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311화 (311/313)

# 311

2부 108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준비됐습니다!”

“클리어!”

제세동기가 가슴에 닿자 노인의 몸체가 강하게 들썩였다,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앞에는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전문의와 에덴 팀의 의료진들이 흰색 옷을 입고 모여 있었으며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을 마치고 기지로 복귀한 닥터 헬기에서는 뒤늦게 도착한 두식이와 용팔이를 다급하게 수송해 왔다.

도대체 어떤 곳에서 무엇을 상대로 싸웠길래 사람이 이 지경이 된 걸까.

이성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몰려오는 감정만은 막을 수 없었던 김 철은 눈물 한 방울을 소매로 다급하게 닦아내며 이미 심장이 멈춘 노인을 살리기 위해 모든 영혼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고성과 다급한 몸짓이 오가는 그 순간 저 멀리서는 다른 헬기가 착륙하는 소리와 함께 거의 미치기 직전인 강 형사와 박대박의 목소리가 기지 내부를 강타했다.

“다들 무사한 겁니까? 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제발, 진정하세요!”

부상자들은 무사히 기지로 데려옴과 동시에 숨 돌릴 틈도 없이 현장으로 다시 날아가려고 했던 에덴 팀이다.

하지만 날아가던 도중 기지에서 들려온 소식은 상승기류를 힘겹게 날아가던 헬기의 기수를 돌리게 만들기 충분했고 기지로 다시 복귀한 에덴 팀은 닥터 헬기에서 내린 일행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연락 두절, 닥터 헬기 호출, 부상자 다수. 그리고 팀의 기둥이자 정신적 지주인 노인의 심정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게 이성을 지키던 강 형사의 표정을 창백하게 만들었으며 의료진 사이에서 버둥거린 김혜정과 박다혜는 온몸에 붉게 물든 붕대를 감은 채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그래, 알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사선을 넘기며 언젠가는 저 검푸른 종말 사이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앞서 걸어가며 고생만 한 이들은 이렇게 허무하게 가면 안 됐다.

“- - - - - - - -.”

고성과 비명이 오가고 눈물이 대지를 적시는 아비규환의 현장.

아직 저쪽에 남아 있는 군인들의 구조를 위해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헬기들은 하늘을 수놓았고 죽기 직전인 사람들을 살리고자 사활을 걸고 있는 의료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녔다.

그리고 모든 정신을 노인에게 집중하느라, 에덴 팀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조차 듣지 못한 김 철은 믿지 않는 신에게 기도하며 제발 노인의 심장이 되돌아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차지, 클리어. 차지, 클리어. 계속되는 인공호흡과 투여되는 약물.

이미 미 정부에서 제공한 수술실은 문이 열렸고 온몸이 바스러진 노인의 치료를 위한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없어 벗겨 내지 못한 노인의 임무복 한쪽에서 망가지기 직전인 무전기 소음이 나지막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 -발사 1분 - - -치칙, 2차 최종승인 확인 중. 신호기가 유도하는 마지막 좌표를- - - 치지직 - - 작전명 공포의 종식(the end of fear) 승인 암호를 요청합니다.]

삐이이이이이, 삑.

그 순간 김 철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며 정신없이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왜냐하면 무전기에서 누군가에 음성이 들려온 순간 심정지가 와 골든타임이 끝나기 직전인 노인의 손가락 끝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한 김 철이 재빨리 시선을 돌리자, 노인의 심장 박동이 멈췄음을 알리던 그래프에서는 미약한 물결이 하나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고 그 변화는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지기라도 한 듯 서서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태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무전기에서는 너무나 익숙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Go to the h - - - e - - -치지이이익.]

삑, 삑, 삑.

노인은 도대체 무엇을 기다린 것일까. 승인 암호를 요청한다는 소리에 무전기 너머에서는 어딘가로 향하라는 대답이 들려왔고 노인의 심장은 거짓말처럼 다시 뛰기 시작했다.

심장이 완전히 돌아왔음을 알리는 그래프의 격한 움직임과 곳곳에서는 들려오는 안도의 한숨.

심장이 돌아왔으니 이대로 후송해 수술을 진행한다면 노인은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넋을 놓은 김 철은 떨리는 손으로 노인의 임무복에 달려 있던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Go to the hell. 아니, Go to the heaven. 모든 어둠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희망을 진정한 에덴으로 끌어올린 그 목소리는 울려오는 메아리처럼 주변을 떠돌았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는 그 순간 저 하늘에서는 무언가를 장착한 미국의 스텔스기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확인 완료, 해당 좌표로 발사합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악몽 같던 밤은 지나 있었다.

그리고 노인을 수술실로 후송시킨 김 철은 마지막 목소리를 끝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무전기를 부여잡았다.

그래,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다. 저 멀리 뜨고 있는 여명은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심장 박동이 돌아왔다는 소리에 노인과 용팔이 형제를 울면서 따라가는 에덴 팀과 주황빛으로 물든 여명의 세상.

사람들은 지옥에서 살아남아 속속히 복귀하고 있었고 절망뿐이던 미군은 벙커 버스터를 장착한 채 하늘을 가로지르는 스텔스기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산소마스크를 쓰고 수술실로 향하고 있는 노인의 주름진 눈가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       *       *

쿠르릉-!!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교주가 반세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어둠도,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종말도 모두 무너지고 있었다.

교주가 고통이 섞인 처절한 비명을 지를 때마다 흔들리는 지반과 구덩이에서 들려오는 비명의 하모니.

하늘에서는 무너져 내린 파편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싱크홀로 떨어지고 있었고 저 밑에서 지상을 갈망하며 기어오르는 놈들에게서 일이 틀어졌다는 조급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단 한 번의 내던짐으로 이 모든 것을 흔들리게 하는 나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며 발버둥 치는 교주를 끝까지 물어뜯었다.

도망치려 할수록 더욱 깊숙하게 파고드는 대검과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혼이 어린 집념.

교주는 극심한 공포와 끝을 알 수 없는 증오를 터트리며 그동안 숨겨 놓고 있던 완전한 변종으로 변이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

인간을 흉내 낸 성대가 사라지고 고열에 녹아내리던 피부도 완전히 뒤집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숨겨 놓고 있던 진짜 모습은 드러낸 교주는 더러운 진물과 피딱지가 앉아 있는 입을 쩍 벌리며 저 아래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공명하듯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나는 변이한 교주가 날카로운 손으로 내 살가죽을 찌르고 쑤시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에 쑤셔 넣은 대검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철제 난간을 훑으며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쓰자, 잘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난간의 쇠사슬이 손아귀에 잡혀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눈과 멈춰 버린 심장 속에서 내 몸은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쿠르릉-!!!!!

그리고 쇠사슬을 부여잡은 그 순간 싱크홀은 다시 한번 무너져 내리며 그간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진동을 동반하기 시작했고 저 아래에서는 수만 마리의 놈들이 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검은색, 붉은색, 푸른색. 마치 용광로처럼 일렁이는 불꽃과 곽동윤이라는 존재 자체를 태워 버릴 것만 같은 뜨거운 고온.

지옥에서 시작된 진정한 세기말은 마지막 순간이 와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그 멸망 한가운데 있었다.

그리고 내가 뜨겁게 달아오른 쇠사슬을 부여잡자마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철제 난간은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온몸에 느껴지는 중력과 교주가 내뱉는 울부짖음. 나는 쇠사슬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대검 손잡이를 뽑아낸다.

끼이이익, 쿵!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붙인 도화선에 교주는 스스로 잡아먹히고 있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우주 공간처럼 무너져 내리는 파편과 떨어지는 기계장치를 전부 삼키기 시작하는 싱크홀.

그리고 교주도 이 거대한 종말 앞에 제 몸을 가누지 못하다, 한쪽이 부서져 내린 철제 난간에서 주르륵 미끄러졌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간신히 쇠사슬을 잡았듯 교주는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어 쇠사슬에 간신히 매달린 내 발목을 부여잡았다.

금방이라도 파괴될 듯 위태로운 소리를 내는 철제 난간과 어느새 공포와 두려움으로 물든 교주의 얼굴.

내가 서서히 빠지기 시작하는 힘에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직감하자, 교주는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 너도 죽어. 이대로 가면 너도 죽는다고, 이 미친 새끼야……!”

흔들리는 지반에 철제 난간은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리고 섣불리 움직이면 저 싱크홀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교주는 나에게 다른 인간처럼 잠시 현실을 외면하며 목숨을 챙기라고 구걸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의식 속에서 대검 손잡이가 눌어붙어 있는 대검을 조용히 들어 올렸다. 잘라 낼 것이다.

교주의 말대로 두 발로 빠져나가지 못하겠지만, 나는 미련 없이 잘라 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리에 대검을 쑤셔 넣자, 교주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으려고 했다.

“- - - - - - - - -.”

시간이 멈춘다. 나에게 손을 뻗는 교주의 모습이 멈추고 불꽃으로 일렁이는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는다.

그리고 내가 다리에 대검을 쑤셔 넣은 그 순간 모든 의식은 나에게 후회하지 않겠냐는 물음과 함께 잠깐의 유예 시간을 주었다.

아프다, 힘들다. 교주의 말처럼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의식은 내가 걸어왔기에 사라진 고난의 길처럼 흩어졌고 멀어 버린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피와 흙먼지를 쓸어내렸다.

무사히 잘 가고 있는지,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나는 저 하늘을 날고 있을 삶의 이유를 바라보며 대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툭.

몸이 가벼워진다. 잠시 나를 위해 멈췄던 시간은 결국 노도처럼 흐르기 시작했고 내가 필사적으로 움직인 대검은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리를 잘라 내었다.

그러자 온몸에 느껴지는 탈력감과 처절한 교주의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본다.

나를 잡기 위해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교주의 모습이 보였다. 모든 종말을 계획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교주였지만, 그 끝만큼은 더럽고 구차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교주가 붙잡고 있던 한쪽 다리는 내가 남긴 미련처럼 떨어져 나갔고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 괴물의 모습으로 죽는 교주는 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싱크홀 안에서 심연처럼 일렁이는 회색 물결이 교주를 낚아채고 이 모든 종말의 책임을 묻듯 끝없이 물어뜯는다.

비명이 서서히 사라진다. 귀를 어지럽히던 이명도 완전히 배제되어 버린 교주의 존재감처럼 사라져 버렸다.

끝난다.

진정한 종식이 왔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이 제일 어둡듯 세상은 칠흑뿐이었다. 하지만 그 어둠을 향해 손을 뻗은 나는 가족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직 한길뿐인 고독의 여정을 계속할 준비를 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데도 움직여 주는 양팔은 하나뿐인 쇠사슬을 부여잡고 철제 난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벽을 짚으며 앞을 향해 기어가자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단 하나뿐인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감각이 흐려지는 손을 뻗어서 이어지는 벽을 손으로 더듬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

기어간다. 어디가 끝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계속해서 앞을 향해 기어갔다.

그리고 문득 바닥에 쓰러져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볼품없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도 부끄러웠다.

집에 가면 모두 만나게 될 텐데, 얼굴 꼴이 눈물로 범벅이 돼서야 다들 웃어 버리지 않겠는가.

하지만 가족을 꼭 안을 수 있는 두 팔은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에 나는 포기하지 않으며 손을 뻗었고 서서히 사라지는 의식에 떨리는 감각을 감싸 안았다.

눈가가 파르르 떨렸는지 무언가 계속 흘러내린다. 하지만 나는 아직 더 갈 수 있다.

“- - - - - - - -.”

추웠다. 너무나 차가운 바닥이라, 오른쪽 팔에 감각이 사라진다.

그리고 뜰 수 없는 눈 때문에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자각조차 흩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삶의 끝에 와 있는 그 순간만큼은 아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다.

오른쪽 손이 멈췄으니, 왼쪽 손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고독과 아픔도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앞으로 두 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며 그리고 일행들의 얼굴을 속으로 그리며 나는 멈추지 않았다.

김혜정과 박대박이 많이 다쳤던데, 입구에서 헤어진 강 형사팀은 괜찮을까. 중상을 입었던 노인과 두식이는 무사히 도착했을지 걱정이 되었다. 용팔이도 많이 다쳤을 텐데 너무 많은 짐을 준 것이 아닌가 미안했다.

항상 도움만 받는 것 같았다. 나가면 꼭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동안 고마웠다고 꼭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행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며 먼저 한국으로 떠난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보고 싶었다. 무사히 가고 있을지, 잘 도착해서 울고는 있지 않을지 걱정이 많다.

전화라도 한 통화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사랑한다는 말은 글씨로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 돌아간다면 앞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아빠?’

그리고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억겁의 시간이 지나자, 내 몸을 감싸 안는 따뜻한 바람과 함께 아이의 목소리가 저 앞에서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죽어 가던 신경이 고개를 추켜들며 내 눈은 서서히 떠졌다.

아아…. 오래 걸렸다.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오래도 걸렸다. 바닥을 향하고 있던 고개를 힘겹게 들자,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이 시렸다. 내 볼에서 타고 흐른 눈물이 피와 고통으로 얼룩진 볼을 씻어 냈다.

그리고 눈물이 걷힌 저 앞에는 내 여정의 끝과 함께 너무나 밝은 여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빨리 와요, 아빠!’

채연아.

너는 내 새벽이었다. 너는 내 희망이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이는 내 아이의 환한 웃음이 얼마나 예쁜지, 눈에서 참고 또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이 지어진다. 이 모든 걸 다 해냈다는 기분에 나는 드디어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를 찾아온 채연이는 별이 핀 들판을 뛰어다녔고 고래가 헤엄치는 은하수의 바다에서 나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그래, 이제 모든 아픔과 고통이 끝났다. 나는 애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그러자 저 멀리 웃고 있는 채연이 뒤로 내 가족과 일행들이 전부 모여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동윤아!’

‘동윤 씨!’

꼭 말하고 싶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꼭 말하고 싶었다.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여기까지 왔다고…….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고 너무나 외로웠던 지금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걸음 딛는다. 빛이 밝아지고 나는 빛으로 두 걸음 디뎠다.

그리고 여기까지 마중 나온 아이와 일행들은 나에게로 뛰어오며 주변을 밝히는 빛과 같은 여명이 되고 있었고 차갑게 식어 가던 내 안에는 오직 따뜻함이 남았다.

이제야 모든 것을 놓는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회색 도시에서 나는 이제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는 넘겨질 일이 없는 일기장을 덮으며 내 앞으로 달려온 아이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따뜻했다. 눈물이 마르지 않고 마지막 순간,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함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가자, 멀고 먼 길을 이토록 오래 방황했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은 나는 눈이 부신 빛을 향해 들어가며 일기의 쓰일 마지막 장에 들어갈 문장을 고민했다. ‘힘들었던 여정이 끝나고 남자는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아! 그래.

이것이 좋겠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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