득했다.

바닥도 검고 별이 있는 게, 뭔가 우주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엘프와 드워프는 거의 30명 가까이 있었다. 그들은 커다란 원탁 5개에 대여섯 명씩 나눠 앉아 있었다. 원탁 위에 있는 커다란 노란 보석을 바라보며 심각하게 무언가를 토의하며.

“D급 신규 각성자 분들을 모셔 왔습니다.”

“아. 어서 오십시오.”

여자 엘프가 일어나 우리를 반겼다.

그녀를 보자마자 무한 정력이 발동할 뻔했지만 명경지수가 바로 발동되어 시기적절하게 막아 주었다.

대처가 점점 빨라져서 다행이다.

“저는 이 ‘부서진 세계’의 차원 관리부 한국 지부장을 맡고 있는 알레나입니다. 여러분들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이 각서에 서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며 나눠 준 각서에는 여기에서 나온 이야기를 D급 헌터 이외의 외부 사람에게 발설하지 않을 것이며 발설할 시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제가 나눠 드린 각서는 마법으로 이루어진 계약서입니다. 지구 차원의 혼란과 소요를 막고자 만들어진 각서입니다. 저희가 갈 때까지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세상에 알려지게 되겠지만요.”

혼란이라니. 뭔가 거창하다.

심각한 표정의 엘프와 드워프.

협회 직원들은 비밀 엄수 때문인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어쩐지 D급에 대해선 별로 정보가 없더니, 이 각서 때문이었나.

우리가 모두 서명하자 알레나는 각서를 모두 모아 책상에 두었다.

“모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D급 던전, 아니 부서진 세계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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