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8
2부 85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들어오지 마세요!”
[이런 시발, 그냥 빠져 나와!]
광풍이 몰아친다. 어둠이 액체처럼 일렁였다.
하지만 나는 내 온몸을 옭아매는 모든 요소를 가볍게 파헤치며 권총을 파지하고 신경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빠르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가장 먼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노인에게 무전을 쳐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안쪽으로 들어오자마자 무언가를 키우는 사육장이라 생각했는데, 설마 그것이 변종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예상했어야 했다. 하지만 설마 그게 가능하겠냐는 안일함은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내고야 만 것이다.
좁은 공간과 어두운 내부. 내가 죽을 거라는 두려움은 없었지만, 노인이 이곳으로 들어오면 위험했다.
나는 금방 나갈 테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끝으로 무전을 종료했고 이내 한쪽 눈을 감으며 조준선을 정렬시켰다.
마른침이 목구멍을 살살 간지럽히고 환풍기의 그림자는 눈앞을 정신없이 어지럽힌다.
까드득, 까드득.
그리고 내가 발바닥을 소리 없이 끌며 뒤로 물러나자, 놈들이 토막을 친 인간고기를 입으로 가져가 식사를 시작하는 소리가 여과 없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닭의 연골을 씹어 삼키듯 뼈째 인육을 먹고 있는 변종 놈들. 그리고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놈들의 숫자가 한두 마리가 아닌 것을 직감했다.
발에 치이는 긴장감과 눈을 감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 뒤로 돌아 도망칠까? 아니, 본능은 이대로 서서히 물러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까드득, 까드득. 뼈가 잘게 잘게 부서지고 살 속에 스며든 피의 질척함이 어두운 창고 건물에 녹진하게 내려앉았다.
1초, 2초, 3초. 내가 들어온 환풍기까지 남은 거리는 스무 걸음. 시간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처럼 둥실거리며 허공에 떠올랐다.
착, 착, 착, 착.
그리고 환풍기까지 열다섯 걸음을 남긴 그 순간 소름 끼치는 포식 소리는 멈추고 하얀 팔이 빠져 나왔던 사각지대에서 피 웅덩이를 밟는 질척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참 정신없이 인육을 먹는 틈을 이용해 도망치려 했는데, 놈들은 처음부터 내가 들어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언제든지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숨을 크게 들이켰고 얼마 남지 않은 환풍구를 향해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비틀거리는 그림자들이 사각지대 앞에 들어서며 사육되고 있던 변종 놈들이 내 시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 -.”
그리고 나는 놈들과 마주한 순간 헛바람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보다 놈들의 숫자가 많아서였고 동시에 완전히 변이를 마치지 못한 놈들을 향한 안도였기 때문이다.
사육의 최종목표는 교주를 지키는 하얀색 변종이었는지 온몸이 하얀색 반점으로 얼룩져있는 놈들.
분명한 건 이놈들은 구덩이에서 생성된 것이 아닌 교주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다행히 완전히 진화되기 전에 만나 생명의 위험을 줄 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정말 많이 쳐봤자 종말 중반기 변종급.
왜 감각의 거미줄에 잡히지 않나 했더니, 그물망을 그냥 지나갈 만큼 작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 - -끽…. 끼긱? 끼이이, 끅. 끄그극.”
하지만 문제는 놈들의 존재가 아닌, 변종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실험체의 모습이었다.
이곳까지 잡혀 온 난민들은 변종의 사료로 사용됨과 동시에 변종으로 변이가 가능한 실험체로 쓰이고 있었는지 이들은 하얀색 반점이 가득한 외관에는 인간일 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바짝 마른 성인남녀부터 주름이 가득한 노년,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직 2차 성장도 시작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실험체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은 종말을 보여주는 단면 그 자체였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어두운 창고 공간과 먹이로 제공되는 인육.
그리고 우르르 몰려나온 변종화 실험체들은 피와 침이 끓는 소리를 기괴하게 내뱉으며 먼지가 탁하게 묻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
아마 이대로 몇 달만 더 있으면 교주가 데리고 다니는 하얀색 변종에 버금가는 결정체가 탄생할 것이다.
물론 피부로 느껴지는 증오와 그 속에 파묻힌 증오는 이들 중 몇 명이나 변종으로 완성이 될지 의문을 품게 했지만, 예상외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도 공포도 아닌 넋 놓고 서 있는 이들을 향한 연민이었다.
강제로 놈들에게 붙잡혀와 고통스러운 진화 과정을 감내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인육을 우둑우둑 씹어 먹어야 했을 이들.
나는 내 속에 생긴 변화를 통해 변종들에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그중 가장 슬픈 것은 이들 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인간성이었다.
‘죽여주세요.’ 그리고 내가 그들과 공유한 마지막 감정이었다.
“영감님, 저 안전해요. 이분들 보내드리고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망보고 있으마.]
내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차갑고 슬픈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들을 향한 연민에 이미 잔뜩 잠겨있는 목소리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아까까지만 해도 나오라고 소리치던 노인은 무언가 결심이 선 내 의중을 눈치챘는지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끊긴 무전과 조용히 홀더로 들어가는 권총.
혹시 빛이나 소리가 새어나갈까 나는 권총 대신 대검을 뽑아들며 조용히 오른손에 쥐었다.
실험체가 된 피해자의 숫자는 총 20명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 이미 이성이 사라진 상태였고 나는 눅눅한 창고 공기를 훅 들이키며 차마 하고 싶지 않았던 공격 자세를 살며시 잡았다.
그러자 주변 분위기는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 - - - - - -!!!”
마치 사냥감을 처음으로 마주한 듯 터트리는 어색한 적의.
이들은 내가 공격 자세를 잡자 한순간 몰려오는 변종의 본능에 화답하며 겨우 남아있던 한줄기 인간성을 모두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 저주받은 피가 보내오는 증오의 물결에 온몸을 던지며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고 조용하던 창고는 놈들이 흔들리는 움직임에 공명하여 부들부들 떨려왔다.
하지만 나는 피부가 짜릿짜릿 울리는 적의 앞에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곧 있으면 사라질 마지막 흔적을 두 눈으로 직시한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 입안에 고통과 착잡함이 몰려들었다.
“끄극-, 끄아아아아!!!!”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잠깐뿐인 상념조차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팔을 뻗어 마치 하얀색 파도처럼 몰려오기 시작한 그들.
나는 한순간 신경과 감각을 폭발시키며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렸고 어딘가 많이 부족하고 어색한 이들의 목숨을 하나둘 끊어내기 시작했다.
회피, 기술, 반격. 이 공간과 싸움에선 그 어떠한 단어도 어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눈앞에서 픽셀 단위로 쪼개지기 시작하는 전투의 광경은 원초적이고 파괴적이고 또 야만스러우며 짐승의 싸움처럼 단순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검은색 피는 마치 그들이 살아있었다는 증명처럼 생의 불꽃과 함께 한순간 타오르다 사라졌다.
“- - - - - -!!!”
만약 제3자가 이것을 보고 있다면 어둠 안에서 빠르게 불어오는 돌풍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습은 깊은 심연을 소리 없이 수영하는 것처럼 처절함을 내포하고 있었고 나와 적의를 터트리는 그들 앞에서 순식간에 이뤄지는 원초적인 싸움에 포화를 열었다.
위험을 감지하는 신경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움직이는 본능.
나는 이 살 거죽과 뼈를 씹어 먹기 위해 달려드는 놈들의 머리와 목뼈를 터트리며 끊임없이 대검을 뻗었고 얼굴에 튀기는 검은색 피에 아랑곳하지 않고 완전히 정신을 해방했다.
끔찍한 이빨을 벌리고 달려드는 놈의 머리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내 목을 물어뜯기 위해 이를 벌린 아가리에 그대로 대검을 쑤셔 넣는다.
부시고 자르고 찌르고 차고. 나는 소리 없는 고함을 끓어오르는 핏속에 내포하며 하얀색 놈들과 검은색 진창을 뒹굴었다.
본능에 이성을 감싼다. 그리고 교주를 향한 분노를 잠시 이쪽으로 돌리며 그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할 수 있게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 - - -끄그극.”
눈을 감고 뜨자,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또 눈을 감고 뜨자 두 마리가 죽어있었다.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내가 무슨 움직임으로 이들을 보내주고 있는지 인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며 나오는 번호처럼 사방에서 미친 듯이 달려드는 놈들의 숫자는 0으로 향하고 있었고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주변은 하얀색 고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폐부에서 올라오는 단내와 절망, 검은색 락카로 칠한 대검에는 검은색 피가 묻었고 내가 어둠인지 아니면 어둠이 나인지 모를 만큼 많은 피를 묻혔다.
이 공간에서 하얀 것은 그만 다른 곳으로 떠난 그들의 시체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닥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고개를 내리자, 골반이 박살 나 이쪽을 향해 기어오고 있는 어린 변종이 시야에 들어왔다.
“끼- - - 끽.”
다른 놈들을 베기 위해 휘두른 대검이 우연히 목을 스치고 지나갔는지 찢어진 성대에서는 기괴한 비명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동물처럼 낑낑거리면서도 혈관에 흐르는 검은색 피에 충실하게 반응하며 작디작은 이빨을 나에게 딱딱 다물었다.
작은 변종, 남자아이? 실험체. 그 어떤 단어를 입에 담아야 할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인간은 이렇게 만든 교주와 저 땅속에 불타오르고 있는 지옥이 너무나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본능을 따라 버둥거리는 아이의 목숨을 조용히 끊어주었다.
이 얼마나 건조한 움직임인가. 나는 어느덧 조용해진 창고 내부를 한번 훑어보고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는 이명을 지웠다.
그래, 어쩌면 나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기에는 이 모든 광경이 너무 무미하기만 했고 손안에 가득한 피마저 익숙했다.
대검 날을 타고 뚝뚝 흐르는 검은 피와 소매로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더러운 기분.
하지만 나는 마치 화장실을 다녀온 사람처럼 치솟아 오르는 모든 감정은 얼굴 뒤편으로 숨기며 뚜벅뚜벅 환풍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 - -.”
그리고 노인에게 돌아가기 위해 검은색 피와 땀이 줄줄 흐르는 눈가를 쓱 한번 닦아내는 순간 아까는 보지 못했던 곰 인형 하나가 철장 사이에 매달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곰 인형 뒤로는 철장을 빠져나가지 못해 전부 죽어버린 실패작들의 시체가 널려있었고 이제는 영원히 열리지 않을 쇠사슬 뒤에서 서서히 썩어가고 있는 타인의 이야기가 보였다.
하지만 저곳에서 죽었을 이름 모를 아이는 자신의 친구만은 그토록 나가기를 빌었던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는지, 마치 마지막을 준비하듯 귀엽게 달린 리본 장식과 정성스레 빗질이 되어있는 갈색 곰 인형을 철장에 매달아두었다.
그리고 나는 영혼마저 빠져나가지 못한 좁은 철장 사이에 아이가 매달아두었던 마지막 희망을 조용히 수거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교전이 멈춘 것을 눈치챈 노인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전을 보내왔다.
[생존자는?]
“……한 명 있어요.”
나는 이 현장에 유일한 생존자인 그것을 오른손에 꼭 잡은 채 저 앞에 하나뿐인 출구를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곰 인형이 너무나 무거웠다. 눅눅한 공기는 내 정신마저 오염시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불타오를 지옥도를 뒤로하고 발에 밟히는 미련과 절망, 그리고 죄책감마저 털어내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쾅-!!!!!!
요즘 폭발물을 챙기는 것이 버릇되었다.
하지만 그 버릇 덕분에 놈들의 기반시설 대부분은 불꽃에 휩싸인 채 타오르고 있었고 내가 빠져나온 건물은 화마에 휩싸여 서서히 재처럼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광신도 놈들의 시체가 쌓여있는 마약밭이 전부 타오르고 있는 것을 시야에 담으며 밤하늘만큼이나 어두운 낯빛을 조용히 되새김질했다.
이 착잡한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나 밟게 타오르고 있는 불꽃들.
나와 일행들을 불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광신도 놈들의 모습을 시야에 담으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주가 없어서 아쉽네.”
작전을 무사히 성공시킨 것 치고는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침체의 이유를 대략이나마 알고 있는 노인은 애써 밝게 말하며 아쉽다는 듯 교주의 팬티색을 거론했고 아까부터 눈치를 보고 있던 용팔이는 장난스레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광신도 놈들의 비명과 타오르는 마약밭.
아마 내일쯤 이곳으로 달려올 민병대원들은 무사히 레이크 시티를 탈환하고 이곳에 잡혀있을 난민들을 무사히 구출할 것이다.
그리고 노인의 농담에 애써 웃음을 머금은 나는 아까 챙겨왔던 곰 인형을 조용히 꺼내 들어 타오르고 있는 불꽃과 지나간 절망 위에 살며시 던져 넣었다.
“돌아가요.”
타오른다. 채연이와 일행들이 보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서 잠시 눈을 감고 싶었다.
나는 물로 대충 닦아낸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신의 친구에게 가고 있는 곰 인형에게서 시선을 뗐고 이내 뒤로 돌아 트럭을 주차 시켜둔 길을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 대답 없는 심장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이명.
그리고 돌아왔던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긴 우리는 서서히 새벽으로 들어가며 레이크 시티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