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
2부 60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내가 발사한 총알은 비열한 얼굴로 의자를 걷어찬 놈의 머리에 적중했고 몸은 통제권을 벗어난다.
아니, 내가 몸을 던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격하게 흘러가는 조류 앞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낭떠러지로 몸을 던진 나.
그것은 비정하기만 현실을 향한 절규였고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는 원망이었다.
언제까지 상실이라는 고통 앞에 두려워해야 하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이 비참한 진창에서 허우적거려야 하는가.
한계까지 몰린 내 입에선 설움과 분노를 담은 고함이 총성과 함께 터져 나왔고 바닥에 튀겨 사방으로 흩어지는 빗물에는 피가 뒤섞였다.
그러자 강철을 심었던 심장이 펑 하고 터져버리며 이성이 끊어진다.
탕, 탕, 탕, 탕.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또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토록 단순한 과정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눈앞에서 맞물린 시계추처럼 벌어진 결과만큼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미칠 듯이 뛰는 심장은 온몸에 피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내 시각은 느려진 시간을 충분히 인지한다.
방아쇠가 당겨진 연쇄작용은 황급히 총을 꺼내 들려는 놈들 이마에 붉은색 구멍을 찍어주었고 어찌 대처도 못 해볼 만큼 순식간에 일어난 일 앞에 놈들은 적이 있다는 생각만을 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탄창 하나를 순식간에 비웠다.
그리고 손의 연장선이었던 빈 탄창이 바닥에 떨어지는 그 순간 몸을 지배하고 있던 본능이 나를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타다다다다당-! 탕탕탕!
놈들의 총구에서 불꽃이 터져 나오기 직전 나는 눈앞에서 지나가는 총알의 궤적을 피해 엄폐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날아와 바닥과 바리케이드를 때리는 총알.
나는 찐득한 흙바닥을 뒹굴며 거친 숨과 함께 탄창을 교환했고 입으로 들어오는 흙탕물 끊임없이 내뱉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오는 떨림과 단 한 순간도 감을 수 없는 눈이 파르르 떨려왔다.
하지만 끊임없이 내리기 시작하는 장대비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내 얼굴을 때리며 등을 떠밀었다.
그래, 아직 안 끝났다.
완전히 검은색을 가리키는 생존 본능이 고개를 숙임과 동시에 나는 나뭇조각이 비산하는 허공을 조용히 가로질렀다.
엄폐물 밖으로 빠져나가자, 내 몸에 총알이 박혀 한줄기 피 안개가 터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 고통과 총을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몸은 총격을 무시하며 빠른 속도로 뛰어가게 해준다.
마치 다 타오르기 직전에 촛불처럼 쾅쾅쾅 뛰는 심장.
핏물은 빗물을 타고 빠르게 흘러내려 갔지만, 공간을 가르는 내 속도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먹구름이 만들어낸 비와 흐린 공간 속에 몸을 숨기며 서서히 놈들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이 자리에서 피를 전부 쏟아내 죽을지언정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놈은 없을 것이다.
“- - - -변, 변종이다!!!”
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몸, 피가 흘러내려도 줄어들지 않는 속도.
정신없이 총을 발사하던 광신도 놈 중 하나가 눈으로 좇을 수 없는 나의 신기루를 발견하고 그렇게 외쳤다.
변종이다. 누군가 생각 없이 외친 그 한줄기 문장.
하지만 그 한 문장이 가져다주는 여파는 순식간에 대기를 타고 퍼져나가며 적의와 증오로 물들었던 주변 분위기를 두려움으로 찌들게 만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장대비는 공포를 선사하고 옆 동료가 순식간에 죽어가는 광경은 당황을 가져온다.
그리고 나는 절대 구원받지 못할 지옥에 발을 들인 이후 처음으로 미쳐 날뛰던 변종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기다!”
“여, 여기 - - -아악!!”
비와 흐린 날씨, 그리고 두려움에 찌든 정신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하지만 그 혼란스럽기만 한 환경요소는 내가 미쳐 날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었고 뒤늦게 텐트와 바리케이드에서 뛰쳐나온 광신도들은 정렬되지 않은 대열 속에서 변종이라는 말만 듣고 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에 총을 맞아 나자빠지고 두려움으로 인해 박살 나버린 명령체계.
물론 그중에 내 몸에 명중하는 총알도 많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나는 놈들이 만든 보초 탑 위로 기어 올라가 광신도들이 모여 있는 무리 사이에 몸을 던졌다.
“어?”
삶을 포기하자, 용기가 아닌 체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 체념은 내가 뻗었던 그 어떤 날보다 날카로웠고 뜨겁게 달아올랐던 머리를 차갑게 식힌다.
그리고 보초 탑 위에서 몸을 날린 나는 광신도 무리 정중앙에 떨어졌다.
그러자 가속하던 몸은 한순간 진흙밭을 디디며 멈췄고 재수 없게 나를 발견한 한 젊은 광신도는 제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멍청한 탄성을 내뱉는다.
본능처럼 나를 향해 겨누려는 소총 총구, 하지만 나는 너무나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총구를 밀어내며 놈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대검을 뽑아 들었다.
콰득-!
경동맥에 날을 꽂아 넣는다는 게 너무 깊숙이 찔러 목뼈를 건드렸다.
살을 가르고 들어가 손끝에 걸리는 짜릿한 파괴음의 여운.
덕분에 놈은 마땅한 저항조차 못 하며 눈알을 뒤집었고 나는 쓰러지는 몸체를 끌어안으며 반대쪽 손에 들려있는 권총을 추켜들었다.
피범벅, 피투성이, 피 분수. 하늘에서 내린 장대비조차 붉은색 선혈을 씻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붉은색 실로 이루어진 세상과 마주했다.
느려진 시간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주변에서 멍청한 얼굴로 피 분수를 바라보던 놈들이 이쪽을 향해 소총을 발사한다.
하지만 나는 끌어안은 놈의 시체를 엄폐물 삼아 총알을 막으며 눈앞에서 움직이는 고깃덩어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 의식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것은 나에게 찾아온 죽음이 아닌, 삶을 연료 삼아 장작을 때는 마지막 신경의 블랙아웃이었다.
여기서 끝을 맺자. 총에 맞아 바닥에 구르고, 또 총에 맞아 다시 일어난다.
놈들이 혼란스럽게 뛰고, 또 뛰고 죽인 놈들을 엄폐물로 삼으며 검지 끝이 헐어라, 방아쇠를 당겼다.
마치 담금질을 하듯 차가운 비와 뜨거운 피를 번갈아 가며 뒤집어쓰는 나.
지금 흐르고 있는 것이 누구의 피이며 이 지옥은 누구의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변종의 피는 이 질긴 몸에 저주를 걸었고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어디야! 또 어디냐고!”
“도, 도망쳐!!!”
그리고 흐릿했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자, 그제야 청각이 다른 방향에서 들리는 총소리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내가 아닌, 공황상태에 빠진 놈들에게 가해지는 정확한 총격.
나는 붉게 물들어 보이지 않은 시야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총소리가 놈들에게 총을 뺏은 노인이 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닥에 즐비한 탄피와 놈들이 흘린 피와 살점이 넘친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놈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바닥에 피를 토해낸다.
“- - - -컥, 컥!”
반동이 밀려온다. 그것은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은 심연에 대한 벌이었고 내 물음에 오로지 응답해주었던 본능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검붉은 피, 나는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그 피를 한 손으로 틀어막으며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저 앞에서 도망치는 놈들에게 향하고 있는 적의를 꿀꺽 삼키며 덜덜 떨리는 권총을 부여잡는다.
못 간다, 여기서 도망 못 친다.
실처럼 일렁이는 주변 풍경에 비는 어느새 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저 뒤에서 다 쉬어빠진 절규와 함께 도망치는 두 놈의 등판이 팍팍 터져나간다.
탕, 탕-!
“동윤아!!!”
총알이 없었구나. 찰칵, 찰칵. 상황이 끝났지만 검지는 여전히 빈 방아쇠를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 몸은 놈들이 모두 죽기를 기다렸다는 듯 피와 흙으로 진창이 된 바닥에 처박혔고 저 뒤에서는 다시는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한 노인의 목소리와 들려왔다.
살아있었다, 그래 살아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피 묻은 투쟁이 정해준 운명을 또 찢어 내주었다.
온몸은 강타하는 탈력감과 마치 필라멘트가 터진 듯 보이지 않는 두 눈.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나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일어나야 하는데, 집에 가야 하는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행복과 감각이 사라지는 손끝.
눈에서는 핏물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렸고 나는 쓰러진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노인의 외침이 들렸던 곳을 향해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거친 발소리와 함께 이쪽으로 뛰어온 노인은 바닥을 긁는 내 손을 조용히 잡아주며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놈아, 집에 가야지…. 우리 집에 가야지…….”
집, 그래 집.
아이와 일행들이 기다리는 내 집.
노인의 목소리를 통해 집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자 본능에 꿈틀거리던 몸은 진정이 된다.
하지만 속이 답답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울먹이는 노인에게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열린 입에서는 아무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힘들다, 졸리다. 춥다. 모든 부정적인 감각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채연이가 보고 싶다. 강수련의 냄새가 그립다. 일행들과 나눠 먹던 음식이 다시 한 번 먹고 싶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의 투쟁이, 서서히 감기는 나의 눈꺼풀이 그리움이라는 비가 그치자 시나브로 다가왔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린 노인은 마치 이 참상을 보지 말라는 듯 내 눈을 손바닥으로 덮어준다.
세상은 너무나 어둡고 추웠다.
* * *
“도망쳐야 합니다!”
“부상자들은 어쩌고요!?”
“우리까지는 죽을 수는 없잖소!”
교주가 이끌고 쳐들어온 본대는 그간 국유림의 생존자들이 상대했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막강한 화력과 어디서 구했는지, 바닥을 보이지 않는 탄약.
비록 정규군은 아니더라도 맹목적인 신앙으로 만들어진 조직체계는 엉성한 이들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불과 이틀 만에 본거지를 버리고 도망친 각 마을의 생존자들은 한 외진 숲속까지 내몰린 채 숨을 죽였고 언제 올지 모르는 놈들을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다.
놈들에게 죽고 도망가 벌써 반 토막이 난 민병대 인원과 절망에 빠진 나머지 생존자들.
하지만 국유림 사람들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하는 그 순간에서도 각 마을의 대표로 참석한 이들은 언성을 높이며 싸우고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만을 데리고 도망쳐야 한다고 말하는 빅벤드 마을의 서장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고함을 지르는 던스뮤어 대학의 여학생회장.
나머지 소규모 집단의 대표들은 그 둘이 벌이는 고성에 끼어들 생각조차 못 하며 고개를 숙였고 늦은 밤까지 지속한 회의는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저 한쪽에서 웅크리고 있던 한 여군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병신새끼들.”
“뭐, 뭐?”
“클로에 병장, 그만!”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노골적인 욕설.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회의를 지켜보던 클로에 병장은 힘없이 고개를 들며 언성을 높이는 그들에게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올리버 중사가 다급히 클로에 병장을 막아보지만, 얼어붙는 천막 분위기는 되돌릴 수가 없을 만큼 싸늘하게 변해버린 지 오래였다.
모욕을 당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붉힌 빅벤드 서장과 앙칼진 입술을 악문 던스뮤어 대학의 여학생회장.
다른 생존자들은 어찌할 줄 몰라 눈치를 살폈지만, 클로에 병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말했다.
“영감님 없었으면 다 죽었을 새끼들이……. 뭐? 도망? 부끄러운 줄 알아, 이 병신새끼들아!”
“이, 이런 미친년이……!”
용팔이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자마자 시작된 광신도 놈들의 재침공.
그나마 버텨줄 거라 생각했던 빅벤드 마을은 순식간에 함락당했고 처음부터 전투력을 기대할 수 없었던 던스뮤어 대학은 전투를 치르기도 전에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패잔병처럼 쫓겨나온 그들이 향한 곳은 곽동윤이 있다고 알려진 국유림의 숲속 캠프.
하지만 정작 도착한 에덴에는 그들을 구원해줄 영웅이 아닌, 혼수상태에 빠진 용팔이와 홀로 그들을 지키고 있는 노인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든 해보마. 사람들을 모아 다오.’
하지만 침공 소식을 들은 노인은 곽동윤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결코, 생존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기도 전투 인원도 모자란 최악의 상황에서 노인은 어쩔 수 없이 도망친 생존자들을 모아 아이와 일행들을 보호하려고 했고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다.
하지만 국유림을 침공한 광신도 놈들은 그런 노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밤중에 캠프를 습격해 무장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시시각각 몰려오는 비정의 위협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노인은 곽동윤이 항상 그랬듯 홀로 산속으로 뛰어 들어가 일행들을 추격하는 놈들을 산 밖으로 유인해내기 이른다.
그리고 소식 불명, 최악의 결과가 남긴 것은 이 4마디 단어뿐이었다.
“- - -흑!”
“………….”
하지만 그 순간 높은 언성이 오가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천막 구석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처량한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그쪽을 향해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린 사람들은 천막 한쪽에 조용히 웅크려 앉아 울고 있는 채연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한순간 싸움을 멈추게 만두는 아이의 울음소리, 입은 꾹 다문 채 빅벤드 서장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클로에 병장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돌렸고 올리버 중사는 울고 있는 아이 앞에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채연아……. 응? 엄마 여기 있잖아.”
멋진 아빠 밑에서 꿋꿋하고 씩씩하게 자란 아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빠와 혼수상태의 삼촌.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이 해결해주겠다고 나선 할아버지는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절망이 희망을 잡아먹은 어둠뿐인 밤이다.
채연이는 이 모든 소란이 듣기 싫다는 듯 귀를 틀어막으며 웅크렸고 옆에 조용히 앉아있던 강수련은 깜짝 놀라 그런 아이를 끌어안는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과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고 나가는 서장.
이곳은 생존자 캠프가 아닌, 등대를 잃은 돛단배의 무덤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