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
2부 107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두려움은 나를 괴롭히는 괴물이었다. 공포는 내일을 걱정하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당도해 지옥을 마주한 나는 드디어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내 버리고 낭떠러지로 아래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부 온도 72도, 유해가스 농도 측정 불가. 방독면과 산소마스크는 전부 노인과 두식이를 위해 넘겼으니, 더 이상 숨을 쉴 수가 없다.
하지만 공동을 빠져 나와 교주가 도망치고 있는 통로로 향하고 있는 내 몸은 마치 신호를 입력한 기계처럼 오직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진창을 파헤치고 피와 살점에서 헤엄친다. 이제는 이곳이 지옥인지, 아니면 내가 지옥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앞,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의식과 무호흡에 공간.
도망치고 있는 교주와의 거리는 불과 100m도 남지 않았다.
“- - - - - - - - -.”
실낱처럼 남아 있는 한 줌의 감각을 통해 이곳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가 나를 두려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경고하듯 일렁이다, 내 발걸음에 격하게 떨리는 지반. 이명 속에 묻혀 윽박지르다가도 지옥을 향해 스스로 걸어온 나의 귓가에서 흩어져 버리는 지옥의 비명.
온갖 통로에서 우글거리는 변종들은 살육과 본능에 통제에서 벗어나 나를 피해 가기 시작했고 온전히 공유되고 있는 지옥의 요소들을 통해 나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는 교주의 이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또 한걸음. 억겁과 같은 시간에서 나는 지옥을 걷는다.
그리고 고시원 창문에서 빠져 나와 이곳에 당도한 지금, 내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자 주마등이 깜빡거리며 50m를 알려 온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고독했다. 읊조린 한마디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돌고 돌아 심장 위에 앉았다.
그러자 저 멀리 짙은 어둠 사이로 아이를 끌어안은 채 급박하게 달리고 있는 한 남자가 흐릿한 시야 사이로 들어왔다.
그리고 회색의 도시에서 살아남은 남자는 정해진 운명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바뀌지 않는 한길만을 걸으며 내가 있는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울고 웃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후회와 고통으로 점철된 길을 걸어가며 오뚝이처럼 일어났던 남자.
웃고 있음에도 눈물을 흘리는 그 얼굴은 설명할 수 없는 회색 도시에서 내가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일말의 감정이었다.
저것은 나였다.
‘아.’
미련이 생겼다. 주마등이 깜빡거리며 30m를 알려 온다. 그리고 눈가를 파르르 떤 나는 이것이 시신경이 마지막으로 보내오는 환각이며, 이제는 듣지 못하는 환청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눈을 떼지 못한 나는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은 온몸에서 그 환각만큼은 내 등을 떠밀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리 아파야 하는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를 흩어지는 신기루의 환상이 모두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날아오르는 새는 활강의 이유를 묻지 않듯 나도 운명의 책임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20m. 바로 앞으로 갈림길이 보이고 저 뒤에 환각이 손을 흔든다.
하지만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과 터져 나오는 미련마저 털어 내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가기 위해 갈림길에서 발을 디뎠다. 그러자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탁
기억해 주지 않아도 좋았다. 별 볼 일 없는 한 남자가 걸어온 길이 한 날의 아지랑이처럼 사라져도 상관없었다.
거창한 영웅의 희생이 아닌, 한 인간이 갈림길에서 발을 디딘 작은 이야기. 그것은 거창한 서사시가 아니라 내가 써 내려 간 삶의 일기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한 장을 넘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펜을 들어 올린다.
갈림길에 발을 디디는 순간 지나온 주마등은 전부 나에게로 왔고 인간 곽동윤은 끝나지 않는 악몽에서 벗어나 진정한 종식의 통로에서 고개를 들었다.
긴 어둠을 지나 도착한 곳은 바로 여명의 앞이었다.
“- - - - - - -!!!!”
깨끗한 하얀색 양복은 도망치느라 전부 진창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조각 같은 흑색 얼굴은 내가 눈에 쑤셔 넣은 대검 탓에 완전히 함몰되어 있었다.
인간을 벌레로 생각하던 오만함은 사라지고 나를 바라보는 교주의 눈빛에는 오직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오직 흐릿함만이 존재하는 시야에는 나를 가리키며 고함을 지르는 교주의 얼굴이 보였고 마지막으로 남은 수십 마리의 하얀색 변종이 나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광경이 찍혔다.
눈을 한번 감는다.
사진처럼 한 장의 프레임이 시야에 담겼다. 그리고 감은 눈을 뜨자, 나는 어느새 날카롭게 간 마지막 대검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자 무거운 대검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팔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죽이고 없애 버릴 거란 의지만큼은 온몸에 실렸다.
뿌드득!
내 목을 물어뜯으려는 놈의 날카로운 치아가 보였다. 손과 대검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내가 낚아챈 아래턱은 순식간에 뜯어져 나가고 박살 난 두개골 사이로 더러운 뇌수가 흩날렸다.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 몸은 놈들이 가하는 공격을 전부 인지하고 있었으며 시야를 돌리지 않아도 어두운 사각지대는 전부 사정거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정면에서 날아오는 공격, 위에서 날아오는 공격, 양옆으로 날아오는 공격.
하얀색 변종 놈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따라 충실하게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나는 마치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놈들처럼 살이 뜯기고 피부가 찢어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마리 한 마리 착실하게 목숨을 끊어 내었다.
하지만 나는 놈들을 죽일수록 나 스스로를 죽이고 있음을 나지막이 느낄 수 있었다.
“- - - - - - - - -.”
신경이 망가졌는지 스피커가 터진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한쪽밖에 남지 않은 시신경은 액정이 나간 카메라 화면처럼 연신 노이즈가 끼었다.
하지만 감각을 초월한 제3의 공간은 다 타고 남은 잿더미조차 연료로 태우며 모든 것을 선사해 주었다.
뚝 뚝 끊기는 화면이 보일 때마다 하나하나 사라지기 시작하는 하얀색 변종.
나는 마치 파도가 다른 파도와 부딪혀 포말을 일으키듯 변종 놈들과 바닥을 뒹굴며 지옥 그 자체가 되어 가고 있었지만, 완전히 식어 버린 신체 내부에서 형상화하지 못한 무언가는 완전히 섞여 가려는 나를 끄집어내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속삭인다. 입술이 달싹거린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래,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아이를 끌어안을 팔이 없어지고 가족들에게 달려갈 다리가 없어져도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심장이 멈추고 몸에 흐르는 혈관마저 멈춰 버렸지만, 나는 아직 살아 있다.
목에서 울컥 피가 솟아 나온다. 놈들과 바닥을 뒹굴다 왼쪽 팔이 완전히 죽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 밑에 깔린 마지막 변종 놈을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으며 다시는 지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진창 속에 처박아 버렸다.
오른손이 아직 남아 있고 양다리가 아직 움직였다.
나는 피를 토해 내듯 뱉어내며 저 앞에서 도망치고 있는 교주를 쫓아갔다.
“- - - - - - - -!!”
흉측한 얼굴은 재생시키지 못한 고통으로 물들어 있었고 내가 찍어 버린 눈은 살점과 뒤엉킨 구더기와 함께 진물을 뚝 뚝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중에 모든 변종이 나에게 죽어 버린 교주는 벌레처럼 역겹고 하찮게 생각하던 그 인간에게 쫓기며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을 비틀비틀 뛰어가고 있었다.
쫓아간다. 빛 한 점 없는 공간에서 나머지 한쪽 눈이 실명되기 직전이었지만, 나는 점 하나를 쫓아 집요하게 쫓아간다.
뒤바뀐 사냥꾼과 사냥감. 뒤집어진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교주가 침과 증오를 터트리며 고함을 지르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나는 그것이 저주가 섞인 욕설임을 예상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명조차 사라져 교주가 들어간 마지막 통로를 향해 들어가자, 이 모든 종말의 근원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부터 오작동을 일으키던 온도계 불빛이 완전히 꺼진다. 신발 밑창은 녹아내려 끈적하게 묻어났고 보호 장비 없이 무방비로 노출된 피부는 순식간에 타닥타닥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타오르는 붉은색 불꽃과 저 아래 보이는 끝을 알 수 없는 싱크홀. 여태 보았던 구덩이가 지옥의 창문이었다면, 이곳에서 교주가 연 이곳은 정말 지옥의 입구였다.
그리고 내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난간을 잡으며 주변을 둘러보자 마치 광산처럼 수없이 박혀 있는 철제 난간들과 구덩이 위쪽 공간에서 마지막 숨을 불태우고 있는 기계장치가 시야에 들어왔다.
뜨거운 온도에 의해 한계가 왔는지, 연신 스팀을 내뿜는 냉각장치와 스파크.
하지만 교주가 만든 완성품은 이 종말을 절정으로 맞이하기에는 충분했는지 저 아래 싱크홀의 붉은색 불꽃은 미친 듯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다란 싱크홀로 들어온 그 순간 무언가가 내 심장을 관통했다.
탕-!!
내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도망친 교주는 내가 들어선 것을 놓치지 않고 저 앞에서 권총을 나에게 발사했고 총구를 떠난 총알은 내 왼쪽 가슴을 정확히 관통했다. 무릎에 힘이 풀린다.
나는 가슴팍에서 전해지는 운동 에너지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서히 더러운 임무복을 적시기 시작하는 선혈. 온몸에서 근원을 끌어내듯 흘러내린 피는 철제 난간에 웅덩이를 이뤘다.
하지만 나는 가슴팍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막는 것 대신, 품속에 숨겨 두고 있던 신호기를 조용히 꺼내 들었다.
달칵.
손가락이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신호기를 입으로 까득 물었다.
그러자 하나뿐인 스위치가 눌리며 신호기에 달린 붉은색 전구에 불이 들어왔고 이내 초록색 전구에도 불이 들어오며 무사히 신호를 받았음을 알려 온다.
유도기를 켜고 정확히 4분. 모든 종말의 근원이 있는 이곳을 파괴할 벙커 버스터가 모든 것을 끝낼 준비를 맞췄다.
하지만 그 순간 저 멀리서 철제 난간을 밟는 소리와 함께 변종 놈들이 내뱉는 울부짖음과 똑같은 목소리를 가진 교주가 인간의 탈을 완전히 벗어 던진 채 본모습을 드러냈다.
반쯤 벗겨진 검은색 피부와 지글지글 끓고 있는 진물.
놈은 내가 쓰러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입꼬리를 기괴하게 올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고 권총을 내 이마에 정확히 겨누며 굴욕감과 수치로 물든 얼굴을 흉측하게 일그러트렸다.
“처음 발견했을 때……. 진즉에 죽여 버려야 했는데.”
오랜 시간을 인간의 옆에서 기생한 교주에게 있어 우연히 발견한 나는 흥미로운 장난감이었을 것이다.
인간인 주제에 놈들에게 감염이 되어 종말 속에서 버둥거리는 장난감 말이다.
하지만 그 장난감은 심연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선택했고 어느덧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눔과 동시에 생에 처음으로 죽음의 위험을 느끼게 했다.
두려움. 자신보다 열등한 생물에게 느끼는 공포. 나는 흉측하게 웃고 있지만, 교주의 떨리는 총구를 통해 모든 동요와 오만함이 깨부숴진 비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표정에 죽음의 공포가 없음을 느낀 교주는 더욱더 비참하게 일그러지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죽음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 것 같나? 희생이라는 것이 과연 숭고할 거 같아? 너희 인간들은 겁쟁이니까, 영웅을 만드는 거야.”
죽음은 끝없는 고독이다. 사람들은 결국 나를 잊는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겠지만, 삶과 죽음의 간극은 결국 사람들을 살아가게 할 것이다.
내가 이토록 고통받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을지라도 결국은 혼자 흐를 뿐인 이기적인 시간. 내가 세상을 뜨고 유일하게 그들에게 남아 있을 기억은 서서히 잊힐 만큼 야속한 것이었다.
위선적이다, 모순이다. 그저 너 혼자 죄책감을 덜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뿐이다.
교주는 나를 죽이기 직전, 이제는 영혼마저 완전한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마치 악마처럼 속삭이며 나를 절망으로 이끌려고 했다.
그리고 교주는 저 밑에서 들려오는 수천, 수만, 수십만 개의 비명을 가리키며 못을 박았다.
“넌 구원받지 못해.”
찰칵.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느려진다. 공이가 뇌관을 때리면 탄두는 내 머리에 박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고독한 죽음, 언젠가는 잊힐 곽동윤. 교주는 인간의 근본을 들먹이며 이 땅에서 사라질 허무를 말했다.
미련이 있는가? 도망치고 싶지 않은가? 하지만 교주의 말은 들은 나는 입가에 맺히는 웃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교주의 말처럼 이 모든 것을 잊고 한 명의 사람으로 살아갈 채연이가 눈앞에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아빠,’
이 모든 악몽을 잊는다. 부모의 죽음도, 그간의 고통과 이별도 전부 잊는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좋은 친구를 사귀며 세상을 배울 것이고 사랑이라는 풋풋한 감정을 배워 자신만큼이나 착한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족을 이뤄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가르쳐줄 때가 오면 내가 별이 헤엄치는 밤하늘 아래에서 아이와 함께 느꼈던 감정을 채연이도 가슴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 내 비참한 인생 속에 한 줄기 빛이 있었듯……. 아이도 내가 아닌 누군가의 빛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피와 딱지가 말라붙은 입술을 달싹이며 그 누가 들어도 상관없을 마지막 고해성사를 읊조렸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
팡-!!
“- - - - - - - - - -!”
교주가 방아쇠를 당기자 권총의 잼이 걸린다. 고온을 견디지 못한 총알 속 화약이 예고도 없이 터져 버리고 권총의 실린더와 슬라이더가 폭발하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일렁이라는 불꽃과 교주의 손에서 터지는 화염이 이루는 한 장의 프레임. 나는 그 순간 느려진 시간 속에서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손바닥에 눌어붙기를 기다린 대검을 꾹 잡았다.
그리고 손가락이 터져 나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비틀비틀 물러나는 교주에게 기어가듯 달려들어 피와 칼날로 점철된 대검을 남아 있는 눈에 그대로 찔러 넣었다.
흉측한 입이 쩍 벌려지고 처절한 비명이 교주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끄아아아아아악-!!!!!!!!!!!”
나에게 한쪽 눈을 뺏기고 또 다른 한쪽 눈마저 빼앗겼다.
그리고 대검에 눈이 찔린 교주가 끔찍한 비명을 지르자, 불꽃이 일렁이는 구덩이와 철제 난간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고온에 터져버리는 기계장치와 저 아래 구덩이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수많은 놈들의 그림자.
하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손가락이 전부 부러진 양손으로 녹아내린 대검의 손잡이를 부여잡으며 교주가 도망칠 수 없도록 이를 악물었다.
의식이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시신경마저 끊겨 버린다.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교주의 비명만이 들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작동할 것이라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무전기에서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려왔다.
[발사 1분 전. 1차 최종 승인 확인, 2차 최종 승인 확인 중. 신호기가 유도하는 마지막 좌표를 확인했습니다. 작전명 공포의 종식(the end of fear) 승인 암호를 요청합니다.]
기밀을 위한 발사 암호는 나와 스티브 대령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티브 대령은 무사히 살아남아 후퇴했는지, 1차 승인의 암호를 확인했고 현장에서 최종 명령권을 나눠 받은 나는 2차 발사 승인을 앞두고 있었다.
작전명 공포의 종식. 나는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는 교주를 꾹 붙잡으며 고장나기 직전인 무전기와 교주를 향해 읊조렸다.
“……Go to the hell.”
[확인 완료, 해당 좌표로 발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