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12화>
11. D급 승급전(1)
나는 강시아가 급하게 벗은 강철 갑옷 쪼가리들을 같이 들고 포탈을 나왔다.
벗는 법은 알지만 입는 방법은 모른다고.
역시 부잣집 딸내미 같은 발언이었다.
“오늘 보스전을 겪으면서 느낀 게 있어요.”
포탈에서 나와 갑옷을 롤스로이스 팬텀 트렁크에 넣고 있자니 강시아가 조용히 말했다.
“뭐요?”
“그냥…… 내기 안 하려고요. 레벨 좀 올랐다고 방심해서는 쓸데없는 내기를 한 것 같아요. 아까 오크가 좀만 더 강했어도 우리 둘 중 한 명은 위험했겠죠.”
“그래도 일반 몬스터 상대론 전위가 괜찮았는데요.”
“일반 몬스터야 뭐 문제가 되나요. D등급이 되면 우리가 상대하던 보스가 일반 몬스터로 나올 텐데. 전위를 해 보니 몬스터 한둘 놓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친구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그냥 다시 같이 사냥해야겠어요.”
그러며 그녀는 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 노비스 후배한테 뒤처지면 안 되니까요.”
“엇. 아셨어요?”
“꽤 유명하시던데요? 13기로 최단 시간 E등급으로 승급한 사람. 근데 클래스를 안 정하고 노비스로 밀고 나가서 협회에 근심과 걱정을 안겨 준 헌터로요.”
별로 좋은 소문은 안 돌았네.
“어쩌면 D급에서 클래스 받는 거, 괜찮은 선택일지도 몰라요. 당신처럼 기본 능력치가 좋은 헌터는 25레벨까지의 여정도 쉽게 견딜 수 있을 테니까.”
“재벌가의 정보가 있는 겁니까?”
“D등급에서 선택할 수 있는 클래스가 대단하다는 풍문만 들었어요. 다만 25레벨 승급전 때, 경쟁자들을 이기고 D급이 될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전 안 봐줄 거예요. 후배님.”
D등급 승급전은 E등급 25레벨끼리 모여서 싸우는 거였지.
이 여자. 궁수로선 세던데…….
“그냥 먼저 올라가세요. 저랑 싸우려고 하지 말고.”
“저도 그러고 싶네요. 근데 전 구월 승급전을 노릴 건데. 왠지 지호 씨도 구월에 승급을 하실 것 같아서요.”
승급전은 홀수달 1일에 시작된다.
지금이 6월 말이니 내가 매일같이 E급 던전을 클리어하면.
솔로 플레이 위주로 경험치를 독식한다면.
9월은 충분히 노릴 수 있는 시기다.
“그때 다시 뵙겠네요.”
“네. 그때 페어플레이해 봐요. 이건 약속했던 선물이요.”
그러며 그녀는 트렁크에 있는 투핸드 소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엄청 비싸 보이는 무기를 드디어 얻었다.
“감사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오크 잡고 D급 마나석이 나왔는데. D급 마나석…… 나눌까요?”
“에이. 줄 생각도 없으면서? 그냥 가지세요. 뭐…… 처음 보는 마나석이긴 하지만.”
“헤헤.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 거니까 달라는 건 아니겠지?
내가 바로 마나석을 챙기자 강시아가 피식 웃었다.
“참 나. 처음 보는 거라고 해도 진짜 사양 없이 바로 가져가시네요. 강시아가 남자한테 굴욕 당하네. 이게 그거예요? 내 뺨을 때린 남자는 니가 처음이야?”
“때려 줘요?”
“됐거든요. 그쪽한테 안 반할 거니까.”
“저도 집사한테 전화 받긴 싫어요.”
“아, 진짜 그 이야긴 안 하기로 했잖아요! 승급전 때 봐요. 죽었어, 진짜.”
“하하. 잘 가요.”
“그래요. 승급전 때 봐요.”
손을 흔들면서 롤스로이스 팬텀을 보냈다.
그녀와 보낸 시간은 아주 바람직한 시간이었다.
레벨도 확인해 보니 12를 찍었고, 강력한 투핸드 소드를 얻었다.
아직 쓸지 팔아먹을지 결정은 못했지만, 둘 중 무엇을 택하든 만족스러운 딜이었다.
“그래서 이 무기가 강시아가 준 거냐? 햐. 연예인 만난 거로도 모자라 이런 비싼 무기까지 받다니…….”
진성이가 휴일이라 오랜만에 같이 던전을 돌았다.
검은빛이 감도는 검신.
검 손잡이에는 D등급 노란 마나석 조각이 박혀 있고, 손에 쥐니 무기가 가벼워진 느낌과 함께 활력이 돌았다.
검 자체에 마법이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적을 상대하자 위력이 놀라웠다.
이번 던전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형, 클레이 골렘이 나왔다.
흙골렘이라고 해도 아주 단단했는데 검을 휘두르자 그냥 으깨진 것이다.
검날은 상하지도 않고.
매일 뒤에서 마법만 날리다가 검의 위력을 보니 아주 신나서 양손 검을 휘둘렀다.
골렘이 별로 반항도 못하고 무너진다.
이거 자체 마법 때문에 생각보다도 더 가벼운데 강시아가 무거워했던 걸 보면 근력 수치가 진짜 형편없었나 보네.
돼지 목에 진주였군.
“야, 이거 너무 좋다.”
“하. 진짜 부럽다. 그 정도면 로또 당첨급인데? 누군 빚만 삼억인데…… 이제 적토마 마련 프로젝트도 가동해야 하는데…….”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녀석의 공격이 평소보다 힘이 없었다.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진성.
진짜 로또라는 게 과장이 아닌 것 같다.
거기에…….
“파이어 볼!”
양손 검을 한 손으로 쥐고 오른손을 뻗자 손바닥 위에 불덩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불은 곧 축구공 정도의 크기로 뭉쳐 불길을 사납게 뿜어냈다.
이를 멀리 떨어져 있는 흙골렘에게 던지자 쾅! 하며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2서클 마법, 파이어 볼.
마법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대중적인 마법.
흔하디흔한 이미지지만 위력은 확실한 마법이다.
강력한 불의 위력, 크게 폭발하면서 터지는 2차 피해까지.
돈을 마련하고 2서클 마법을 배우러 갔을 때, 10가지 마법 중 주저하지 않고 택한 마법이었다.
“야…… 뭐 이리 세냐? 혼자 다 해 먹네.”
“솔플 가능해 보이냐?”
“그래. 내가 무슨 쩔 받는 기분이다. 레벨 19가 12한테…… 황당해서 진짜. 싸울 맛 안 나는구먼.”
아예 바위에 주저앉아서 내가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는 진성.
기예 스탯 덕일까.
투핸드 소드를 다뤄 본 적도 없는데도 손에 무기가 착착 감긴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하나씩 무너지는 흙골렘들.
전투가 갑자기 너무 쉬워졌다.
“너 투핸드 소드 다뤄 본 적 있냐? 뭔가 잘 다루네.”
“그래 보여?”
“어. 검, 방패 때도 무기를 잘 다루더니. 검도라도 배웠었냐? 내 기억엔 니가 뭔 무술 배우고 다닌 건 없었는데.”
“협회 트레이닝실에서 수련을 좀 쌓긴 했지.”
“그래? 청룡언월도는 잘 못 가르쳐 주던데…… 검은 그래도 교관들이 많으니까 잘 가르치나 보네.”
혼자 납득하는 진성.
기예 스탯에 대해 말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굳이 그의 착각을 깨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활도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활을 쏴 본 적이야 없지만, 기예 스탯과 민첩 스탯이 시너지를 이루면 금방 터득할 것 같은데.
예전에는 원거리 공격은 마법이면 됐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싸워 보니 내가 구사할 수 있는 마법은 중거리 정도였다.
어느 거리 이상 가면 마나 연결이 끊겨 스르르 사라졌으니까.
솔로 플레이를 할 거면 원거리 공격 수단도 갖추면 좋을 것 같은데.
협회에서 활도 한번 배워 봐야겠다.
“너 지금부터 솔로로 던전 돌면 구월 일 일 승급전에 참가할 수도 있겠다.”
“그래?”
“어. 레벨 12지? 파티로 던전 클리어하면 두 달은 걸리지만, 솔로로 돌면 한 달에서 한 달 반이면 될 거야. 물론 거의 매일 나가야겠지만.”
“지금 유월 말이니 지금 페이스대로 매일 돌면 가능하겠지?”
“매일 돌면 오히려 시간이 남을걸?”
그렇게 잡담을 떨면서 몬스터를 잡아도 여유가 넘쳤다.
이제는 진짜 솔로 플레이가 가능하겠어.
그리고 이 양손 검.
계속 써야겠다. 성능이 엄청 뛰어나네.
검, 방패는 팔고 활 싼 거나 사고.
2서클 마법도 하나 더 배우고.
“야. 그러고 보니 내일 승급전 중계하는 거 아냐?”
“그게 중계도 가능해? 던전은 전자기기 못 가지고 들어가잖아.”
“엄밀히 말하면 던전은 아니니까. 엘프들이 수 썼다는데? 너튜브에서 한대. 내일 맥주 한잔 마시며 같이 볼까?”
“나야 좋지. 근데 너 길드 차원에서 시청 안 하냐?”
“오프라서 괜찮아.”
“그럼 콜.”
녀석과 헤어지고 협회에 가서 드워프제 검, 방패를 팔자 2억을 받았다.
살 때 3억이었는데…… 내 1억…….
1억으론 던전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최하급 활, 화살을 사고 남은 1억으론 엘프에게 가서 마법을 배웠다.
새로 배운 마법은 바로 힐.
금발 미녀 엘프에게 마법을 배우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노비스라고 들었는데 상당한 재능이시네요.”
“엇, 절 아세요?”
“저희 엘프들이 13기에서 가장 주목하는 헌터니까요. D급 되시면 무슨 클래스가 되실지 모두 기대하고 있어요.”
“D급 때 고를 수 있는 클래스가 뭐가 있나요?”
“어머. 알고 그러신 거 아니었어요?”
엘프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정보가 있으니 D급까지 노비스로 뻐긴다고 생각했겠지.
정보가 있긴 있는데 안 가르쳐 주네요. 미래의 내가.
“뭐 아시는 거 있으면 팁 좀 주세요.”
“저도 잘은 몰라요. 이런 경우는 드문 편이라…… 다만 특수 클래스를 고를 수 있고, 듀얼 클래스도 고를 수 있단 이야기를 들었어요. 예를 들면 마검사라든가 정령 궁수라든가.”
“오오. 좋아 보이는데요?”
“아주 강한 클래스예요. D급에서 전직하신 분들은 다들 그 세계에서 강자로 군림했죠.”
“근데 왜 사람들이 다 E등급에서 클래스를 고를까요?”
“그건 내일 승급전 중계 보시면 아실 거예요.”
엘프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D급이 되어야 전직도 하지요.”
너튜브에서 방영된 승급전.
압도적으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이 2시간가량의 재생 시간을 가득 채웠다.
나와 진성은 말아 놓은 소맥도 거의 마시지 못하고 화면에 열중했다.
그리고 순위 발표가 났을 때.
난 엘프가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최하위권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노비스였다.
나처럼 노비스로 뻗대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나 모두 실패했고, 실패 중이다.
순위 발표가 난 노비스 중에는 승급전 3회 도전, 4회 도전이라고 써진 사람도 많았다.
하나 모두 최하위권을 탈출하진 못했다.
“야. 저 전사 클래스 스킬들, 언제 배우는 거야? 너 쓰는 건 못 봤는데.”
“20레벨부터일걸? 그때가 또 다른 시작이래.”
방송에 나온 사람들은 각기 위력적인 스킬로 전투를 진행했다.
노비스만이 액티브 스킬 없이 반항하다가 학살당했다.
그 모습을 보니 노비스로 D등급 승급을 노린다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 저런 게 노비스지. 너 같은 케이스는 진짜 특이한 거고.”
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략집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대체 어떻게 저 전장을 헤쳐 나가려고 했을까?
노비스론 죽었다 깨어나도 깨기가 힘들 것 같은데.
레벨 25를 찍으면 뭔가 새로운 내용이 나올지도 모른다.
새로운 내용이 안 나오면 도저히 승급할 수가 없는 난이도다 저건.
상태창이 2개에 성장도 중첩되니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나는 승급전을 보고 난 후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매일같이 던전을 돌고, 돈을 모아 2서클 마법을 하나씩 배우고 협회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이 그렇게 지낸 지 40일이 지나자 드디어 레벨이 25가 되었다.
능력치도 다 균등하게 찍을 수 있었다.
메시지[이름 - 김지호
클래스 - NOVICE
수호신 - 쌍둥이자리의 신 폴룩스
칭호 - 박쥐 각성자
레벨 - 25
힘 ? 13, 민첩 ? 13, 마력 ? 13]
[이름 - 김지호
클래스 - 초보자
수호신 - 화산의 신 아우렐리아
칭호 - 없음
레벨 - 25
신체 ? D++, 마력 ? D++, 기예 ? D++, 행운 - D++잔여 포인트 : 1]
중립 진영의 상태창은 훈련으로도 능력치가 올랐기에 더 끌어 올렸고, 포인트는 1개가 남았다.
이걸 찍으면 C가 될 텐데 그러면 균등 능력이 무너지겠지.
이 정도 능력이 되니 이제 E급 던전은 손쉬웠다.
보스 몬스터도 나오길 바랄 정도.
레벨은 맥스를 찍었지만 돈 벌기 위해 던전을 돌며, 승급전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공략집이 드디어 업데이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