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상태창 2개-11화 (11/240)

<내 상태창 2개 - 11화>

10. 강시아(2)

“참 나. ‘아가씨와의 관계에 대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만…….’이 뭡니까. 제가 빨리 안 끊었으면 손발 사라지는 줄 알았어요. 21세기 맞습니까?”

“그만해요! 제발. 제발 그만. 아, 쪽팔려. 아 아빠 진짜!”

낄낄. 놀리니 재미가 쏠쏠하군.

집사 아저씨 제가 안 이른다고는 안 했습니다.

이런 때 아니면 천하의 강시아를 언제 놀리겠어.

“아가씨! 아가씨!”

몇 번 더 놀리니 나를 무섭게 노려본다.

투구로 가려졌는데도 눈빛이 번들거렸다.

“한 번만 이 건에 대해 말하면 투핸드 소드 안 줄 거예요.”

“닥치고 있겠습니다.”

이제 슬슬 몬스터도 나오니 긴장하기로 했다.

이번 몬스터는 일주일 전에 만났던 검은 오크들.

강시아로선 복수전인 셈이다.

“좋았어. 이놈들!”

신나서 뛰쳐나간다.

그러고 보면 며칠 전 내가 파티 거부하려고 했던 거에 충격 먹었다고 실토했었지.

자존심 회복을 위한 리벤지 매치인가.

“아이스 애로우.”

아이스 애로우와 실드를 번갈아 사용하며 강시아를 보조한다.

치명타는 아이스 애로우로 다 입히지만 강시아의 레이피어도 양손 검 때와는 달리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갑옷 안 입은 다리와 발을 찔러 움직임을 봉쇄하거나 나한테 오는 적을 견제해 주거나.

처음이랑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야.

순식간에 방 3개를 돌파했다.

F등급 던전은 몬스터 숫자가 주로 1-2-3-4 이렇게 4개의 방으로 배치되어서 나왔다면, E등급 던전은 2-3-4-5-6이나, 3-4-5-6-7 이런 식으로 배치가 많이 되어 있었다.

이번은 3마리부터 시작해서 5마리까지 손쉽게 처치.

6마리 방까지 후딱 처지하고 쉬자고 이야기를 나눈 후 바로 다음 방으로 들어가 오크들을 학살했다.

나름 일주일간 팀워크를 맞춰서 손발이 잘 맞았다.

마지막 방을 들어가기 전, 만반의 준비를 하기 위해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그만 놀려요.”

“아, 그거 말고요. 제게 섬상 들어간 친구가 있거든요. 근데 녀석이 정부랑 대기업에서 이 몬스터 사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는데 뭐 아시는 거 있어요? 정보가 통제가 되는 건가 싶은데.”

“음…… 저도 잘은 몰라요.”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지금 세상은 사실 튜토리얼 모드라고 보면 됐다.

엘프, 드워프 도우미가 있어서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던전도 D등급까지만 나온 거라고.

하지만 이들이 이제 1년 정도 후에는 철수를 해야 하는데, 그때가 되면 본격적인 던전 포탈 지옥이 시작된다고.

“흠. 몬스터를 총으로 쏴 죽이면 되지 않나요?”

“영체화는 D등급 헌터만 하는 게 아니래요.”

고위 몬스터 중에는 영체화하는 몬스터가 상당수 있고, 그중 최악이 ‘심연의 주인’이라는 보스 몬스터라 한다.

이 녀석을 제압하려면 B에서 C등급 헌터가 필요한데 기계 문명에서 C급 이상 헌터가 나오기가 힘들다고.

심연의 주인이 멸망시킨 기계 문명만 해도 벌써 셋.

고위급 헌터가 필요한데 D급에서 발전이 없이 영 지지부진한 게 현 상태라고 했다.

“엘프들은 무조건 철수해야 한답니까?”

“자기들이 머무르면 지구의 위험 레벨이 올라서 A급 몬스터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네요. 그럼 확실하게 멸망이라고.”

“음…….”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저 헌터 되는 걸 그렇게 심하게 반대 안 했어요. 헌터 능력이 오르면 살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 아니겠냐면서.”

“심연의 주인이라는 놈은 무조건 튀어나온대요?”

“꼭 그런 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기계 문명일 경우 나올 확률이 높다고 하네요. 그래서 D급 헌터 실력 늘리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별로 세상이 평화로운 게 아니군…… 폭풍전야네.

갑자기 공략집 받을 때의 멘트가 생각났다.

‘너는 실패하지 말고 더 잘하길. - By KJH’

혹시 심연의 주인 못 막아서 보낸 건가.

에휴. 그냥 내용 다 까 버리지. 공략집.

E등급 올라온 이후엔 업데이트도 안 되고 말이야. 쩝.

“이거 어디 가서 이야기하면 안 돼요. 암암리에 퍼지고 있긴 하지만.”

“예. 일 년 후엔 엘프가 철수한다니, 아쉽군요.”

“어휴. 남자들 엘프를 너무 좋아해서 문제야.”

강시아가 눈을 흘겼다.

“아니, 여자들도 남엘프 찬양하면서.”

“흥. 남자가 더 심해요.”

“아이돌 팬들 비교해 봐요. 여자 아이돌 팬이 극성입니까 남자 아이돌 팬이 극성입니까?”

“에이. 됐고. 남자들이 더 극성이라니까요. 여배우니까 알 수 있는 게 있어요.”

“아. 광고 뺏기셨어요?”

“안 뺏겼거든요?! 애초에 전 우리 회사 제품만 노개런티로 광고 나오거든요?”

대현 제품에 엘프 나온 거 본 거 같은데…….

오늘 많이 놀렸으니 이제 그만 건드리자.

투핸드 소드도 받아야지.

대신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근데 엘프들은 왜 광고 찍어요?”

“그러니까요. 지구 체류비 번다고 이야기하는데, 국가에서 다 도와주는데 무슨 체류비인지…… 웃겨 아주.”

또다시 발끈하는 강시아.

엘프 이야기가 역린인가 보다.

연예계 전체에 비상이 걸린 걸지도…….

엘프급 미모인 강시아도 이런 반응인데 아래 급들은 아주 죽을 맛이겠네.

가볍게 잡담을 나누다 준비를 마치고 다음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3미터에 이르는 오크를 보게 되었다.

던전핵 앞에 우뚝 서 있는 거대 오크.

덩치에서 오는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어…… 이거 보스 몬스터?”

“그러네요. 공격 들어갑니다. 아이스 애로우. 실드.”

선수필승.

오크 보스가 움직이기 전에 일단 아이스 애로우를 날렸다.

그와 동시에 강시아에게 실드 마법.

두 얼음 화살이 거대 오크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날아간다.

다행히 장비는 변변치 않다.

누더기 같은 옷에 나무 몽둥이.

아이스 애로우가 잘 들어가면 단번에 뚫을 법하다.

“크워어어어!!”

오크가 갑자기 동굴 전체가 흔들릴 법한 함성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날아가던 얼음 화살이 중간에 펑 하고 터졌다.

헐?

오크 약점이 아이스 애로우라더니?

뭔 고함 소리로 마법을 날려?!

“인간. 죽인다!”

쿵. 쿵. 쿵. 쿵.

걸어오는데 땅이 진동한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뛰는 거 같지도 않은데 다가오는 건 순식간이다.

“에잇!”

오크 고함에 잠시 경직되었던 강시아가 달려든다.

몽둥이를 피하고 발등에 레이피어를 찔렀지만, 툭 하고 튕겨 나간다.

“뭐 이리 단단해……!”

“간지럽다. 인간!”

“아이스 애로우!”

일단 다시 얼음 마법을 2발 날린다.

강시아를 휘갈기려던 몽둥이가 잠시 멈추고.

오크는 날 바라본다.

“크워어어!!”

몸에 닿으려니까 터지는 아이스 애로우.

아, 무슨 함성으로 마법을 부숴.

진짜 어이가 없네…….

그래도 마법을 인지하고 그 방향을 바라보며 고함을 질러야 없애는 거 같다.

그럼 접근해서 쏴도 과연 없앨 수 있을까?

나는 거대 오크에게 돌진했다.

“위험해요!”

“멀리서는 어차피 마법 안 통해요!”

“마법사! 미쳤군!”

휭!

바람을 가르며 내리찍는 몽둥이.

쨍그랑!

실드 마법을 펼치며 피하는데, 몽둥이 속도가 전혀 줄지 않는다.

원래 실드 닿으면 속도가 줄어드는데…….

1서클 실드, 이 쓸모없는 것.

어쨌든 피하긴 피했다.

“아이스 애로우!”

바로 가까이서 고함을 지르기 전에 쓰는 마법.

예상이 적중하여 2발의 얼음 화살이 오크의 가슴을 뚫는다.

“크륵……!”

하지만 확실히 위력이 달린다.

가슴에 파고들기도 전에 화살이 스르르 녹는다.

얼음 마법이 약점이라는 건 일반 블랙 오크지 이 보스 몬스터는 아닌 건가?

“죽어! 죽어!”

휭! 휭!

오크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한다.

나름 능력치가 많이 올라서 대응할 만했다.

그래도 방패로 막는 건 자신이 없다.

100퍼센트 홈런 각이야.

강시아가 열심히 찔러 보려고 하지만 그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공격이 아예 박히질 않으니…… 이러다 1:1되겠어.

“파이어 볼트!”

얼음이 안 통하면 불!

하지만 파이어 볼트도 피부 조금 뚫다가 말았다.

와! 이거 문젠데?

공격 자체는 피할 만한데 내 공격도 안 먹히네.

검으로 공격을 할까?

아! 마법사로 인식되고 있는데…… 여기서 칼질이 먹혀도 문젠데.

“으워어어어!!”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자 열이 받는지 오크의 공격이 빠르고 광포해진다.

쾅! 쾅! 쾅!

방망이의 일격에 바닥이 움푹 파이자 생각이 바뀌었다.

아끼다 똥 된다.

이거 잘못 맞으면 뒤진다.

“윽…… 지호 씨. 잠깐 붙잡아 둘 수 있어요? 활을 쏴야겠어요.”

레이피어로 아무리 찔러도 안 되자 강시아가 비장하게 말했다.

나야 환영이지. 근데…….

“활이 없잖아요!”

“갑옷 안에 있어요! 조금만, 조금만 버텨요!”

갑옷 안에 뭔 활이 있지?

뭔가 칭, 책. 이런 소리와 함께 철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 거대 오크 공격을 피하느라 볼 수가 없었다.

[폴룩스가 강시아의 가슴이 일품이라고 감탄합니다.]

아이, 미친 수호신은 날 수호할 생각은 안 하고 여자 몸매나 보고 있냐. 아오.

힐긋.

아이 씨, 옷 입고 있잖아!

저런 건 광고에서도 볼 수 있어!

“어딜 보나!”

갑자기 시야가 붉어지며, 머리가 따가워진다.

쾅!

바로 옆에 떨어지는 몽둥이.

진짜 간발의 차였다.

아이구, 이 망할 수호신 때문에 죽을 뻔했네.

[아우렐리아가 더없이 한심한 눈으로 사용자를 바라봅니다.]

아, 억울하다. 억울하지만…….

싸움에 집중하겠습니다.

“파이어 볼트. 아이스 애로우.”

계속 공격 마법을 쓰는데 별로 유효타가 아니다.

가슴은 너무 단단하니 머리를 노리는데 머리도 몇 방 맞아도 금방 회복한다.

열 받아서 고간 쪽에도 마법을 갈겼는데 그때마다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고함을 질렀다.

새끼, 고추 소중한 줄은 아네.

“간지럽다. 인간!”

파이어 볼트가 머리를 직격했는데 오히려 머리를 까닥이며 고함을 지르는 오크.

내가 진짜 빚져서라도 2서클 배워야지 안되겠다.

일반 몬스터는 쉬운데 보스가 힘드네.

속도에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검으로 발과 허벅지, 고간 쪽을 노렸다.

방패 든 손으로는 마법을, 검 든 손으로는 검술을.

“크으윽!”

검격이 아예 안 통하지는 않는지 오크의 피부에 검붉은 혈선이 나타난다.

하지만 금방 봉합되어 매워진다.

허. 허탈하네.

거미 때와는 달리 상성이 너무 안 좋다.

이대로라면 체력전인가?

그때였다.

“포이즌 애로우!”

슁!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오크의 눈이 화살에 꿰뚫렸다.

지금까지 중 첫 번째 유효타!

“크아아악!!”

눈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오크.

나는 녀석이 소중하게 지켜 오던 고간에 일단 아이스 애로우 2개를 꽂아 넣었다.

“으아아아아악!! 으아아. 으아아악!!”

광분하면서 몽둥이를 미친 듯이 휘두르는 오크.

쾅! 쾅! 하며 동굴을 부술 기세다.

일단 이 공격 범위에서 빠져나가자.

슁! 슁! 슁!

화살이 계속 날아간다.

화살을 안 맞은 눈.

고통스럽게 벌리고 있는 입안.

그리고 가슴을 향해 거의 동시에 화살이 꽂힌다.

“크…… 크아아아아!!”

그 속도와 정확도에 나는 감탄했다.

야. 궁수 클래스가 맞긴 맞구나?

엄청난 실력인데?

오크가 양 눈에 박힌 화살을 뽑았지만 한쪽은 너무 세게 뽑았는지 눈알이 빠져나와 덜렁거렸다.

독화살을 맞아서 그런지 초록빛이 감돌았다.

이제 시간을 끌면 강시아가 화살로 마무리하겠지.

“지호 씨. 지금 빨리 끝내야 해요!”

“예?”

“화살이 없어요!”

뭐 4발밖에 없냐!

난 다시 달려들어 녀석의 가슴에 박힌 화살 쪽을 향해 파이어 볼트를 쐈다.

화살을 타고 타오르는 불.

이번에는 효과가 있다.

“크…… 크으으으…….”

오크의 동작이 느려지고, 한쪽 다리가 주저앉는다.

아이스 애로우를 쉬지 않고 입안으로 쑤셔 넣는다.

마나가 다 떨어져 가슴이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들 때.

거대 오크가 움직임을 멈추고 쓰러졌다.

곧 시체가 사라지며 D급 마나석이 나타났다.

“와…… 이번 건 좀 힘들었네.”

녀석의 시체가 사라지고 떨어진 마나석을 줍자 힘이 쭉 빠졌다.

2서클 마법, 빨리 터득해야겠어.

방어력 높은 적이 나오니 정말 힘드네.

“지호 씨. 괜찮으세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뛰어오는 강시아.

내가 비싸서 못 샀던 타이트한 엘프 제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강철 갑옷을 벗으니 몸매 라인이 보였다.

흉부가 조금 더 발달한 완벽한 S라인.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을 멍하니 보자니 크게 출렁이는 가슴에 시선을 빼앗겼다.

폴룩스 녀석. 감탄한 이유가 있긴 하네.

[폴룩스가 무한 정력을…….]

아, 제발 일절만 합시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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