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66화 (266/313)

# 266

2부 63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일주일이나 누워있었다.

아니, 어쩌면 일주일 밖에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온몸에 총알과 파편이 박힌 채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천운인지, 아니면 변종의 피가 주는 저주인지 모를 기적 덕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고통이라는 후유증이 남긴 했지만, 몸과 정신을 가다듬은 지금은 그 흔적마저 사라져 버린 지 오래, 나는 그간 잘 먹지 못해 허기진 속도 채우고 살아남아 다시 보게 된 노인과 제이콥 부부와의 회우도 충분히 나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저 멀리 북쪽으로 피난을 간 채연이네 캠프와 합류하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저렴한 트레킹 지도를 펼쳐보자 저 멀리서 총기를 손질하고 있던 노인이 기다렸다는 얼굴로 다가와 말했다.

“이 근방은 주변이 놈들 천지라, 선택지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거야.”

일주일간 편하게 쉬었던 사람은 나와는 달리 제이콥 가족과 노인은 정말 바쁘게 움직였었다.

온종일 내 옆에 붙어 상처를 소독하고 간호해주었던 릴리와 아이, 그리고 그런 릴리를 대신해 온갖 잡일과 보초까지 서준 제이콥은 다크써클이 맺히다 못해 볼 위까지 내려와 있었다.

하지만 가족의 고생도 노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는데, 오두막 곳곳에 널린 훈제 고기만을 봐도 부지런히 움직였을 노인의 고생이 엿보였다.

하지만 노인은 이 바쁜 와중에도 본질적인 목표를 잊지 않고 있었는지, 시간이 날 때마다 국유림을 돌아다니며 일행들의 흔적을 찾음과 동시에 어디로 갔을지에 대해 추측을 해놓은 지 오래였다.

“금방 따라잡겠네요.”

“그래, 다만 놈들이 문제지.”

노인의 말에 따르면 놈들에게 습격을 받은 생존자들이 우리 캠프에 합류한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느린 이동속도를 보아하니, 그중에 부상자나 노약자 다수 포함된 것 같았고 우리가 조금 빠르게 움직인다면 하루하고 반나절이면 충분히 합류가 가능한 거리였다.

하지만 노인의 말대로 문제는 역시 놈들이었다.

본격적인 확장을 시작하려는 것인지, 본대를 끌고 국유림 지역으로 이동한 교주는 그간 봐왔던 어중이떠중이랑은 차원이 다른 정예 광신도들과 준수한 화력을 앞세워 생존자 캠프가 모여있는 국유림을 화마에 휩싸이게 했다.

“총기는 못 챙겨왔죠?”

“내가 챙겨 나온 거 하나랑 원래 트럭에 있던 거 하나. 탄창은 각자 두 개가 끝이야.”

캠프 일행들과 합류하는 과정에서 놈들과의 교전은 피할 수 없는 난관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죽기 직전인 나를 급하게 데리고 도망치느라 노인은 교전현장에 널린 화기를 챙겨올 생각조차 못 했고 그나마 남아있는 총기도 탄약이 부족했다.

결국, 싸우기 위해선 놈들의 물자를 탈취하거나 해야 했는데, 놈들의 규모와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가 없으니 이 또한 어려웠다.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하는 머리와 눈치 없이 일렁이는 커튼.

그리고 모두가 머리를 잡고 고민하는 그 순간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던 노인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나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어디서 전화기를 구해왔던데. 시간 날 때 에덴에 연락이라도 주지 그러냐.”

아, 맞다. 상황이 이 지경이라 에덴에 주기적으로 보고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전화기는 고장 난 상태라 수신원이 끊긴 한국에서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터.

나는 생각이 난 김에 연락을 해보자는 생각에 꽁꽁 닫아두고 있던 커튼을 열어젖히고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긴 하품과 함께 벽난로 앞으로 다가가는 제이콥 가족과 지도를 펼치며 자리에 앉는 노인.

나는 그런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며 내 가방에서 꺼내온 위성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 번호를 입력하자, 다행히도 수신음이 들려왔다.

[- - - - - -달칵.]

“저녁 식사는 하셨습니까?”

저쪽에서 모르는 전화번호라 받지 않으면 어쩌나 우려했는데, 다행히 강 형사는 수신을 허용해주었다.

그리고 잠시 뒤 전화를 받았다는 작은 잡음과 함께 수화기에서는 사람이 내는 숨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나는 언제나 그렇듯 웃는 낯으로 안부를 건네며 통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반대편에선 잘 지냈냐는 대답이 아닌 남자 셋이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도 이쪽으로 고개를 돌릴 만큼 큰 잡음 소리,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귀를 찢는 잡음은 사라지고 숨을 크게 몰아쉰 강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윤 씨? 동윤 씨! 괜찮으십니까?]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왔습니다. 그쪽은 별일 없습니까?”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전화기 배터리가 너무 아까웠고 나는 가장 먼저 한국과 에덴의 상황, 그리고 수송기는 도대체 언제 올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자 입을 다물고 한참을 침묵하던 강 형사는 짙은 한숨과 함께 현재 상황을 조곤조곤 설명해주었고 나는 큰 동요 없이 메모지에 정보를 적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 - - - -.”

그리고 대략 10분간 이어진 대화 끝에 나는 우리의 체류 기간이 조금 길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옆에서 터져 나오는 노인의 한숨과 서서히 당겨오는 미간.

모든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정리한 나는 볼펜 뒤쪽으로 이마를 긁으며 물었다.

“정확한 이유가 뭐랍니까?”

[저희도 지금 정보가 부족해서 파악하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동윤 씨의 변종화 정보를 두고 덩치가 큰 두 집단이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자세한 내막을 알아내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 측에도 최대한 빨리 움직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까 봐 쉬쉬했던 나의 변종화를 미국 측에서 왜 다시 거론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원정팀의 구출이 급하다고 해서 목적을 모르는 그들에게 내 변종화 자료를 넘겨줄 수도 없는 상황.

당연히 내 신변을 우선시하는 한국 정부와 에덴은 저래도 위험하고 이래도 위험한 상황에서 무슨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행들의 빠른 귀국이냐, 아니면 내 신변의 안전이냐. 이 두 가지 무게가 바삐 움직이는 저울에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결코 우리의 편이 아니었다.

이번에 운이 좋아 목숨을 건졌지, 앞으로 또 어떤 위험이 들이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이번 고비를 통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나는 노인의 눈치를 조용히 보며 차라리 나 스스로가 위험해지는 게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차라리 그쪽에 자료를 넘기라는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강 형사는 내가 그 말을 할 줄 알았다는 듯 단호하게 말을 자르며 말했다.

[동윤 씨, 이번에는 에덴팀이 그쪽으로 갈 겁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시고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주십시오.]

강 형사는 미국의 관심을 피해 뉴욕에 편도로 도착할 수 있는 비행기 편을 알아놨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전력이 부족한 이쪽으로 에덴이 보낸 소수의 증원 병력이 올 수도 있다는 소리.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한 나는 자신과 동료들을 조금만 더 믿어달라고 말했던 강 형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전화기 밖으로 무언가 절박해 보이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를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폐부에서 올라오는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조금만 통화 한다는 게 벌써 20분이나 지났다.

나는 후끈후끈해진 위성전화기를 매만지며 다음에 또 전화하겠다는 말과 함께 정보를 빼곡하게 적어둔 메모지를 조용히 품속에 숨긴다.

그래, 비록 저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어딘가에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던 대화였다.

그리고 꼭 다시 연락하자는 말과 함께 강 형사는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에 무심코 전화기를 들었다.

“아! 깜빡할 뻔했네. 그 저번에 말한 광신도 있잖습니까? 그 교주랑 접촉했는데, 그놈 아무래도 인간이 아니라 변종인 것 같습니다.”

함부로 말했다가 미친놈 취급받을까 봐, 시더빌에선 꼭꼭 숨기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전부 내 편이고 변종을 민감하게 잡아내는 능력까지 신뢰하고 있으니 교주가 인간이 아닌 변종이란 진실을 꺼내도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고 평화로웠던 오두막 내부는 내가 생각 없이 던진 말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져 버린다.

숨소리 말고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 전화기와 총기를 손질하다 말고 이쪽을 보며 넋을 놓은 노인.

나는 순간 왜들 이러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조용히 뒤통수를 긁었다.

*       *       *

“너는 가끔가다, 이상한 타이밍에만 바보처럼 그러더라.”

어제 있었던 이야기로 밤새 나를 구박한 노인은 해가 뜨고 난 새벽에도 잔소리를 잊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왜 그리 태평하게 말하냐며 어이없어했던 노인.

그리고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았던 제이콥 부부마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고 나는 얼떨결에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있는 이곳보다 난리가 난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세계최초일지도 모르는 일급정보를 들은 강 형사와 에덴 전담팀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놀리는 것이냐며 말을 더듬던 강 형사와 누군가를 급하게 부르던 주위 사람들.

전화기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끊겨버렸고 나는 뭔가 잘못한 어린아이처럼 주변 눈치를 살폈었다.

그리고 잔소리와 꾸중이 함께 하는 밤이 지나가 버리고 지금은 해가 뜬 다음 날 새벽.

우리는 여명이 보이자마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바삐 떠날 채비를 했고 나와 노인 그리고 제이콥 가족은 아직도 기름이 많이 남아있는 트럭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인간을 연기하는 변종이 존재한다는 게 꽤 큰 충격이었는지 일행들은 트럭이 출발한 아직도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 부정당한 거 같은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채연이네의 흔적을 쫓아 하루라도 빨리 합류해야 하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전환할 리더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입을 열었다.

“제가 재밌는 이야기 하나…….”

“시끄러워.”

“……예.”

아니, 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시답지 않은 말을 꺼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흔든 노인은 짐칸에 조용히 앉아 내 말을 끊었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민망함에 저 멀리 보이는 산을 바라보며 뒤통수를 긁었다.

그러자 아까까지만 해도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던 노인 또한 어이없다는 웃음을 피식 터트리며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어울리지 않게 나선 보람이 있었는지 노인과 제이콥 가족의 분위기는 한결 풀려있었다.

힘든 여정이 예상되는 앞길과는 다르게 너무나 맑은 하늘.

그리고 트럭에 몸을 실은 우리는 일주일간 신세를 진 오두막 근처를 미련 없이 떠나 채연이네가 지나갔을 것으로 예상하는 국유림 외곽을 향해 바삐 핸들을 돌렸다.

*       *       *

“동윤아.”

놈들이 지나가는 큰길을 피해, 산과 연결되는 좁은 길을 수없이 넘었다.

하지만 흔적만 남아있을 뿐 보이지 않는 채연이네는 우리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고 시간은 덧없이 흘러 벌써 해가 중천에 뜬 오후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싸구려 트레킹 지도와 씨름하고 있는 사이, 트럭에 조용히 앉아 사방을 둘러보고 있던 노인이 나를 불렀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멈춰있는 트럭과 불안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제이콥 부부.

나는 순간 깜짝 놀라 지도를 가방 위에 내려놓으며 노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무슨 일은 아니고.”

적인가? 혹시 흔적으로 발견했나? 노인은 깜짝 놀라 자신을 쳐다보는 나에게 침착하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허투루 트럭을 멈춘 것은 아니었는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는 노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마른침을 삼키는 침묵.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노인의 검지를 따라 어딘가로 움직였고 검지가 가리키는 그곳에는 길 아래 급격한 경사가 보이는 낭떠러지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아래 800m 너머에 짙은 나무 때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공터가 시야에 들어오자 입 밖으로 삐져나온 혀는 나도 모르게 움직여 마른 입술을 핥았고 잠들어있던 심장은 쿵쿵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서둘러 차 시동을 끄는 제이콥과 나에게 장비와 소총을 건네며 모자를 눌러쓰는 노인.

차를 세운 이유를 뒤늦게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 아래 보이는 놈들의 보급기지를 주시했다.

일행들을 보호하는 데 필요했던 화기와 장비들,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공짜로 널려있는 선물들을 발견한 것이다.

노인은 피식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몸은 좀 어때.”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트럭 짐칸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잠들어있던 신경과 근육을 일깨우며 폐부에 잠들어있던 숨을 크게 내뱉었고 허리춤에 꽂혀있는 권총 손잡이에 손을 올려두었다.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까닥이는 손가락과 우두둑 소리를 내며 풀리는 목 근육.

나는 저 멀리서 불어오는 산 메아리의 바람을 귀에 담으며 신발 끈을 꽉 매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등대 없이 방황하고 있을 채연이와 일행들을 생각하며 조용히 읊조렸다.

“아주 좋아요.”

모자를 눌러쓰자 얼굴을 때리던 맞바람이 방향을 바꿔 내 등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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