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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293화 (293/313)

# 293

2부 90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어둠을 본 적이 있는가.

마치 시커먼 물속에 더 시커먼 물안개가 일렁이듯 보이는 심연의 어둠은 투영되는 빛마저 차단하고 마주한 자들이 들여다보는 것조차 막아 버린다.

손을 뻗을 수도, 그렇다고 해서 어찌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의 공포.

그리고 모든 두려움과 마주해 봤다고 생각한 우리는 그 경험을 오늘 다시 한번 갱신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리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신념은 절망의 순간에서도 나를 움직이게 할 뿐이었다.

천천히 손을 뻗자 노인이 챙겨 온 유탄 발사기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사방으로 흩어져서 최대한 많은 놈을 끌어모아요.”

같이 움직이면 복잡한 도로와 어둠 때문에 도리어 위험하다.

차라리 사방으로 흩어져 한 놈이라도 더 많이 이 구역 밖으로 유인해야 했다.

그리고 내 지시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 노인과 용팔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오토바이 위에 몸을 실었고 나 또한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막연한 감정을 떨쳐낸다.

시동을 걸자 엔진이 켜진다. 다시 한번 어둠을 밝히는 조명이 켜지고 저 멀리서는 수만 마리의 놈들이 우리를 노리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는 놈들의 팔다리와 바람 소리마저 잡아먹는 울부짖음, 그것은 피부를 짜르르 울리는 공명이었고 위험 본능마저 죽여 버리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망설임 없이 당기는 엑셀은 머리와 팔다리에 자욱하게 낀 안개를 한순간 사라지게 했다. 가야 한다.

“- - - - -!!”

그리고 우리는 태연하게 불어오는 침묵을 시발점으로 세 갈래로 흩어져 오토바이를 출발시켰다.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불나방 같은 놈들을 불러일으키는 오토바이 전등이 켜진다.

저 앞에서 꿈틀거리는 검은색 파도는 야성과 본능에 찍어 두었던 점을 찾아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우리에 의도는 반쯤 들어맞았다.

하지만 나는 내 쪽으로 더 많은 놈을 끌어모으기 위해 노인이 넘겨주었던 유탄 발사기를 연신 놈들에게 발사했다.

그러자 뭐 하는 짓이냐고 시끄럽게 울리는 무전기와 불꽃을 쫓아 반쯤 나에게 몰려들기 시작하는 검은색 파도는 순식간에 변하는 주변 풍경을 수식했고 나는 무전기를 그대로 꺼 버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수만 마리를 반으로 줄이자 수만 마리였다.

어둠이 쌓인 평야는 파도가 들이닥친 모래사장처럼 한순간 사라졌고 나는 유탄 발사기를 오토바이에 꽂아 넣으며 다시 핸들을 잡았다.

노인의 배려로 내가 제일 상태가 좋은 오토바이를 받은 상태다.

새벽까지 달리고 살아남으려면 그럴 능력이 충분히 되는 내가 반절을 가져가는 게 맞았다.

재빨리 엑셀을 당긴다. 시나브로 속도를 올린다. 계기판은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내 몸은 항거할 수 없는 속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따끔거리는 뒤통수는 놈들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나를 따라오고 있는지 말해 주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권총을 꺼내 들었다.

탕, 탕, 탕, 탕 탕!

큰소리를 내려는 목적으로 구경이 큰 권총을 가져왔지만, 놈들이 지르는 비명에 커다란 총소리마저 묻혀 버린다.

그러나 시선을 끌려는 의도는 정확히 들어맞았는지 내 뒤를 따라오는 검은색 파도는 한눈팔지 않고 별빛처럼 번쩍이는 총염을 그대로 따라오기 시작했다.

허공을 나르는 빈 탄창과 순식간에 재장전되는 권총.

어느덧 일행들의 오토바이는 저 멀리 사라진 상태였고 시더빌로 향하던 블랙 라인은 우리라는 불나방을 쫓아 서쪽으로 경로를 바꿨다.

됐다! 나는 놈들이 경로를 바꾸자 두려움 속에 피어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제는 내가 살아 나갈 차례라는 생각에 피와 신경이 들끓었다.

“- - - - - - -!!”

도망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놈들을 유인해야 한다.

그렇기에 빠른 속도로 달린다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고 나는 마치 한 마리 양치기 개가 되어 놈들 주위를 돌고 또 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지형적인 한계가 있었기에 나는 점점 놈들에게 몰려 서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마 일반적인 인간이었다면 여기서 사고가 나거나 도망가야 할 것이 분명한 상황.

그러나 나는 이 저주받은 변종 능력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끼며 급격한 커브 길을 돌아 연신 권총을 발사했다.

멀리 뻗어 있는 평야와 국도가 보인다. 그리고 이곳까지 꽤 달려왔는지 15ℓ의 연료는 벌써 3분의 1이나 소진되어 있었고 속도계는 눈앞에서 팽팽 돌아갔다.

“후우, 후우.”

엔진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풍과 굉음은 분명히 이 어둠이 낀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헬멧을 씀으로써 차단되는 막은 잠시 그 현실을 잊게 해주었으며 나는 방안에 홀로 갇힌 사람처럼 내 숨결과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여실히 들었다.

시야가 한정되고 청각이 한정되고 내 사고마저 한정된다.

고시원에 갇혀 있을 때와 다른 것이 없었는데, 바뀐 건 나 스스로 밖에 없었다.

옆을 볼 필요도, 뒤를 볼 필요도 없는 경주마와 같은 삶. 내 영혼을 태워 달린다고 해도 이토록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아, 그리고 그 순간 탄성이 터져 나오려다 눈앞을 뿌옇게 가린 입김에 막혀 버렸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수월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한 지금 먹먹하던 주변 기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 - - - - - -!!”

블랙 라인이 분명 주 표적을 나로 잡았다.

그것이 과연 눈에 띄어서 일지 아니면 누군가 나를 노려서일지는 모르겠지만, 주 표적이 나로 잡힌 이상 노인과 용팔이는 무사할 것이라는 게 확정이 되었다.

좋다, 됐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언제나처럼 생존에 집중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찌릿하고 울리는 신경과 마치 벼락을 맞기라도 한 듯 뻣뻣해지는 목덜미.

옆과 뒤를 보지 않았지만, 나는 이것이 무엇을 설명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정하기 위해 살며시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블랙 라인에서 놈들의 머리를 밟고 뛰쳐나와 내 뒤를 바짝 쫓아오는 변종 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간 보고 사냥했던 변종들의 총망라.

대격변은 아예 캘리포니아를 끝내기로 마음을 먹기라도 했는지 검은색 토를 여실히 뱉어내었다.

- - - - - - -부우우우웅!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다. 놈들을 아예 시더빌이 닿을 수 없는 지역으로 데려가 목적도 생각도 없는 단 한 순간의 흩어짐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그대로 헬멧을 벗어 던지며 고개를 추켜들었고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을 맡겼다.

그러자 코끝을 강타하는 시체 썩은 내와 지진이 온 모랫바닥처럼 일렁이는 신경.

내가 나아가는 진행 방향에서도 또 하나의 블랙 라인이 몰려오고 있을 터이니 속도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나는 아까 오토바이에 보관해 두었던 유탄 발사기를 한 손에 쥐고 탄두를 재장전했다.

“까가가각-! 깍가각!!”

그리고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유탄 발사기가 장전되자, 오른쪽 평야에서는 발견된 일반 변종 중 제일 빨랐던 개체가 내 오토바이를 바짝 따라오고 있었다.

입에서는 철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고 네발로 바닥을 거침없이 뛰고 있는 회색 변종.

그런 놈의 숫자는 총 5마리였고 눈빛은 금방이라도 내 오토바이를 덮칠 듯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한 마리만 발견되어도 난리가 나는데 무려 다섯 마리라니.

오늘 이 종말이 나를 죽이기 위해 작정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속에서 끓고 있는 변종의 피는 그 위험 앞에 코웃음을 던지며 시간과 공간을 천천히 엿가락처럼 늘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그대로 발사기를 들어 올렸다.

퐁-!

쾅-!!!!!!!!

속도를 한순간 감속하고 양손으로 유탄 발사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놈들은 내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면서도 오토바이를 따라 급제동을 걸었고 검은색 침이 뚝뚝 떨어지는 아가리를 본능적으로 벌리며 내 목덜미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총구를 옮겨 쩌억 소리와 함께 벌린 놈의 아가리에 그대로 탄두를 박아 주었다.

몸체에 박는 것과는 다른 확실한 사살. 목구멍에 처박힌 유탄 탄두는 그대로 불꽃을 일으키며 터졌고 놈의 형체는 살점과 피보라로 변해 평야에 흩어진다.

그러자 다시 한번 거친 소리를 내는 엔진과 앞으로 솟구쳐 가는 오토바이. 놈들에게서 그대로 타이밍을 뺏은 나는 꼭 조롱하기라도 하듯 유유자적 피보라를 뚫고 지나갔고 놈들은 분노가 섞인 비명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 - - -후.”

하지만 놈들을 조롱하는 태연한 몸짓과는 반대로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왜냐하면 변종 떼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고 주 표적을 향한 놈들의 증오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격변이 터진 순간 생물학적인 이성조차 날아가 버려 두려움을 상실한 놈들의 육탄 공격, 거기다 오토바이에 연료는 한계가 있었고 나는 용써 봤자 블랙 라인이 즐비한 평야의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내가 위험하다는 판단이 선 순간 나는 평야 끝에 보이는 국유림을 향해 핸들을 꺾어 버렸고 2개로 출렁이는 블랙 라인을 이끌며 진정한 사지를 갈랐다.

“- - - - - - - -!!!”

피부가 찌르르 울리는 놈들의 공명.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서서히 변경되는 하나의 도트처럼 시야에 찍혔고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한계다. 이대로면 포위된다. 불과 50m 옆으로 놈들이 몸을 날리고 내가 지나간 궤적을 놈들이 그대로 밟았다.

분명 죽는다고 소리치는 본능이 내 속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속도를 올려 하나의 빛이 되고 하나의 선이 되고 하나의 발버둥이 된다.

바람의 저항, 공기의 저항, 두려움의 저항. 모든 저항을 이겨내며 내가 저항이 되자 품 안에 박은 신념을 연료 삼아 나를 불태운다.

50m, 40m, 30m. 양쪽에서 좁혀오는 블랙 라인이 지척까지 왔다.

그리고 다가온 존재감에 문득 고개를 들자 바로 앞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국유림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 - -!!!”

10m다. 선택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감각으로 인지가 가능한 공간 대부분은 전부 놈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본능은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려 나에게 선택할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놈들에게 둘러싸이지 않는 단 하나의 통로는 나만이 탈출구라고 말하며 웃고 있었고 그 앞에는 국유림의 시작인 작은 능선이 있었다.

이 속도로 저곳을 지나간다면 공중에서의 추락은 불 보듯 뻔한 상황. 그러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엑셀을 당기며 놈들의 증오에서 빠르게 빠져 나왔다.

옷깃으로 놈들의 손짓이 지나가고 바로 옆에서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이빨이 전시된다.

하나의 공간, 하나의 통로, 생존의 터널. 나는 능선으로 오토바이와 몸을 던지며 그대로 삶이라는 조류에 빠져들었다.

부아아아아앙-!!!

바퀴가 가속하고 오토바이가 능선을 뛰어넘는다.

그러자 오토바이와 내 몸은 한순간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어둠뿐이었던 허공을 갈랐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와 그 모든 것이 속해 있는 거대한 국유림. 정신을 차려 보니 먹구름 하나 없는 하늘이 지붕이 되어 있었고 그 하늘에는 별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런 하늘에서 떠오른 별 중 하나였다. 심장이 가라앉는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나를 잡기 위해 서로를 밟고 밟아 하늘로 향하는 탑을 쌓고 있는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별들이 투영되지 않는 회색 눈을 번쩍 뜨며 이리 내려오라고 다시는 날아오르지 못하게 날개를 꺾겠다고 괴음을 지르는 놈들.

하지만 그 안에서 빠져나온 나는 처음으로 느껴 본 해방감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핸들을 놓았다.

쾅-!!

주인을 잃은 오토바이는 틈이 없는 빽빽한 녹림의 바다 안으로 빠져 그대로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핸들을 놓은 나는 허공을 허우적거리면서도 초월한 신체와 정신을 이용해 최대한 신체의 무게 중심을 잡았고 사람들이 봤다면 미쳤다고 비명을 지를 도박을 감행했다.

착지할 것이다. 온몸에 충격을 분산시켜 무사히 착지해야 한다.

나에게 손을 벌리던 산은 어느새 무서운 녹림의 바다가 되었고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들은 파도와 같았다.

그리고 나는 물속으로 다이빙을 하듯 높고 거대한 숲으로 온몸을 내던졌다.

“- - - - - - - -!!!”

시야가 한순간 검은색으로 물든다. 하지만 청각은 다행히 살아 있는지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여러 가지 파괴음이 고막을 강타했다.

파스스스스, 나뭇잎이 맺힌 가지가 내 몸과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 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큰 가지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나를 끌어당기는 중력은 그마저 거부하며 온몸에 격통을 몰고 오게 했다.

떨어지고 있다. 제대로 착지해야 한다. 그러면 분명히 몸이 버터 줄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무게의 중심을 잡으며 눈을 뜨기 위해 애를 썼고 그 순간 온몸에 격통이 몰려왔다.

쿵-!!

“- - - - - - -!!”

내 몸이 인간이었다면 그대로 하반신 뼈가 박살이 나, 벌레처럼 꿈틀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변종으로 변한 몸은 저 높이에서 떨어진 나를 살려주었고 사라졌던 시야는 한순간 탁 트인다.

크고 작은 가지에 피부와 살이 찢겼는지 온몸에서 흐르는 피와 고통이 몰려오는 팔다리.

하지만 용케 놓지 않는 권총과 대검은 내 신념을 대변했으며 나는 고통을 감내할 찰나조차 허용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놈들의 시선을 국유림으로 향하게 했다. 그렇다는 것은 노인과 용팔이는 물론 시더빌은 블랙 라인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내가 해냈다. 온몸에는 충만함이 몰려왔고 피범벅이 된 얼굴에서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 - - - - 끄아아아아아아 - -!!!”

하지만 저 뒤에서 들려오는 수만 마리의 공명은 너와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대기를 찌르르 울렸다.

저 멀리서 꾸역꾸역 몸을 밀어 넣는 놈들에게 부서지는 나무가 보였고 녹림의 파도를 밀어내는 검은색 해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살리기에 성공했다면 이제 남은 것은 나 스스로 살아야 할 때.

나는 생각보다 본능을 앞세우며 앞을 향해 미친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건 생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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