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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태창 2개-15화 (15/240)

<내 상태창 2개 - 15화>

14. 클래스를 얻다(1)

첫인상은 이랬다.

털북숭이 미남.

옛날 그리스 로마 신화 때 입었던 옷처럼 하얀 천 하나로 몸을 가린 건장한 남성이 서 있었다.

팔, 다리, 얼굴엔 금색의 털로 가득했지만, 얼굴 자체는 서구적 느낌으로 초절정 미남.

키는 거의 3미터가 되는 듯했지만, 신체 균형이 워낙 완벽해서 거인임에도 끔찍하게 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남성미가 완벽하게 돋보이는 야성의 남자였다.

“반갑다. 나의 대리인, 고자여.”

“네?”

“최고의 스킬을 줬음에도 쓰지 못하니 어찌 고자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아…… 괜히 불렀다.

“이름으로 불러 주시죠. 전 김지호라고 합니다.”

“나는 폴룩스의 아바타. 남자의 이름을 외우는 재주 따위 갖추고 있지 않다네.”

“그게 뭔 소립니까?”

“폴룩스가 외우는 남자 이름은 올림포스의 신들뿐.”

“여자는요?”

“예쁜 여자라면 잊지 않지. 최근에 기억한 것은 강시아구나.”

너답다.

“근데 아바타라뇨? 본신이 아니고요?”

“폴룩스가 본신으로 강림한다면, 너는 소멸할지니. D등급이 영접하기에는 무리도다. 나는 지구 동아시아 담당 아바타, 폴룩스 111이다.”

“아, 예…… 근데 왜 부르셨나요?”

“영혼 중개자 자격을 갖추었음에도 왜 불렀냐고 묻는 것이냐?”

당연하지. 클래스 변경하자마자 어떻게 아냐.

“그래. 모를 법도 하지. 후후…… 그러고 보면 네놈. 재밌는 짓을 하더구나. 중립 진영과 질서 진영에서 양다리를 걸칠 줄이야.”

“흠흠. 뭐 양다리라고 하실 것까지야…… 것보다 지금까지 몰랐어요?”

어쩐지 폴룩스와 아우렐리아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긴 했다.

괜히 내 생각을 읽을까 봐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긴 했는데.

“우리가 수호신으로서 볼 수 있는 장면은 제한되어 있다. 너도 먼지가 무슨 짓을 하는진 모르지 않느냐. 이젠 개미급으로 올랐으니 네 능력의 파악이 가능했고, 두 진영 동시 소속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럼 안 되나요? 저도 의도하고 받은 게 아니라서…….”

제발 내 상태창 뺏어 가지 말아 줘.

애절하게 폴룩스를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상관없다. 너 같은 이레귤러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 그렇게라도 해서 영혼 중개자가 나온 것이 오히려 다행이야.”

“영혼 중개자가 쓸 만한 건가요?”

“우리가 왜 너희에게 능력을 주고 도와주는지 아느냐?”

“글쎄요.”

“다 SP를 위해서다.”

갑자기 SP를 위해서라고 하니까 급 저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거 지금 내가 D급 얻고 나온 스테이터스 아닙니까?

“SP를 무시하는가? 개체의 영격을 상승시킬 수 있는 것은 소울 포인트가 유일하다. 예를 들어 인간이 오를 수 있는 클래스 한계는…….”

갑자기 소리가 뭉개진다.

들을 때마다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폴룩스가 세계의 질서를 이야기합니다.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사용자의 등급이 부족합니다. SP가 1 감소합니다.]

[SP가 1 감소합니다.]

“아, 잠시만요. 제가 못 듣나 봐요.”

“후후. 미치지는 않는구나. SP만 깎였느냐?”

“……그런데요?”

“영혼 중개자가 확실하군.”

설마 알면서 실험한 거냐?

와! 사악한 새끼네…….

“뭐 나머지 이야기는 네가 등급이 오르면 해 주마. 지금은 그냥 영혼 중개자로서 나를 중개해 줬으면 좋겠구나.”

[폴룩스의 화신이 당신에게 제안합니다. 지구 차원에서의 SP 획득을 중개하시겠습니까? 스킬 레벨이 낮아 지구 차원의 일부 영역만 중개 가능합니다.]

“너에게 손해 갈 일은 없다. 그래. 예를 들면, 내가 날것으로 SP를 얻으면 1포인트를 얻는다 치자. 네가 도우면 난 1.2를 얻고 너는 거기서 수수료로 0.1을 떼어 가는 거다.”

“그럼 둘 다 0.1씩 더 얻는 거네요?”

“그렇지.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거다.”

“비율 협상은 안 됩니까?”

“비율은 너의 스킬에 달린 것이다.”

영혼 중개 스킬을 살펴보았다.

[영혼 중개 LV1

수호신들의 영혼 흡수를 중개합니다. 20%의 효율을 창출하며, 사용자는 개중 최대 10%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최대 세 명의 수호신과 중개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네요. 그럼 중개하는 대신 이놈의 무한 정력 스킬이나 좀 어떻게 해 주면 안 됩니까?”

A급 스킬이라는데 너무 쓸모가 없었다.

위험 감지는 엄청 잘 쓰고 있었는데.

그냥 D급이라도 좋으니 그 정도 쓸 만한 스킬 갖추고 싶다.

“허. 정말 진심으로 묻는 것이냐? A급 스킬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는 알고 묻는 것이냐?!”

허허 하면서 분위기를 좋게 이끌어 가던 폴룩스가 갑자기 벌컥 성을 냈다.

아니 시발 그놈의 무한 정력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이 수호신아.

맨날 OFF하고 사는구먼.

“너는 대체 정력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섹스하고 싶단 생각 아닙니까?”

“편협한 놈. 내가 너에게 부여한 무한 정력은 남성성의 핵심이다. 남성성이 무엇이냐? 수컷이란 무엇이냐? 나의 씨를, 나의 유전자를 뿌리는 사명을 가진 존재다.”

“아. 예…….”

“그러기 위해선 어찌해야겠느냐? 경쟁 수컷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찌해야겠느냐? 그들보다 더욱 강한 힘, 강한 체력, 강한 정력이 필요하다. 나의 무한 정력은 한계를 깨부수고 그 힘과 체력, 정력을 모두 갖출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최고의 스킬이다!”

“그…… 그러십니까.”

“나는 네가 노비스로 E급을 갔을 때 주시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선택! 거기에 스탯 포인트도 균등하게 찍었지. 세상에 몇 없는 영혼 중개자를 노리는 너의 모습에 감탄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아끼는 스킬을 인과율을 감수하고 내렸다. 그런데 너는 그저 섹스만 생각하고 스킬을 활용할 생각도 하지 않았지!”

폴룩스가 분노한다.

진심으로 열이 받는 게 느껴진다.

화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노에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와.

진짜 열 받았네.

이거 내가 왜 이딴 스킬을 내렸냐고 화를 내야 할 거 같은데.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느낌이다.

“아니 충동이 드는 걸 어쩝니까!”

“멍청한 놈. 의지력 차이다. 나도 헤라와 아테네를 보면 덮치고 싶지만, 잘 참는단 말이다!”

아…… 헤라, 아테네면 올림포스 최고위 신이잖아.

그래도 눈치는 본다 이거지…….

“인간아. 나 폴룩스가 무슨 등급인 줄 아느냐?”

“어…… 글쎄요. SSS급은 되지 않을까요? 수호신이니까?”

“아니다. 나도 그저 S급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하위 신의 자격을 지니고 있지. 그런 내가 내린 A급 스킬이다. A급 스킬은 반신이었을 시절 지녔던 고위 등급의 스킬. 그만큼 어마어마한 스킬이다. 내가 가진 스킬 중에서도 이를 뛰어넘는 건 단 하나밖에 없어!”

헐.

수호신이 S클래스밖에 안 돼?

A급…….

엄청난 스킬이잖아?

갑자기 마음이 혹한다.

이제부터 무한 정력을 무조건 ON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운동선수들도 근육 키운다고 남성 호르몬 주사 맞고 이러다가 걸리고 이러지 않았나?

이 스킬은 천연 슈퍼 남성 호르몬 스킬 아닐까?

근육도 빵빵. 강화도 빵빵.

여자한테의 충동만 잘 참으면 될지도…….

그래 저 색마도 헤라랑 아테네한테는 꼬리를 내린다고 하는 걸 보면 내가 잘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아, 잠깐. 근데 생각해 보니까…….

“강시아 앞에서 스킬 쓰라고 한 게 누군데! 뭐 충동을 참으라고 충고하는 척하고 있어!”

“쯧쯧. 할 땐 해야 남자지. 그 여자가 헤라나 아테네는 아니지 않느냐?”

“와.”

“어쨌든. A급 스킬을 얕보지 말아라. 정말 그저 섹스만을 위한 스킬이었다면 어찌 A급을 받았겠느냐? 그 스킬을 어찌해 달라는 요청은 허락해 줄 수 없다. 다 너를 위해서야!”

폴룩스의 화신이 내보이는 반응은 아주 단호했다.

스킬을 바꿔 달라는 주장 자체를 아주 불쾌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도 굳이 이런 분위기에서 스킬을 바꿔 달라고 더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폴룩스가 주장한 대로, 능력 강화에 숨겨진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죠. 영혼 중개 하겠습니다. 그냥 계약하겠다고 하면 되나요?”

“좋은 생각이다. 나는 이 지구에 두 기수의 각성자를 얻은 몸. 너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수호신 폴룩스와 영혼 중개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수호신 폴룩스가 얻는 SP가 1.2배 증가합니다. 중개자 김지호는 이 중 10%를 수수료로 얻습니다.]

[스킬 레벨이 낮아 수호신 폴룩스가 지구에서 얻는 모든 SP를 중개할 수 없습니다. 일부 지역만 중개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스킬 레벨이 낮아서 아쉽지만, 금방 성장하길 기대하마. 그리고…… 영혼에 잡아먹히지 말거라. C급 때 다시 보면 좋겠구나.”

폴룩스가 씩 웃으며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사라지는군.

[수호신 아우렐리아가 당신을 만나려고 합니다.]

나를 싫어하는 화산의 여신님 아니신가.

으으.

그래도 만남에 응해야겠지.

폴룩스가 사라진 자리에 적발의 여인이 내려앉았다.

붉은빛의 철 갑옷을 빈틈없이 입고 있는 여인은 신격이라 그런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내가 지금까지 본 여자 중에는 가장 압도적으로.

머리는 바닥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고 눈은 맑게 빛나고 있다.

언제나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여신답지 않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축하드립니다. 각성자 김지호. 드디어 꿈을 이루셨군요.”

“꿈이요?”

“다른 차원의 그대는 언제나 아쉬워했습니다. SP라는 능력치를 알게 된 때가 이미 너무 높은 등급일 때였다고요. 그런데 당신…… 폴룩스와 너무 많은 대화를 했군요. 저와 허용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나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며 지적했다.

아. 이렇게 부드러우실 줄 몰랐는데…….

죄책감이 막 든다.

폴룩스랑 무한 정력 이야기를 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더 이상 이야기를 했다간 당신에게 허용된 SP가 급격히 사라지겠어요. 아쉬워요. 다른 차원의 내가 왜 당신을 선택했는지 궁금했는데…… 오늘은 이만 헤어져야겠군요.”

“아니, 벌써요?”

“네. 저는 괜찮지만, 당신이 괜찮지 않아요.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죠. 제가 묻겠습니다. 당신은 저도 영혼 중개를 해 주실 수 있나요?”

“네.”

진짜 홀린 듯이 대답했다.

그녀의 미모에, 친절한 행동에 그냥 뻑 갔다고 해도 좋았다.

이런 게 여신……!

“고마워요. 보답이라고 하기엔 약소하지만, 이 스킬을 내리겠습니다.”

[명경지수(明鏡止水).]

[패시브 스킬.]

[B급 패시브 스킬.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며 자아를 유지한다.

정신 공격의 저항력을 높여 주며,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을 갖춘다.]

“폴룩스의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그의 A급 스킬이라면 인간의 한계까지 금방 근접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부작용이 우려되는 바, 이 스킬이 그대의 마음을 잡아 줄 겁니다.”

위험 감지에 이어, 명경지수라…….

진짜 최곱니다. 여신님.

이 스킬과 무한 정력을 같이 사용한다면 그 강렬한 충동을 제어할 수 있을까?

나중에 실험을 해 보자고 생각하며 나는 아우렐리아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감사합니다.”

“지금의 저는 지구의 수호신이 아니라 그대에게 많은 영력을 제공하지는 못할 거예요. 하지만, 다른 세계의 당신이 마지막으로 믿은 건 저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예. 폴룩스보다 훨씬 낫네요.”

“그 난봉꾼이랑 비교하는 건 저에게 실례예요.”

“죄송합니다.”

“후후. C급 때는 저부터 소환해 주세요. 해 줄 이야기가 많답니다. 그리고…… 영혼 중개뿐만 아니라, 영혼 약탈자도 연구해 보세요. 당신의 성장에 도움이 될 거예요. 이번에는 실패하지 말길…….”

영혼 중개 계약을 하자마자 사라지는 그녀.

마지막에 실패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묘하게 가슴에 남았다.

대체 미래의 김지호 넌 어떤 일을 당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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