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307화 (307/313)

# 307

2부 104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엄호해! 넘어올 수 있게 엄호하라고!]

우리가 도착한 샌프란시스코만 항구는 찌그러진 컨테이너를 제외하고는 장애물이 없는 비교적 평평한 지대였다.

물론 저 멀리 커다란 배들이 장난감처럼 뒤집어져 있긴 했지만, 놈들이 엄폐물로 사용할 만한 장애물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리고 내가 대열 후방에서 마지막까지 놈들의 시선을 끌며 뒤늦게 달려오자 그 누구보다 빠르게 대형을 갖춘 에덴 팀은 내 뒤를 바짝 쫓아오는 놈들을 향해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양각대를 펴고 설치되는 경기관총과 연신 탄두를 내뱉는 유탄 발사기.

개인화기를 가진 베테랑 군인들이 본격적으로 화망을 구성하자, 뒤따라온 변종 놈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블랙 라인은 교주 새끼도 잘 못 건드는 모양이야.”

완벽한 화망을 구성한 우리는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변종 놈들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기 시작했고 엄폐물 하나 없이 압도적인 화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변종 놈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리고 내가 탄창 하나를 깔끔하게 비워 내고 잠시 숨을 몰아쉬자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현장을 지휘하던 노인이 재빨리 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래, 교주는 분명히 변종 무리를 움직일 수 있고 블랙 라인도 간섭할 수 있어 보였다.

하지만 변종의 입체적인 움직임과 비교해 블랙 라인의 경로는 구체적이지 못했으며 지금도 우리가 아닌 저 뒤에서 엄호하는 미 육군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도시의 중추로 들어온 우리는 한동안은 변종 무리만 상대하면 되는 것이다.

“방법이 있을까요?”

하지만 그런 희소식과는 반대로 상황은 점점 고착 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평평한 지대로 이용해 화망을 구성하기는 했지만, 탄약은 결국 바닥이 드러낼 것이 분명한 상황, 그렇다고 저 사이를 돌파하기에는 교주가 있는 장소에 도달하기 전에 전멸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물음에 절망이 어린 얼굴을 쓸어내린 노인은 한동안 고민을 하는지 입을 다물었고 나 또한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 옅은 신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저 뒤에서 열심히 대원들을 다독이던 빅과 레인저의 중대장은 나와 노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우리 옆으로 달려와 거친 숨과 함께 외쳤다.

“여기는 저희는 맡겠습니다, 뒤쪽으로 빠져나가세요.”

빅이 서둘러 가리킨 방향에는 사람 두 명 정도가 지나갈 수 있는 외길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280번 도로와 연결되어 도시 중심지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임과 동시에 완전히 후방에 위치해 들키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돌파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선을 끌어 줄 무언가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경우였기에 나는 아예 머릿속에서 경로를 지운지 오래였다.

하지만 빅과 레인저의 중대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끼가 되기를 자처했고 탄창을 갈다 움직임을 멈춘 나와 노인은 그들 앞에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Mr. 곽!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상에 빠져 있기엔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탄약에는 한계가 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변종의 숫자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낱 감정에 이끌려 작전을 망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빅은 정밀 포격을 유도해 줄 신호기를 나에게 넘기며 자신들이 줄 수 있는 최선의 탄약을 에덴 팀에게 분배했다.

바닥에 자욱하게 깔린 탄피들과 아지랑이처럼 주변을 화약 연기.

그의 두 눈에는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딸을 만나지 못할 거라는 절망이 가득했지만, 지금 이 순간 뛰고 있는 그의 심장에는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나는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경을 조용히 둘러보며 바닥에 내려놓았던 소총을 움켜잡았다.

“하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십쇼. 나도 얘들도 여기서 죽을 생각 없으니까.”

“……….”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에덴 팀을 도시 중앙부로 보내라. 그것은 이들의 임무였고 그린베레의 자존심이었다.

결심이 선 나는 바로 이동한다는 무전을 쳤고 지시를 받은 에덴 팀은 재빨리 떠날 채비를 마치며 뒤쪽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에 남을 빅을 조용히 뒤돌아보자, 그는 속이 시원해지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내 어깨 위에 내려앉은 죄책감을 살며시 털어 주었다.

비록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지만,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이곳으로 온 그들.

그것은 입 밖으로 꺼내기 낯간지러운 희망이었고 그런데도 품고 싶은 희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종말은 슬픔의 여운을 느낄 시간조차 주지 않았기에 나와 노인은 소총을 부여잡고 뒤쪽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 빅이 무전기를 들며 찢어지는 고함을 내질렀다.

[지겨운 새끼들, 다 조져 버려!]

붉은색 예광탄이 어둠을 가르며 사선을 만들고 죽음을 각오하고 발사하는 탄두와 수류탄이 어둠 속에서 불꽃으로 피어오른다.

그리고 나는 오직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는 군인들을 지나쳐 저 뒤에서 총기와 비장함을 정비하고 있는 에덴 팀을 향해 뛰어갔다.

그러자 무전을 통해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그린베레 대원들과 레인저들은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서도 방아쇠 옆으로 작은 엄지를 추켜세워 준다.

어둠이 짙다. 1초, 2초, 3초. 내가 에덴 팀과 합류해 외길로 떠나는 그 순간 하늘에 날아오르는 붉은색 조명탄.

저 멀리서는 검은색 파도와 같은 블랙 라인이 일렁이고 있었고 항구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하얀색 변종들은 어둠을 수놓았다.

우리는 이곳에 남아 투쟁을 계속할 그들을 뒤로하고 외길을 달려갔다.

그러자 저 앞 조명탄 사이로 폐허 속에 파묻힌 표지판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저 멀리 전방에서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빛을 봤어. 머리는 무겁고 시야는 어두워지고 있었으니, 그 밤은 쉬어가야 했지. Welcome to the California.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검은색 파도와 짙은 어둠을 뚫고 교주가 있는 도시 중앙부에 진입했다.

저 멀리 그들이 쏟아 올린 빛은 점점 희미해지면 우리는 오직 공포의 종식만을 목전에 두고 있을 것이다.

*       *       *

“동윤아, 정확한 위치는!”

“정면 서쪽! 해안가에서 멀지 않아요!”

280번 도로는 도시 정중앙을 가로질러 간다.

그리고 본능과 감각이 반응하고 있는 교주의 존재감은 해안가와 근접한 도시의 서쪽 지역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모든 지옥의 생산지이자 이 공포의 막바지처럼 붉은색으로 타오르는 밤하늘, 그곳은 분명 좌표상 메르세드 공원이 위치한 곳이었다.

그리고 에덴 팀은 교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메르세드 공원으로 향하기 위해 280번 도로를 쭉 가로지르며 위태로운 뜀박질을 지속하고 있었다.

마치 스프링을 달아 둔 듯 규칙적으로 까닥이는 엄지와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

사방에서는 변종 놈들이 내뿜는 존재감이 느껴졌고 우리는 썰물을 목전에 둔 모래처럼 천천히 밀려 나가고 있었다.

쾅-! 타다다다탕-!

하지만 수년간 서울 전선에서 활약한 에덴 팀은 자신들이 왜 미국으로 왔는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처절하게 활약하고 있었다.

바퀴벌레처럼 몰려오는 변종 놈들을 하나둘 처치하며 서서히 도로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뜀박질.

강 형사가 발사하는 유탄 발사기에 도로를 가로막는 변종 놈들은 한 뭉텅이씩 터트려 죽였고 사각지대를 틈타 팀원들의 발목을 붙잡는 변종 놈들은 나와 두식이가 몸을 날린 육탄전에 온몸이 부스러져 박살이 났다.

온몸에 묻은 검은색 피와 삐걱거리는 팔다리가 흔들린다.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었던 우리는 무의식과 무호흡의 공간에서 처절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검지에 감각이 없다.

총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쏘고 찌르고 베고 넘어지고.

마치 마모되는 드릴처럼 크고 작은 상처가 온몸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저 멀리 도로의 끝이 보였다.

“- - - - -후우, 후우.”

지옥과 같은 폐허에서 무려 3km를 뛰어왔다.

그리고 교주가 있는 장소에 접근할수록 지반을 일렁거리게 만드는 지진은 더 짙어지기 시작했고 저 멀리 어둠 속에서는 골격이 완전히 찌그러져 무너져 내리는 빌딩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파도가 치는 블랙 라인과 사그라들기 시작하는 조명탄.

이제는 그 어떠한 도움도 엄호도 없이 교주가 있는 지옥으로 정면돌파 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리고 내가 숨을 몰아쉬며 입안으로 들어간 검은색 피를 퉤 뱉어내자, 볼에 깊은 생채기가 생긴 노인이 넘어지듯 달려와 내 옆에서 자세를 수그리며 물었다.

“저기냐?”

“……네.”

교주가 위치한 공원까지 600m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대변하듯 하늘에서는 마치 화산재와 같은 회색의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고 저 멀리 어둠이 짙은 회색 안개 속에는 붉은색 아지랑이가 불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일단 우리에게 따라붙은 변종 무리는 팀원들의 처절한 저항으로 처리한 상태다.

하지만 저 뒤에서 시선이 끌려 있던 변종 놈들은 외길로 빠져 교주에게 접근한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고 우리는 머릿속에서 퇴로를 지워 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피해 상황은요?”

“많이 다치고 죽었다. 탄약은 말해 봐야 입 아프고.”

김혜정이 깊은 자상을 입었고 강 형사의 검지와 중지가 잘렸다.

그리고 서울 전선에서 받아들여 육성한 다른 팀원들은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사망했으며 지금은 기지를 출발할 때 전력의 반절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교주와의 결전을 남겨 두고 벌써 전멸 직전까지 몰린 에덴 팀, 나는 바싹 말라가는 입술을 악물며 붉은색 빛이 아른거리는 정면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절망을 삼키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휴식도 찰나일 뿐이다.

있는 탄약을 전부 긁어모아 재분배한 우리는 뒤에서 따라오는 변종 놈들에게 쫓기듯 움직이며 교주가 있는 메르세드 공원을 향해 달려갔다.

“- - - - - - -.”

격변으로 쑥대밭이 된 샌프란시스코는 모든 문명의 잔재를 지워 버리듯 무너진 폐허와 바퀴벌레처럼 우글거리는 더러운 놈들의 존재감밖에 느껴지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듯 교주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공원은 끈적거리는 검은색 액체들과 신발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지열이 느껴지는 종말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어둠 사이에 자욱하게 낀 안개 사이로 기류가 미친 듯이 일렁이는 거대한 구덩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정말로 지옥과 이어지기라도 하듯 땅과 대각으로 이어져 있는 거대한 싱크홀.

그곳에서는 변종이 된 이후로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죽음이라는 감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그리고 그 싱크홀을 마주한 일행들은 변종 놈들에게 쫓기는 급박한 순간임에도 움직임을 멈추며 인간의 본능은 자극하는 공포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 두려움, 종말, 파멸. 이 모든 단어를 총합해도 정의할 수 없는 싱크홀의 위세.

그것은 항거할 수 없는 진정한 격변의 진면목이었으며 겨우 살과 뼈의 이루어진 연약한 우리로는 저항할 수 없는 존재였다.

팀원 중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고 발밑을 으르렁거리는 여진이 우리에게 도망가라고 현실을 외면하라고 속삭인다.

싱크홀, 아니 지옥이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고 윽박질렀다.

그리고 비현실 같은 현실을 마주한 노인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저기 안이냐?”

“네.”

삶의 끝, 오랜 고난과 고통 끝에 도달한 사선의 종착지. 저 싱크홀로 들어가면 분명히 죽는다.

하지만 저 밑이 끝을 알 수 없는 낭떠러지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가야 했다.

오른손에 쥐어진 폭격 유도기와 이제는 3개밖에 남지 않은 탄창이 무겁기 그지없었다.

일행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다친 동료들은 고통의 신음을 삼켰지만, 나는 뒤돌아 달려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저 앞에 보이는 절망의 늪에는 분명, 내가 고시원을 뛰쳐나올 때 봤던 일말의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회색 바람이 분다. 회색 눈이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 버렸다.

기나긴 절망의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또다시 마주한 회색 도시였다.

“강 형사님, 수송 헬기 요청해서 후송 준비해 주십시오.”

“……먼저 안 갈 겁니다.”

“그 손으로 총 쏠 겁니까?”

변종의 감각조차 죽을 거라고 비명을 지르는 장소다.

양면이 막히고, 숨을 쉴 수 없는 지열. 심지어 폐를 옥죄어 오는 유해 공기는 싱크홀에 들어선 순간 인간을 미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변종의 몸은 가진 나는 저 미로와 같은 지옥 안에서 교주의 위치를 찾아 신호기를 설치할 유일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 쓸데없는 희생을 만들지 말고 더 이상 싸울 힘이 없는 이들을 중상자들과 함께 기지로 복귀시키는 것이 최선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누가 와도 절대 꺾을 수 없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자 출혈 때문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 강 형사는 결국 고개를 푹 떨구며 아까 전투로 검지와 중지가 잘려 나간 손을 꾹 쥐었다.

“꼭 살려서 데려가세요.”

“……네.”

그리고 강 형사에게 확답을 받은 내가 소총을 들어 올리며 폐부에서 끓어오르는 숨을 푹 내쉬자 구덩이를 살펴보고 있던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내 옆으로 다가와 섰고 조용히 눈치를 살피던 용팔이 형제가 가방에서 방독면을 꺼내 들며 에덴의 모자를 꾹 눌러썼다.

최소 인원, 최고 효율. 수없이 많은 사선을 함께했던 4명의 팀이 마지막으로 뭉쳤다.

그리고 나는 절대 수송 헬기를 탈 생각이 없어 보이는 노인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가라고 해도 안 갈 거죠?”

“조까.”

나는 노리쇠를 당기며 조용히 웃었다. 그러자 장전음이 교주의 집 앞을 노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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