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3화>
12. D급 승급전(2)
6차 D급 승급 시험.
한국 지역 필드 3.
한 필드당 선정된 각성자는 100명.
슈우우우우.
주황빛의 반투명 실드 안에서 온몸이 붉게 빛나고 있다.
하늘에서 그대로 땅으로 수직 낙하하면서.
너튜브에서 본 중계 방송에서는 이게 유성처럼 보였지.
각성자 100명은 모두 하늘에서 유성처럼 대지로 떨어진다.
위치는 모두 랜덤.
지역은 한정되어 있다.
레이아크 산악 요새의 성벽 안쪽으로.
[이 글을 본다면 레벨이 25가 된 거겠지. 일단 올 F-에 NOVICE임에도 25레벨을 달성한 너에게 경의를 표한다. 쉽지 않은 길이었겠지.]
공략집 문구가 기억난다.
드디어 업데이트가 되었던 공략집.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이 남아 있다. 승급전. 난이도가 불가능에 가깝지. 그러나 오월 일 일에는 제도가 달라진다. 노비스는 노비스끼리 승급전을 한다.]
공략집의 이 문구에 눈이 휘둥그레졌었지.
노비스끼리 승급전이면 솔직히 1등도 노려볼 수 있다.
하지만 5월 1일이라니.
너무 멀어.
지금이 9월 1일인데 8달 동안 레벨 25에서 정체되어 있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냥 도전해 본다고 마음먹으며 책을 계속 봤지.
[노비스끼리, 허접끼리 싸운다고 해도 방심해서는 안 되지. 원래 좆밥 대전이 제일 치열한 법. 거기에 노비스로 25레벨 찍은 사람들은 큰 뜻을 품고 온 기본 능력치 F+ 이상의 인간들이 많다. 아무리 내가 홀로 수련을 해도 쉽지 않아.]
그래. 거기에 스탯도 균등하게 찍으라고 했으니 솔직히 노비스 대전이라고 해도 능력치가 하위권일 테지.
원래대로 상태창이 한 개였다면…….
쿵!
땅에 낙하한다.
충격은 없다.
나는 발을 딛자마자 입을 열었다.
“미니 맵.”
눈앞에 지도가 펼쳐진다.
등급전을 수행하면서 새로 얻은 능력.
게임처럼 지도를 볼 수 있다.
지형이 표시된 레이더 지도 같은 미니 맵.
그 위는 100명 생존이라고 써 있다.
미니 맵상으로 나는 남부 성벽의 동쪽 지역에 떨어져 있었다.
레이아크 산악 요새는 협곡 사이에 위치한 요새.
남부 성벽, 북부 성벽.
두 방향만 틀어막으면 되는 협곡 요새다.
하지만 남부 성벽과 북부 성벽은 오크군에게 점령당하기 일보 직전.
인간 병사는 패닉에 빠져서 도망 다니고, 무너진 성벽 사이로 오크 군단이 포위 진격해 오는 전장이다.
이런 전장에 난입한 각성자가 해내야 할 목표는 두 가지.
1. 최후의 생존자 20명 안에 들어라.
2. 킬 포인트 5개를 올려라.
둘 중 하나만 해도 승급이 보장된다.
킬 포인트는 각성자를 죽이면 1, 인간이나 오크를 죽이면 0.01을 준다.
결국 각성자들끼리 싸우라는 게임이다.
싸우지 않고 숨어서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각성자의 위치가 일단 미니 맵에 나타나 있다.
거기에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빛이 각성자를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추고 있고.
숨을 여건이 안 되는 거다.
하나 공략집은 다른 이야기를 했지.
[나중에 알려진 거지만, 숨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위치는…….]
북동, 북서, 남동, 남서 지역.
크게 나눠서 이 네 지역에 각성자들이 떨어진다.
공략집은 이 네 지역에서 숨을 수 있는 포인트를 다 기술해 놓았다.
남동쪽은 그중 숨을 수 있는 포인트가 단 하나.
마른 우물가.
성벽 안쪽으로 조금만 가면 우물이 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안쪽에 또 다른 파진 굴이 있는데, 오크들이 들어오질 않는다고 한다.
[각성자들은 빛 때문에 내가 거기 있는지 알지만, 곧 오크 군단이 점령하기 때문에 알아도 날 죽이러 올 수가 없다. 남동쪽으로 걸렸으면 빨리 우물 안에 들어가 대기 타라. 한두 시간 후면 알아서 정리되고 등급 업 가능하다.]
공략집은 그러면서 이 사실이 점점 퍼지게 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등급전을 치르라고 했다.
[5킬을 한 채 20위 안에 들면 스탯 포인트 보너스 3이 있지만, 그냥 그건 포기하는 게 좋다.]
이 이야기만 안 봤어도 그랬겠지.
하지만 이걸 본 이상 선택지 하나가 더 생겼다.
나는 등에 멘 활을 꺼내, 시위에 화살을 놓았다.
목표는 전방의 빛이 내리쬐는 헌터.
아직 이쪽을 파악하지 못했다.
피이이잉.
“큭!”
목에 정확히 꽂히는 화살.
각성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화살을 부여잡다 쓰러진다.
확인 사살을 해야 하나, 지켜보았지만…….
[킬 포인트를 1 획득했습니다. - 현재 킬 포인트 : 1]
아무래도 죽은 모양이다.
쓰러진 시체가 빛으로 사라진다.
전사가 아니라 마법사였을까.
한 방에 죽을 줄은 몰랐군.
사람을 죽인 건 처음이지만, 어차피 시험이 끝나면 살아나는 걸 알아서인지 별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지도를 다시 펼치니 ‘생존자 91’이라고 쓰여 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벌써 9명이 죽었다.
북쪽으로 바둑알 크기의 빨간색 점이 여럿 찍혀 있었고, 나보다 남쪽 빨간색 점은 2개 있었는데 실시간으로 사라졌다.
점이 2개 동시에 사라진 걸 보면 오크 군단에게 쓸린 느낌이다.
둘이 싸워서 하나가 이겼다면 하나만 사라졌을 테니.
일단 올라가자.
미니 맵은 축소시킨 채 시야에 계속 둘 수 있었다.
적의 위치를 파악해야 하니 띄워 놓고, 나는 전력을 다해 뛰었다.
이제 인간을 한참 초월한 스피드가 나온다.
내 목표는 5킬 후 우물가에 가는 것.
4킬 남았다.
불타오르는 성채.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인간과 오크의 시신.
살아남은 인간 생존자 부대와 오크 선발대가 부딪치는 소리가 전장을 뒤엎는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100명은 잡아야 1포인트인데 그런 미련한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내 목표는 오로지 빨간 점 2개가 맞붙은 지점이었다.
곧 두 각성자가 맞붙는 지점에 도달했다.
“실드 차지!”
검과 방패를 든 전사 각성자가 스킬명을 외치자 방패가 커지며 상대방을 덮친다. 방패가 상대방을 치기 직전 그쪽도 스킬을 외친다.
“쉐도우 스트라이크!”
목소리를 들어 보니 여성.
양손에 단검을 쥐고 가죽 갑옷을 입은 암살자 클래스다.
쾅!
실드 차지에 맞고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암살자.
하나 전사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의 그림자가 갑자기 올라오며 뒤에서 그의 등을 찔러 왔기 때문.
저게 바로 암살자 스킬, 쉐도우 스트라이크인가 보다.
“크윽……!”
하하. 이렇게 좋은 상황이라니. 운도 좋아.
나가떨어진 암살자에게 화살을 쏘고, 잠시 주저앉은 전사에게 달렸다.
“파이어 볼.”
“뭐…… 뭐야!”
콰콰쾅!
쓰러진 전사가 방패를 다시 들지만 이미 바닥에 제대로 닿아 폭발한 파이어 볼.
폭발이 멈추자 하반신이 시꺼멓게 그을리고 전신이 불타오른다.
“으아아아아악!!”
저 정도면 살아날 수 없겠지.
확인 사살보다는 암살자도 죽이기 위해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앞서 쏜 화살은 아쉽게도 팔에 명중한 상태.
복면을 하고 있는 그녀는 오른팔을 부여잡으며 신음하고 있었다.
“아, 아파…….”
“아이스 애로우.”
그녀에게 빠른 시동이 가능한 아이스 애로우를 날렸다.
하나 멀쩡한 왼손 단검으로 이를 쳐 내는 암살자.
레벨 25까지 온 가닥이 다 사라진 건 아니었나 보군.
그럼 검으로 끝을 내야지.
양손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단검을 바로 쳐 내고 그대로 찌르려는 순간, 갑자기 그녀가 복면을 벗는다.
나름 미녀상의 여인이 황급히 입을 연다.
“지, 지호야. 나야. 지현이.”
누구야. 지현이가.
아. 혹시 맨 처음에 버스에서 봤던 앤가?
근데 어쩌라는 거지.
대꾸도 안 하고 검을 찔렀다.
푹!
“같이 협동…….”
협동 같은 소리 하네.
시야가 잠시 붉었고 목 뒤가 따가웠다.
위험 감지 스킬의 신호.
잠시 멈칫했으면 쉐도우 스트라이크 스킬에 내가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원망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던 지현이 쓰러지며 시체가 사라졌다.
[킬 포인트를 1 획득했습니다. - 현재 킬 포인트 : 2]
[킬 포인트를 1 획득했습니다. - 현재 킬 포인트 : 3]
뒤를 바라보니 불타던 전사의 시체도 사라져 있었다.
죽는 시간은 비슷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얘 나랑 같은 기수인데 어떻게 벌써 승급전을 치르지?
나야 경험치 2배에 중간에 솔플도 병행해서 20일 전에 25렙 찍었지만…… 앤 그런 것도 없었을 텐데.
능력치 좋은 남자한테 기생하려고 하는 줄 알았더니, 나름 근성은 대단한 여자였군.
지도에 표시된 생존자의 숫자가 어느덧 79명.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21명이 죽었다.
지금 미니 맵 내 주변에는 각성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우물가인데…….
중앙 지역에서 2킬을 더 챙기고 돌아오면 우물가엔 오크들이 깔릴 거다.
그냥 지금 안전하게 숨을까 했지만, 스탯 포인트 3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2배로 받으니까.
이제 20레벨이라 스탯 포인트도 2레벨에 한 개씩 주는데 3개면 6레벨 업을 해야 받는 수치다.
놓칠 수 없지.
나는 공략집을 다시 떠올렸다.
[중앙 근처로 낙하해서 추천 포인트에 진입을 못할 수도 있다. 그럼 중앙 지역의 마법 망루로 가는 게 가장 살 확률이 높아. 이 망루의 입구는 마법 자물쇠로 잠겨 있는데, 암호는 6976이다.]
마법 망루…….
저번 생중계에서 봤지.
남쪽 성벽이 다 바라보이는 10미터 높이의 석재 망루.
마법 자물쇠로 잠겨 있어서 한 각성자가 그걸 부수고 들어가려다가 결국 부수지 못하고 오크 군단에게 살해당했었다.
[근데 망루에 가고 나선 쥐 죽은 듯이 있어야 한다. 괜히 거기서 화살 쏘고 이랬다간 오크 주술사가 마법으로 박살 낸다. 문 다시 닫으면 마법 자물쇠가 저절로 문을 잠그니깐, 그냥 망루 위에 서 있지 말고 아래서 짱 박혀 있도록 하자.]
그럼 가는 길에 두 각성자를 죽이고 망루로 들어가면 딱 좋겠군.
지도를 면밀하게 보면서 계속 달려 나갔다.
몸이 쏜살같이 휙휙 날아가고 있을 때.
시야가 새빨개지며 가슴 정가운데가 타오른다.
젠장. 도약 중인데.
“실드.”
방어 마법을 펼치며 투핸드 소드로 대비한다.
곧 창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바람을 가르는 기세가 강맹하다.
각성자의 투창!
챙!
2서클로 업그레이드된 실드가 깨지며 검과 부딪친다.
업그레이드된 실드는 나름 쓸 만해서 공격을 잘 막았다.
하지만 질주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큰 충격 없이 착지한 것만 해도 다행인가.
레이더를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표시되지 않았던 붉은 점이 눈에 보였다.
숨어 있었나?
레이더를 피하다니, 뭐 아이템이라도 있나.
“한 가닥 재주가 있는 놈이군.”
긴 창을 들고 갑자기 나타나는 남전사.
입고 있는 갑옷, 강시아가 입던 거랑 비슷하다.
안에는 엘프 제복도 언뜻 보이고.
등에는 5개의 투창이 꽂혀 있다.
와.
돈 지랄의 향기가 느껴진다.
“라이트닝 볼트!”
2서클 전격 마법을 발사해 본다.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갑옷 한 부분으로 마법이 그대로 흡수된다.
뭐야 저거. 개사기잖아.
“파이어 볼.”
그가 천천히 거리를 좁혀 오자 다시 한 번 마법을 썼다.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공격 마법.
하지만 이번 마법도 그의 갑옷의 보석 부위에 그대로 한 줄기, 한 줄기의 불길로 나뉘어 흡수되었다.
그는 파이어 볼을 막으려고 창을 휘두르려다 멈칫하고, 곧 여유를 찾았다.
“역시 돈 쓴 보람이 있어.”
“와! 템빨.”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하지. 랜스 차지!”
멀리 떨어져 있는 적의 모습이 클로즈업하듯 확대된다.
일직선으로 찔러 오는 창.
바로 근접전인가!
실드를 쓰고 스킬을 피한다.
그와 동시에 양손 검으로 내리찍는다.
하나 랜스 차지 스킬이 민첩성도 올려 주는가.
총알같이 쏘아져 나가던 그가 몸을 그대로 틀어 창으로 나의 공격을 막았다.
쾅!
검과 창의 소리가 폭탄 같다.
“이 자식. 마법사가 아니었나?!”
곧바로 거리를 띄우는 적.
창에게 간격을 주지 않으려 접근하는 나.
순식간에 10합이 교환된다.
“후우…….”
“꽤 하는군.”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거리를 좁힌다.
그는 거리를 벌리려 하고, 나는 계속해서 돌진해 들어간다.
서로의 공격이 몸에 스치지만, 내 공격은 갑옷을 뚫지 못하고 그의 공격은 실드에서 멈춘다.
유효타는 전혀 없이 수십 합이 교환된다.
“랜스 차지!”
“실드.”
지근 거리에서 걸려 오는 스킬.
창이 순식간에 확대된다.
하나 실드가 잠시 막아 주니,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치이이익!
빠르다.
뺨이 찢겨 나가고 피가 튄다.
칫. 여기 와서 처음 피를 보는군.
하지만 내 검도 놀고 있진 않았다.
“큭!”
그의 우측 팔뚝을 스쳐 지나가는 검.
보통 병장기라면 갑옷에서 막혔겠지만, 이 비싼 투핸드는 돈값을 했다.
“쳇. 뭐 하는 놈이야!”
다시 거리를 벌리며 나를 노려보는 전사.
다시 거리를 가까이하려는 순간…….
쿵! 쿵! 쿵!
오크 군단 군악대의 북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잠깐. 그만하자.”
그가 크게 창을 휘두르더니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나도 검을 그대로 든 채 서 있었다.
서로가 알았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승부를 내지 못하고 오크 군단과 조우할 거라는 걸.
“승부 나기 전에 오크 군단에게 죽겠군.”
“그래.”
“서로 떨어져 갈 길 가는 거로 하자. 어차피 너나 나나 이십 위 안에 들겠군.”
“알겠다. 난 이쪽으로 가지.”
내가 망루 방향을 가리키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저쪽으로 가지. 근데 그 검, 어디서 구했지?”
“받은 건데?”
“누구한테.”
“이쁜 여자한테.”
그 말에 녀석은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곧 몸을 돌렸다.
“알겠다.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물어보지.”
그러면서 한 발, 한 발 날아가듯이 뛰어가는 전사.
검을 알아보는 게 뭔가 수상했지만…….
뭐 부자들이 이용하는 마켓에서 봤나 보지.
나는 경계 태세를 놓지 않으며 망루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