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
2부 84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우두둑.
지붕을 밟음과 동시에 2층 높이에서 거침없이 몸을 날린다.
그러자 횃불을 들고 사방을 살피고 있는 초병이 얼떨결에 고개를 올려 나와 눈을 마주쳤고 나는 중력의 부름에 착실하게 반응하며 놈의 몸 위로 가볍게 올라탔다.
우두둑, 한순간 박살이 나버리는 빗장뼈와 너무나 마치 연골처럼 끊어져 버리는 목뼈.
나는 핏자국조차 남기고 가지 않기 위해 대검 대신 팔을 뻗어 놈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그러자 한쪽 골목 어둠 속에 조용히 몸을 숨기고 있던 노인이 조용히 이쪽으로 걸어와 놈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하게 유기했다.
“뭐 느껴지냐?”
“일단은 없어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새끼, 진짜 팬티도 못 입고 도망쳤나?”
인간의 몸에서 벗어나 완전한 변종이 되고부터 적과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더욱더 진화했다.
그리고 그 능력의 범위는 이제 바닥에 지나가는 개미 하나하나마저 전부 집어내고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진화했고 덕분에 도시로 들어온 우리는 들킬 염려 없이 놈들을 보이는 족족 숨통을 끊어놓고 있었다.
훗날 시더빌의 민병대가 수월하게 도시를 공격할 수 있도록 지형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기 시작하는 우리.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한 교주와 하얀색 변종의 기척은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일단 더 접근해 봐요.”
하지만 기척이라는 요소에 한 번 속아본 적이 있는 나는 교주가 이곳에 없을 거라는 확신을 함부로 내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적어도 교주의 모습으로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닌 이상 섣부른 판단은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내 말에 동의를 보내온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소총을 들었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가며 눈앞에 탁 트여 보이는 레이크 시티의 모습을 시야에 가득 담았다.
놈들의 기반시설이 몰려있는 최후의 도시답게 크고 시끌벅적한 시가지의 모습.
적어도 해가 뜨기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하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와 노인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도시의 중앙으로 향했다.
“- - - - -끄윽!”
푹!
그리고 도시 중앙으로 접근할 때마다 점점 늘어나는 초병의 숫자에 우리는 굳이 피해가지 않고 하나하나 목뼈를 비틀거나 심장에 대검을 꽂아주었다.
물론 이동시간이 늘어난다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우리가 하나라도 더 처리해야지 민병대의 피해가 줄어들 거란 생각이 들자 그렇게 귀찮지만은 않았다.
죽이고 또 죽이고 시체를 치우는 과정이 수십 번 반복되고 우리는 손에 자욱하게 묻은 피를 닦을 틈도 없이 도시를 8자 모양으로 손쉽게 왕복했다.
그리고 더 이상 피해를 주면 발각될 거란 판단이 들자, 노인과 나는 지붕에 고양이처럼 안착하며 마약 밭에서 우리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용팔이에게 무전을 보냈다.
“용팔아?”
[- - - -네, 점화만 하면 이제 끝나요. 나오시게요?]
두 시간가량 우리의 무전만을 기다렸을 용팔이는 어딘가 지루해 보였다.
하지만 지루한 대기 시간에도 내가 내린 지시만큼은 완벽하게 해뒀는지 하품 섞인 대답에는 자신감이 묻어있었고 밤하늘에 별은 이 모습을 외면하기라도 하듯 어둠으로 적셔진 먹구름에 조용히 모습을 감춘다.
내부 지도도 완성하고 놈들의 주요 방어선도 전부 확인했겠다, 이제 교주의 위치만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분주했던 우리의 움직임과 반대로 교주의 기척은 여전히 느껴지지 않았고 유난히 화려하거나 경계가 삼엄한 건물도 없는 거로 보아 교주는 정말 이곳에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아쉽지만 놈들에게 발각되기 전에 복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20분 내로 돌아갈게. 후문에서 빠져나오면 연락할 테니까 바로….”
“동윤아.”
그리고 떠날 준비를 끝낸 나는 마약 밭에서 기다리고 있을 용팔이에게 다시 무전을 보내 우리가 후문을 빠져나오면 점화 장치를 당기라는 지시를 내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어깨를 잡고 심각한 목소리로 무전을 끊은 노인은 내려두었던 소총을 다시 들어 올렸고 나는 본능적으로 입을 꾹 다물며 무전기의 볼륨을 줄였다.
혹시 놈들한테 들키기라도 한 걸까?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노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내 어깨를 붙잡은 노인은 발각된 게 아니라는 듯 나에게 관심이 없었던 한 건물을 검지로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쪽에 사람 끌고 가는 거 보여?”
레이크 시티 곳곳에는 어둠을 밝히는 조명이나 횃불이 가득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도시는 밤치고는 그렇게 어둡지 않았고 건물 외관은 육안으로 봐도 판별이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노인이 가리키는 그 창고 건물은 조금 동떨어진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창고는 마치 다른 곳과 구분을 해두기라도 하듯 그 어떠한 조명과 횃불도 매달려있지 않았고 너무나 허름한 나무 재질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휙 하고 스쳐 지나갈 것처럼 허름했다.
하지만 노인은 짙은 어둠이 가라앉은 그 와중에도 포로로 잡은 난민들을 이끌고 허름한 창고 건물로 향하는 광신도 놈들을 발견해, 들어 올린 손가락으로 조용히 가리키고 있었다.
“……그냥 가둬두는 거 아니에요?”
노인이 발견한 것은 대략 5명의 광신도 놈들과 3~4명의 포로로 이루어진 작은 무리였다.
그리고 당연히 포로들은 두꺼운 밧줄에 묶인 채 질질 끌려가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데리고 창고 건물로 향하는 광신도 놈들은 전부 자동소총과 방탄복으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단순히 포로들을 감금하려는 목적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상황.
하지만 나는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그들을 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심각해 보이는 노인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내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노인은 조용히 배율 스코프에서 눈을 떼며 나에게 속삭였다.
“시체를 왜 가둬.”
“……네?”
“시체를 왜 가두냐고.”
시체를 감금한다. 동일 선상에 두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고 내 고개는 자연스럽게 포로를 끌고 가고 있는 놈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변종의 기운을 돋워 어둠을 꿰뚫어 본 나는 놈들이 기절한 포로를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챌 수 있었다.
마치 돼지고기를 대하듯 마디마디에 칼자국을 내어놓고 피를 쭉 뺀 모습.
하나의 생명이었던 인간은 누군가에게 주는 사료처럼 처참한 모습으로 바뀌어있었고 광신도 놈들은 아무런 표정이 없는 얼굴로 그 시체를 옮기고 있었다.
포로가 아닌 시체, 감금이 아닌 보관. 노인이 무전을 멈추게 하고 나를 부른 이유를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저기만 확인하고 돌아가자.”
“네.”
‘수상하다.’라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인간의 시체를 마치 고기처럼 손질하고 빛 한 점 없는 창고 건물로 향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온갖 불길한 추측들이 머리를 맴돌았지만,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 진실을 알 수 없다는 유혹이 우리의 마음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창고 건물만 확인하고 가자는 노인의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동의를 보내며 차가운 바람에 건조해진 입술을 조용히 핥았다.
모양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어둠 속에 숨어 마치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불안감.
변종의 본능은 저 창고 건물에 꼭 내가 꼭 봐야 하는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 * *
“뒤처리하고 갈게.”
창고 앞까지 도착한 노인은 내 귓가에 스쳐 지나가듯 속삭이며 창고 건물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광신도 놈들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정확히 역할을 분배한 나는 대답 대신 권총과 대검을 뽑아 들며 바닥에 잠시 가방을 내려놓았고 튼튼한 자물쇠로 잠겨있는 문대신 다른 입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노인이 걸어간 방향에서는 피가 끓는 소리와 함께 살갗을 가르는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나는 얼마 있지 않아 2층 높이에 존재하는 환풍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을 그렇게 숨겨두기에 창 하나 없는 건물을 지어둔 것인지, 나는 이 건물과 고기처럼 끌려가던 시체들을 향해 짙은 의문을 품으면서도 팔다리에 힘을 주며 환풍구를 향해 도약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 - - - -.”
그리고 단 한 번의 도약으로 2층 높이에 위치한 환풍구에 매달린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저 멀리서 전부 처리했다는 노인의 신호를 기다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어둠을 뚫고 들려온 작은 휘파람 소리.
나는 본능적으로 몸에 반동을 줘 낡다 못해 찌꺼기 같은 녹이 슨 환풍구를 그대로 발로 차며 안으로 진입했다.
발에 잔뜩 실린 힘과는 다르게 너무나 가벼운 몸동작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마치 체조선수처럼 허공을 가르며 창고 건물 안쪽에 광신도 놈들이 없다는 것을 자각했고 바닥에 착지해 중심을 잡자마자 퀴퀴한 곰팡내와 함께 마치 고름과 살이 한곳에 뭉쳐 썩어가는 냄새가 풍겨오는 것을 맡을 수 있었다.
[들어갔냐?]
“……둘러보고 갈게요, 잠시 대기하고 있으세요.”
변종의 시야를 가진 이상 손전등은 필요 없었다.
나는 무전을 보내오는 노인에게 짧게 대답하고 잠시 홀더에 넣어두었던 권총과 대검을 꺼내 각자 손에 한 개씩 쥐었다.
그리고 불쾌한 냄새와 분위기가 풀풀 풍겨오는 창고 내부를 정신없이 돌아보며 발밑에서 시작한 감각의 거미줄을 넓게 퍼트렸다.
마치 교도소처럼 넓은 창고 건물에 즐비한 철장들과 바닥에 고인 검은색 피 웅덩이.
빛 한 점 없는 내부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고 이쪽과 반대쪽에 달린 환풍기 한 대만이 희미한 달빛과 어둠을 교차하며 보여주며 이 침묵에 돌을 던질 뿐이었다.
그리고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권총을 들어 올린 나는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걸어갔다.
“- - - - - - -.”
건조한 바깥 공기와는 다르게, 내가 진입한 창고 내부 공기는 눅눅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먹색으로 이루어진 늪지에 발을 들인 이 기분, 나는 사방에서 보내오는 미지의 위험 앞에 모든 신경을 감각에 집중시키며 한 걸음 한걸음에 모든 신경을 모아 내었다.
그러자 엄지는 어느새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있었고 환풍구에서 들어오는 바람은 휘이잉 소리를 내며 내 귓가를 자극했다.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와 잠겨있는 철장마다 널려있는 정체 모를 것에 시체.
녹슨 철장에는 살 찌꺼기와 말라붙은 갈색 피들이 엉겨 붙어 있었고 저 앞에 보이는 먹이 구멍에는 광신도 놈들이 가지고 온 사체가 마치 사료처럼 달랑달랑 매달려있었다.
[- - - 뭔지 알겠냐?]
“……뭔가를 키우고 있어요.”
그리고 창고 건물을 반쯤 걸어갔을까, 나는 이곳이 무언가를 키우는 사육장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광신도 놈들은 자신들이 사육하고 있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는지 최대한 접촉하지 않으려는 구조로 이 장소를 만들었고 단 하나뿐인 먹이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인간고기를 제공하고 있었다.
인간의 고기를 먹이로 하는 생물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놈들과 변종밖에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발밑에서 시작된 감각의 거미줄은 무엇 하나 발견하지 못한 채 고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무전기가 울렸다.
[동윤아, 뭔가 느낌이 이상해. 그냥 나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강풍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잔잔한 호수도 아니었다.
이 기분은 마치 어린 시절 무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침대 밑과 마주한 연약한 공포였고 불안한 기분과 이상하리만큼 찜찜한 느낌은 연신 내 감각을 핥고 지나갔다.
방아쇠 위에 올라가 연신 움찔거리는 검지.
분명 시야와 감각은 이곳에 괴물 따위는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신과 신경을 초월한 제3의 생존본능은 당장 여기서 나가라고, 노인의 말을 들으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창고 문 앞까지 도착하기도 전에 권총을 내리며 무전에 답했다.
“금방 갈게요.”
이번 임무는 정찰이다. 단순히 수상함을 느껴 이 건물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모험하면서까지 미지의 정체를 알아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아까부터 나가라고 말하고 있는 본능은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나는 다시 엄지로 권총에 안전장치를 걸며 살며시 뒷걸음질 쳤다.
환풍기의 프로펠러가 돌 때마다 환해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창고 내부. 심장은 집으로 간다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권총을 부여잡은 손은 어느새 식은땀으로 촉촉하게 젖었다. 하지만 내 지시에 착실하게 따라준 몸은 어느새 돌아가 내가 들어왔던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겨주려고 했다.
끼이이익-.
들어왔던 방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나아가려는 방향에서는 소름을 동반한 광풍이 훅 불어왔고 나는 마치 온몸이 뜨는 것처럼 목덜미와 등판에 소름을 느껴야 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귓가를 간지럽히는 소리 한 점.
환풍기에는 프로펠러가 빠르게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내가 가려고 했던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에는 잔뜩 녹이 슨 철장 밖으로 살며시 빠져 나와 놈들이 토막 쳐놓은 사람의 팔을 조심스럽게 끌고 가는 하얀색 팔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내가 뒤돌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어두운 허공에서 튀어나온 하얀색 팔들.
나는 조용히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