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9
2부 66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빠르게 바뀌는 풍경과 더불어 미간을 찡그리게 만드는 탄내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검은색 연기가 솟아오르는 숲속으로 접근하면 할수록 느껴지는 수많은 기척은 내가 교전 현장에 제대로 찾아왔음을 말해주고 있었고 사방에서 일렁이는 화마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생존자들은 시시각각 일행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위협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지옥과 같은 숲에서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기며 채연이와 일행들을 찾기 위해 감각을 펼쳤다.
“- - - - - -!”
그리고 모든 오감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그 순간 교전 현장을 가로지르는 나에게 화답이라도 하듯 저 멀리서 용팔이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고함과 더불어 들려오는 섬뜩한 총성은 내 심장을 쿵 떨어지게 만들었고 위기 상황에 반응한 본능은 빨리 그곳으로 향하라고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반전하는 몸과 커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눈동자.
나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그곳을 향해 달려가며 허벅지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아빠…….’
들렸다. 분명히 들렸다! 나는 속삭임인지 아니면 마음속으로 품은 마지막 단말마인지 모를 딸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고 저곳에 용팔이와 채연이가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풀숲을 뛰쳐나오자 어깨에 총을 맞아 쓰러진 채연이와 20m도 되지 않는 곳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광신도 한 놈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순식간에 폭발하는 신경과 반사적으로 젖혀지는 오른쪽 손.
나는 절묘하게 엄폐물에 숨어있는 놈의 경동맥을 노려보며 순식간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섬광 같은 단검이 직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 - - - -컥!”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집어던진 단검이 채연이에게 총격을 가한 놈의 목에 처박히는 것이 손끝에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 여운을 만끽하기도 전에 바삐 손가락을 놀려, 오는 동안 다 사용한 빈 탄창을 권총에서 빼냈고 순식간에 새 탄창을 끼워 넣으며 장전을 끝냈다.
찰칵하고 되돌아오는 슬라이더의 묵직함, 폭발한 정신은 손아귀에 돌아오는 그 떨림 안에서 기쁨의 비명을 질렀고 나는 고개를 내려 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채연이를 마주했다.
그리고 동시에 몰려오는 놈들을 향해 권총을 들어 올리자 먹먹한 감정과 함께 안도의 파도가 감정을 적신다.
‘괜찮아, 다 괜찮아.’
어깨에 총을 맞았는지 흘러내리는 피를 부여잡고 있는 채연이는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혼란스러워하는 눈, 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를 향해 다 괜찮다고, 내가 왔으니 다 괜찮을 거라는 말을 속삭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눈물을 펑펑 쏟아 내리는 아이와 총성을 쏟아내는 총구.
나는 형체 없는 눈물을 흘리며 감각을 폭발시켰고 나와 아이를 해하려는 모든 요소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화마와 탄은 하나둘 놈들을 집어삼켜 재장전했던 탄창 하나가 금세 비워졌다.
“형님!”
그리고 한차례 감각의 폭풍이 주변을 휩쓸고 가자 저 멀리서 비틀비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용팔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온몸을 감싼 붕대와 창백한 얼굴이 현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지만, 나를 부르며 울먹이는 얼굴만큼은 변함없는 용팔이.
그래, 역시 살아있었구나. 나는 소매로 재와 피눈물이 묻은 얼굴을 쓱 닦으며 빈 탄창을 다시 한 번 빼냈다.
그러자 이곳까지 당도한 용팔이가 쓰러지듯 나에게 다가오며 채연이 앞에 털썩 주저앉았고 나는 그런 용팔이를 부축해주며 아직도 열기가 남아있는 진한 체온을 나눴다.
“……고생했다.”
“아…….”
말주변이 없어 이 짧은 한 문장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진심을 여실히 느낀 용팔이는 거칠게 기침을 하며 눈을 감았고 곧 후련함이 담겨있는 무거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나는 부축하고 있던 용팔이를 기운 내라는 말과 함께 일으키며 어느새 정신을 잃은 채연이에게 재빨리 다가가 눈물과 흙먼지가 가득한 얼굴을 소매로 닦아내며 끌어안았다.
왜 이런 곳에 혼자 떨어져 무모한 교전을 벌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까지 탓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 촉박하다.
울컥울컥 올라오는 눈물, 그러나 나는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일단 채연이의 어깨 상처를 붕대로 급히 지혈했고 동시에 놈들이 가지고 있는 자동소총 하나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이를 악문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용팔이에게 내가 입고 있던 점퍼로 감싼 채연이를 급히 넘기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저, 저기 중앙에…….”
“채연이 데리고 내 등만 보고 따라와.”
노인은 분명 먼저 출발한 나와 합류할 것이다.
하지만 능선으로 이루어진 구불구불한 산길을 빙 돌아오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 그전에 나머지 일행들과 합류해 이 포위망에서 버티는 것만이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다.
그리고 내 단호한 말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용팔이는 소총을 앞으로 매며 채연이를 등에 업었고 나는 탄띠와 소총을 챙겨 들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맡아지는 죽음의 냄새와 놈들의 광기는 예열되었던 내 심장을 미친 듯이 요동치게 했다.
“가자.”
놈들의 광기가 진정되기 전에 길을 뚫어야 한다.
나는 바닥에 즐비한 시체와 피 웅덩이를 밟으며 어깨에 총을 견착했고 용팔이는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내 뒤를 따라오며 채연이를 지키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다리에 힘을 주며 바닥을 박차자 화마와 바람이 일렁이는 주변 풍경이 빠르게 뒤바뀌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와 연신 경종을 울리는 신경. 나는 모든 감각을 사정권에 두며 나와 일행이 움직일 수 있는 통로를 천천히 개척했다.
조준, 발사. 조준, 발사. 조준……. 그리고 발사.
엄지는 단발과 점발사격의 조정간을 바삐 오갔고 나는 마치 기계처럼 앞으로 움직이며 우리를 인지한 녀석들만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물론 우리가 교전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지를 그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생존자가 놈들에게 죽거나 잡혀갔지만, 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떼며 길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다.
“형님!”
하지만 정신없이 돌아가는 감각의 걸림돌들은 내가 전부 인지하기에는 너무나 많고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용팔이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조금 무리해 움직이던 나는 결국 치명적인 빈틈 하나를 허용하고 말았는데, 사방을 정신없이 살피던 용팔이는 나보다 한발 앞서 숨이었던 광신도 한 놈을 발견했는지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하필 소총의 탄창을 교체하고 있었던 나는 빈 방아쇠를 누르다 말고 재빨리 권총을 뽑아 들었다.
탕탕탕탕탕-!
약에 잔뜩 취했는지 눈이 반쯤 돌아간 광신도 놈은 총이 아닌 생존자들의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마체테를 들고 용팔이를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재빨리 권총을 뽑아 든 나는 조준할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겨 권총 탄창의 반을 순식간에 비워버린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총알을 여섯 방이나 맞은 놈은 바닥에 쓰러지지 않았고 채연이를 온몸으로 보호하고 있는 용팔이를 덮치려고 했다.
“- - - - - -!”
그러나 놈의 움직임보다 용팔이의 앞을 가로막으며 몸을 날린 내 움직임이 한 발자국 더 빨랐다.
내려치려는 마체테를 개머리판으로 튕기고 그대로 태클을 걸어, 놈과 함께 바닥을 뒹군다.
그러자 놈이 입고 있는 성능 좋은 방탄복의 모습과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보통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완력과 두려움을 모르는 광기의 얼굴.
나는 종교와 마약에 취해 완전히 괴물이 돼버린 놈을 싸늘한 눈으로 마주했고 순식간에 다른 대검을 뽑아 들어 버둥거리는 목덜미를 그어버렸다.
“……퉤.”
그러자 분수처럼 터져 오르는 핏물이 이마와 얼굴에 튀어 올랐고 나는 그제야 움직임을 멈춘 놈에게서 재빨리 물러나며 입안에 들어온 핏물을 뱉어냈다.
뒤늦게 소총을 들어 올리려다 순식간에 놈을 죽여버린 나를 바라보며 안심하는 용팔이.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품에 안겨있는 채연이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체할 것 없다. 나는 용팔이를 향해 턱짓하며 잠시 멈춰있을 틈도 없이 일행들이 있는 방향으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탕, 탕!
탕탕탕!
“- - - - -후욱.”
그리고 펑펑 터지는 감각의 폭풍우 속에서 나는 마치 환각을 보기라도 하듯 무아지경의 공간 속으로 빠져들었다.
놈들보다 한발 빨리 인지하는 감각과 그곳을 향해 눈보다 먼저 총구를 돌리는 본능.
심장이나 머리에 총알이 박힌 광신도 놈들은 자신이 죽는다는 걸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바닥에 쓰러졌고 벌써 세 번째 탄창을 비운 나는 소총 삽입구에서 빈 탄창을 빼내며 깊은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며 따라오던 용팔이는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쪽이요!”
무참히 학살당하던 다른 생존자들과는 달리, 숲속 중앙에 결집한 우리 일행들은 쓰러진 나무와 바위들을 엄폐물 삼아 사방에서 달려드는 광신도 놈들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상대적으로 눈에 띄어 버티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 보였고 탄약마저 바닥나고 있는지 화망 곳곳에는 빈틈이 생기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불안한 얼굴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용팔이와 나의 얼굴을 보고 순식간에 반전되어버렸다.
“삼촌! 어? 어어? 단, 단체장님?”
가장 먼저 우리를 발견한 경욱이는 무사히 돌아온 삼촌을 울먹이는 얼굴로 부르며 엄폐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뒤따라 달려오는 나를 뒤늦게 발견했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입술을 뻐끔거렸고 시끄럽던 주변 총성은 순식간에 멈추며 시선은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흙먼지와 화약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쓸어내리며 눈을 껌뻑이는 군인들과 이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바닥에 주저앉는 아이들.
나는 힘겨운 시기를 잘 버텨준 일행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고 곧 미끄러지듯 엄폐물 안으로 들어가며 용팔이가 내미는 채연이를 받아들었다.
응전하는 것도 까먹은 채 나를 바라보는 일행들과 침묵이 감도는 주변 분위기.
하지만 나는 그 폭풍전야의 침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먹이는 일행들을 가로질러 한쪽 바닥에 조용히 누워있는 강수련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그녀 옆에 품에 안고 있던 채연이를 조용히 눕히고 너무나 무거웠던 무릎을 꿇으며 자세를 숙인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과 물기와 함께 파르르 떨리는 눈가. 나는 한쪽 손에는 거칠어진 강수련의 손을, 그리고 또 한 쪽 손에는 여리기만 한 채연이의 손을 잡고 가슴속에 품고 있던 단 한마디를 읊조렸다.
“……다녀왔어.”
여정과 낙오가 잠시 길었다.
그런데도 힘든 기간을 꿋꿋하게 견뎌준 내 가족이 너무나 고마우면서도 가슴에 사무칠 만큼 미안했다.
이들 앞에서 다시는 흘리지 않을 포기의 눈물과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각오.
차갑기만 했던 내 손은 두 사람의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졌고 녹아버린 촛불 위에 심은 다시 한 번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불꽃을 붙였다.
비록 화마가 득실거리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이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두렵지 않았다.
“클로에 병장, 치료 부탁드립니다.”
“y, yes, sir!!”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둘의 손을 살며시 놓아주며 유일한 의무병인 클로에 병장에게 치료를 부탁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뛰어온 클로에 병장은 허겁지겁 다가와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대답했고 주변에 서 있는 일행들은 덩달아 정신을 차리며 두려움으로 인해 흘러내렸던 눈물과 피를 얼굴에서 지워냈다.
1초, 2초, 3초.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크게 숨을 들이켠 나는 한쪽에 잠시 내려둔 소총의 노리쇠를 당기며 말했다.
“살아서 나갑시다.”
“- - - - - - - -!!”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사방으로 흩어졌던 톱니바퀴들은 갑자기 나타난 단 하나의 부품에 화답하며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거친 파도 위에 홀로 빛나는 등대는 방황하던 돛단배들은 집결시키며 생존의 돛을 펼치게 했다.
끓어오르는 생존의 열망이 녹아든다.
그리고 저 멀리서는 또다시 광신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지만, 놈들을 바라보는 일행들의 눈빛은 굳세기 그지없었다.
죽고 죽이고 죽는 생존경쟁이 다시 한 번 시작된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죽이려는 자와 살려는 자의 열망과 광기가 한 대 어우러져 비정한 현실에 모습을 연출했다.
“- - -탄창 - - -!!”
그리고 나 또한 그 거친 조류에 어김없이 몸을 던지며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일부가 되었다.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에 짓눌려 감각이 사라진 검지와 무엇이 조준선이지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분투의 연속.
눈이 뻑뻑했고 콧등을 타고 흘러내린 땀은 바닥 곳곳 고여있는 탄피들 사이에 떨어졌고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억겁의 시간과 소리 없는 비명은 터져 나오는 두려움 속에 파묻혔다.
“형님!”
그리고 대략 5분 정도가 지나자, 엄폐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황을 살피던 용팔이가 이쪽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와 한창 탄창을 교환하고 있는 나를 다급히 불렀다.
어딘가 조급해 보이는 용팔이의 모습과 확연하게 비어 보이는 탄띠.
곳곳에서는 탄약을 부르는 일행들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울려 퍼졌고 나는 결국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 대신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내가 가지고 있던 탄창을 전부 용팔이에게 넘겼다.
“가장 급한 쪽에다 먼저 가져다 줘.”
“네? 하지만…….”
“아직……. 아직 아니야.”
말하지 않아도 후퇴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모르는 도박에 나는 섣불리 후퇴를 지시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살아나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생존의 치킨런, 나는 금방이라도 부딪힐 듯 코앞에 다가온 죽음 앞에서 이를 악물며 마지막으로 주어진 탄창을 끼워 넣었고 용팔이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백병전을 준비했다.
올 것이다. 믿고 있다. 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나 느리게 흐르는 초시계에 맞춰 마지막 총알은 앞으로 흩뿌렸고 저 엄폐물 안쪽에 쓰러져있는 강수련과 채연이를 마지막으로 시야에 담았다. 그리고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하는 잔탄이 완전히 소모됨과 동시에 우리 측 진영에서는 귀신처럼 총소리가 그쳤고 토끼를 잡는 사냥에 반절이 죽어 나간 광신도 놈들은 엄폐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녹진한 분노를 터트렸다. 누군가의 목으로 넘어가는 마른침, 엄폐물 곳곳에서 조용히 백병전을 준비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 -부우우우웅 - -!
“?”
하지만 긴장이라는 잔잔한 호수 위에 예고 없이 날아든 파동은 조잡한 모든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이쪽으로 달려오다 말고 뒤쪽을 바라보는 광신도들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노크도 없이 찾아온 손님을 바라보는 생존자들.
저 멀리서는 불현듯 들려온 거친 엔진소리와 귀를 찢는 묵직한 총성은 이곳에 서 있는 모든 생명체의 가슴을 요동치게 했다.
그리고 한순간 지워져 버리는 광기와 저 멀리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 나뭇가지.
화마에 천천히 불타던 나무들은 진정한 불꽃의 등장에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고 피곤으로 인해 잠시 무뎌져 있던 내 감각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아, 나는 허공을 향해 침음성을 내뱉으며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반가운 손님에게 침묵의 인사를 보냈다.
투두두두두두두두-!
지옥의 숲속을 가로질러온 트럭이 성난 황소처럼 화마를 뚫고 나온다.
그러자 숨어있던 광신도 놈들은 엄폐물에 숨기도 전에 총알에 찢어지기 시작했고 제이콥은 미친 듯이 경적을 빵빵 울리며 자신들이 왔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리고 트럭 짐칸에 중기관총을 양손으로 잡은 채 담배를 문 노인은 우리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광신도 놈들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진짜 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주었다.
불을 뿜는 총구와 극적인 순간 찾아온 한판 뒤집기.
겁도 없이 우리 둥지로 들어온 놈들에게 새로운 천적의 등장을 알려줄 시기가 온 것을 직감한 나는 뽑아 든 대검과 함께 뛰쳐나가며 총알과 죽음이 빗발치는 두려움을 정면을 직시했다.
정제되지 않은 뜨거운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