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99화 (299/313)

# 299

2부 96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이건 이렇게.”

“오…….”

노인이 조물조물 무언가를 만지자, 소총에 달린 광학 장비가 보란 듯이 작동했다.

그리고 헬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장비의 사용법을 속성으로 익힌 우리는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며 미군 측에서 제공한 장비를 구경하기 바빴다.

어째 썩어도 준치라고, 국방비에만 700조를 투자하는 미국답게 장비 보급도 화끈하기 그지없었다.

놈들의 이가 들어가지 않는 임무복부터 날카로운 변종의 발톱을 막을 수 있는 방검복까지.

나는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가의 장비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기분 좋은 어색함을 조용히 만끽했다.

그리고 노인에게 장비의 사용법을 전부 숙지 받은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헬기 밖을 향해 시설을 돌렸다.

그러자 시야에는 하얀색 땅이 넘실거리는 헬기 밖 풍경이 가득 들어왔다.

[작전지역까지 10분 남았습니다.]

그리고 귀한 연료를 태우며 얼마나 날아왔을까, 소음을 막기 위해 착용한 헤드셋에서는 조종사가 도착까지 10분 남았다는 것을 알리며 준비를 끝내라는 통보를 해 왔다.

그러자 일행들은 얼굴에 웃음기를 싹 지우며 장비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기 시작했고 나 또한 M 계열의 소총을 매만지며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충분히 예열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아까부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우리가 떠들던 모습을 지켜보던 미국 측 특수부대 군인이 일행들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탄창을 끼워 넣는 나에게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Mr. 곽이요?”

이번 작전에는 에덴 팀만이 아닌 미 육군에서 엄선한 특수부대 몇몇이 같이 투입되었다.

물론 그들은 하나같이 오랜 기간 훈련하고 실전을 거친 베테랑들이었으며 이번 작전에는 전부 자원해서 온 유능한 군인들이었다.

그리고 나와 일행들은 괜한 친한 척으로 그들의 프라이드를 건드리기 싫었기에 최대한 공적인 대화만을 나누며 접점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아까부터 입을 다물고 있던 한 남성은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짙은 선글라스와 얼굴에 가득한 수염. 볼에 남은 흉터는 도리어 노련한 인상을 남겼고 나는 남자의 범상치 않은 기운에서 이들이 굉장한 베테랑 군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자, 한쪽에서 눈을 감고 있던 노인이 그 군인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그린베레지?”

“오, 노인장 이거 아슈?”

그린베레(Green Berets). 메리제인이 소속되어 있었던 특수작전사령부 산하 육군 특전단.

수염이 덥수룩한 군인 남성은 노인이 자신의 부대 마크를 알아보고 그린베레라는 명칭을 언급하자 굉장히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히죽 웃으며 부대 마크를 툭툭 쳤다.

그리고 아까와는 다르게 살갑게 대화에 끼어들었고 나와 노인에게 악수를 청하며 잘 부탁한다는 짧은 인사를 남겼다.

에덴 팀 4명을 제외하고 두 개의 헬기에 나눠 타고 있는 12명의 그린베레 대원들.

스티브 대령이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대원만을 붙였다고 하니, 아마 이동 내내 변종 놈에게 뒤통수 맞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악수를 마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위험한 일인데, 괜찮습니까?”

“하하, 농담도.”

새크라멘토 국제공항에 투입된 정찰 대원들은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숫자만 해도 통계상 사망과 실종을 합쳐 56명. 군인 한 명이 아까운 이 시점에서 이미 국제공항은 군인들 사이에서 데드존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그 누구도 가기 꺼리는 작전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이 12명 전원이 이번 작전에 자원해서 왔다고 하니, 까놓고 어디 사는 미친놈들인가 싶었다.

그러나 의외로 멀쩡해 보이는 남성, 아니 자신은 빅이라고 소개한 그린베레는 이것이 자신의 비즈니스라고 말하며 성심성의껏 작전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빅은 잠깐의 잡담으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품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딸이 당신을 엄청나게 좋아해. 이따 작전 끝나면 싸인 꼭 해줄 거지?”

“그럼요.”

그리고 빅이 품속에서 소중하게 꺼낸 낡은 사진에는 한 앳된 소녀가 우리를 향해 웃어 주고 있었다.

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유능한 군인이자 특수부대인 남성. 하지만 빅이라는 군인도 집에서는 결국 나처럼 딸을 기다리는 한 아빠의 불과했다.

그리고 너털웃음을 터트린 나는 무사히 복귀하면 꼭 사인 해주겠다는 농담과 함께 무리하지 말고 뒤만 지켜 달라는 부탁을 했고 사진을 품속에 다시 넣은 빅은 자기들만 믿고 있으라는 듬직한 대답을 했다.

비록 짧은 대화였지만, 같은 목적과 같은 이유를 가지고 이 헬기에 몸을 실은 우리는 작은 유대감을 속에 품었고 얼마 있지 않아 두 대의 헬기는 지상을 향해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호크 1, 호크 2. 안개가 너무 짙습니다. 저시계(시야 제한) 위험이 있어 정지 비행 상태에서 잠시만 대기하십시오.]

하지만 산뜻했던 출발과는 반대로 새크라멘토 국제공항 근처에는 헬기가 상륙하기 어려울 만큼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근처에 강이나 호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도가 높은 곳도 아닌데 이런 짙은 안개라니.

나는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헬기 조종사의 무전을 전해 들으며 저 멀리 안개 사이에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하는 공항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내 옆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노인이 내 허리를 꾹 찌르며 물었다.

“있냐?”

“……네. 숫자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있기는 하네요.”

그리고 나는 헬기가 정지 비행을 하며 안개를 몰아내는 사이, 국제공항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기척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그러자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희끗희끗한 오로라와 함께 피부를 핥고 지나가는 위험 본능을 느낄 수 있었고 저 안에 정찰팀을 학살한 변종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 변종 놈은 국제공항에 완전히 둥지를 틀었는지 일반 괴물 놈들은 근처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질척질척한 안개와 녹진한 향처럼 느껴지는 위험 본능은 저곳이 진정한 사지임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나눈 한국어 대화를 궁금해 하는 빅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변종의 둥지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확실했던 가정이 확신이 섰다. 빅은 황급히 선글라스를 쓰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 다른 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대원들을 향해 국제공항 내부에 변종이 둥지를 틀었음을 알렸다.

그러자 사방에서는 안개를 타고 흘러온 긴장감이 우리를 핥아 올렸고 노인은 조정간을 단발로 풀며 짙은 안개 속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숙련된 헬기 조종사는 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균형을 맞추며 공항 앞에 착륙을 시도했고 곧 특별히 준비해 두었던 조명을 켜며 사방을 밝혔다.

그리고 내려도 좋다는 조종사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우리는 소총을 들어 올리고 조명이 밝히는 사방을 둘러보며 재빨리 기체에서 내렸다.

“너무 짙어.”

특별하게 공수해 온 조명으로 사방을 밝히고 있음에도 안개는 우리를 에워싸듯 몰려와 시야를 방해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흔치 않았던 노인은 인상을 쓰며 바닥에 침을 뱉었고 용팔이 형제는 긴장이 어린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있기는 하지만 마치 똬리를 띈 뱀처럼 섣불리 다가오지 않는 위험.

적의 공격보다 더 긴장되는 대기시간이 지속하고 조종사는 결국 헬기의 엔진을 정지시키며 시끄러운 로터를 멈춰 버렸다.

그러자 소총을 들고 사방을 살피던 빅이 자신의 대원들을 이쪽으로 데려오며 나와 노인에게 말했다.

“일단 팀을 2팀으로 나눴습니다. A팀은 그쪽을 따라가고 B팀은 여기 남아서 헬기를 지키는 것으로요. 괜찮겠습니까?”

“정석이지.”

변종을 상대할 최고 전력은 나를 포함한 에덴 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뒤를 엄호해 줄 그린베레 팀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또 아니었다.

12명을 딱 반으로 나눠 6명은 우리가 돌아갈 헬기를 호위하고 나머지 여섯은 우리를 따라와 공항을 확보한다.

어떤 변수가 우리 앞을 기다릴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빅의 판단은 교과서만큼이나 정석이었다.

그리고 노인과 내 허락이 떨어지자 빅은 대원들을 향해 수신호를 보내며 대형을 이뤘고 물러갈 생각이 없는 안개를 바라보던 나와 노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핥았다.

*       *       *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후퇴하십시오. 로터 돌려 두고 있겠습니다.]

“예, 그쪽도 조심하세요.”

무전기와 연결된 인이어에서 B팀을 지휘하고 있는 빅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이 넓은 지대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수단인 헬리콥터. 이곳을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그 수단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B팀을 지휘할 빅이 그쪽에 남았다.

그리고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무전기 볼륨을 줄인 나는 이전 정찰팀이 확보해 둔 공항 게이트를 지나며 마치 밤처럼 어두운 공항 내부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총구 바로 옆에서 쏟아져 나오는 밝은 조명과 광학 장비에서 시작되는 레이저 사이트.

놈들에게 체온은 없기에 열 감지기는 무용지물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아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기에 쓸모없지만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회색 안개와 불투명한 어둠으로 범벅이 된 공간.

시야가 확보되는 곳은 오직 총구 옆에서 나오는 조명으로 만들어진 방향뿐이었고 원통으로 이루어진 빛의 터널에 의지해야 하는 우리는 이마와 콧등을 따라 식은땀 한줄기가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변종의 위치를 알아내야 하는 나는 마치 정신에 EMP를 맡기라도 한 듯 특정할 수 없는 놈의 위치에 혼란을 느끼며 정말 오랜만에 청각과 시각에 모든 것을 집중했다.

바늘을 찾아야 하는데, 바늘로 이루어진 바다에 빠진 기분이었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또 어떤 것이 가짜인지 헷갈리는 거울의 방.

노인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대열 후방을 지켰고 나는 언제나 그렇듯 선두에 서서 모든 감각과 본능을 극대화했다.

뚜벅, 뚜벅, 뚜벅.

우리가 처음 공항을 이용할 때만 해도 몇몇 군인과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던 공항이었다.

하지만 이번 격변으로 인해 그 몇몇 사람들조차 죽거나 대피했는지 공항 내부는 아비규환이 지나간 폐허 그 자체였으며 곳곳에 널려 있는 캐리어들과 짝이 없는 옷 조각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기에 깨진 유리 조각들은 연신 발에 밟혔고 갈색으로 말라붙은 핏자국과 역한 시체 냄새는 이곳에 벌어졌던 살육의 순간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포식의 흔적이 남아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정찰 대원들의 시체는 이 호랑이 굴에 진정한 포식자가 웅크리고 있음을 우리에게 경고했다.

그리고 그 순간 공항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노인은 나에게 말했다.

“일단 한번 자극해 보자.”

“……네.”

이곳에 놈이 있다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 넓은 공항을 수색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했기에 우리는 에덴 팀이 만들었던 매뉴얼을 그대로 진행하기 위해 자리에 멈춰 섰다.

놈이 어떤 변종인지, 또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사냥하는지 알아낼 수 있는 자극 신호.

에덴 팀과 그린베레 대원들은 내 수신호에 맞춰 벽을 등졌고 가장 큰 가방을 메고 있던 두식이는 노인의 말에 서둘러 한 구식 오디오를 꺼내 대열 한 가운데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이 스위치를 눌러 오디오를 작동시키자, 스피커에서는 단조로운 잡음이 크게 울려 퍼졌다.

“- - - - - - - -치이이이익 - - - - -.”

시끄럽지는 않지만, 귀에 거슬린다. 단조롭지만, 인상이 써지는 잡음이었다.

물론 변종마다 유인이 가능한 멍청한 개체는 소수였지만, 적어도 이 잡음으로 놈이 호전적인 놈인지 아니면 치밀한 놈인지는 판단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오디오와 잡음만 있으면 작전의 방향을 두 갈래로 잡을 수 있는 최고 효율적인 기구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두운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오디오 잡음은 놈뿐만이 아니라 그린베레 대원들을 긴장시켰고 이런 극악의 조건이 드물었던 일행들은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귀에는 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응애! 응애! 응애!

짙게 낀 안개만큼이나 고요하던 공항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오디오를 틀고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들려오는 애 울음소리는 을씨년스러운 공간을 더 좁게 만들었고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리를 들은 일행들과 대원들은 깜짝 놀라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애 울음소리다. 아니,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였다. 놈의 둥지인 이 공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웬 말이냐 말인가.

나와 노인은 잡음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인상을 찡그렸고 그린베레 대원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중 제일 젊은 한 대원이 다급히 무전을 쳤다.

“생존자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 지역 H 게이트 앞 생존…….”

“자리 고수! 지시 떨어지기 전까지 움직이지 마세요!”

하지만 나는 그 보고가 완성되기도 전에 단숨에 일축했고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자리를 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현장의 지휘자는 나다. 급박한 순간이지만, 그것을 잊지 않은 그린베레 대원들은 당황하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고 이 아기 울음소리의 정체를 단숨에 진즉에 눈치챈 일행들은 소총을 어둠 속으로 겨누며 저 멀리 떨어진 복도를 주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뒤바뀐 기류를 온몸으로 느낀 노인은 미간을 찡그리며 욕설을 읊조렸다.

“영악한 새끼.”

아기 울음소리가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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