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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309화 (309/313)

# 309

2부 106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노인과 서울 장벽에 남겨졌을 당시, 싱크홀에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변종 한 마리가 있었다.

마치 인간의 살점과 뼈를 억지로 연결해 둔 것 같은 거대한 살덩어리와 흉측한 모습.

거기에 여타 변종의 힘과 속도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그 거대 변종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정면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괴물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 상대는 지금 눈앞에 있었으며 도주로가 제한된 공터는 마치 우리에게 죽음에서부터 열심히 발악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공터에 발을 들이는 시간에 맞춰 웅덩이에서 이 변종을 생성시킨 교주는 어쩌면 운명이 정해진 건지도 모르는 함정에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 걸지도 몰랐다.

그러나 개미지옥에 빠진 나는 여기서 모든 걸 끝낼 생각이 없었다.

“…용팔아, 영감님.”

한쪽 눈이 압력이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렸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양팔의 뼈가 박살났다.

갈비뼈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졌으며 심장은 한순간 몰려온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잠시 멈췄다.

하지만 나는 입 밖으로 피를 뱉어내면서도 한쪽에 넋을 넣고 쓰러져 있는 용팔이에게 저 공동 구석에 처박혀 있는 노인을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고속으로 재생되기 시작하는 변종의 몸을 믿으며 피로 범벅이 된 대검과 권총의 손잡이를 꾹 부여잡았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용팔이가 이를 악물며 노인에게 뛰어감과 동시에 놈은 고막이 나갈 것 같은 거대한 비명을 울부짖으며 망치처럼 큰 손을 들어 올린다.

시간이 느려진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 미약한 노인의 숨결이 귀를 타고 흐른다.

순간 멈췄다가 다시 뛰는 심장, 재생되는 뼈, 폭발하는 혈관과 증오의 피. 그 자리에서 나는 다시 한번 사라졌다.

쾅-!

거추장스러운 방독면을 벗자, 시야가 환해진다. 그리고 사방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는 눅눅한 공기만큼이나 질척하게 내 살결에 달라붙으며 기류와 흐름마저 감지하게 했다.

놈의 움직임, 변칙적이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공격의 경로. 나는 뒤에서 노인을 살리고 있을 용팔이의 보호마저 생각하며 나의 움직임 전부를 통제했다.

그리고 놈의 공격이 바닥에 꽂히자, 사방으로 튀는 돌덩이와 함께 더러운 진창이 '펑' 하고 터져 나갔고 놈의 시선은 공격을 피한 나에게 향했다.

세 번이나 공격을 무산으로 만들어 낸 나에게 쏟아지는 원초적인 증오.

교주가 만들어 낸 이 순수한 포식자는 인간을 죽이지 못했다는 것에 분노를 터트렸다.

탕! 탕-! 탕탕!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거대한 울부짖음.

하지만 나는 항거할 수 없는 그 두려움 앞에 사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탄두만큼이나 냉철한 무미건조를 머금으며 피로 뻑뻑해진 방아쇠를 연신 당겼다.

그리고 총구를 떠난 대구경탄은 놈의 눈동자로 추정되는 곳에 정확히 박혀 듦과 동시에 한 탄창을 순식간에 비워 낸 나는 소매로 시야를 어지럽히는 피눈물을 닦아냈다.

그러자 놈은 고통스러운 울부짖음과 함께 다시 한번 망치 같은 손을 휘둘러 정면에 서 있는 내 몸을 완전히 박살내려고 했다.

본능이 알려 온다. 마치 빗자루를 쓸 듯 진창 사이로 날아오는 저 공격을 피해야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저 멀리서 통쾌한 총성과 함께 놈의 몸이 비틀거렸다.

투 쾅-! 투 쾅!

나는 절묘한 타이밍에 비틀거린 놈의 몸체 덕분에 경로를 벗어난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 낼 수 있었고 처절하게 진창을 뒹굴며 대구경 권총의 탄창을 교체했다.

그리고 총성이 들려온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비장한 얼굴을 한 두식이가 자신이 애용하던 산탄총을 양손으로 꼭 붙잡고 놈의 머리통을 향해 곰을 잡을 때 쓰는 벅 앤 볼 (Buck and Ball) 탄을 흩뿌리고 있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플라스틱제 탄피와 노인에게 응급 치료하는 용팔이의 모습이 교차한다.

숨이 멈춘 걸까, 아니면 내 운명이 멈춘 걸까.

시간은 분명히 흐르고 있지만, 마치 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하지만 내 몸은 방황하는 시간을 아는지 모르는지 놈에게 장전을 마친 총구를 들어 올리며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탕-! 탕-! 탕!

약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대형 변종이다.

하지만 양쪽에서 살을 후벼 파고 찢어 내는 탄두만큼은 무시하지 못하는지 놈의 더러운 몸체는 연신 비틀거리며 목표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 타고나기를 살육자로 태어난 놈은 단단한 손으로 최대한 몸을 가리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자 잠시 엿보였던 그 희망은 탄창을 가득 채웠던 탄약이 떨어져 버리는 순간 허술하게 세운 탑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에덴에서 훈련받은 대로 가장 빠르다는 전술 장전을 해보지만, 그 틈을 노려 나에게 달려드는 거대 변종.

나는 재장전을 하는 도중 사정권이 닿지 않는 빈 곳에 몸을 날렸다.

쿵-!!

“- - - - -컥!”

하지만 좁은 공동은 압도적인 사정거리를 가진 놈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너무나 협소했다.

오른쪽을 향해 몸을 날린 나는 놈이 바닥을 가로로 쓸며 휘두르는 공격을 피해내지 못했고 망치 같은 손에 그대로 직격당해 허공에 두둥실 떠오르고 말았다.

그러자 한순간 정전이라도 당한 듯 팍하고 끊겨 버리는 머릿속에 필라멘트와 눈앞 시야.

고통을 넘어선 고통은 익숙해질 겨를도 없이 나를 불태웠고 곧 입에서는 내장 조각이 섞인 피가 울컥 터져 나왔다.

아팠다, 죽고 싶을 만큼 아팠다. 그리고 온몸에 감각이 사라질 때쯤 나는 공동 벽에 처참하게 부딪혀 죽어 가는 단말마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변종의 재생력이 따라오지 못하는 극심한 부상 탓에 시야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어둡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저 멀리서 고함을 내지르며 놈을 향해 달려가는 두식이의 모습만큼은 똑똑히 보였다.

“- - - - - - - - -!”

투 쾅-! 투 쾅-!

일어나야 한다. 탄창을 끼워 넣은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겨 놈을 향해 달려드는 두식이를 도와주어야 한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완전히 망가져 버린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흐릿한 시야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노인과 옆에 붙어 소총을 들어 올리며 처절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용팔이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근원을 연료 삼아 재생하고 있는 신체.

그러나 그것도 끝을 알 수 없었던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지 팔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놈은 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산탄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두식이와 저 뒤에서 죽음을 각오한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삐이이이이이- - - -.

흐릿한 시야 사이로 일행들의 얼굴이 보인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피투성이가 된 내 소중한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고함을 지르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이명이 귀를 가득 채웠기에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과연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이미 포기해 버린 몸과 정신에 한줄기 의문을 던지며 두식이와 용팔이의 입을 떨리는 눈으로 주시했다.

죽기 싫다는 말일까? 도망치고 싶다는 본능일까? 아니면 자신들을 여기까지 데려온 나를 향한 원망이었을까?

나는 겁이 났지만, 끝을 향해 달려가는 마지막 한 줄의 집중했다.

그리고 내가 읽은 일행들의 입 모양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빈 곳으로 도망가요.’

원망은 없었다. 미련마저 없었다. 두식이와 용팔이는 통로 옆에 혼자 동떨어진 내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있었다.

우리가 잡고 있을 테니까, 도망쳐요. 그리고 미안해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감정.

조금이라도 더 시선을 끌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끌어 주기 위해 항거할 수 없는 공포 앞에서 저항하는 일행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우습게도 일행들이 죽을지도 모르는 그 순간 내 시선은 앞이 아닌 그 위를 향하고 있었다.

“- - - - - - - - -.”

생각하지 않았다. 일행들을 살리고 싶은 본능이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왼손에 대검 손잡이가 쥐여 있다는 것을 자각한 나는 허벅지에 칼날을 내려찍으며 죽어 버린 신경을 깨웠고 서서히 쓰러져 가던 신경은 벼락을 맞은 듯 날뛰기 시작했다.

나는 무감각 속에서 아직 존재하고 있던 격통에 완전히 눈을 떴다.

그리고 권총을 들어 올리자 하얀색 물감으로 물들어 버린 공간이 거울처럼 나와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찰칵.

탕-!!!

단 한 발의 총성. 총구를 떠나 단 하나의 총알.

백색으로 물든 시야 사이로는 두식이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놈의 모습이 보이고 그 뒤로는 노인을 감싸 안으며 몸을 웅크리는 용팔이가 보인다.

하지만 내가 발사한 마지막 총알은 그런 놈의 거대한 몸이 아닌, 이 넓은 공동의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집중력을 짜내어 날아간 마지막 사선이 박힌 그곳에는 공동 천장에 송곳처럼 매달린 거대한 종유석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쿠르릉!

“- - - - - - - - - ?”

총알은 종유석 윗동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러자 여진으로 흔들리던 천장은 넘치기 직전인 물통에 한 방울 물을 던져 놓은 듯 묵직하게 울려오는 파괴음을 내기 시작했고 두식이를 주먹으로 내려찍으려고 했던 변종 놈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 것을 눈치챘는지 비어 버린 회색 눈으로 자신의 머리 위를 바라봤다.

하지만 움직일 겨를 없이 찾아오는 죽음은 후진할 수 없는 일방통행이라는 것을 막 태어난 놈은 알지 못했다.

작은 떨림과 함께 낙하하는 거대한 종유석, 나는 들고 있던 권총을 힘없이 내리며 피로 범벅이 된 눈가를 닦았다.

쿵-!!!!!!!!!!!!!!!!

하늘에서 떨어진 종유석은 그대로 놈의 정수리를 뚫고 온몸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 뒤에 중력이 가져다주는 무게감은 썩어 놈의 문드러진 살점을 완전히 짓이겨 버렸고 강대한 뼈와 근육은 거대한 종유석 밑에 깔려 형체를 알아볼 게 힘든 고깃덩이로 변해 버렸다.

감각이 보내는 기척이 사라지고 비틀거리는 변종의 감각이 놈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피를 닦은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홀더에 집어넣었으며 흙먼지와 진창 사이를 필사적으로 기어가 용팔이 형제와 노인이 쓰러져 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형님…….”

이어폰이 망가졌는지 무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정신을 잃은 채 미약한 숨을 내쉬고 있는 노인의 손을 꼭 붙잡았다.

눅눅한 공기와 피투성이가 된 손 너머로 느껴지는 거친 굳은살.

노인은 아직 살아 있었지만, 응급치료가 없었다면 언제 숨이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중상을 입은 노인과 두식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이 중에 그나마 멀쩡한 용팔이를 향해 기어가 삐뚤어진 방독면을 다시 씌워 주었다.

놈이 죽었지만, 교주는 아직 살아 있다. 거기에 여진을 동반한 지진은 더욱더 강해지기 시작했으며 지열은 일행들이 버티기 어려울 만큼 뜨겁기 그지없었다.

5분이 지나간 지 오래다. 나는 멈춘 심장과 완전히 죽어 버린 감각을 일깨우며 용팔이의 얼굴을 양쪽 손바닥으로 꾹 잡았다.

“할 수 있지?”

거대 변종이 죽고 나자, 특정하지 못했던 교주의 위치가 정확히 느껴졌다.

그리고 교주가 있는 저 너머에서는 나를 향한 두려움이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었고 넘기 힘든 장벽처럼 높게만 보이던 종말에 메꿀 수 없는 금이 생길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얀색 변종을 죽이고 최후의 함정마저 돌파했다. 교주가 나를 무서워하고 있다.

지옥이 나를 겁내고 있다. 그리고 이 기회는 나에게 다시는 오지 않을 천금 같은 순간이었지만, 내 간절한 부탁을 받은 용팔이는 피와 눈물이 섞인 고함을 지르며 힘이 잔뜩 들어간 손으로 내 옷을 부여잡았다.

“형, 형님, 우리 그냥 여기에 설치하고 도망가요. 벙커도 뚫는 미사일이라잖아요, 네? 그 잘난 미군이 발사하는 미사일이라잖아요……. 우리 여기까지 했으면 잘한 거니까, 제발 같이 나가요…….”

아니다. 교주는 지금 모든 계획이 무산된 것을 자각하고 내가 거대 변종을 쓰러트린 이 공동에서 최대한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이라도 늦기 전에 저 통로로 뛰어가 교주를 끌어내리고 유도기를 설치해야만 했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인 일행들은 그 시간까지 절대 버틸 수 없었기에 나는 용팔이에게 부탁하고 있는 것이었다.

죽어 가는 노인, 내 앞에서 쓰러진 두식이. 내 마음속에서 죽어 버린 형님을 지워 버렸지만, 여기까지 나를 지탱해 준 너희만큼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옷깃을 꾹 잡고 있는 용팔이를 향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조용히 읊조렸다.

“강 형사가 분명히 다시 왔을 거야. 그러니까, 의무병부터 부르고 두식이랑 영감님 꼭 살려. 유도기 설치하고 바로 나갈 테니까 꼭 밖에서 보자, 용팔아.”

꼭 밖에서 보자. 반드시 살아서 돌아갈게. 쉬어빠진 목소리였지만, 방독면을 쓰고 있는 용팔이는 무엇이 우선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쓰고 있는 단체장의 모자를 용팔이에게 씌워 주자, 옷깃을 강하게 붙잡고 있는 힘이 점점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피투성이, 흙투성이. 끝내 날지 못하고 진창에 떨어진 볼품없는 슈퍼맨.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용팔이의 눈이 사정없이 떨리고 저기서 미약한 숨을 쉬고 있는 일행들이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우리가 놓은 곳은 절망의 한가운데였다.

하지만 나는 단체장의 모자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용팔이 앞에서 지옥을 부정하는 환한 웃음을 머금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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