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
2부 91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눈을 감고 뜨면 하나의 바위를 넘고 있었다.
뜨거운 김을 훅 내뱉으면 내 허리만 한 나무를 피하고 있었다. 경사와 장애물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변종의 몸으로 거듭난 나는 국유림 한가운데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검은색 파도를 피해 위로,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온몸에서 흘러내리는 땀은 흘러내리는 피와 뒤섞였고 시야는 검다 못해 하얗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몸이 기억하는 생존 본능은 알아서 내 몸을 움직이며 놈들의 손길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었다.
국유림을 마치 불개미처럼 올라오고 있는 놈들의 기운.
이것은 재해와 다를 게 없었으며 그 누구도 항거할 수 없는 조류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아직은 살아 있음을 외치며 지금도, 이 순간도 뜀박질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 - - - - - -.”
어둠이 물든 숲속 사이로 놈들의 그림자가 희끗희끗 보인다. 그리고 바로 뒤까지 추격하고 있는 변종의 기운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이대로 간다면 산의 정상. 놈들을 유인하고 나 스스로 살고자 뛰고 있지만, 마땅한 돌파구는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공통된 살인의 분모를 가지고 제각기 증오의 분자를 가지는 놈들의 목적은 나였으니 머리에 한발 한발 총알을 박지 않는 이상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까.
그리고 내가 살고자 하는 상념에 빠진 그 순간 수십 마리의 기운이 내 목덜미와 바짝 솟아오른 신경을 스쳐 지나갔다.
산을 나선형 모양으로 올라오던 놈들이 벌써 지척까지 따라온 것이다.
탕-! 탕탕탕!
평야에서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회색 변종 놈들이었다.
거기에 국유림에 존재하는 울창한 나무들은 도리어 놈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고 나는 재빨리 뒤로 돌아 변종의 모습을 포착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마치 원숭이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를 타고 넘으며 나에게 날아오는 회색 변종들.
놈들의 몸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인간의 눈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움직임이 보였고 그 숫자도 두 배나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혈관에서 미친 듯이 감각을 찌르던 변종의 피는 그 순간 완전한 기지개를 피며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공간과 권총 한 발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예리함.
방아쇠는 내 연장선이 되어 뒤로 고개를 젖혔고 총구에서는 여러 번의 반짝임이 터져 나왔다.
“- - - - - - -!”
그리고 구경이 큰 권총을 챙겨 온 보람이 있는지 정확히 조준한 총알이 날아가 박힐 때마다 불개미를 한차례 걷어 내듯 놈들이 나가떨어졌다.
마치 총을 맞은 새처럼 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리는 회색의 변종들.
놈들 머리나 아가리에는 하나같이 총알구멍이 나 있었고 권총 슬라이더는 총알이 전부 소진된 것을 말해 주듯 어느새 뒤로 젖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뒤를 내주지 않기 위해 나무를 등지고 권총을 파지한다.
총구에서 새어 나오는 화약 연기, 빠르게 재장전 해야 한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별개로 급박한 상황은 찰나의 틈조차 주지 않았고 내가 총알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 회색 변종 놈들은 나무 위에서 몸을 날려 나에게 달려들었다.
빠드득-!
끼기기기긱!!!
망설임은 없었다.
놈들이 나에게 달려들자마자 잠시 꽂아 두었던 대검은 허공을 날아 내 손에 잡혔고 아가리를 벌리는 놈의 목덜미에 그대로 꽂혀 들어간다.
찌르는 것이 아닌 놈의 몸에서 목을 완전히 분리해 내려는 파괴적인 행동.
그 순간 온몸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근육은 비명을 질렀고 날카로운 대검의 날은 놈의 목을 종이처럼 찢어 내었다.
하지만 그 뒤에서 연쇄적으로 날아오는 놈들은 막을 방법이 없었고 나는 하이에나들에게 둘러싸인 맹수처럼 이리저리 물어뜯기며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결코, 타협하지 않는 이 변종의 힘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놈들을 하나하나 파괴하며 나는 어느새 구정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 - - -!!”
아아!! 소리 없는 비명이 벌린 입에서 터져 나온다. 뭉치가 된다. 끈적한 피로 범벅이 되었다.
대검 날로 찌르고, 찌르고, 자르고, 쑤시고, 날이 부족하면 손잡이로 또 손잡이가 부족하면 놈들의 눈을 파내며 두개골을 부쉈다.
그리고 어느덧 정신을 차려 보니 나와 놈들의 차이는 사라지고 인간 곽동윤은 한 마리 피 뭉치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기보단 놈들을 하나라도 더 파괴해야 한다는 본능에 발버둥 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싸움인지 아니면 지옥의 싸움인지 헷갈려 갈 때쯤 나는 마지막 놈의 아가리에 손을 넣어 뼈가 박살이 나는 소리와 함께 위턱을 분리해 내고 있었다.
5마리를 처치하는데 걸린 시간은 1분. 나는 입안으로 들어간 내장 조각과 피를 바닥에 뱉어내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 - - - -!!”
빠른 추격이 가능한 회색 변종들은 전부 처리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남아 있는 진정한 블랙 라인은 아직 건재한 상태였고 내가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저 멀리서 숲을 파괴하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놈들에게 물어뜯긴 몸 상태는? 싸우면서 어디 부러진 곳은 없나? 아니, 성한 곳이 없지만 분명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 건조한 한마디 문장으로 몸 상태의 확인은 끝났고 비틀거리던 팔다리도 서서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삐꺽거리는 뼈마디와 임무복을 완전히 적신 피.
이곳이 지옥인지 내가 지옥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지만, 앞을 향해 뛰쳐나가는 몸은 내 이마와 눈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게 했다.
“후우, 후우.”
놈들이 나를 쫓아오는 속도보다 내가 도망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리고 숨은 거칠었지만, 이 변종의 몸이 지치는 일은 없었고 흘러내리는 출혈도 금세 잡힐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국유림에 하나둘 들이닥치기 시작하는 블랙 라인의 숫자였으며 생각보다 지능적인 놈들의 집단행동이었다.
마치 나선형처럼 산을 쓸어 올리며 나를 포위하기 시작하는 놈들의 움직임.
이대로 가다가는 분명 퇴로를 차단당해 저 흑색의 파도와 하나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놈들의 움직임은 한발 먼저 눈치챈 나는 그대로 행로를 꺾어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을 미련 없이 포기했고 이 국유림을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놈들이 쉽사리 쫓아오지 못하고 기척과 냄새를 숨길 수 있는 심연의 통로를 찾는다.
저 멀리서는 물비린내와 함께 고막을 간지럽히는 흐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저돌적이다. 라는 단어로는 전부 설명하지 못할 광폭한 흐름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몸통을 밟고 자신의 신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오로지 나에게 고정된 시선.
놈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이 공간을 수십 년째 지키고 있던 나무들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뿌리째 뽑혀 나갔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다. 아니, 놈들이 지진 그 자체에서 태어난 놈들이니 이 표현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느리지만 시시각각 내 도주로를 가로막고 있는 블랙 라인을 피하고 또 피해 산릉선을 빠르게 넘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검은색 먹을 머금고 미친 듯이 흐르고 있는 트리니티강이 시야에 들어왔다.
“- - - - - - - -!!”
내가 트리니티강이 보이는 절벽에 도착하자 캘리포니아 중부를 휘젓고 다니던 블랙 라인의 대부분이 국유림에 도착해있었다.
그리고 국유림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절벽에선 내가 그토록 감탄하던 자연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공포의 신이 나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그것 대부분은 검은색 떼들로 얼룩이 지어 있었다.
수만 마리가 내뿜는 증오와 살기는 내 피부를 짜릿하게 울렸다. 산이 해일에 잠긴 듯 이 인외의 광경은 소름 돋기 그지없었다.
나를 죽이고 싶어 했다. 내 살과 뼈를 찢어 자신들이 살던 지옥으로 데려가고 싶어 한다.
어디에 서 있던 목에 칼날이 꽂히는 이 기분.
하지만 나는 심장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장비를 벗기 시작했다.
‘죽어라.’
‘찢어라.’
처음에는 기괴한 울음과 비명이었다.
하지만 이 공명을 가만히 듣고 있을수록 놈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놈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지옥의 존재들은 이 땅 위에 모든 인간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명과 괴음으로 점철된 지옥의 공간. 나는 거친 물살을 수영하는 데 방해가 될 무전기를 제외한 모든 장비를 내려놓고 권총만을 손에 쥐었다.
날씨가 쌀쌀하니, 상쾌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내가 뛰어왔던 능선과 절벽 앞에는 손을 뻗으며 피노라마처럼 길게 늘어진 검은색 놈들이 내 주변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이제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절벽 아래뿐.
하늘을 향해 꺽꺽거리는 놈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예감했는지 파도가 몰려오는 속도를 한층 더 가속 시켰다.
철컥, 탕! 탕! 탕!
과거 관악산에서 도망을 치다 하수구 입구에서 놈들과 마주했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지금처럼 양쪽에 산이 가득했고 나는 놈들에게서 도망치려고 했었다.
이렇게 처량하게 남은 탄창을 비우고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가기 위해 발버둥 쳤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이 과거로 변해 사라졌고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이야기였을까? 아니, 지금 나는 어디까지 온 걸까? 잘하고 있는지, 내가 가는 길이 정말 옳은 것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답해 주는 것은 오직 총구뿐이었다.
타탕-! 탕탕탕탕!
시간은 어느덧 고요를 품은 채 느려지고 저 파도와 비교하면 너무나 볼품없는 총알은 놈들에게 묻혔다.
이제 남은 거리는 80m. 총알이 다 떨어지고 슬라이더는 뒤로 젖혀졌다. 바닥에 떨어진 탄피와 곧 흩어져 사라질 화약 연기만이 주변에 남았다.
하지만 나는 장전하자는 생각조차 장비와 함께 버려 버리며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았고 오직 대검과 무전기만을 챙긴 채 숨을 훅 내뱉었다.
70m 더 가까워졌다. 60m 놈들이 나를 향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느냐고 조롱한다. 50m 그리고 나는 조롱과 같은 물음에 망설임 없이 절벽을 향해 뛰어갔다.
“- - - - -후우.”
겨울철인데도 불구하고 물살이 강하다 못해 무섭다.
높이는 뛰기만 해도 몸이 산산조각이 날 만큼 높았고 두근두근 뛰고 있는 생존 본능조차 지금 이 자리에서 생존을 저울질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망설임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무조건 살 거라는 보장이 아니라, 마치 내 모든 절망을 이겨 내고 몰려오는 후련함 때문이었다.
40m. 삶의 초시계는 마지막 정각을 가리킨다.
뛴다. 발을 돋웠다. 온몸에 힘차게 힘을 주자 나는 별들이 가득한 하늘을 그대로 날았다.
그리고 내가 걸어왔던 길을 회상하듯 잠시 뒤를 돌아보자 나를 잡기 위해 안달이 난 지옥이 나와 함께 저 심연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 같이 가자. 더 이상 내 아이와 일행들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나와 함께 가자.
너희들이 태어났던 심연으로, 내 희망이 태어났던 창문으로.
나는 아직 살아있다.
* * *
“- - - - - - -!!”
항공모함에 위치한 상황실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한가운데에 달린 거대한 모니터에서는 시시각각 움직이고 있는 블랙 라인이 미국 본토를 덮치고 있었고 군복을 입은 채 이어링은 낀 군인들은 얼굴에 절망이 어린 채 통신이 끊긴 부대를 향해 애절한 목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격변과 동시에 새롭게 생성된 블랙 라인을 맞이한 각 주 전선.
미군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그것들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놈들로 만들어진 파도는 그 끝을 보이지 않았고 민간인으로 이루어진 피난 행렬을 계속해서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간 사태가 종말을 일컫는 사건이었다면 이번에는 종말과 사태라는 단어조차 남기지 못할 진정한 끝.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 달? 두 달? 전술핵을 사용한다면? 아니, 도대체 어디를 쏴야 놈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
“조지아 전선 연락 두절입니다!”
“근처 주 방위군한테 상황 보고해서 지원 요청해!”
“피난민들이 고립된 상태입니다!”
“이런, 젠장!”
그리고 상황실 한가운데에는 하얀색 백발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사령관이 자신의 견장에 달린 독수리가 무색할 정도로 무력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무리 지원을 보내고 또 보내도 지킬 수 없는 전선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는 구덩이.
후방이라고 일컫는 뉴욕은 이미 반절이 날아갔고 군부대는 전력을 집중해 그 근방으로 놈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후방이 이 지경인데 전방은 어떻겠는가? 이미 캘리포니아 서부 도시들은 지도에서 사라진지 오래며 플로리다에서는 놈들이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사령관은 절규하듯 이어링을 차고 있는 군인들에게 지시했다.
“전선 축소 시켜! 한 명이라도 더 후퇴시키라고!”
격변이 올 것이라는 중요한 서류를 무시하고 한 남자를 비웃은 대가는 3개 주의 포기 선언이었다.
얼마나 많은 군인이 죽을지, 또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놈들에게 잡아먹힐지 추산조차 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
사령관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이유로 협상 내용을 쓰레기통에 버린 자신의 머리통을 권총으로 쏘아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망쳐 버린 자칭 전담팀들에 당장이라도 기관총을 갈겨 그 잘난 대가리를 전부 쳐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몰려왔다.
하지만 오만의 대가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왔으며 독수리 견장에는 식은땀이 뚝 떨어졌다.
“s, sir…….”
하지만 상황이 급박한 그 순간 통제실 화면을 지켜보고 있던 한 여군이 얼굴에 경악으로 물들인 채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넋을 놓은 사령관에게 다가가 자신의 이어링을 벗어 내밀었고 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조용히 핥아 내었다.
순식간에 침묵으로 휩싸인 통제실과 멍청한 얼굴로 이어링을 받아 드는 사령관.
그러자 처음으로 통신을 받은 여군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당황을 얼굴에 담은 채 사령관에게 읊조렸다.
“……백악관에서 온 연락입니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그리고 이어링은 건네받은 사령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털썩 앉았고 화이트 캐슬과 연결되었다고 알리는 화면을 바라보며 마이크와 이어링을 조용히 착용했다.
그러자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통제실 화면에는 처음으로 파란색 청신호가 들어오는 구역이 넋을 놓은 모든 군인의 시야에 담겼다.
블랙 라인이 서부 전선을 뚫는 것이 아닌 산을 가운데에 끼고 끊임없이 맴돌고 있는 실시간 위성 화면.
그리고 그곳에는 누군가 살기 위해 분투를 했던 캘리포니아 중부가 화면에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