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304화 (304/313)

# 304

2부 101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Mr. 곽. 연구소장 허드슨입니다.”

“반갑습니다, 허드슨 교수님.”

한국행 비행기가 떠나고 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제 겨우 5시간 남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쓸데없는 허례허식 따위는 집어치우고 빠르게 통성명을 나누며 단체의 장과 장끼리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자 연구소에 있는 모든 연구진은 활동을 멈췄고 우리 에덴 연구팀은 자연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오며 어려울지 모르는 용어의 통역과 짧은 기간 동안 연구한 자료를 서류로 만들어 나에게 가져왔다.

그리고 나와 악수를 한 허드슨 교수는 붉게 충혈된 눈을 연신 비비며 안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고 자신의 제자가 가져다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후……, 그래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그리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세미나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은 나와 에덴 팀은 한동안 허드슨 교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사포처럼 쏟아 내고 싶은 질문의 욕구를 참았다.

하지만 허드슨 교수는 너무나 방대하고 길었던 연구 기간에 많이 지치기라도 했는지, 꼭 영혼을 내뱉는 것 같은 한숨을 훅 내뱉었으며 창밖에 보이는 시설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래, 과연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나와 우리 일행들의 노력으로 교주와 이 종말 사태에 대한 단면은 이미 나온 상태였지만, 짧은 기간 동안 정신을 불태우며 단면을 입체적으로 만든 그들은 마치 불타서 바스러진 재처럼 번아웃이 되어 버렸다.

“저 밖에 있는 기계장치는 뭡니까? 저희 측에서 만든 장비입니까?”

연구를 마치고 진실과 마주한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이대로 가다가는 피곤한 침묵이 계속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나는 팀을 대표해 연구진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넋을 놓고 있던 허드슨 교수는 정신을 차리려는지 작은 한숨과 함께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말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건물 중앙의 기계장치는 꼭 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큼 거대한 크기였으며 링 모양으로 말아 두지만 않았어도 이 복도에 쫙 깔릴 만큼 길었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허드슨 교수는 저 기계장치를 만든 사람은 자신들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교주가 만든 장치의 프로토타입입니다.”

“……용도가 무엇입니까?”

“무어라 정의해야 할까요……. 거대한 입자 가속기(Particle Accelerator)? 인위적으로 지진을 발생시킬 수 있는 장치? 참고로 저희는 그냥 노크(Knock)라고 부릅니다.”

에덴 연구팀이 허드슨 교수가 말하는 용어들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압축해 나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기껏해야 고등 과정이 끝인 내가 그것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교수가 말을 더듬으며 내뱉는 트리거와 노크라는 단어를 통해 교주가 만들었다는 저 거대한 기계장치의 용도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연구진들이 통칭 노크라고 부르는 저것의 정체. 그것은 벌써 세 차례나 일어나 인류를 위협하게 된 격변의 발생 장치였다.

물론 입자 가속기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나는 저것이 어떤 원리로 격변을 발생시키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후버 국장의 말대로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바로 교주였다는 사실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안경을 다시 쓴 허드슨 교수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말을 이어갔다.

“1년 전에 우연히 알래스카 오지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만든 지 대략 15년 정도가 지난 물건으로 추정하고 있고……. 이미 격변은 수차례 벌어졌으니 교주는 이미 완성품을 가지고 있겠죠. 아니, 아마 더 진화했을지도 모릅니다.”

15년 전 완성 시킨 프로토타입이라고 했다.

그러니 크기도 비효율적으로 컸을 것이고 성능도 이 사태를 일으킬 만큼 대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늙지 않는 변종인 교주에게는 남는 것이 시간뿐이었으며 오래전부터 만들어 둔 기반 세력은 완성품을 만들 여지를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끝내 이 기계장치를 완성한 교주는 인류의 문명을 위협하는 놈들을 지상 밖으로 끌어내었다.

하지만 허드슨 교수는 이것이 끝이 아닌지, 에덴 팀이 나를 위해 올려 둔 서류를 미친 듯이 뒤지며 한 통계 자료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의 충혈된 눈이 참으로 강렬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깟 인위적 지진이 저런 괴물들을 만들어 낸다? 차라리 SF 소설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우리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죠. 하지만 결과는요? 그토록 우리가 무시했던 일의 대가는 어떻습니까? Mr. 곽, 이걸 봐주십시오.”

가설은 근거가 있어야 정설이 된다.

말 그대로 높이 던진 돌이 땅에 왜 떨어지는지를 우리의 조상이 탐구했던 것처럼 지성을 가진 인간이 무언가를 납득하려면 수긍이 가능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난 종말은 인류가 그동안 목격한 적이 없었던 불가항력의 억지력이었고 아무리 설명하려고 해도 입이 막히는 현실 속의 비현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치 절망의 광기에 휩싸인 듯한 허드슨 교수와 얼굴을 마주하며 그가 테이블 위에 올려둔 서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세계 각지의 말로 쓰여 있지만, 분명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는 그래프. 그것은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각 나라에서 측정한 PS 파의 그래프였다.

“인공지진과 자연지진의 차이를 아는 건 너무나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인공지진의 경우 P파의 진폭이 S파에 비교해 두드러지게 크고, 그 이후 지진파는 파형이 단순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연지진은 대부분 S파의 진폭이 더 크거나 비슷하고, 에너지가 방출되는 시간이 길어 이후 파형도 복잡한 형태로 기록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지진을 측정할 수만 있다면 차이를 아는 건 금방이라는 소리입니다.”

허드슨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결론을 단정을 지었다.

그리고 종말이 터지기 전 이미 세계 곳곳에는 미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인공지진의 기록을 보여주었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초기 구덩이가 생긴 지역과 지진의 근원지가 무섭도록 일치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끽해야 겨우 지진계에 기록될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교주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 종말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그 순간에도 나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안개만큼이나 짙은 상념에 빠졌다.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운명이 나를 가지고 노는 필연의 실타래인지 모를 상황의 연속.

결국 나는 노인에게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고 생각하면 할수록 아파지는 미간을 조용히 잡았다.

하지만 허드슨 교수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듯 자신들이 연구한 격변의 통계를 내밀며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말이 좋아 인공지진이지, TNT 수천 개를 때려 박아도 이 정도 규모는 내지 못합니다. 거기에 자연지진이 동반된 격변을 일으킬 수 있는 열쇠라뇨! Mr. 곽, 교주가 정말 세 번째 격변을 끝으로 포기할 거로 생각하십니까?”

“……이제 시작이겠죠.”

항복하고 손을 들어 올린다고 해서 놈들은 살육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쪽이 완전히 끝이 나야 종료되는 치킨게임의 시작에서 교주는 어쩌면 싱크홀로 핵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걸지도 몰랐다.

미국만이 아니라, 내 소중한 이들이 살아갈 한국조차 미래를 알 수 없게 된 끔찍한 상황.

나는 당장 몇 시간 뒤에 시작될 에덴 팀 최후의 작전을 생각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 위태롭게 기댔다.

하지만 내 등을 보며 따라올 아이와 일행들을 생각하니 막연함에 눈조차 감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교수는 나에게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부 파괴해야 해요. 그건 핵만큼이나……. 아니, 지구상에 있는 어떠한 무기보다 더 위험한 물건입니다.”

인간은 자신들의 터전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교주가 지옥을 향해 던지는 이 노크(Knock)는 인간이 가지는 자의마저 파괴해 버리는 진정한 대 공포의 시작이었다.

인간은 희망 때문에 살고, 인간은 희망 때문에 죽는다. 눈에 대검이 꽂히기 직전 그토록 인간을 조롱하던 교주의 마지막 얼굴이 눈앞에서 일렁였다.

“그런데요, 교수님.”

그리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일어나기 위해 힘없이 기지로 돌아가려는 그 순간, 배양액에서 둥둥 떠다니는 놈들의 시체를 넋 놓고 구경하던 용팔이가 소파에 드러누워 완전히 정신을 뺀 허드슨 교수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짐을 챙기던 나와 에덴 팀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용팔이를 돌아보았고 교수는 부스스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네?”

“정말 놈들은 지옥에서 올라온 건가요?”

온갖 음모론과 종말론이 판을 치는 세기말. 누군가는 이 사태의 원인이 핵실험이나 생체 실험의 부작용이라고 입 아프게 떠들고 또 누군가는 신이 우리에게 내린 천벌이라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막을 수 없는 노도처럼 몰아치는 놈들은 단 한 가지 사실만은 생각나게 했다.

아, 저 아래가 정말로 지옥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리고 놈들은 이곳으로 지옥으로 만들기 위해 기어 올라온 지옥 그 자체구나.

그러자 허드슨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고 이내 배양액에서 둥둥 떠다니는 시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종말 초기만 해도 옷 쪼가리를 걸치고 있거나 소지품을 가진 놈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격변이 거듭되자 점점 그런 흔적도 사라지더니, 이제는 완전히 괴물들만 남았죠. 그러다 저희 연구진 하나가 놈들에게 운 좋게 채취한 낡은 반지 하나로 탄소 연대 측정법을 해 봤습니다.”

“………….”

“2백 년 전 물건이더군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장비를 챙겼고 노인도 생각하기를 아예 멈췄는지 주름진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아무 생각하지 말자. 심연을 마주 봤을 뿐 내가 살아 있는 건 변함이 없다. 잡념을 버리고, 두려움을 버리고, 발걸음을 방해할 미련마저 버리자.

나는 그동안 고생해 준 연구팀과 짧은 악수하고 완전히 소파에 몸을 묻어 버린 허드슨 교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미나실의 문을 열고 왔던 길 되돌아가자, 교수의 허탈한 웃음이 뒤늦게 들려왔다.

*       *       *

“- - - - - - - - -.”

숨을 내뱉자, 입김이 아지랑이처럼 흩어진다. 저 멀리서 착륙하는 비행기가 신기루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현실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출발하는 귀국행 비행기. 드디어 해냈다는 짜릿함이 심장을 찌르르 울렸고 동시에 눈가가 떨려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해가 뜰 시간이 돼서야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하늘은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짐을 챙기고 10분 뒤면 이곳으로 도착할 강수련과 채연이.

설득하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끝내 내 판단을 선택해 준 가족들한테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내가 활주로에서 서서 저 멀리 보이는 여명을 넋 놓고 바라보자 담배를 피우고 있던 노인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동윤아, 우리 도망칠까? 한국까지 금방 갈 텐데.”

노인은 내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한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그 농담 속에 물기 어린 진심이 숨어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도망치자, 아무도 우리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가, 아무런 걱정과 고통 없이 우리만의 에덴에서 살아가자.

같이 울고 웃고, 지난 추억을 되새기며 늙어 가는 평범한 일상. 하지만 그 일상은 살아서는 갈 수 없는 낙원처럼 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나를 어느새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모든 감정을 품은 얼굴에 웃음을 살며시 머금자, 노인은 울 수가 없어 씁쓸하게 웃었다.

[형님, 저희 거의 도착했어요.]

“조금 늦었네, 무슨 일 있었어?”

[……채연이가 너무 울어서요.]

시간이 흘러 어둑한 새벽을 뚫고 여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앞섬에 꽂아 둔 무전기에서 귀국할 인원을 데리고 와 줄 용팔이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왔고 시간을 확인한 나는 조금 늦은 감이 있는 용팔이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목소리를 죽인 용팔이는 작은 한숨과 함께 아직도 나 몰래 울고 있을 채연이를 언급했고 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제는 다 커서 그런지 내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채연이.

아빠를 슬퍼하게 하고 싶지 않은 기특한 마음은 이해가 되었지만,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 계셨군요.”

그리고 내가 알겠다는 소리와 함께 무전기를 끄자, 공항에서 고급 세단 한 대가 급히 달려오더니 후버 국장과 백악관 비서 실상인 린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없이 많은 작전이 펼쳐진 그간 고생이 많았는지 굉장히 수척해진 그들의 낯빛.

하지만 오늘 당장 사지로 들어가는 나에게 죽을상을 지을 수는 없었는지 억지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보내왔다.

그리고 활주로에 착륙한 비행기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린다는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때에 따라 하와이를 한번 경유하거나, 인천 국제공항으로 직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 미 공군이 호위를 요청했으니, 가족분들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고요. 미국 시민들을 대표해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Mr. 곽.”

“……감사합니다.”

한국행 비행기와 안전한 호위. 주한 미군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을 향한 물자 지원은 무리해서라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 그들은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지켜야 할 차례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린다와 가볍게 악수했고 저 멀리 시더빌에서 달려오기 시작하는 차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노인과 짧은 대화를 나누던 후버 국장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위성 전화기 두 대가 담긴 가방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며 떠나기 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알려주었다.

“15분 뒤에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전까지…….”

“네, 충분합니다.”

“그럼 나중에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후버 국장과 린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조용히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리고 담배를 필터 앞까지 핀 노인도 내 어깨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뚜벅뚜벅 자리를 피해 주었고 나는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여명 앞에서 홀로 서 있었다. 저 멀리 아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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