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7화>
16. 클래스를 얻다(3)
“안녕하십니까. 영혼 중개자여. 경매에 앞서 저희 검은 산 부족의 수호신 헤파이스토스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맨 처음 나선 것은 드워프였다.
저번에 E급 승급 심사장에서 보았던 드워프랑 얼굴이 비슷한데, 다들 생긴 게 비슷비슷해서 그 드워프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건네준 것은 검은빛의 금속 팔찌였는데, 가운데에 파란색 보석이 박혀 있었다.
뭔진 모르지만 선물이니까 받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건 어떤 용도로 쓰는 거죠?”
“가운데 파란색 보석을 누르시면 전신 갑옷으로 변화합니다. 갑옷의 성능은 C급입니다. 4서클 이하의 마법을 흡수하고 영체화 상태에서도 장착이 가능합니다.”
오! C급 갑옷이라니.
C급 하면 뭔가 학점 생각나서 구려 보이지만 지구 각성자 중 최고 등급이 D급이니 등급 초월 갑주다.
보석을 누르자 팔찌의 금속이 확 늘어나더니 전신을 감쌌다.
눈코, 입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가린 흑빛 철갑주.
움직여 봤는데 걸리적거리지 않고 가볍다.
돈이 없어서 방어구를 못 샀는데 이렇게 꽁으로 얻을 줄이야.
“사실 헤파이스토스께서는 이번 경매 경쟁자가 너무 독보적이라 다음 기회를 원하고 계십니다. 수호신으로서 정당한 거래가 아닌 단순 선물로는 C급까지가 한계라, 이 무구를 선사하셨습니다. 물론 헤파이스토스 님을 선택하실 경우 A급 무구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흠.
내가 스킬 레벨이 늘거나 해서 중개 가능한 수호신이 하나 늘면 그 자리를 파고들겠다는 뇌물이군.
이런 뇌물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그런데 독보적인 경쟁자라니…… 아주 두근거리는걸.
“헤파이스토스 님의 마음, 꼭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각성자 김지호 님.”
“근데 이거 해제는 어떻게 하나요?”
“아머 슈트 해제, 라고 외치시면 팔찌가 있던 쪽에 마나석이 다시 빛을 발합니다. 그때 그 마나석을 누르시면 됩니다.”
“오. 되네요. 감사합니다.”
“영혼 중개자에게 그런 말씀을 들으니 영광입니다.”
술 먹고 매일 반말하는 드워프가 끝까지 예의 바른 언행을 하며 물러났다.
영광이라니.
괄괄한 드워프가 저러니 진짜 적응 안 되네.
“영혼 중개자님. 저희는 아르테미스 여신님을 모시는 안개꽃 부족입니다. 아르테미스 여신님께서도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나도 아는 처녀신 아르테미스.
단순 선물로 주는 게 C급 장궁이다.
이것도 앞의 선물과 비슷했다. 붉은 팔찌에 푸른 보석으로 되어 있다가 누르면 활로 변하는 장비였다.
이 활은 화살도 필요가 없었다. 시위를 잡기만 하면 마나가 소모되면서 빛의 화살이 장전되는 쌈박한 무기였다.
“전쟁의 신 아레스께서는 전투형 스킬을 선물로 준비하셨습니다.”
C급 스킬 ‘전신의 가호’.
액티브 스킬로 투척형 무기, 즉 화살과 총탄 등이 빗겨 나가고 힘과 체력이 상승하며 피부가 단단해지는 스킬이었다.
처음으로 쓸 만한 액티브 스킬을 받게 되니 기쁜 마음에 스킬을 받았다. 이것도 효과가 거의 패시브긴 하지만…… 그게 어디야.
세 신을 제외하고 먼저 선물을 주는 신은 더 이상 없었다.
처음에 3개 연속으로 받을 때만 해도 선물 러쉬가 오나 싶었지만, 아쉽게도 이 정도에서 끝났다.
유명한 신급은 되어야지 선물 줄 여력도 있는 건가?
선물 준 신들 중 하급 신은 없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영혼 중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내 아래에 앉아 있던 엘프와 드워프 일행 모두 하이 엘프 라이아나를 쳐다보았다. 흡사 눈치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좌중을 잠시 쳐다보더니 자리에 일어나 입을 열었다.
“영혼 중개자이시어.”
다시 보아도 라이아나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났다.
내가 헛것을 보는 게 아니었군.
목소리마저 청아하고 아름답다.
“지구에 파견된 엘프, 드워프의 수호신은 모두 일곱입니다. 우리는 모여 토의했죠. 그리고 지금 당장 영혼 중개자의 중개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혼 중개자의 성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판단을 들은 대신들께서 영혼 중개자에 걸맞은 장비와 스킬을 하사하셨죠.”
음.
잘 안 나오는 스페셜 클래스다 보니 더 키워서 많이 중개하게 만들자고 이렇게 선물을 준 건가?
흠흠. 주려면 나머지 네 신도 주시지. 그럼 더욱 가열하게 성장할 수 있는데 말이야.
[폴룩스가 욕심도 많다고 합니다. 그건 대신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알려 줍니다.]
그렇군…… 나머지 네 신은 그럼 대신이 아닌 건가?
“저희 일곱 신의 사도는 모두 대가를 준비했어요. 다만 제가 모시는 아폴론께서 준비하신 대가는 다른 신에 비해 하나가 더 많답니다. 이는 지구 파견대의 책임자인 제 권한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보다 더 많은 개입이 가능하거든요.”
오오!
두 가지!
태양신 아폴론!
아폴론이 최고십니다.
“물론 영혼 중개자께서 아폴론의 대가를 택하는 대신 다른 신의 대가를 택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저희는 전략적인 차원에서 영혼 중개자님의 능력이 더욱 향상되기를 원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많은 대가를 얻으시는 게 나으실 거예요.”
그녀의 말에 다른 일행도 공감하는 기색이었다.
이렇게 선물 보따리를 아낌없이 푸니 받는 나야 고마웠지만.
뭘 기대하기에 이렇게 푸쉬를 해 주는지 아직 얼떨떨했다.
“아폴론께서 준비하신 대가는 A급 신물 불사조의 알과 A급 스킬 ‘화염 전차 소환’ 스킬입니다.”
“아아…… 저건 이길 수 없어.”
“영혼 중개자를 밀어 주려고 작정하셨군.”
와!
불사조의 알.
화염 전차.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느낌이었다.
“불사조는 현재 영혼 중개자님의 등급에 맞게 부화되며 같이 성장할 거예요. 아직은 힘이 약하지만 더 성장하게 된다면 불사조 자체가 누구보다도 믿을 만한 동료가 될 것이며, 유사시 영혼 중개자님의 육신을 한 번 부활시킬 수 있을 겁니다.”
라이아나는 양손을 높이 들었다.
그 위에 화염의 고리가 생겨나더니 커다란 알이 떨어졌다.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적색 무늬의 흰 알.
저게 불사조의 알인가.
주위 엘프와 드워프의 시선이 모두 알에 꽂혔다.
“불사조의 알이라니…….”
“영혼 중개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정말 순수한 불의 마력이로군요…….”
라이아나가 알을 다시 들어 올려 화염의 원형 고리 안으로 넣었다.
아. 왜 보내. 조바심 나게. 진짜.
“화염 전차 소환.”
그녀가 검지를 하늘 위로 길게 뻗자 강당 위 공간에 불길이 일렁이더니 커다란 전차의 형상을 이루었다.
전차의 앞에는 불길로 타오르는 말 4마리가 하늘 위를 밟으며 위풍당당하게 떠 있었는데, 그 형태가 압도적으로 크고 웅장하여 호연지기가 절로 나왔다.
아. 갖고 싶다. 갖고 싶어. 쩔잖아, 저거!
라이아나는 가볍게 뛰어올라 5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리를 좁히고 바로 전차 위에 올라탔다.
불길 속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녀는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전차와 화염마들이 워낙 커서 모습은 작아 보였지만.
“화염 전차는 하늘을 날 수 있으며 적을 모두 불태울 태양의 열기를 품고 있어요. 공격용으로도 쓸 수 있고 이동기로도 쓸 수 있는 다방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이랍니다. 각성자 등급 B급인 저는 이 정도 크기를 운용할 수 있어요. 아마 영혼 중개자님께선 처음에는 이보다 작은 화염 전차를 운용하실 거예요. 하지만 마력량에 따라 화염 전차는 얼마든지 커진답니다.”
라이아나는 내려와서 소환을 해제했다.
화염이 한데 뭉쳐 사라졌다.
“다른 신들의 제안도 들어 보세요. 하지만 전 대신 아폴론을 선택하리라고 확신해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다른 신들의 제안도 나쁘진 않았다.
A급 스킬, A급 무구.
화려한 무구를 보았고 강력한 스킬도 보았다.
하지만 머릿속에 불사조와 화염 전차가 떠나가질 않았다.
화염 전차를 타고 불사조와 함께 적들을 쓸어 버리면. 캬.
하늘 위에서 팔짱 끼고 불사조를 출동시키는 나의 위엄 넘치는 모습이 자꾸 상상되었다.
그래. A급을 2개나 주는데 뭘 고민해.
“아폴론과 영혼 중개 계약을 맺겠습니다.”
“탁월하신 선택이에요.”
라이아나가 활짝 웃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와! 진짜 미모 너무 사기 아니냐?
[대신(大神) 아폴론과 영혼 중개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대신(大神) 아폴론이 얻는 SP가 1.2배 증가합니다. 중개자 김지호는 이 중 10%를 수수료로 얻습니다.]
[스킬 레벨이 낮아 대신 아폴론이 지구에서 얻는 모든 SP를 중개할 수 없습니다. 일부 지역만 중개합니다.]
“근데 지구에서 아폴론 님과 계약 맺은 사람은 없지 않나요?”
계약을 체결하고 지구 일부 지역만 중개한다는 메시지를 보자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아폴론은 지구에서 얻는 SP도 없을 텐데 왜 계약을 맺지?
“아폴론은 대신(大神)이십니다. 하위 신들을 거느리고 있죠. 영혼 중개자님께선 하위 신들이 얻는 SP를 중개해 주시는 겁니다. 거기에 영혼 중개자님이 더욱 강해지신다면 지구를 넘어 타 우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죠. 길게 보고 투자하신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하…… 대신은 하위 신들에게 SP를 뜯는구나.
이거 피라미드 아냐?
인간은 하위 신한테, 하위 신은 대신한테.
[폴룩스가 한숨을 푹 쉽니다. 그런 건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고 합니다.]
맞긴 맞나 보군…….
신도 위아래가 있구먼.
이놈의 세상은 어디 가나 위아래가 있다니깐.
그럼 폴룩스의 대신은 누구지?
[폴룩스가 올림포스의 왕, 아버지 제우스라고 합니다.]
아, 그래 제우스 아들이었지. 백은 세네.
“계약의 대가를 이행하겠습니다. 먼저 화염 전차 스킬부터 부여하겠습니다.”
단상 아래 있던 라이아나가 어느새 내 바로 앞에 있었다.
어떻게 온 거지? 아예 움직임이 보이지가 않았다.
이런 게 B와 D의 차이인가.
그녀는 오른손의 검지를 뻗어 내 이마에 댔다.
호수같이 푸른 눈이 크게 일렁였다.
“화염 전차 소환 스킬 부여.”
[화염 전차 소환 LV1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사용자의 등급이 낮습니다. 화염 전차의 규모가 축소됩니다. 마력 효율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불사조의 알입니다.”
화염 고리가 열리며 아까 보았던 불사조의 알이 떨어졌다.
“불사조의 알은 현재 등급에서 부화가 불가능하므로 제가 부화한 후 바로 드리도록 할게요.”
애프터서비스까지 친절하기도 하셔라.
그녀가 알을 잡고 마력을 부여하자 금방 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곧 금이 점점 커지더니 그 사이로 불길이 쫙 뿜어져 나오며 알 껍질이 단번에 타올랐다.
“와아…….”
그리고 나타난 불사조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붉은빛과 노란빛이 혼재된 불의 새.
크기는 부화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비둘기 정도였지만 점점 더 성장해 나가겠지.
크기는 작지만 독수리보다도 위엄 있는 모습. 사방으로 이글거리는 화염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샛노란 불의 눈이 번쩍이며 라이아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 너무 예뻐.”
라이아나가 불사조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 설마 안 주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정말 아쉬워하며 불사조를 쳐다보다가 결국 결심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불사조를 양도합니다.”
그 말에 불사조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란빛의 불의 눈이 번쩍였다.
왠지 ‘아니. 이런 놈이 내 주인?’ 이런 느낌이 들었다.
흠흠. 같이 성장하자꾸나. 불사조야.
근데 갑자기 비둘기 크기의 불사조의 불길이 점점 멎어 들어갔다. 그러며 마력이 엄청나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 뭐지? 불사조가 마력을 먹는 건가?
그래 마력 먹고 다시 커져 봐!
하지만 마력은 계속 빠져나가도 불이 줄어드는 건 멈추지 않았다.
아. 이거 뭐야. 안 돼. 야, 더 빨아 먹어 봐!
하지만 마력이 반 정도 빠져나가자 더 이상 마력이 줄어들지 않았고…….
“삐약!”
불길이 꺼지자 그 자리엔 병아리가 나타났다.
불타오르는 병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