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300화 (300/313)

# 300

2부 97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이토록 살육의 원초적인 생물은 없었다.

각자 개체가 가지는 욕망마저 인간을 향하고 삶의 근원인 증오를 연료 삼아 태우며 움직이는 그놈들.

왜 죽여야 하는지, 왜 그토록 인간을 미워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기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녹진한 심연은 여전히 우리를 위협했다.

그리고 우리를 죽이기 위해 태어난 놈들은 진화의 방향조차 사냥의 최적화된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변종을 사냥할 때마다 새로운 방식, 새로운 개체를 마주하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놈들은 모습만 바꿔 갈 뿐 그 근본은 절대로 변화시키지 않았다.

영악함, 악독함, 소름이 돋을 만큼 깊은 심연과 인간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살인 기계.

저 앞에서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는 언제나 그래왔듯 변종 놈이 만든 더러운 함정이었다.

“용팔아, 조명탄.”

“네.”

호전적인 놈이 아니다. 함정을 파고 인간을 기다릴 줄 아는 영악한 놈이었다.

거기에 중무장한 정찰 팀을 몰살까지 시켰으니 개체의 신체 능력도 보통 인간이 상대할 수 없을 터.

어쩌면 우리가 이곳에 파견된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자연스럽게 조명탄을 언급하자, 용팔이는 두식이가 메고 있는 가방을 뒤져 수류탄처럼 던질 수 있는 조명탄 스틱을 내 손에 쥐여 주었고 나는 소총을 뒤로 매며 조용히 노인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이쯤 되니 그린베레 대원들도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날아갔던 이성이 돌아왔는지 긴장이 된 얼굴로 소총을 겨누며 내가 할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하지만 내가 내릴 다음 지시는 후퇴도, 접근 신호도 아닌 혼자 들어가겠다는 단호한 말이었다.

“놈이 도망치면 집중사격 해주세요.”

“Sir?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리고 나 혼자 저 어둠으로 들어가 놈을 상대하겠다는 말에 에덴 팀을 따라온 그린베레 대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나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에덴 팀 때문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소총을 내렸고 설명해 줄 시간이 없는 나는 노인에게 이곳을 맡기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깊은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감각의 노도.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안개는 마치 나에게 오라는 듯 손을 흔들었고 나는 그 함정에 기꺼이 들어가 주기로 하며 레드도트 한가운데에 시선을 모았다.

그리고 넋을 놓은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린베레 대원이 나를 붙잡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지휘권을 넘겨받은 노인이 거침없이 그를 제지하며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내 뒷모습을 바라봤다.

“고맙게 생각하고 자리나 지켜. 제대할 때까지 살아야지, 그치?”

넓은 공간이었으면 망설임 없이 에덴 팀과 그린베레 대원들을 투입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 두 명이 가로로 서면 꽉 찰 복도와 양옆으로 나 있는 수많은 방은 그 생각을 일축하게 시키며 나 혼자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했다.

저곳은 다 각도로 움직일 수 있는 놈의 홈그라운드.

아무리 훈련받은 인원이라고 해도 지형이라는 문제 때문에 인명 피해가 나올 것이 분명했고 좁은 공간에 동료는 도리어 내 움직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저 깊은 안개와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살벌한 감각의 노도. 그리고 그곳을 향해 혼자 걸어가는 나는 놈을 죽인다는 확신을 품에 새겼다.

뚜벅, 뚜벅, 뚜벅.

“- - - - - - - -.”

안개와 어둠이 점철된 공간으로 들어서자, 서늘한 공기와 침묵이 가득한 복도가 보였다.

그리고 아까 전 울음소리는 전부 환청이었다는 듯 주변은 고요하기 그지없었고 오직 내가 내는 발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분명히 느껴지지만, 특정할 수 없는 놈의 위치. 하지만 나는 긴장감보다는 놈을 향한 맞증오를 가슴속에 품으며 폐부에서 숨을 끌어내 내뱉었다.

그리고 뚜껑을 딴 조명탄을 들어 올리자 붉은색 빛과 함께 하얀색 연기가 솟아올랐다.

기류가 요동치고 이제는 완전히 일부분이 된 변종의 피가 팔팔 끓어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사방에서는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 잡다한 소음이 미친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속보입니다. 캘리포니아 서부 지역에 큰 지진과 함께 - - - -.]

[- - - -시민분들은 되도록 외출을 삼가시고 몸을 지킬 수 치지직- - -]

[여보세요? 제, 제발 들린다고 해주세요! 치지직- - 놈들이 여기를- - -.]

[2.1. 3.44. 32.56.34. 이 통신은 반복되는 채널입니다. 2.1. 3.44 - - -]

어떤 소리는 몇 년은 지나 보이는 뉴스, 또 어떤 소리는 누군가 보냈던 처절한 무전이었다.

그렇게 내 주변은 스피커에 둘러싸이기라도 한 듯 소리의 실타래가 거친 잡음과 함께 들려왔고 나는 자리에 멈추며 천천히 조명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타오르는 붉은색 빛과 자욱한 안개 탓에 묻혀 버리는 하얀색 연기.

하지만 나는 지옥과 같은 그 공간과 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개머리판을 조용히 견착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간다.

특정하지 못하는 놈의 위치가 내 신경을 자극했다. 목덜미는 서늘해지고 금방이라도 목이 뚫릴지 모른다는 상상은 나를 비겁하게 만든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 멈춘 그 순간 주변을 가득 채운 라디오 잡음은 인물 한 명의 소식을 지목하며 시끄럽게 울렸다.

[해외 소식입니다. 베스트셀러의 원작자인 곽동윤이 봉쇄된 서울에서 발견이 돼- - -]

[에덴의 재창설은 모든 청취자분이 궁금해 하는 소식이죠. 지금 현지에서…….]

[예, 예.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네? 아, 총 3명 맞습니다. 그 남자랑 에덴 팀이요.]

놈은 함정을 파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교주가 만든 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래, 교주는 나와 노인이 서울에서 빠져 나왔을 때부터, 그리고 긴 기간 동안 서울 전선에서 벌였던 긴 투쟁까지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변종 놈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주물렀던 교주의 메시지를 전하기라도 하듯 성대를 스피커로 대신해 나를 조롱했다.

산에서 느껴지던 시선, 용팔이를 습격했던 하얀색 변종. 머리에서 떠돌던 실타래가 끊기자 교주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서 지겹게 일렁였다.

‘인간은 희망 때문에 죽는다.’

교주는 내가 채연이를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공항으로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수의 변종을 투입하지 않아 내가 의심 없이 공항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을 것 같은 흑막을 마주한 내 정신의 타격은 의외로 그렇게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교주가 그날 눈을 잃었듯 나도 마지막 인간성이라 생각한 두려움을 잊었기 때문이다.

몸이 부서지고 뼈가 박살이 나고 내가 먼지처럼 흩어지는 한이 있어도 모든 것을 완수할 것이다.

나는 어깨에서 묵직하게 느껴지는 무게와 개머리판을 꼭 끌어안으며 두려움을 직면했다.

“……눈알은 무사하냐고 전해.”

그리고 나는 교주가 함정을 통해 신념을 조롱하듯 그의 눈과 귀일지도 모르는 놈에게 그날 찔러 넣었던 대검의 감촉을 톡톡히 말해 주었다.

그러자 주변을 에워싸던 라디오 잡음은 한순간 뚝 그쳐 버렸고 휘몰아치는 기류가 안개를 강타해 버린다.

인간을 유인할 정도로 영악한 녀석이니,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교주를 욕한 것쯤은 알아들었을 터.

나는 이 흐릿함에서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레드도트로 재빨리 시선을 돌리며 숨을 크게 내뱉었다.

“후우 - -후우 - -.”

작게 벌린 입에서 미약한 들숨이 잠시 들어왔다 나간다. 그러자 시간은 기다렸다는 듯 느려지기 시작했고 그 짧은 사이 단 한 번 깜빡이는 눈이 서서히 공간을 핥았다.

방아쇠 위로 검지가 올라간다. 본능은 갑자기 튀어나온 놈에게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오른쪽 방? 왼쪽 방? 위쪽 천장? 특정할 수 없지만, 시야와 감각이 닿는 모든 곳을 변종의 피가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느리게 흐르던 시간이 거의 멈춘 것 같은 절정의 순간 하얀색 안개 속에서 안개보다 더 하얀 교주의 변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 내 목을 향하는 날카로운 손톱과 쩍 벌린 입에서 흉측하게 나 있는 이빨. 나는 그대로 도트를 옮겨 총을 발사했다.

타타타탕-! 타타탕탕!!

찰나의 전투에서 장전할 여유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발 한발에 사력을 다해 마치 스프링처럼 단발로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완전한 본능에 사로잡힌 놈은 총구에서 빠져나간 총알에 벌집이 되었고 온몸을 버둥거리며 중심을 잃으려고 했다.

하지만 놈은 화기로 무장한 정찰팀을 전멸시킨 위용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내가 펼친 화망을 뚫고 들어오며 긴 팔을 가로로 휙 그어 내 목을 몸에서 분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소총을 손에서 놓고 그대로 몸을 뒤로 젖힌 나는 종이 두 장 차이로 칼날과 같은 손톱을 피해 내었고 동시에 허벅지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까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톱이 박혀 들어가는 벽. 그 순간 놈은 함정이라고 생각한 이곳이 과연 누구를 노린 함정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끼이에에에엑!!

도발에 넘어가 쉽사리 몸을 드러낸 여파는 행동의 제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합성 소재로 만들어진 복도 외벽에 그대로 박혀 빠지지 않는 놈의 손톱. 나는 그때를 노려 버둥거리는 놈의 몸으로 접근했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손을 뻗어 목을 잡았다.

그리고 미국 측에서 제공한 대구경 권총을 놈이 끼에에엑 소리를 지르는 입안에 쑤셔 넣고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매그넘탄이 가져오는 묵직한 여운과 말 그대로 박살이 나버리는 놈의 입안.

변종 놈은 버둥거리며 나를 완력으로 찢어 내려고 했지만, 저번과 달리 완전한 변종이 된 나는 그마저도 압도해 버리며 10발의 탄을 전부 쏟아 내 버렸다.

그러자 완전히 사라진 놈의 아래턱과 뻥 뚫린 뒤통수가 시야에 들어왔고 나는 탄창을 교환할 겨를도 없이 대검을 뽑아 들었다.

끼아아아아아악-!!

성대가 찢어지고 머리가 몸체가 덜렁거린다. 이대로 도망치게 내버려 둔다면 분명 몸을 재생시켜 다시 증오를 불태울 것이 분명한 독한 놈이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려고 하는 하얀색 변종 놈을 그대로 부여잡으며 뽑아 들었던 대검 손잡이에 힘을 주었다.

이래도 죽지 않고 저래도 죽지 않는다면, 아예 놈을 지옥으로 틀어박아야 한다.

버둥거리는 놈 때문에 온몸에 생기는 크고 작은 상처. 하지만 나는 칼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하나의 선처럼 정확히 놈의 목에 대검을 찔러 넣고 마치 고기를 썰 듯 날을 움직였다.

그리고 동시에 놈의 머리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자 찢어진 근육 다발과 살이 다닥다닥 끊기며 더러운 검은색 피를 쏟아 낸다.

끄그기긱 - - -끽?

이것이 죽음이다. 네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선사했던 절망이고 그 끝에 어떠한 빛도 희망도 없는, 이것이 바로 죽음이었다.

지옥에서 태어나 지옥으로 돌아가지만, 놈이 망설임 없이 죽였던 인간에게 죽어야 하는 고통과 치욕의 마지막을 보아라.

나는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놈의 마지막 눈동자를 기꺼이 마주치며 온몸에 힘을 끌어냈다.

그리고 대검 손잡이에 힘을 주고 놈의 머리를 뜯어내자, 검은색 분수가 하얀색 안개를 더럽히며 복도에 낭자 되었다.

거칠게 달아오른 숨과 검은색 피로 범벅이 된 몸. 나는 홀더에서 권총 탄창을 꺼내 장전하고 바닥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놈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탕! 탕! 타탕! 탕!

척추를 다 부수고 심장이 위치한 자리를 뚫고 관절마저 다 끊어 낸다.

그리고 놈이 꿈틀거리는 것을 멈추자 그제야 방아쇠에서 검지를 뺀 나는 깊은숨을 내뱉으며 놈의 목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가라앉는 감각의 노도와 변종의 피. 부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불과 10분 만에 이 지독한 악연을 끝낸 나는 녹진한 흥분을 쉽사리 가라앉힐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피부에 느껴지는 묘한 시선에 나는 고개를 들어 안개와 어둠의 한구석을 바라봤고 그곳에서 미약한 소음을 내뱉고 있는 공항의 안내 스피커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 - - - - - -.”

그간 일행들을 죽을 위기에 몰아넣고 나를 한번 죽이기까지 한 지독한 악연의 변종이다.

하지만 나는 교주가 판 함정을 보란 듯이 깨부수며 놈의 머리통을 쓰레기처럼 바닥에 던졌고 분명 이곳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교주를 향해 당당히 두 발을 디뎠다.

증오를 삼키기라도 하는지 스피커 너머에서 들리는 침묵. 나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검은색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권총을 들어 올려 딱 한발 남은 총알을 먼지가 쌓인 스피커를 향해 발사했다.

탕-! 스피커가 터지고 긴장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복도는 한순간 고요하게 변해 버렸다. 그 순간 내 무전기에서 다급한 빅의 목소리와 공항 내부에서 기다리고 있을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종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남쪽 경계를 넘어서 접근 중이랍니다! Mr 곽, 아직이십니까?]

[동윤아, 상황 끝났으면 서둘러야겠다!]

그리고 교주의 분노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남쪽 베이커즈필드에서 잡다한 변종의 무리가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일 아끼는 변종까지 잃고 대놓고 모욕까지 당한 교주의 처량한 분노. 나는 대검과 권총을 홀더에 다시 꽂아 넣고 소총을 챙겼다.

그리고 헬리콥터 로터 소리에 파묻히고 있는 빅에게 증원을 요청해 이 공항을 확보하라는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새크라멘토 국제공항 확보, 변종 하나 처치. 피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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