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태창 2개 - 7화>
6. 각성자 등급 E(2)
[무한 정력 1레벨.]
[패시브 스킬.]
[치마 두른 것만 보면 발정 나던 반신 시절 폴룩스의 핵심 스킬입니다.
성욕이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미추를 따지지 않고 여자면 다 괜찮다는 낮은 미적 기준을 지니게 됩니다.
종족을 불문하고 한 방에 임신이 가능한 강화된 정자를 지니게 됩니다.
남성 호르몬이 질적으로 달라집니다.
여성 개체를 상대 시 힘, 민첩이 강화됩니다.
사용자의 등급이 낮아 스킬 효과가 10%만 적용됩니다.
여자를 품을수록 스킬 효과가 강화됩니다.]
이딴 게 왜 A급…….
하아.
여성 개체 상대 시 스탯 강화 하나만 쓸 만하겠네.
흠…… 흠. 아니, 뭐 다른 것도 언젠가 쓸데가 있기는 하겠다만…… 흠흠.
[아우렐리아가 D급은커녕 강등될 게 뻔하다고 한탄하며 스킬을 내립니다.]
[D급 스킬 ‘위험 감지’를 얻었습니다.]
[위험 감지 1레벨.]
[패시브 스킬.]
[사용자가 인지하지 못한 위험을 대신 감지합니다.
시야가 잠시 붉어져 위험을 경고합니다.
피격당할 신체 부위가 따가워지며 위험을 경고합니다.]
이런 거 좋아.
쓸 만하잖아.
스킬창을 열어 보니 다행히 패시브 스킬 ON/OFF가 있었다.
위험 감지는 항상 켜 두고 무한 정력은…….
“란돌프 님, 다시 선택 안 되나요? 노비스라뇨?”
“이게 우리가 주관하는 게 아니야, 인간 처자. D급 되길 기다려.”
“아아…… 부장님한테 죽겠네…….”
드워프한테 부탁하던 여직원이 울상을 지은 채 돌아왔다.
아까 올 때만 해도 평범해 보이던 외모.
예쁘지도 못생기지도 않고, 살찌지도 너무 마르지도 않은 딱 대한민국 표준 여성.
거기에 진한 다크 서클, 화장이 부분적으로 지워져서 톤이 안 맞는 피부색. 축 처진 등.
표준 외모를 갉아먹는 외부 요인도 많았다.
근데 그런 그녀를 보니까 갑자기 불끈불끈한다.
심장이 두근두근하며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데, 이게 사랑에 빠져서라기보다는 정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확! 하는 충동이 들어 내가 스스로 흠칫했다.
“지호 씨…… 일단 내려가시죠.”
풀 죽은 얼굴.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수 냄새.
대한민국 표준 체형이라 몸의 굴곡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매력이…….
아. 안 돼. 이런.
짝. 짝.
내 뺨을 일단 때렸다.
“지호 씨?”
“잠시만요.”
당장 무한 정력을 OFF시켰다.
그러고 여직원을 보니 마음이 아주 차분하게 안정되었다.
폴룩스 앤 대체 뭐 하는 신이야.
여직원이 혹시 아나 엘리베이터에서 물어보았다.
“폴룩스요? 그러고 보니 1기 각성자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남녀 차별이 엄청나다고 하더라고요.”
“남녀 차별요?”
“E급 승급 시에 스킬을 받잖아요? 남자는 거의 일괄적으로 F급 체력 재생 스킬만 준다고 하네요.”
“여자는요?”
“기본이 D급 스킬이라고 하네요. 스킬 종류도 여자 클래스에 맞춰서 딱딱 주고.”
“여자를 밝히나 보네요.”
“아마 그럴 거예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십 대 초반에 할머니뻘 여성을 임신시켰다는데…….”
미친놈이었구나.
“이런 놈이 질서 영역의 신이라니…….”
[폴룩스가 남자가 여자를 추구하는 건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자 질서라고 일축합니다.]
헛. 이런 것도 태클을 거네.
어디까지 볼 수 있는 거야?
난 그런 의문을 지으며 1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서는 협회 직원들이 달려와서,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냐, 또 인터넷에서 봤냐, 13기 최고 유망주가 될 수 있었는데, E급 던전 누가 같이 가 주겠느냐 등등 잔소리를 퍼부었다.
집 간다는 사람을 1시간 동안 붙잡고.
그렇게 시달리니 괜히 마음이 허탈해져 빨리 공략집을 펼쳐 보고 싶었다.
집에 가자마자 책상에 앉아 바로 공략집을 꺼냈다.
[E급 등급 업그레이드를 축하한다.
클래스를 안 골랐을 텐데…… 이제부터는 정말로 힘들 거다. 난 전사 클래스로 레벨 12부터 솔로 플레이를 했지만, 노비스였다면 20이 넘어도 솔로 플레이가 불가능할 테지.]
지는 전사 골랐었네. 치사한 놈.
[협회에서 E급 던전 적응을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을 거다. 일주일 정도 협회 소속 E급 헌터가 같이 던전을 돌아 주는 제도인데,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해. 그리고 그 기간이 끝나면, 진성이의 도움을 받아라. 그리고…… 아버지 보상금을 활용해서 장비도 갖추고. 꼭. 무조건.]
맨 마지막 줄의 내용에 난 공략집을 닫고 한숨을 쉬었다.
보상금을 활용하라고?
이걸 내가 쓴 게 맞나?
그건 아버지 돈인데 내가 어떻게 맘대로 써?
일단 뒷 내용을 보자.
[네가 무슨 생각을 할지 나니까 안다. 아버지, 나중에 만난다. 좀 미래긴 하지만. 크. 나한테 내가 스포일러하니 재밌군. 어쨌든 안심하고 써라. D급 되는 게 먼저야. 어차피 E급 헌터 때 던전 클리어만 잘하면 삼억은 금방 메운다.]
응……? 아버지가 돌아오신다고?
침을 꿀꺽 삼켰다.
아버지.
어머니가 중학교 때 웬 놈팡이랑 눈 맞아서 집 나간 이후에 날 물심양면으로 키워 주셨던…… 나한테 누구보다도 소중한 가족.
작년 6월 14일, 몬스터 사태가 벌어진 지 3주도 안 돼서 세상이 어수선한 그때.
나는 군대 갔다 와서 지금 다니는 대학 답 없으니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 선언하고 놀고 있었다.
유엔에서 연설하는 하이 엘프를 보고 반해 가지고 컴퓨터 바탕 화면 그거로 바꾸고 있을 시기.
아버지가 출장 갔다 올 테니 잘 놀고 있으라 하고 나가셨고…… 행방불명되셨다.
국가에서 공무원이신 아버지를 어딘가로 출장을 보냈고.
아버지는 거기서 돌아오질 않으셨다.
나라에서 사람이 오더니 극비 임무를 수행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3억의 보상금을 지급해 줬다.
어디서 뭘 하다가 돌아가셨는지는 국가 기밀이라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시신이라도 뵙고 싶다고 하니깐 극비 임무 중 행방불명되셔서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고 했지…….
개새끼들.
가족한테 극비. 극비.
극비라고? 개새끼들아.
인터넷에 글을 올려도 삭제.
일인 시위를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고.
요 1년간 각성자에만 빠져 살았다.
시기가 너무 절묘해서 세상이 변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었기에.
관련 정보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일개 개인이 알 수는 없었다.
솔직히 1년이 지난 이젠 포기하고 살았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아버지가 보상금으로 받은 3억을 쓰지 않는 것만이 내 최후의 고집이었다.
“뭐…… 그런 놈이 아버지 퇴직금으로 노량진 원룸 보증금 내고 국가 유공자 연금으로 생활비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그런데 이 공략집은 딴소리를 한다.
살아 계신다고?
김지호.
미래의 내가 그렇게 말했다.
정말…… 사실일까?
사실이겠지. 그래야겠지.
믿는다. 지호야.
아버지 가지곤 장난 안 치는 너잖아.
이번 건 정말 믿는다…… 지호야.
공략집을 보고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가 정신을 다시 차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오후 9시였다.
6월 12일.
2일 후면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오랜만에 용인 본가에 가서 집이나 청소해야겠군.
띠리리리.
전화가 울려 폰을 보았다.
[이진성.]
귀국했나?
“어. 진성아.”
-형 왔다.
“하와이 물은 좋더냐?”
-시파 하와이까지 가서 훈련만 돌리더라. 이럴 거면 하와이까지 왜 갔나 싶다.
“야구 선수냐? 전지훈련 갈 거면 괌이나 가지.”
-그러니까. 신입 헌터 워크숍 하와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이 주 동안 폰 뺏고는 하드 트레이닝만 돌려. 미친 거 같아. 아니 훈련한다고 스탯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운동선수도 이만큼은 훈련 안 할 거 같더라. 길드 때려치울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핸드폰도 뺐냐? 어쩐지 꺼져 있더니. 형 헌터 됐다.”
-오, 진짜? 그럼 13기 헌터냐? 축하한다. 형은 11기인 거 알지? 빨리 선배님한테 존댓말 쓰도록 해라. 2기수나 차이 나네.
“같은 E등급이라서.”
-아, 이 새끼 뻥쳤네. 뭔 열흘 만에 E등급이야. 형 한 달 만에 E등급 된 것도 엄청 빠른 편이거든? 다음부터 뻥은 좀 조사하고 쳐라.
“야, 헌터 신분증 찍어서 보내?”
-새끼…… 진짠가?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겠다. 어쨌든 이틀 뒤에 내 귀국 축하 겸 니 헌터 승급 겸해서 한잔. 콜?]
“아, 그때 아버지 실종 날이라 집 좀 치우려고 했는데…….”
-아, 그래? 벌써 일 년 지났구나…… 그럼 집 같이 치우고 이야기나 하자.
“그래. 모레 용인 집에서 봐.”
-오케이.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죽마고우 이진성.
초중고 같이 다니고 대학 시절 때는 서로 떨어져 지냈지만 언제나 고향 집 오면 같이 술 퍼 마시던 친구.
2달 전에 헌터 각성해서 바쁘게 살더니 E등급 전사로 빠르게 승급했다.
그러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섬상 산하 각성자 길드에 들어가서 하와이 워크숍을 갔다 온다.
입으론 힘들다고 쌍욕 하지만 근면 성실하기론 내가 본 사람들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녀석과는 워낙 친해서 공략집에서 이야기한 대로 도와 달라고 하면 100퍼센트 도와줄 거다.
스탯 중첩이 아니었으면 체면 불고하고 도와 달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뭐 굳이…….
같이 던전이나 한번 돌지 뭐.
“야. 집 치울 것도 없네.”
“뭐 더럽힐 게 없으니깐. 먼지나 터는 거지.”
“어디 신분증 좀 봐 보자. 헐. 진짜네?”
빡빡머리에 몸에 딱 달라붙은 파란색 나시, 근육 울퉁불퉁한 마초남 이진성.
이 녀석, 헌터 되기 전에도 몸 좋긴 했는데 되고 나니까 더 괴물 됐네.
스테로이드 빤 헬스 트레이너들 몸처럼 됐다.
“야. 난 딱 마른 근육,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근육이 되었는데 닌 왜케 징그럽냐.”
“미친놈. 뭘 아는 애들은 날 더 좋아하거든? 시바, 멸치 근육 가지고 어디에 형님 근육이랑 비교하냐. 너 협회 트레이닝실에서 트레이닝해 본 적 있냐?”
“어. 맨날 가.”
“여자 트레이너 이쁘지? 개네들 중 다섯 명이 형 번호를 따 갔다 이거야. 연락 오는데 귀찮아 죽겠어.”
헐. 난 3명이 물어보던데.
졌다…….
“그래서 집 치우고 뭐 하려고 그랬냐?”
“뭐, 별거 있겠어? 아버지 돌아오실 텐데. 그냥 일 년 지났구나 해서 온 거지. 술 마실래?”
“너…… 괜찮겠어?”
“괜찮아. 아버지 안 돌아가셨다니깐. 술이나 먹자. 소주랑 맥주나 좀 사 와라. 아버지 아끼던 양주도 까야지.”
“니가 괜찮다고 했다. 니가 양주 깐다고 했다. 난 정말 하나도 관련 없는 거다.”
“빨리 술이나 사 와.”
한 잔, 두 잔 잔을 나누며 술을 들이켰다.
치킨도 시키고 피자도 시키고.
각성하니까 술도 잘 안 취해서 소맥 말다가 양주도 먹다가 양주에 맥주도 섞다가.
먹고, 먹고, 또 먹었다.
나는 각성 후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쭉 이야기했다.
상태창 2개나 공략집의 존재까지는 도무지 납득시킬 수단이 없어서 그것만 빼고.
진성은 내가 노비스를 골랐다는 걸 듣자마자 거짓말하지 말라며 손을 흔들었다.
진심으로 안 믿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4시간 동안 먹었을까.
집 안은 술병과 피자, 치킨 박스, 과자 봉지로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다.
“야. 우리 집 치우러 온 게 아니라 더럽히러 온 거 같은데?”
“그러게. 뭐 이렇게 많이 처먹었지?”
“야, 이젠 솔직히 말해 봐. 노비슨 구라지? 취했으니까 정교한 구라를 칠 수는 없을 거다.”
“아, 진짜라니깐. 자, 상태창 봐 봐.”
상태창 2개 중 질서 진영 걸 보기 모드로 해서 진성에게 보여 주었다.
녀석은 내 상태창을 보더니 눈을 부릅떴다.
“야, 이 똥망 능력치는 뭐냐. 근데 직업도 안 고르고 대체 무슨 깡이냐? 너 미쳤어?”
“아, 형이 큰 뜻이 있어.”
“아오. 큰 뜻은 무슨. 너 안 되겠다. 내 오프 때마다 던전 끌고 가야겠다. 야, 이런 능력치로는 파티도 안 끼워 줘.”
“나 혼자 돌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제도 혼자 돌라고 했는데 협회 사람들이 한 달 동안은 혼자 못 돈다고 하더라. 그래 놓고는 나 교육해 줄 E급 헌터도 못 데려와서 어제 훈련만 했어. 내 아까운 경험치 두 배 버프.”
“야, 니 이 똥 능력치로는 한 달이 아니라 두세 달 동안도 무조건 파티 플레이해야 해. 혼자 돌다가 죽어.”
“진짜 죽는 건 아니라며.”
“고통은 진짜야. 폐인된 사람 여럿 봤다. 이건 장난이 아니야.”
“자식. 내 능력을 입증해야겠구먼. 내일 같이 돌 때 형님이 보여 줄게.”
“아오. 이 또라이야. 8, 7, 7로 무슨. 스탯은 왜 이따위로 찍었냐 진짜. 하와이 괜히 갔네. 친구 놈 완전히 망했네. 너 이거 게임이었으면 캐릭터 삭제감이야.”
등급 업 스탯 포인트로 8, 7, 7, 행운 D로 만들었는데.
질서 진영 8, 7, 7 스탯을 보고 진성은 계속 나를 똥캐, 잡캐라고 하면서 걱정했다.
하지만 다음 날 던전을 같이 가자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너…… 왜 이렇게 세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