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312화 (312/313)

# 312

에필로그 1 나는 아직 살아있다.

벙커 버스터가 목표를 정확히 관통한 그 날, 모두를 괴롭히던 어둠은 뜨기 시작하는 여명과 함께 물러났다.

인류를 멸망시킬 기세로 장벽을 넘다가 아침이 온 순간 거짓말처럼 물러나기 시작한 놈들.

최후의 보루가 버티고 있던 전 세계 전선에서는 그 시간을 기점으로 대반격이 시작되었고 미국도 모든 병력을 총동원해 국토 수복에 나섰다.

하지만 전 국토가 환호성과 기쁨의 눈물이 가득한 그 순간에도 아침을 맞이한 캘리포니아 미군 기지는 침묵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백악관의 특별 지시로 시작된 수색 작전.

그것은 한 남자를 찾기 위해 캘리포니아 미 육군 전체가 총동원된 진정한 공포의 종식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라.’

수색 작전에는 수십 개의 대형 굴착기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색견이 투입되었고 치열한 전장에서 겨우 살아남은 군인들은 종말의 끝을 만끽할 겨를도 없이 이 작전에 자원해 밤낮없이 현장을 수색했다.

전 세계가 소유하고 있는 위성과 미국이 소지하고 있는 첨단 장치를 총동원해, 하루하고도 반나절 동안 이뤄진 수색 작전.

그리고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기 직전인 밤 9시에 어린 수색견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베일리 상병은 갑자기 땅을 파헤치며 짖기 시작하는 자신의 수색견에게 깜짝 놀라 저 멀리 있는 상관을 급히 불렀다.

컹컹-! 컹컹컹!

“뭐가 있습니다!”

근 7시간 만에 들려온 수색견의 반응 소식은 샌프란시스코 사방을 수색하고 있는 스티브 대령과 에덴 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리고 밤중에 급히 현장을 찾아온 후버 국장은 구조 전문가와 모든 병력을 투입해 곽동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 지역을 빠르게 치우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밝혀 오는 조명들과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하는 눈.

이번 작전에 투입되거나 관계된 모든 사람은 거의 다 치워져 가는 현장으로 모여들었고 그 남자가 기적적으로 살아있기를, 언제나 그렇듯 고난의 길을 넘어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내리는 눈 사이에서 간절하게 빌었다.

그리고 잔해와 흙이 쌓인 대지가 완전히 드러나자,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한 남자가 꼭 잠이 든 것처럼 무언가를 꼭 끌어안은 채 땅 안에 곤히 누워 있었다.

“일, 일어나시면…….”

“내버려 둬!!!”

남자가 모습이 드러난 순간 휠체어를 타고 도착한 용팔이는 실성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일어나 현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깜짝 놀라 의료진은 용팔이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 옆에서 울음을 삼킨 스티브 대령은 따라가려는 의료진을 온몸으로 제지하며 눈을 꾹 감았다.

현장에서 빠져나온 3명 중 유일하게 혼수상태에서 일어난 용팔이. 그 누구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곽동윤의 곁에 가장 먼저 다가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이 중에 그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틀비틀 뛰어간 용팔이가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흙을 파헤치자, 마치 잠이 든 것처럼 세상을 떠난 곽동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순간에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이 외롭고 고독한 공간에서 이렇게 웃을 수가 있었을까.

용팔이는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은 곽동윤의 얼굴을 꾹 끌어안으며 얼굴에 내려앉은 차가움으로 눈물로 씻어 내렸다.

“형님, 이제 괜찮아요…….”

꼭 돌아온다고 했었다. 반드시 밖에서 보자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끝까지 모든 것을 마무리한 곽동윤은 가족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심장이 멈춘 그 순간까지도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싱크홀에서 빠져 나와, 우리가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입구 앞에서 잠시 기다려 준 그.

용팔이는 항상 나아가야만 했던 형님에게 이제는 괜찮다고, 이제는 그만 멈춰도 된다는 말을 조용히 읊조려 주었다.

그러자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의 장난인지 곽동윤이 꼭 끌어안고 있던 품속에서는 불에 그을린 가족사진이 떨어져 나와 용팔이 앞에 떨어졌다.

마지막 순간에도 그가 웃을 수 있었던 이유, 곽동윤은 이미 가족과 만났었다.

눈이 시리다.

언제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먼저 뛰어가더니, 이제는 인사를 나눌 시간조차 주지 않고 가 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처럼 눈이 내리는 도시에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으니, 흘려야 하는 눈물조차 우리가 공유했던 모든 감정에 잠겨 버렸다.

만나서 행복했어요. 만약 그때로 또 돌아갈 수 있다면 나도 형님이 했던 것처럼 똑같은 선택을 할 거에요.

그러니까, 이제는 춥지도 외롭지도 않은 곳으로 같이 가요.

“- - - - - - - -.”

호수처럼 잔잔한 바람이 불어오자 바람 사이로 에덴을 향해 먼저 떠나간 형님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저 뒤에서 에덴 팀이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펑펑 내리고 있는 함박눈 사이로 보였고 무전기에서는 두식이와 노인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희소식이 시나브로 들려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둠으로 물든 밤이건만 왜 이리 눈이 부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빛의 번짐이 아닌 남자가 남기고 간 슬픔이었을지도 몰랐다.

아마 영원한 이별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은 여전히 알고 있었다.

그는 아직 살아 있다고.

*       *       *

20xx년, 12월 29일. 서울특별시 관악구 에덴 보훈 재단 2층.

다큐멘터리 미방영분 마지막 화, 엄 재형 편.

[한미 정부가 제공한 보상금을 전부 사회에 환원한 에덴 재단의 건물은 최 용팔 단체장이 직접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검소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오자 느껴지는 분위기는 너무나 포근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남녀노소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편안했다. 그리고 우리는 데스크에 하나뿐인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건물을 구경했고 은퇴한 것으로 알려진 엄 재형 씨의 모습을 드디어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었다.]

[엄 재형 씨는 휠체어를 탄 채 우리를 맞이했다. 마지막 전투로 척추를 다친 그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지만, 수년이라는 시간을 전후 복구에 힘쓰며 에덴 팀의 주축을 맡아 왔었다. 하지만 은퇴한 지금은 무서운 훈련 교관이라는 명성과는 걸맞지 않게 손자 손녀와 놀아주는 친근한 할아버지로 변해 버린 지 오래였고 우리는 그가 친히 타준 커피 믹스를 마시며 편안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하, 내용은 12월 29일 서울특별시 관악구 에덴 보훈 재단 2층에서 이뤄진 엄 재형 교관의 인터뷰 전문이다.]

모든 게 꿈만 같았어. 사람들이 전쟁이 끝났다고 하니까, 아무도 믿지 않을 만큼 생소한 평화였지.

다들 환호성을 지르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냥 아무나 끌어안고 방방 뛰었던 것 같아.

적도 아군도……,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는 그런 아침은 처음이었지.

그리고 나랑 두식이가 눈을 뜬 날도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한밤중이었는데, 내가 깨어나자 본 간호사가 얼굴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전쟁이 끝났다고 말해 줬어.

할아버지! 전쟁이 끝났어요. 놈들이 물러나고 우리는 이제 살았어요.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애처럼 울 수밖에 없었어.

용팔이 녀석이 말해 주더라고. 형님이 먼저 갔어요. 동윤이 형님이 힘들어서 먼저 갔어요.

그 미련한 녀석이 이 늙은이만 내버려 두고 그렇게 가 버린 거야.

힘들지 않았냐고, 혹시 그날 옥상에서 나를 만난 거 후회한 적 없냐고 물어보고 싶었는데, 정작 녀석을 끌어안고 우느라 그러지도 못했지.

그리고 팀이랑 같이 유해를 수습하는데 심장에 총을 맞고 오른쪽 다리가 없어서 성한 구석이 하나 없더라고.

녀석이 마지막에 뭘 한 줄 알아? 그 먼 통로를 죽기 직전까지 기어서 우리한테 온 거야.

혹시 우리가 마지막에 자기를 찾지 못할까 봐, 언제나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내가 못 알아볼까 봐 말이야.

동윤아, 동윤아! 너한테는 미안한 것뿐인데, 왜 그때는 웃고 있었니? 누워 있는 녀석한테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은 없었어.

세상이 무너졌어. 이제는 이별이 아프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을 잃고 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어. 이 종말도 그 녀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저 세상도 전부 원망스럽고……. 그냥 그 길을 따라 동윤이를 따라가려고 했지. 하지만 그때 언제나 애일 것 같은 용팔이 놈이 동윤이가 준 모자를 쓰고 나한테 와서 말하더라고.

할아버지, 형님은 무슨 세상을 만들고 싶었을까요?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어.

혹시 바로 지금이니? 그러니까 용팔이 녀석이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동윤이가 평생을 원했던 건 자신을 기억하는 지금이 아니라,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내일이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게 녀석이 남긴 유산이었던 거야.

조용히 떠날 준비를 했어. 미국 대통령이라는 놈이 직접 와서 붙잡았는데, 눈에 뵈는 게 없더라고.

가지고 온 짐을 싸고……. 다친 사람들은 대충 붕대만 둘러메고 시더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지.

그리고 아침 일찍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다들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그제야 눈물 흘렸던 것 같아.

총 두 달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원정이 끝이 났어. 다들 많이 다치고…. 평생을 앞에서 이끌어 준 등대가 사라졌을 때, 마지막 임무가 끝난 거지.

동윤이가 살아 있을 때 그렇게 말하던 에덴의 무덤 옆으로 드디어 돌아갈 수 있게 된 거야.

그리고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모두가 손을 잡고 은색 관을 내리니까, 이틀 전에 한국에 도착했던 채연이랑 강수련이 기다리고 있었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으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하려고 말이야.

그날 아이들이 느꼈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자신의 아버지가 가져다준 여명을 보고 있을 채연이의 심정을 내가 과연 다 알 수 있었을까?

아니, 슬픔보다 엄숙하고, 희생보다 고귀했으며……. 그 누구보다 자랑스러웠을 그런 아빠.

아이들은 슬픔에 주저앉기보다 동윤이가 가져다준 내일을 생각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우리는 모두가 손을 잡고 그 은색 관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옮겼지.

아무 일도 없었어. 그날은 전 세계가 총성을 멈추고 책을 읽었던 사람들은 전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추모를 했어.

녀석은 아무도 자신을 기억해 주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장례식장이 좁아서 종합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길 만큼 많은 사람이 찾아온 거 같아.

눈물보다는 흰색 꽃 한 송이를, 추모식보다는 그냥 하늘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지.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울고 웃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났던 한 남자가 가져다준 일상은 회색 도시에서 내렸던 아름다운 함박눈만큼 조용하고 포근했으니까,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게 맞겠지.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모두가 알고 있을 거야. 우리가 사랑과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듯 알고는 있지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소중함이란 것이 그런 것일 테니까.

그리고 동윤이가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 지금은 녀석이 살아 있다면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어.

네가 그토록 말하던 봄이 오고 일상이라는 아침이 왔는데, 이것으로 괜찮냐고……, 너는 상처 입고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행복이란 것을 알지도 못하고 우리에게 넘겨줬는데, 이걸로 정말 괜찮냐고 말이야. 그럼 녀석은 이렇게 대답하며 바보처럼 웃을 거야.

네, 괜찮아요.

[여기까지 말한 엄 재형 씨는 결국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는지, 휠체어를 끌고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 쓰고 있던 안경을 창가 위에 올려 두고 눈물을 닦으며 한동안 그가 있을지 모르는 하늘을 바라봤다. 에덴의 훈련 교관인 그가 은퇴하고 놈들과의 전쟁도 마무리가 되어 가는 지금, 전 세계가 종전이 왔다고 선언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4일이었다. 이제는 전방에 있는 에덴 기지도 사라지고 모두가 반대했던 에덴 팀도 해체 과정을 밟을 것이 확정된 상황. 우리 제작진은 그를 카메라로 볼 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에덴이 해체되면 팀과 가족들을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갈 생각이라고 했다. 물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들고일어나며 그들을 말렸지만, 전쟁이 끝난 지금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최 용팔 씨의 선언에 불안했던 여론도 점차 가라앉는 중이었다. 그리고 우리 촬영팀은 양장본으로 재출판된 그의 일기장에 엄 재형 씨가 손수 써 준 글귀를 한 자 한 자 받아 내었고 가벼운 식사를 끝으로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이하 내용은 에덴 보훈 재단을 나와 방송국으로 향할 우리에게 엄 재형 씨가 배웅해 주며 마지막으로 말해 준 작별 인사였다.]

가끔 여기로 놀러 온 아이들이 나한테 물어. 할아버지가 그 영웅이세요? 곽동윤 아저씨는 얼마나 멋진 영웅이었어요?

그러면 나는 아이들을 쪼르르 앉혀 놓고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해주고는 해. 우리 동윤이는 항상 멋지게 악당들을 해치우는 영웅도 아니었고 본인이 칭송받기를 원하지도 않았다고…….

그리고 너희들처럼 아프면 울고 쓰러지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말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 있을지 모르는 사람이야. 고시원 창문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보통의 사람이었어.

그래, 동윤이는 그냥 용기를 냈을 뿐이야. 아이를 구하고 동료와 함께 걸어가면서 그 누구보다 고귀한 생각을 할 줄 알았던 사람.

너, 나.

그리고 우리였을지도 몰라.

그렇지, 동윤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