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64화 (264/313)

# 264

2부 61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피부가 너무 차가워요…….”

제이콥은 피투성이가 된 곽동윤의 얼굴을 따뜻한 수건으로 닦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간 얼마나 많은 고난을 넘었는지, 얼굴과 몸에 가득한 흉터. 그리고 그 흉터 위에 남은 고통이 차마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또 다른 상처와 피는 그의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닦고 또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피는 그가 지고 있는 책임의 무게 같았고 책 속의 전설이라고만 생각했던 영웅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면의 어둠처럼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등대.

제이콥은 축축한 눈가를 쓱 닦으며 코를 삼켰다.

땡그랑-!

하지만 이를 악문 노인은 제이콥이 말을 걸거나 말거나 구슬땀을 뻘뻘 흘리며 곽동윤 몸에 박혀있는 총알을 빼내기 바빴다.

그리고 그사이 또 하나 빼내진 탄두 하나가 땡그랑 소리를 내며 양동이에 떨어졌고 옆에서 전전긍긍하던 릴리와 아이는 후다닥 달려와 상처 부위를 소독했다.

그러자 이미 멈춘 출혈과 더불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하는 상처 부위.

기적이라고 봐도 될 만큼 빠른 회복 속도였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의 얼굴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붕대가 감기는 것을 끝으로 노인은 제이콥에게 말했다.

“……덕분에 살렸다. 정말 고마워.”

수많은 고난과 장애물을 넘어온 노인조차 그 순간만큼은 곽동윤의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총으로 난도질당한 몸과 성한 구석이 없는 얼굴, 피는 이미 한계까지 흘러내려 바닥을 흠뻑 적셨고 아무리 말을 걸어도 눈을 감은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항시 굳건하고 포기를 모를 것 같은 남자가 드디어 사선의 끝에 도착해 죽음이라는 문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처음에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쉼 없이 그의 심장을 압박을 가하고 기도에 숨을 불어넣었지만, 비현실적인 현실은 바뀔 리가 없었다.

언젠가는 올지 모른다고 생각한 곽동윤의 죽음 앞에 노인은 처절하게 오열하며 상처투성이인 그를 끌어안았다.

‘잠, 잠시만요!’

하지만 모든 선행의 업보는 다시 되돌아오는 법이었다.

그간 곽동윤을 괴롭혔던 운명의 여신은 마치 이 죽음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저 멀리서 차를 타고 기다리던 부부의 핸들을 틀게 했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온 제이콥과 릴리는 기다리지 말라고 이곳을 떠나라는 곽동윤의 당부를 기억에서 지우며 피와 시체가 낭자한 현장으로 달려왔다.

물론 부부와 초면인 노인은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총을 겨누며 경계했지만, 응급 키트를 들고 울음을 터트리는 부부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금방 진실과 인과관계를 읽어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동아줄을 잡는 심정으로 옆으로 물러난 노인과 간호사 시절의 경험을 살려 응급 처치를 시작한 릴리.

한동안 긴장감과 절망이 감도는 시간이 지나고 응급 키트에 있는 에피네프린 주사가 허벅지에 꽂히는 것을 끝으로 정지했던 곽동윤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미약하지만 붙어있는 숨, 분명 콩닥콩닥 뛰고 있는 곽동윤의 심장 소리를 확인한 릴리와 노인은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자 혈관을 타고 순환한 변종의 피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제 역할을 하며 곽동윤의 총상을 빠르게 치료하기 하기 시작했고 노인과 제이콥 부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트럭에 태워 살육의 현장에서 재빨리 벗어났다.

그리고 20분가량은 미친 듯이 달려 트리니티 강 근처 외딴 숲속 오두막에 도착한 그들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트럭에서 내려 마치 산송장 같은 곽동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그렇게 자잘한 출혈을 잡고 정신없이 붕대를 감으며 이어진 죽음과의 사투.

다행히 느릿느릿 상처를 치료하던 변종의 피는 숙주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 기생충처럼 곽동윤의 목숨을 부여잡았고 방금 마지막 탄두 제거를 끝으로 모든 치료는 끝이 났다.

이제는 하늘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할 때, 서로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그대로 누워버린 제이콥이 읊조린다.

“……꼭 일어나실 거에요. 그렇죠?”

인간은 확신이 없을 때 질문을 한다.

그만큼 곽동윤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고 미약한 밧줄을 부여잡고 있는 심장은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죽지 않은 거라는 바람은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사방에 깔린 광신도 놈들과 국유림 외곽으로 쫓겨난 생존자들.

무엇하나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덧없이 흐르기만 하는 시간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제이콥이 떨리는 목소리로 던지는 물음에 힘없이 벽에 등을 기댄 노인은 벌써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강한 녀석이니까. 분명히 일어날 것이다. 노인은 먹먹해진 눈을 감으며 고된 숨을 훅 내뱉었다.

*       *       *

쾅-!

“연락이 끊긴 지 며칠째인지 아십니까? 당장 수송기 띄어야 합니다!”

미국 내 알 수 없는 고착 상황이 이어지고 결국 원정팀과의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한주 내내 수송기를 띄운다는 일념 하나로 전국을 돌아다닌 강 형사와 박대박은 결국 새로 지어진 국정원 건물로 쳐들어가 에덴 전담팀의 문을 강하게 열어젖혔다.

큰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과 당황하는 직원들.

하지만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온 강 형사와 박 대박은 ‘에덴 전담팀 과장.’이라는 직함이 놓여있는 책상 위로 원정팀이 보낸 정보가 빼곡하게 작성되어있는 서류를 강하게 내려놓았다.

그러자 에덴팀과 정부 사이에서 5년 동안 다리 역할을 해주었던 김 과장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수척해진 얼굴을 쓸어내린다.

“일단 진정하십시오, 나라고 보내고 싶지 않아서 이러겠습니까.”

미국에 일방적인 통보로 인해 하와이에 묶여버린 수송기.

고착 상황이 금방 풀릴 것이라 생각했던 에덴팀은 점점 지체되기 시작한 수송 작전에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에 은밀한 압박을 받기 시작한 한국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그리고 자신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김 과장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는 강 형사는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지, 책상 위에 묵직한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 이유나 좀 들어봅시다. 위에서 공문 내려온 거 다 알고 온 거니까, 저번처럼 딴소리했다가는 가만히 안 있을 거요.”

그래, 미국에서 연락 온 거 다 알고 왔다.

상황을 완벽히 판단하기 전까지 잠시 침묵하라는 지시를 들었던 김 과장.

하지만 그 정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에덴팀의 귀에 들어갔고 단호한 강 형사의 얼굴과 마주한 그는 담배 냄새가 섞인 짙은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편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직원들을 발견한 김 과장은 힘없이 손을 휘저으며 이만 퇴근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우르르 방안을 빠져나가는 직원들과 책상 위에 걸터앉은 조용히 눈을 부라리는 강 형사와 박대박.

김 과장은 조심스럽게 담배를 물며 서류 한 장을 책상 위에 던졌다.

“미국 펜타곤에서 못을 박았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주기 전까지 절대 허가 못 한다고요. 하지만 그 정보는 저희 측도 함부로 주기 힘든 거라, 일단 거절한 상태입니다.”

“……그 정보가 뭡니까?”

“곽동윤 단체장님의 변종화 기록이요.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곽동윤이라는 이름 석 자가 한국에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크단 말인가.

속된 말로 그가 만들어낸 여파는 사람 한 명의 몫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힘들었고 이 지역에서 에덴이라는 이름값은 인지도를 넘어 맹신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에덴 탈출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새롭게 들어선 정권은 서울 진격 내내 에덴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안전지대 성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이루어내었다.

비록 지금은 잠시 얼굴을 붉히며 싸우기는 하지만, 에덴과 전담팀은 서로가 아군이라는 사실은 절대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내듯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능글맞은 태도로 지체시키며 황급히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그, 진즉에 말해주지……. 사람 참 무안하게.”

“아니, 공문 받은 지 겨우 한 시간 지났습니다! 진짜 내가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그리고 전담팀을 오해했던 강 형사와 박대박은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고 참다 참다 결국 터져버린 김 과장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하지만 투정 어린 신경질은 잠시 벌어진 소동일 뿐, 이내 한숨을 내뱉으며 등받이에 기댄 김 과장은 힘없이 돌아가는 회전의자에 앉아 창밖에 보이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이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 밝게도 떠 있는 달. 그리고 그런 김 과장에 모습에 진정하고 자리에 앉은 강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유가 도대체 뭐랍니까? 그동안 별말 없었잖아요.”

인간의 변종화는 구덩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변종 놈들이 나오고 난 뒤로 완전히 관심이 끊긴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점점 구체적인 윤곽이 잡히기 시작하던 곽동윤의 변종화는 한국 정부와 에덴만이 가질 수 있는 정보 중 하나였고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정말 뜬금없이 곽동윤의 변종화 기록을 원한다는 요구와 함께 원정팀을 고립시켰다.

그리고 강 형사의 물음에 미간 주름을 검지로 긁은 김 과장은 한층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해주었다.

“저희도 모릅니다. 하지만 CIA가 움직였다는 첩보는 받았어요. 그것도 FBI랑요.”

CIA랑 FBI. 같은 미국 내 정보공동체 소속이지만, 그 둘은 업무 성격과 조직문화, 심지어 태생까지 다른 별개의 기관이었다.

그리고 그 두 집단은 여전히 옛날 버릇을 버리지 못한 채 묘한 대척점을 세우며 티격태격했고 격변이 터진 오늘날에도 눈치를 보며 서로의 실적을 비교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협력한다고? 박대박은 알 수 없는 곳에서 도사리는 불안감에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고 더불어 초조함을 느낀 강 형사는 김 과장에게 말했다.

“……빨리 빼내 와야 합니다. 아시잖습니까?”

부족한 정보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알아내지 못하고 있지만, 그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말없이 방관하고만 있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고 있는 강 형사는 가만히 앉아있는 김 과장을 재촉했고 담배를 뻑뻑 피우는 김 과장 또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견에 동의를 표한다.

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갈 수가 있었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꼬였겠는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한숨과 복잡한 얼굴로 밤하늘을 바라보는 박대박.

분명 저 하늘을 공유하고 있을 터인데, 연락 없는 원정팀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 사실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어? 정말요?”

“대신 걸리면 제 이름은 좀 빼주십시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이 바닥에서 수년을 굴러먹은 김 과장은 역시 다른 수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결코 공식적인 루트는 아닌지,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몸을 사렸고 과장의 자녀가 4명인 것을 알고 있는 강 형사와 박 대박은 알겠으니까, 말만 하라는 얼굴로 사사삭 모여들었다.

그러자 김 과장은 사방을 둘러보며 서랍 속에 숨겨둔 서류 한 장과 봉투 꾸러미를 그들에게 내민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대규모 구덩이 있잖습니까? 거기에 파견 갔던 미국 연구팀이 정확히 3일 뒤에 귀국합니다. 그게 그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비행기인데, 미국으로 가는 직항이에요. 그리고 그 팀이 연구결과가 아예 없다시피 해서, 언론의 관심도도 많이 떨어지고 미국에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상태입니다. 무슨 소리인 줄 알죠?”

척하면 척이다.

박대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과 노련한 솜씨로 책상 위에 올려진 서류와 봉투를 자기 쪽으로 가져갔고 김 과장은 못 본 척 아닌 척하며 서류가 들어있던 서랍에 실수인 척 조용히 커피를 쏟는다.

범인은 없지만, 목격자도 없는 완전범죄.

곽동윤과 일행들을 빼 올 수는 없어도, 자신들이 그곳으로 직접 가 한 몫 보탤 수 있다는 생각에 강 형사와 박대박에 손이 조용히 꿈틀거렸다.

“내일 조용히 오사카로 떠나서 엠마라는 여자를 만나세요. 미국에 귀화한 생물학 박사인데, 저희 집안사람이랑 아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차는…….”

띠리리리리리-!

아, 중요한 순간에.

은밀히 대화를 나누던 그 순간,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대화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리고 말문이 막힌 김 과장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던 박대박은 조급한 얼굴로 강 형사를 바라본다.

분명 그의 안주머니에서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 매너모드를 할 줄 모르는 강 형사는 머쓱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었고 앞주머니에 꽂아둔 전화기를 재빨리 꺼내 들었다.

그리고 강 형사가 나중에 전화를 주겠다는 생각과 함께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그 순간 가만히 있던 박대박이 비명과 함께 손을 뻗으며 그의 손을 움켜잡았다.

순간 정적이 감도는 사무실과 넋이 빠진 김 과장.

강 형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얼떨결에 정면을 바라봤고 자신이 들고 있는 것이 일반 전화기가 아닌, 위성전화기인 것을 뒤늦게 알아챈다.

그리고 화면 액정에는 처음 보는 번호가 찍혀있다는 걸 인지한 그들은 입을 떡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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