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2부 103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린베레와 그들의 화력지원을 위해 동원된 레인저들이 에덴 팀을 기다리고 있는 곳은 차를 타고 빠져나가기 수월한 교차로였다.
아니, 교차로였던 폐허 위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교차로에 우리가 도착할 때쯤 바닥에는 이미 탄피와 놈들이 흘린 피들이 가득했고 몰려오는 놈들로부터 우회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원들의 고함이 시끄럽게 귀를 어지럽힌다.
험비 사수석에서 연신 불을 뿜는 중기관총과 총열이 붉게 변할 정도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개인화기.
하지만 그 강력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이 지정해 둔 방어선은 파도가 몰려오는 해안선처럼 점점 밀리고 있었다.
“강 형사! 박대박이!”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등장한 에덴 팀은 그 열세를 잠시 고착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전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팀의 주축인 강 형사와 박대박을 부른 노인은 대열을 앞서 뛰어가며 전투 준비를 마친 에덴 팀을 지휘했고 조금씩 화망이 모자란 지역에 가세해 급한 불을 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소모전에 불과한 형세였기에 탄약이 떨어지고 군인들이 지치면 교주를 만나기도 전에 후퇴할 판국이었다.
미국과 에덴 팀이 예상했던 숫자보다 몇 배는 더 많아 보인다.
나는 연신 방아쇠를 당겨 놈들을 저지하는 에덴 팀을 지나쳐 뒤쪽에서 무전기를 붙잡고 시끄럽게 떠드는 군인들에게 달려갔다.
“빅!”
“Mr. 곽? 빌어먹을! 남자가 이렇게 반갑기는 처음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한시가 급하다. 나는 재빨리 방어선을 이루고 있는 험비를 넘었고 현장 지휘관으로 보이는 빅을 불렀다.
그러자 무전기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던 빅은 내 쪽을 향해 다급하게 고개를 돌렸고 이내 환하게 웃으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공항 작전을 끝으로 제대할 줄 알았는데, 결국 여기까지 따라온 그린베레 팀들.
나는 익숙한 얼굴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지휘 험비 바로 앞에서 만난 빅과 짧은 인사를 나눴고 거의 후퇴 직전인 상황을 돌아본 내가 우회로로 몰래 돌아가는 팀이 왜 이 지경까지 몰렸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레인저들의 중대장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이쪽을 향해 서둘러 다가오며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예상보다 놈들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동안 위성을 피해 싱크홀 내부에 숨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 지휘부에서도 후퇴 작전을 고려중입니다.”
샌프란시스코 근방으로 접근할 때부터 느낌이 싸했다.
꼭 지휘 체계가 있는 것처럼 치밀하게 움직이는 놈들 때문에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던 우회로조차 막혀 버렸고 이제는 미 육군이 후퇴 작전을 고려할 만큼 극심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화력을 쏟아부을 때면 싱크홀에 숨어 있다가, 보병이 지역을 확보할 때를 노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놈들.
미 육군이 아무리 많은 탱크와 중화기를 동원해 보아도 결국 보병의 피해가 생기는 이상 지역 확보는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수십 킬로미터 반경에서 해일을 이뤄 몰려오는 놈들 때문에 미 육군이 가지고 있는 화력이 부족해 보일 정도였다.
- - - - 구르르릉-!
“엎드리세요!”
아까부터 터질 기미를 보이던 여진은 이곳까지 다가온 우리에게 당장 꺼지라고 울부짖기라도 하듯 큰 지진을 몰고 와 대지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비틀거리는 중대장을 끌어당기며 험비 옆에 엎드리자 마치 파도가 치듯 일렁이는 지반과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빌딩의 잔재들이 우리를 덮친다.
사방에서는 흙먼지와 함께 터져 나오는 비명.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놈들은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다시 한번 방어선을 돌파하려고 했다.
“전방이다! 막아! 막으라고!”
“끄아아악!!!”
곳곳에서 아지랑이처럼 올라오는 화약 연기와 바닥에 흩뿌려지는 선혈과 검은색 피의 늪이 눈앞을 수놓는다.
놈들에게 덮쳐져 비명을 지르며 찢어지는 군인들과 이를 악물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는 에덴 팀.
교주와 땅속 밑에서 도사리고 있는 종말은 꼭 우리가 이곳으로 올 줄 알았다는 듯 지옥을 육지 밖으로 끌어올려 버렸다.
그리고 지진이 끝나자 빠르게 정신을 차린 중대장에 나에게 무전기를 내밀었다.
“받으십시오! 저는 전방으로 가보겠습니다!”
손 하나가 절실한 상황이다.
온몸에 흙먼지로 범벅이 된 중대장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소총을 잡았고 중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현장을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완전히 비어 버린 지휘 험비.
나는 입안에 들어간 흙을 바닥에 뱉으며 중대장이 넘기고 간 무전기를 받아 들었고 아까까지만 해도 침을 튀기며 통신을 나눈 상대를 향해 통신을 보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는 냉철하지만, 떨림이 남아 있는 스티브 대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Mr. 곽?]
“지금 우회로에 와있습니다! 당신 판단은 어떻습니까!”
갈수록 심해지는 지진과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우르르 몰려나오는 놈들은 시시각각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이 많은 군인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스티브 대령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후퇴해야 할지 아니면 전멸을 각오하고 진격할지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춰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아는 나는 지휘권을 잡고 있는 스티브 대령에게 물었다.
1초, 2초, 3초. 건너편에서는 골이 아파질 만큼 짙은 고뇌가 느껴졌다.
그리고 10초가 넘어가려는 그 순간 스티브 대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여기서 저희가 물러나면 그때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직접 현장으로 나와 지상으로 강림한 지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스티브 대령은 사태의 심각성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물러나 작전을 보류한다면 교주가 얼마나 더 많은 싱크홀을 만들어 놈들을 끌어낼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
결국 놈들에게 물어 뜯겨 죽거나, 양쪽 다 파멸을 각오하고 핵 구름을 만드는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이 판도를 뒤집을 유일한 기회는 아직 있었다. 후퇴하느냐, 아니면 죽음을 각오하고 몸을 내던지느냐. 스티브 대령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Mr. 곽,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전 국토가 전쟁통에 빠진 미국이다. 물론 전 세계는 말해 봐야 입 아프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복되는 국가는 늘어만 갈 것이다.
결국 파멸이 예정되어 있는 미래와 돌이킬 수 없는 과거.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 모든 것을 만회하고 뒤바꿀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가슴속에 새긴 것 같은 스티브 대령의 말에 나는 모자를 자욱하게 더럽힌 흙먼지를 털어 내고 저 앞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자신들의 가족과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드는 생존자들. 숭고함은 영웅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모든 화력과 병력을 그쪽으로 집중하겠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Mr. 곽.]
놈들은 병력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한 지휘부를 주 목적지로 삼았지만, 탱크와 중화기를 중심으로 구성된 화망은 위태롭게나마 놈들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도시 안쪽으로 보내야 하는 스티브 대령은 상황이 고착되기 전에 자신이 위치한 지휘부를 미끼로 삼아 그나마 멀쩡한 병력으로 우회로를 엄호하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정말 잠깐뿐이지만, 우리가 나아갈 시간을 반드시 벌어 줄 것을 약속한 스티브 대령.
나는 가능하겠냐는 물음에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답을 보냈고 대령도 행운을 빈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무전을 종료했다.
그러자 인이어를 통해 무전을 듣고 있던 그린베레들과 레인저 대원들은 넋을 놓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기류가 바뀌고 저 멀리서는 검은색 파도가 보였다.
[GO! GO! GO!]
쾅-! 쿠쿵-!
이제부터 뒤는 없다. 스티브 대령의 선택과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저 멀리서는 지휘부에서 빠져나온 병력이 빠르게 차량에 탑승해 우리가 달려온 길을 그대로 밟으며 우회로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가장 먼저 달려온 탱크와 자주포들은 에덴 팀의 경로를 막고 있는 놈들에게 화력을 쏟아부었고 놈들 대부분이 몰려 있던 큰 파도는 그대로 지휘부를 집어삼킨다.
마치 원형을 그리듯 쫓고 쫓기는 놈들과의 술래잡기.
물론 우리의 끝은 무너진 방어선의 죽음뿐이었지만, 총구를 떠난 총알은 분명 교주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력을 다한 화력으로 우회로가 뚫리자마자 나는 에덴 팀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선두 기동! 에덴 팀 작전지역으로 이동합니다!”
파도에 빈틈이 생겼다. 나는 소총을 견착한 채 뛰쳐나와,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놈의 머리를 그대로 터트려 버렸다.
그러자 정신을 차리고 지시를 들은 에덴 팀은 수백 번, 수천 번이고 훈련했던 이동 대열을 이루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뒤를 그린베레와 레인저팀이 뒤를 이었다.
폐허 위에 남아 있는 잔해와 장애물 때문에 더 이상 차량을 몰수가 없다.
결국 도보로 도시 중심지까지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사력을 다한 뜀박질을 시작했다. 발에 밝히는 놈들의 시체와 검은색 피 웅덩이.
이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가 지옥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희생을 교두보 삼아 어둠 그 자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 - 후욱, 후욱-!”
인간은 목숨을 소중히 한다. 그것은 수년간 인간을 먹이 삼아 살아온 놈들이 본능으로 알고 있는 약육강식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우리를 도시 중심지로 보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인간들을 본 놈들은 처음으로 당황했고 서둘러 원형으로 빙 둘러 움직이며 우리를 향해 적의를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군인들의 도움으로 이미 도시 입구까지 달려온 우리는 한 개의 총알이 되어 교주의 목을 목표로 잡은 지 오래였다.
사방에서 펑펑 터지는 화력의 엄호와 우회로로 돌아오는 놈들을 막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군인들.
인이어에서는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죽음의 순간이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그 순간 거친 숨과 입김으로 점철된 공간 사이에서 목덜미를 세우는 적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 - - - - 끼기기기기긱!!”
내가 교주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만큼, 교주도 내 존재를 느끼고 있다.
자신의 눈에 대검을 틀어박은 존재, 마치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인간에게서 처음으로 느낀 두려움.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한 내가 자아를 가진 변종으로 다시 돌아오자 교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계를 품으며 부릴 수 있는 변종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그것을 대변하듯 폐허가 된 도시에서는 변종이 내뱉는 울부짖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개체 한 마리가 소대 하나를 상대할 수 있는 것으로 측정되었던 흰색 변종.
나는 재빨리 소총을 견착하며 반쯤 무너진 빌딩들을 거미처럼 기어오르는 놈들을 시야에 담았고 팀에게 수신호를 보냄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타타다다다당!
손가락이 불규칙한 리듬을 탄다.
하지만 날아간 총알은 빌딩 사이를 기어오르는 놈들에게 전부 박혀 들었고 기괴한 울부짖음을 내뱉은 변종들은 우리를 향해 날아오르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다.
하지만 수많은 숫자 앞에 그런 놈은 결국 소수.
뜀박질에서 속보로 속도를 줄인 팀들은 나처럼 소총과 지원화기를 들어 올리며 우리를 포위하려는 기색을 보이는 놈들을 향해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야간 투시경에 들어오는 어둠의 숫자는 늘었으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지 않고 주변을 먹구름으로 장식하기 시작한다.
[동윤아! 이대로 가면 막힌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변종의 숫자 앞에 가장 뒤에서 후방을 막고 있던 노인이 다급한 무전을 보내왔다.
한 번에 우리를 덮치는 것이 아닌, 진행 방향을 서서히 조여 오며 포위망을 펼치는 영리한 놈들.
우리는 마치 설치된 어망에 들어가듯 놈들이 조여 오는 불가항력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위험을 알리는 본능은 뒤로 돌아 도망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퇴는 없다고 확정 지은 각오는 그 본능을 가볍게 지르밟으며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총염과 총성. 나는 그대로 야간 투시경을 벗어 던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온몸에 들끓는 피와 감각이 펑 터지며 눈앞이 하얗게 물들어 버렸다.
“우측! 항구 쪽으로!”
발끝에서 시작한 감각이 대지를 타고 파동을 이룬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고 느낄 수 없는 거리지만 느껴지는 무형의 시야.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팀의 진행 방향을 샌프란시스코만(bay)이 있는 항구를 향해 꺾으며 빈 탄창을 허공으로 던져 버린다.
이곳은 빌딩의 잔해들이 남아 있는 회색의 숲이다.
적어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장점인 화력을 온전히 이용하려면 놈들이 엄폐물로 삼을 장애물이 없는 곳을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평평한 지대가 존재하는 항구, 포트 레로 포인트였다.
끼기기기긱-!
잔해에 숨어 있다가 불시에 나를 덮치는 놈의 머리통을 대검을 뜯어내 버린다.
일행들의 사각지대를 노리고 있는 놈의 사지를 소총 밑에 장착된 산탄 장치로 박살을 내버린다.
끊임없이 까닥이는 방아쇠, 폭발하는 감각과 하얀 세상. 놈들은 변종이었고 나 또한 인간에서 벗어난 변종이었다.
그리고 눈을 돌리기도 전에 움직이는 몸은 빈틈을 노리는 놈들 자체를 박살을 내자 일행들이 이루고 있는 일자 대형을 미친 듯이 오가며 일행들을 보호하는 내 움직임은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피와 살 그리고 뼈 사이로 저 멀리 항구의 입구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