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
2부 105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변종 놈들이 몰려오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인사를 나눌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서둘러 채비를 마친 강 형사와 에덴 팀은 상승기류가 없는 평평한 지대를 찾아 모래사장이 존재하는 해안가를 목표로 잡았고 이곳에 남는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주고자 변종들이 이쪽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길에 원격으로 터트릴 수 있는 폭약을 설치해 주었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뗀 강 형사는 우리에게 부상자를 내려놓고 다시 오겠다고, 그러니 그때까지 꼭 살아 있으라고 처절한 고함을 내질렀다.
검지가 뜯겨 나가 방아쇠도 당기지 못하면서 꼭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는 강 형사.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는 에덴 팀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용팔이가 내미는 방독면을 뒤집어썼다.
“- - - - - - -.”
그리고 방독면을 뒤집어쓰고 눈을 뜨자, 모든 채비를 마친 노인과 용팔이 형제가 소총을 부여잡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재처럼 내리는 회색 눈과 저 먹구름 사이로 일렁이는 붉은색 두려움.
뜨거운 지열은 갈수록 심해져 갔으며 싱크홀에서는 지옥의 울부짖음 같은 기류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저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낭떠러지 바로 앞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밖에 없었다.
가족, 일행, 소중한 이. 살고 싶은 이유는 너무나 많았지만, 지키고 싶은 이유가 더 많았기에 도망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런 말없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며 싱크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후우우, 후욱- - -후우우.”
싱크홀 밖이 지옥의 재림이었다면, 싱크홀 안은 지옥 그 자체였다.
숨이 막히는 뜨거운 공기와 온몸을 강타하는 유해가스. 아마 이것보다 농도가 더 짙거나 싱크홀 안에서 장시간 체류하게 된다면 분명 산소마스크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노인과 용팔이 형제는 꿋꿋하게 버티며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고 나는 내려가는 계단처럼 대각으로 이루어진 싱크홀 안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총구 옆에 장착된 전등을 조용히 켰다.
그러자 괴물의 입처럼 이상한 메아리가 들리는 온전한 싱크홀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에 치이는 끈적한 액체와 손을 휘두르면 잡힐 것 같은 눅눅한 공기가 현실의 요소를 지우고 비현실을 차지한다.
그리고 걸음을 옮기는 우리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져 갔다.
“괜찮아요?”
[버틸 만해.]
[저희도요.]
그리고 한 10분가량을 경사로의 통로를 내려가자, 내부 온도는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해 이미 40도를 치닫고 있었다.
점점 지옥에 가까워지기라도 하는지 짙은 이명을 만들어 내는 메아리와 이곳이 과연 우리가 아는 현실이 맞는지 헷갈리는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왠지 인간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저 짙은 어둠 너머로 금방이라도 우리를 덮칠 것 같은 변종 떼가 넘실거린다.
아니, 환각인가? 심장 위에 자리 잡은 본능이 저것은 두려움이 만들어 낸 거짓이라고, 침착하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나는 일행들의 등대가 되어 한 걸음 한 걸음 저 심연의 깊은 싱크홀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후우우, 후욱….”
방독면의 한정된 시야, 눅눅한 공기, 뜨거운 열. 사방은 막혀 있었고 손을 디디는 곳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솟아 올라왔다.
아마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 노인과 용팔이 형제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진즉에 이성을 잃고 밖으로 도망쳤을 두려운 장소인 싱크홀 내부.
나는 땀이 흘러 따끔거리는 눈을 꼭 감았다 뜨며 소방관 시절의 경험을 계속해서 되새겼다.
공기가 이동하는 방향과 유해가스의 농도를 관찰한다.
특정할 수 없는 교주의 위치와 감각이 보내는 지형 정보를 모두 총동원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한 10분가량을 힘겹게 더 나아가자 좁은 통로 끝에는 마치 메기의 입처럼 기류를 끌어당기고 있는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쿵-!!!
파스스스.
그리고 우리가 공터로 들어선 순간 더 짙어진 어둠과 함께 지반이 강하게 흔들리는 떨림이 온몸에 전해져 왔다.
분명 두 발을 바닥에 세워 두고 있지만,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몰려오는 멀미는 꼭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이 이질감은 이명을 넘어 극심한 두통을 가지고 왔고 용팔이는 결국 방독면을 살짝 황급히 젖히며 구토를 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고통을 감내하고 있던 노인은 그 방독면을 황급히 다시 씌워 주며 부들거리는 손을 부여잡는다.
저 떨림은 분명 연구소에서 본 적이 있는 그 기계장치에서 나오는 파동일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지진과는 다른 그것은 분명 지옥의 입구에서 끊임없이 놈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나는 최소화해서 챙긴 가방에서 이제 두 개밖에 남지 않은 붉은색 조명탄을 꺼내 앞으로 던졌다.
치직-!
점화장치를 당겨 공터 한가운데로 던지자, 이 어둠을 전부 몰아내겠다는 듯 환하게 타오르는 조명탄.
그리고 조명탄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동굴처럼 끈끈한 액체가 묻어나는 종유석이 흔들리고 있었고 바닥에는 성분을 알 수 없는 더러움의 진창이 뒹굴고 있었다.
내부 온도는 42도다. 높은 습도와 주변에 안개처럼 깔린 유해 공기는 우리가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던진 조명탄 2개가 완전히 공터 내부를 밝히자, 미국과 내가 그토록 찾던 교주의 본거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 - - - - - - -.”
눈가가 파르르 떨려 온다. 구토가 몰려올 뻔했다.
하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입을 악물며 주먹을 꽉 쥐었고 감각의 그물망을 바닥에 퍼트리며 교주의 위치를 찾기 위해 미친 듯이 시선을 옮긴다.
검은색 타르로 찌들어 녹슬어 있는 기계장치들과 수많은 전선, 저 한쪽에서는 피와 살 찌꺼기가 엉겨 붙은 철장들이 닭장처럼 널려 있었고 인간의 시체로 보이는 수많은 살덩이가 웅덩이에 모여 썩어 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서 꼬챙이에 꽂아야 이 공터 전체를 죽음으로 장식할 수 있었을까.
파리조차 날아다닐 수 없는 진정한 이 인외의 공간은 교주가 오랫동안 파멸을 꿈꾸고 있었던 종말의 공방이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나 싱크홀의 중심지에 들어섰음에도 교주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딘가로 도망친 걸까? 혹시 나를 피해 다른 곳을 공격한 걸까? 아니, 분명히 존재하는 교주의 존재감은 이 싱크홀을 떠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교주의 모습은 우리를 허탈하게 만들기 충분했고 나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힘겹게 사방을 주시하고 있던 용팔이 형제가 총구를 내리며 거친 기침을 내뱉었고 이제 한계가 왔는지 땀으로 푹 젖은 얼굴을 힘없이 떨군다.
방독면 너머로 보이는 창백한 얼굴과 미친 듯이 흔들리는 동공.
나는 아직 교주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음에도 한계를 치닫고 있는 일행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노인이 나에게 다가와 무전을 보낸다.
[함정일까?]
“모르겠어요.”
시간이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문제는 목표가 불특정한 것에 있었다.
분명히 이 근처에 있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교주. 그리고 노인은 의문을 표하며 이것이 함정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교주 탓에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내가 신호기를 설치하기만 하면 막강한 화력으로 대지를 뚫고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벙커 버스터.
하지만 정확히 특정할 수 없는 교주의 위치에 단 한 번밖에 없는 기회를 섣불리 날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신호기를 꾹 붙잡은 채 짧은 고민을 하자, 노인이 나에게 다시 무전을 날렸다.
[…조금만 더 가 보자.]
두 번은 없다. 가족과 소중한 이들의 삶을 일상으로 되돌려 줄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인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진즉에 눈치챈 노인은 내가 짊어져야 하는 단호한 판단을 대신 내려 주었고 한쪽에서 무전을 듣고 있던 용팔이 형제는 힘겹게 총을 들어 올리는 것을 끝으로 이견 없는 동의를 보내왔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힘들고 단 한걸음 떼기도 고통스러운 이 공간.
일행들은 교주가 이 싱크홀에 분명히 있다는 내 판단만을 믿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앞으로 한 발짝, 안개가 낀 낭떠러지 앞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한 발짝. 우리는 서서히 꺼져 가는 조명탄을 보며 손전등을 들어 올렸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동윤이가 위치를 확신하는 그 순간 바로 후퇴해.]
우리가 교주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만 하면 그 뒤는 미군이 알아서 해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손목시계를 들어 올려 일행들의 한계라고 생각한 5분을 측정하기 시작하자, 노인은 조용히 읊조리며 대열의 후방을 맡아 주었고 우리는 공터를 제외하고 저 뒤에 나 있는 단 하나의 통로를 목적지로 삼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군화에 치이는 살점들과 옷에 들러붙는 더러운 진창.
공터 한가운데 존재하는 피와 살점의 웅덩이를 빙 둘러 걸어간 우리는 흔적밖에 남지 않은 교주의 방을 뒤로하고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 통로로 향했다.
‘꼭 돌아온다고 약속해 줘요, 알았죠?’
숨을 쉬기 힘들다. 정신은 흔들리는 지반처럼 파르르 떨고 있었고 소총을 잡은 손은 얼음장에 넣기라도 한 듯 차갑기 그지없었다.
무의식과 무호흡의 공간. 마치 우주 한가운데에 버려진 고독함과 끝을 알 수 없는 막연함이 몰려온다.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내가 과연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는 이 순간에도 너무나 보고 싶은 아이와 강수련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꼭 돌아온다고……. 약속해 줘요. 어둠 속에 보이는 환각과 환청. 그것은 죽음을 직면하기 직전 동공이 보여주는 마지막 행복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은 거짓말처럼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
‘꼭 - - - -돌아 - -다고 - - - 약속해 - - 알았 - -죠?’
강수련의 체온이 나를 떠나고 행복을 느꼈던 마지막 한마디가 아지랑이처럼 흩어진다.
싸늘하게 식는 피부, 느려진 시간 속에서 하염없이 떨리는 동공. 그동안 뜨겁게 타오르던 변종의 본능은 이것이 자신의 한계였음을 알리며 힘없이 주저앉았다.
하지만 변종의 피가 허락한 이 공간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허탈감이 몰려오는 그 순간에도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렸고 일행들이 따라오고 있는 뒤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했다.
“- - - - - - -아.”
내가 살릴 것이다. 전부 집으로 데려갈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들이닥친 적의 위험이 아닌 체념한 얼굴로 내 몸을 밀치고 있는 노인이었다.
입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과 솟구쳐 오르는 처절한 비명. 노인의 뒤로는 인간의 살점이 뭉쳐 방금 생성된 거대한 변종이 망치와 같은 손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 일격은 정확히 나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아무리 변종의 몸이 된 나라고 해도 머리통에 저 일격을 맞는다면 어찌할 여지없이 즉사할 것이 분명한 상황.
하지만 곽동윤이라는 인간을 지킨다는 거대한 일념 하나로 시간과 종을 초월한 노인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 내 몸을 밀쳐 내고 있었다.
‘동윤아.’
쾅-!!!!!
악몽이었으면 했다. 이 모든 것이 환각이고 이 더러운 지옥이 만들어 낸 비극의 동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놈에게 일격을 당해 저 공동 너머로 날아가는 노인의 마지막 모습은 분명 현실이었다.
언제나 후방에서 걱정하지 말고 앞만 보라고 말하던 노인이 끝내 내 등을 지킨 것이다.
내려앉았던 심장이 다시 뛰어오른다. 흔들리던 동공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고 용팔이는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노인을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살점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변종은 현실을 자각할 시간조차 주기 싫은지 무미건조한 움직임으로 앞을 향해 뛰어가는 용팔이를 내려찍으려고 했다.
‘아빠는 슈퍼맨.’
‘아빠는 모두를 구하는 슈퍼맨.’
넘어지고 또 넘어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진창이 되어 버린 남자.
일행들이 없었다면 진즉에 꼬꾸라져 말라 죽은 벌레처럼 혼자 쓰러졌을 볼품없는 남자.
채연이는 도대체 나에게서 무엇을 보고 슈퍼맨이라고 불러 준 것일까. 그리고 노인은 왜 나 같은 사람을 살리고자 한 치의 미련 없이 몸을 날린 것일까.
모든 죄책감과 고통이 나를 괴롭히고 볼을 타고 흐르는 피눈물이 이 모든 순간을 후회하게 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포기가 아닌, 교주가 우리를 향해 품었던 심연의 증오였다.
쾅-!!!!!!
시야가 점멸했다. 눈이 인지할 수 있는 한 장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나는 어느덧 선두가 아닌 용팔이가 이성을 잃고 달려가던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자 용팔이를 공격하려던 놈의 일격은 목표를 읽은 채 내 머리 위로 떨어졌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놈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는 총과 온몸에 뼈. 입에서는 수습할 수 없는 각혈이 터져 나왔고 생전 처음으로 느껴 보는 불가항력의 무게는 나를 엄습해 왔다.
하지만 저 멀리 날아간 노인의 숨이 아직 붙어 있다는 걸 변종의 본능이 확인시켜 준 그 순간 나는 죽는다는 두려움과 삶의 미련을 전부 내던져 버렸다.
“- - - - - - - - - -.”
나는 내장이 전부 으스러져 버린 그 순간에도 허벅지에 달린 대검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움켜잡으며 지옥을 올려다봤다.
죽이고 싶은 것이 아닌, 죽여야 한다. 내가 부서지고 찢어져 들여다본 심연의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고 해도, 나는 기꺼이 몸을 던질 것이다.
속 안에 남아 있는 촛불이 훅 꺼지며 나를 장작으로 한 거대한 불이 타올랐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