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
2부 64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두 놈은 살려.”
우리가 부족한 화기를 노획하고 놈들의 입을 열어 본대의 움직임을 알아낸다.
정말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작전의 개요는 노인의 스쳐 지나가는 목소리에 섞여 내 귓속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숨만 붙어있으면 무조건 입 열게 만들겠다는 노인의 호언장담을 기억하며 모자로 가려진 시야 사이로 놈들의 모습을 담았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있는 대로 챙긴 투척용 날붙이들이 온몸에서 요란하게 덜그럭거렸고 콧구멍을 빠져나가는 날숨이 미약한 소리와 함께 훅 뱉어낸다.
숨을 죽이는 심장, 놈들의 천막 뭉치가 시야에 들어왔다.
“- - - - - - -.”
믿음이 투철한 놈들만을 골라온 본대답게 경계를 서는 인원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비교적 후방에 있는 보급기지임에도 불구하고 촘촘하게 경계를 서는 10명의 인원과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지는 천막의 무전기.
나는 그간 상대했던 광신도 놈들의 이미지를 머리에서 빠르게 갱신시키며 끓어오르는 피를 천천히 달랬다.
그리고 내가 풀숲에 몸을 숨기며 때를 기다리는 그 순간 내 근처에서 나무 사이를 빠르게 가로지르는 노인의 기척이 느껴졌다.
지금이다, 말하지 않아도 들리는 노인의 무언이 감각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사삭.
노인과 상의 끝에 놓고 온 소총은 움직임에 은밀함을 더해준다.
그리고 발을 디디는 바닥, 낙엽에 부스러지는 소리까지 신경을 쓰자 내 몸은 불어오는 잔바람처럼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귀를 어지럽히는 무전기의 잡음과 경계의 허점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경로가 눈앞에 그려진다.
그러자 나무 바로 앞에는 정면을 바라보며 경계를 서는 광신도 두 놈이 시야에 들어왔고 나와 노인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불구하고 짙은 나무들 때문에 자욱한 어둠.
나는 허벅지에서 대검을 살며시 뽑아 들었고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입술을 오므려 새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 - - - - - -.”
“- - -?”
노인이 낸 울음소리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이질감은 경계를 서고 있는 두 놈의 고개를 한순간 돌아가게 했고 나는 그대로 나무 뒤에서 빠져 나와 들고 있는 대검을 투척했다.
순식간에 힘이 실려 곡선이 아닌 직선을 그려내는 투척의 경로.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리느라 선명하게 보이는 놈들의 목덜미에는 대검이 꽂혔고 날은 목구멍에서 찌르르 올라오는 단말마를 막아낸다.
그러자 나머지 한 놈이 눈에 비현실이라는 의문을 담고 죽어버린 동료를 바라봤지만, 나와 합을 맞춘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달려가 나머지 한 놈을 처리했다.
두 놈이 쓰러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2초.
나는 놈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뛰쳐나갔고 이내 한 손으로 대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바닥에 웅덩이를 이루는 피를 자박자박 지나쳐 구멍이 뚫린 경계 한가운데를 노인과 가로지른다.
마치 대나무에 칼을 끼워 넣은 듯 순식간에 갈라지는 놈들의 경계.
노인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천막을 검지로 가리킨다.
“무전기부터 확보해.”
천막 안에 느껴지는 기척과 시끄러운 무전기 소리는 이들이 국유림에 흩어져있는 본대와 통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눈치챈 노인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며 나머지 경계 인원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아마 5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며 사라지는 노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나 여기 있소 라고 광고하는 천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 - -!”
마침 어딘가와 바쁘게 무전을 하고 있는지 큰 고함이 섞인 남성의 목소리가 천막 부근에 울려 퍼졌다.
그래선지 나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그 목소리에 묻혀 움직일 수 있었고 겸사겸사 공터 모닥불 누워 늦잠을 청하고 있는 간부와 광신도 두 놈의 목을 그어놓았다.
그리고 피와 단말마의 소음이 묻은 대검을 털어내며 바로 앞에 있는 천막 문을 살며시 옆으로 젖히자, 탁상 위에 놓여있는 무전기 앞에서 바삐 통신을 보내고 있는 광신도 한 놈이 시야에 들어왔다.
“- - - 이게 저희가 가진 마지막 물량입니다. 다 가져가면 다른 조는 어떡합니까?”
[너 이 새끼 담당 신도 누구야. 네가 지금 이게 얼마나 급한 일인지 모르는 거 같은데, 당장 가서 파묻어버리기 전에 탄약 보내.]
“잠, 잠시만요.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빨리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무전기 앞에 앉아있는 광신도는 조금 어리바리한 끼가 묻어나는 앳된 청년이었다.
저 모닥불 앞에서 잠이든 간부와 광신도 놈들을 대신해 무전기를 잡은 것 같은데, 무전기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거친 욕설에 별다른 대응조차 못 하며 어리바리한 꼴이 썩 우습다.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간부에게 물어보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놈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순간만을 기다렸던 나는 아까 피를 털어낸 대검의 손잡이를 한 바퀴 돌리며 앞으로 손을 뻗었다.
“어?”
꽈드득!
“끄으으- - - - - !”
급하게 달려오던 놈의 울대를 그대로 주먹으로 강타한다. 그리고 넘어지는 놈의 느릿한 모습을 지켜보며 바닥과 40도 각을 유치하고 정강이를 딱딱한 워커 발로 지르밟는다.
강한 힘이 실린 발과 살벌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박살나는 정강이뼈. 나는 비산하는 뼛조각들과 찢어지는 근섬유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며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찢어지는 비명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해 손안에 맴돌며 놈의 눈을 충혈되게 했다.
“움직이지 마.”
찌르르 울리는 감각 너머로 놈이 느끼는 고통이 여실히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질질 짜는 그 앳된 광신도에게 동정은커녕 싸늘한 분노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놈은 노인이 당부한 대로 본대의 움직임을 알아내기 위해 즉흥적으로 잡은 포로였다.
나는 그대로 자세를 숙이며 오른손에 들고 있는 날카로운 대검을 꺼내 들었고 놈은 본능적으로 온몸을 버둥거리다 싸늘함이 뚝뚝 떨어지는 내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 - - - - -.”
사방에서 경계를 서던 놈들의 기척들이 하나둘 사라짐을 느낀 나는 왼손 검지를 입술 위에 조용히 올리며 입 닥치고 있으라는 무언의 경고를 날렸다.
그리고 맨정신으로 뼈가 박살나는 고통을 느꼈음에도 정신을 잃지 않은 그 광신도는 눈물과 콧물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순조롭게 가자. 아마 놈은 타협 따위 없어 보이는 내 생각을 본능적으로 읽어낸 모양이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던 기척이 천막을 젖히며 들어왔다.
“한 놈 잡았냐? 잘했다, 개새끼들이 무슨 암시라도 걸어뒀는지 저번처럼 죽어버리더라.”
극단적인 종교의 믿음은 마약보다 맹목적이다.
거기다 놈들은 방법을 알 수 없는 모정의 암시까지 받았을 터이니 노인이 인질을 잡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광신도 무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은 애송이 하나를 운 좋게 잡을 수 있었고 노인은 너라도 잡아서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바닥에 침을 뱉으며 천막에 피 묻은 손을 닫는 노인은 내가 잡아둔 앳된 광신도 앞으로 다가가 어수룩한 영어로 말했다.
“네 친구 다 죽었다. 그러니까 우리 쉽게 가자.”
굉장히 단조롭고 기본적인 단어의 배열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진득하게 남아있는 검은색 소름은 어김없이 놈의 고막을 강타해 절망을 불러일으켰다.
남자 두 명이 대놓고 천막 안으로 들어왔지만, 지저귀는 새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는 주변.
우리의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마지막 포로는 눈물과 콧물을 짜며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놈의 눈동자에서 포기를 읽은 나는 입을 막고 있는 손을 천천히 떼며 물었다.
“본대가 쫓고 있는 생존자들 위치. 어디까지 파악했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너무나 한정적이다.
거기다 사방으로 흩어졌을 거라 예상되는 생존자들 사이에서 채연이네를 놈들보다 빨리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나는 이 앳되고 겁이 많은 광신도가 무언가를 알고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내 질문에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노인과 이쪽을 번갈아 본 광신도는 무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일부러 시간을 끈다고 생각한 노인이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꼬챙이를 들고 오자 놈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반사적으로 말했다.
“세, 세 무리로 나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두 개는 따라잡은 지 오래라 금방 잡을 거라고! 나중에 탄약 좀 보내……, 끄아아악!”
“곽동윤!”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악문 입에선 열이 끓어오른다. 그리고 놈의 입에선 터져 나오는 증언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밟고 있는 발에 힘을 더한다.
그러자 터져 나오는 끔찍한 비명과 옆에서 큰소리를 외치며 내 어깨를 부여잡는 노인.
그래, 그래 나도 알고 있다. 그 세 무리 중 두 개가 채연이네 캠프일 수도 있지만, 지금만큼은 냉정해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눈을 꾹 감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큰 심호흡과 함께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자 노인은 눈동자 속에 깊은 분노를 내포하며 놈에게 다시 묻는다.
“아이들이랑 부상자들이 있는 섞여 있는 무리가 있을 거야. 혹시 따라잡았다고 말한 집단 중에 그 무리도 포함되어 있나?”
나는 노인과 놈을 등지고 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놈들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는 무리가 채연이네가 아니기를 빌고 또 빌며 손바닥에 핏물이 잡힐 만큼 주먹을 꽉 쥔다.
마치 1시간처럼 느껴지는 1초와 내 눈치를 보는지 무겁게 가라앉는 심장.
하지만 나와 노인의 바람과는 다르게 공황 상태에 빠진 광신도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네 맞습니다! 그 3팀 조장님이 쉬운 것부터 다 잡고 가자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따라잡고 - - - 컥”
하지만 살기 위해 열변을 토해놓던 놈은 끝까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무섭게 눈을 부라린 노인이 가죽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그대로 놈의 얼굴을 후려갈겼기 때문이다.
인중과 입 사이에 그대로 꽂히는 주먹과 산산조각 으스러지는 이빨.
놈은 피가 섞인 신음을 컥컥 내뱉으며 온몸을 꿈틀거렸고 노인은 지체할 것 없이 재빨리 일어나 무전기 위에 놓여있는 놈들의 지도를 챙겨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준비를 끝낸 노인은 뒤돌아서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나를 빠른 걸음으로 스쳐 지나가며 한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읊조린다.
“……차에 시동 걸고 있으마.”
아직 안 늦었다. 지도 위에 표시된 방향까지 전속력으로 달리면 절대 늦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최대한 분노를 내포하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고 스쳐 지나가는 노인의 말에 담금질한 뜨거운 숨을 훅 내뱉는다.
분노, 증오, 들끓는 피.
이 모든 단어가 심장을 끓게 했지만, 훈련된 정신은 차가운 한기를 내포해 분노를 액화시켰다.
그리고 20초라는 아까운 시간 동안 분노를 잘 정제한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대검을 손에 쥐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하라는 대로만 했어요! 예? 들어온 지 3개월도 안 됐어요! 사람도 안 죽였고 마약도 한두 번만 했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앞니 대부분이 박살이 났지만, 놈은 살기 위해 구차한 변명을 내뱉으며 온몸을 버둥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 역겨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기어가기 시작 놈을 주시하며 자박자박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하는 변명대로 놈의 눈빛은 다른 광신도들과는 다르게 깨끗했으며 절대 지워지지 않은 양손에 피 냄새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미약했다.
그리고 자비로운 신과 사람이라면 용서해줄지 모를 만큼 절박한 고해성사는 마치 놈이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먹먹한 시야와 함께 동정을 유발했다.
서걱.
“- - - -컥.”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판별해야 하는 건 죄의 무게가 아니라, 지옥으로 떨어지는 단 한 번의 유죄라고.
* * *
- -쿵! 덜컹, 덜컹!
이를 악물고 핸들을 돌린 제이콥은 정말 아슬아슬하게 흙구덩이를 피해내며 목적지를 향해 트럭을 몰았다.
비포장도로에서 속력을 내야만 하는 위험천만한 질주였지만, 우리의 표정을 본 뒤로 군말 없이 액셀을 밟아준 제이콥.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핸들 위에는 손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진하게 묻어나왔고 지도위 목적지는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기와 탄약이 가득 쌓인 짐칸에 주저앉은 우리는 덜컹거리는 트럭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며 녹색 숲과 풀로 가득한 산들 사이를 정신없이 살펴보았다.
“……이런 식이면 늦어요.”
트럭을 몰고 있는 제이콥은 노인이 운전석을 안 뺐을 정도로 훌륭하게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트럭이 내려갈 수 있는 산길의 한계는 야속할 정도로 시간을 잡아먹었고 그렇다고 내려서 걷을 수 없다는 제한은 여전히 우리의 발목 붙잡고 있었다.
언제쯤 도착할까, 우리가 가고 있는 동안 과연 일행들이 무사할까? 모든 부정적인 생각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지만,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노인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지 조용히 이를 악물며 저 멀리 보이는 목적지를 향해 읊조릴 뿐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거야.”
무사할 것이 아니라, 무사해야 한다.
내 살갗이 찢어져 심장이 드러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일행들 옆에 도착해 위험에서 빠져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각오와 희망을 수십 번이고 담금질한 나는 시더빌의 노파가 준 단검을 꽉 쥐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순식간에 바뀌는 주변 풍경과 손끝에 느껴지는 깃털의 감촉. 모든 것이 나를 괴롭게 만들고 괴로움은 반대로 몸을 예열시켰다.
그리고 조급한 침묵이 이어지는 그 순간 보조석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던 릴리가 경악과 같은 탄성을 내뱉으며 내 정신을 일깨웠다.
“- - -아! 아아!”
릴리가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창문을 두드리자 눈을 꽉 감고 있던 나와 노인의 시야가 동시에 떠졌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매캐한 탄내와 온몸을 강타하는 짜릿한 신경.
나와 노인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려 한순간 탁 트여버린 산 아래를 내려봤고 그곳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 올라가는 한줄기의 연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끓어오르는 피와 미친 듯이 요동치는 심장.
나는 달리고 있는 짐칸에서 벌떡 일어나며 깜짝 놀라 백미러를 확인하는 제이콥에게 고함을 질렀다.
“차 멈춰요!”
끼이이익-!
내 찢어지는 고함에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은 제이콥으로 인해 트럭은 비포장도로 한가운데 거칠게 스키드를 남기며 멈춰 섰다.
그리고 나는 트럭이 멈추는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권총과 대검만을 챙긴 채 밖으로 몸을 날렸고 깜짝 놀란 노인은 그런 나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을 가뿐하게 피해내며 흙먼지가 일렁이는 바닥에 정확히 착지했다.
연기가 보이는 곳은 분명 가파른 경사가 존재하는 산 아래다.
직선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지만, 트럭을 타고 이동하려면 능선을 타고 빙 돌아가야 하는 게 분명한 상황.
그렇다고 낭떠러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 가파른 산 아래로 뛰어 들어가는 건 목숨이냐 아니면 시간이냐에 대한 양자택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에서 뛰어내려 내 아이와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을 그곳으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곽동윤!!!!!!!”
그리고 저 뒤에서 나를 잡으려고 했던 노인의 처절한 고함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피투성이인 나를 보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이제는 목숨을 걸지 말라고 거듭 말했던 노인.
하지만 그 약속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깨져버렸고 나는 미친 듯이 회오리치는 운명의 조류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심장이 뛴다. 숨이 화약이 된다.
그동안 심장 속에 심어두었던 것이 강철이였다면, 이 멀고 먼 여정을 혼자 걸어야 했던 지금은 펄펄 타오르는 쇳물이었다.
그리고 폭발의 도화선을 당긴 것은 분명 나 스스로였을 것이다.
여지가 없다, 나는 나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