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62화 (262/313)

# 262

2부 59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우두둑.

핏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목을 돌려 죽인다.

우리 트럭에 새겨진 가짜 광신도 문양을 보고 정지 없이 보내주던 다른 놈들과는 달리, 일일이 차를 세워 얼굴을 확인하려던 검문소 놈들, 그냥 보내줬으면 좋았을 것을 한순간 호기심 때문에 죽음을 자초했다.

나는 숨이 완전히 끊어져 축 늘어진 광신도 놈을 옆으로 던지고 장갑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낸다.

그러자 운전석에서 릴리와 아이를 보호하고 있던 제이콥이 천천히 차 문을 열고 나오며 나에게 물었다.

“……다친 곳은 없으시죠?”

“네, 괜찮습니다.”

불어오는 건조한 바람에 마른 입술을 핥자, 트럭 주변에 너부러진 시체 3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길 한복판에는 놈들이 임시로 설치한 바리케이드가 길을 막고 있었지만, 나와 제이콥은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한 듯 앞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검문소를 치워버린다.

벌써 3번째 지속하는 이 행위.

긴장감으로 주눅 들어 있던 부부도 계속되는 교전이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출발할 준비를 했다.

트럭 뒤 칸에 타자 기다렸다는 듯 걸리는 시동, 나는 손끝에 남은 여운을 털어내며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 - - - - -.”

광신도들에게 고통받던 주민들이 해방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더빌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트럭을 타고 1시간 30분가량을 정신없이 달리자 저 여명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던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해맑던 날씨는 중간중간 낀 먹구름에 어두컴컴하게 변했다.

오는 내내 중간마다 존재하는 검문 때문에 긴장을 놓을 수 없었지만, 광신도 놈들이 생각보다 허술해 정신없이 달린 우리는 드디어 중간 지점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후…….”

하지만 순조로운 출발과는 반대로 여전히 응답 없는 위성전화기는 내 기분을 한없이 가라앉게 했다.

앞으로 한두 시간이면 도착할 국유림, 그러나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과 위기를 맞이한 일행들의 안위는 현재 내 힘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일행들을 지키고 있었을 노인과 용팔이를 못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변종이었던 교주의 존재는 생각하면 할수록 막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닿을 듯 닿지 않는 문제와의 거리 앞에 나는 위성전화기를 힘없이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훅 내뱉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백미러를 통해 살펴보고 있던 제이콥은 핸들을 부여잡으며 무언가를 망설이다 나에게 말했다.

“그……. 분명 다들 무사할 겁니다.”

말재주가 없는 그답게 위로하는 투가 썩 어색하다.

하지만 서툰 위로 속에 담겨있는 진심을 알고 있는 나는 백미러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제이콥의 얼굴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고 덩달아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릴리에게 고개를 흔들어주었다.

그래, 무사했으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내가 잡을 수 있는 거리에만 있어도 여한이 없었다.

그래야 내가 한걸음으로 달려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손을 잡아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울적한 내 마음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먹구름 낀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       *

톡 토독.

서늘한 날씨에 비까지 오니 공기가 제법 쌀쌀하다.

나는 차갑게 식은 손에 입김을 불어 넣으며 옅은 비가 연신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것보다 큰비가 올 것이라고 경고라도 하듯 무섭게 일렁이는 먹구름과 콧잔등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

나는 쓰고 있는 우비를 동여매며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웅크린다.

그러자 아까부터 내 쪽을 힐끗힐끗 바라보던 제이콥은 뒷좌석 유리를 톡톡 두들기며 나에게 물었다.

“춥지 않으세요? 자리 바꿀까요?”

연료를 아끼기 위해 히터는 켜지 않았지만, 사방이 뚫린 짐칸보다는 상황이 앞 좌석이 상황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제이콥은 자기들만 비와 추위를 피해 미안했는지 아까부터 계속 자리를 바꿀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매번 괜찮다고 웃으며 그 제안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주변 경계와 대응을 하기 위해선 내가 뒷좌석에 타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 지점에서 검문 없이 달린 지 1시간이 지나, 우리는 국유림이 위치한 캘리포니아 북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검붉은 녹이 진득하니 묻어 힘없이 흔들리는 교통 표지판.

그것을 타오르는 눈으로 확인한 나는 조용히 노리쇠를 당겨 장전했고 긴장한 제이콥도 덩달아 침을 삼키며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처음 표시한 지역으로 가면 됩니까?”

“네, 근처에 내려주시고 숨어 계세요.”

릴리가 말을 되찾은 이후로 무언가 의욕적으로 변한 제이콥이다.

분명 정보 수집을 위해 캠프로 간다고 하면 자신도 돕겠다고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가 없으면 안 되는 릴리와 아이가 있는 이상 조사 활동은 나 혼자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대답에 무언가 말하려고 했던 제이콥은 이 대답이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패턴인 것을 깨닫고 금세 입을 다물어 버린다.

7마일, 6마일, 5마일. 트럭이 속력을 낼수록 표지판이 목적지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자 양옆으로는 드넓은 목초밭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리했던 광신도 놈들의 전진기지가 위치한 목초밭이었고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캠프가 있는 국유림의 초입이다.

나는 공격당한 게 분명했던 노인의 마지막 무전을 기억하며 모든 감각과 정신을 사방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조차 잡겠다는 듯 마치 음파처럼 흩어지는 감각의 조각.

휙휙 지나가는 풍경은 마치 사진의 한 조각처럼 뇌리에 박혀 들어갔고 소총을 잡은 손은 미세하게 떨려왔다.

타이어가 푹 젖은 콘크리트를 훑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 - - - - - - -?”

킁킁.

빗소리, 비 냄새, 끝없이 이어지는 목초밭.

마치 러닝머신을 달리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같은 공간에서 나는 점점 익숙함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미세한 탄내는 익숙함에 찌들어있던 감각에 소리 없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았다면 착각이라고 생각했을 그 탄내.

나는 머리에 쓰고 있던 우비를 조심스럽게 걷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제이콥에게 조금만 속도를 줄이라고 말했다.

“- - - - - -.”

그러자 엔진소리가 잦아들며 빗소리가 더욱더 커진다. 아까와는 다르게 장대비를 내던지며 일렁이는 먹구름과 중간중간 치기 시작하는 천둥소리. 저 하늘 구석에선 빛이 번쩍이고 주변은 짙은 장대비로 인해 마치 물안개가 끼기라도 하듯 흐릿하게 변하고 말았다. 하지만 나는 그 착각의 신기루 속에서 무언가를 태우는 역겨운 탄내와 닿을 듯 닿지 않는 형체들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트럭과 멀리 떨어진 곳에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감각이 곤 듯 서는 목덜미에 피부와 신경은 움찔거리고 내 고개는 자연스럽게 옆으로 돌아갔다.

“……제이콥, 차 세워요.”

“네?”

“길 아래에다 차 세우고 기다리고 계세요.”

내 고개가 돌아간 곳에는 짙은 장대비 사이에 초연하게 서 있는 전진기지의 잔해가 존재했다.

광신도 놈들을 다 죽이고 나서 더 이상 제구실하지 못하게 하려고 다 불태워버렸던 기억이 있는 그곳.

하지만 웬일인지 그 전진기지에는 파괴된 목조건물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든 천막들과 급조한 바리케이드가 있었다.

안에 누군가 있는지 흐릿한 광경 사이로 횃불로 보이는 빛이 스며 나오고 불빛 사이로 흐릿한 그림자가 보인다.

태워버렸던 전진기지에 다시 한 번 거점을 차린 자들.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전진기지를 재점거한 저들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아마 갑자기 내린 장대비가 아니었다면 진즉에 들켰을 상황에서 나는 멈춰진 트럭에서 내리며 제이콥에게 말했다.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으면 다시 시더빌로 돌아가세요. 절대 망설이지 말고.”

역시 채연이네 캠프는 광신도들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 맞았다.

어떻게, 도대체 무슨 수로 우리의 캠프를 찾아 공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버젓이 기지를 차리고 있는 놈들의 존재는 이 지역이 전쟁의 화마에 휩싸였다는 걸 대변해주고 있었다.

예상이 확신으로 변한 분노는 잠자고 있던 피를 들끓게 했다.

마치 비명을 지르듯 뛰는 심장과 덜덜 떨리는 손과 더불어 사무치는 고함을 지르고 싶었지만, 이 악문 울분은 현실을 되돌아보라고 속삭인다.

“………….”

차를 세운 제이콥은 저 멀리 보이는 전진기지와 심상치 않은 내 얼굴을 발견했는지, 조용히 입을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나는 사건 발생 후 정확히 반나절이 지난 것을 인지하며 저 앞에 보이는 전진기지를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고 유난히 눈에 띄는 우비를 벗어 던진다.

서서히 멀어지는 트럭과 장대비가 만들어낸 물의 신기루.

굵은 빗방울은 연신 얼굴을 때렸고 나는 마치 한 줄기 바람처럼 목초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소름이 끼치는 존재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교주는 이곳에 없다.

하지만 놈들의 본대가 움직였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듯 저 전진기지 안에서는 수많은 인간의 감각이 실처럼 꼬여있었다.

광기와 분노, 그리고 잃어버린 이성에서 오는 떨림이 대기를 타고 나에게 전해진다.

위험하다, 가지 마라. 죽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멈춰라.

생존본능으로 점철된 정신은 끝없이 속삭이고 진창 된 목초밭은 내 발목을 붙잡는다.

하지만 나는 물속에 허우적거리는 사람처럼 저 앞에 수면 위로 흔들리는 빛을 찾아 미친 듯이 팔을 뻗었다.

“후욱, 후욱.”

그 먼 거리를 순식간에 달려왔다.

나는 터질 듯이 타오르는 숨을 훅 내뱉으며 타오른 흔적이 짙게 남아있는 나무 울타리에 엎드렸다.

그리고 놈들이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바리케이드를 향해 조용히 시선을 던진다.

푹 젖은 몸과 머리.

하지만 나는 떨어지는 체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기척을 어김없이 펼치며 입안에 들어온 진득한 빗물을 퉤 뱉어낸다.

그러자 단내가 혀끝에 서리고 전진기지 내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태 보여주었던 허술한 모습과는 다르게 전진기지의 경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아마 미친 듯이 내리는 비와 자욱하게 끼기 시작한 실안개가 아니었다면, 근처에 접근조차 못 하고 총을 맞았으리라.

하지만 나는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철조망을 꾹 잡으며 바리케이드를 넘었다.

그리고 땅바닥에 바짝 자세를 숙여 조정간을 단발로 바꾸고 습기로 녹진하게 변한 숨을 훅 내뱉는다.

비와 함께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체온은 한없이 내려가 온몸을 떨리게 했지만, 가슴속에 뛰고 있는 내 심장만큼은 굳건하기 그지없었다.

워낙 정보가 적었기에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방황하는 것이 아닌, 얻어낸 정보를 유연히 사용하기 위한 침묵이었기에 나는 차근차근 하나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미친 듯이 뛰고는 심장을 달랜다.

그래, 일행들의 안위를 확인하기 위한 정보부터 모으자.

나는 그리 생각하며 천막 뒤에 진흙밭을 열심히 기었고 외곽에 있는 천막 근처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귀를 의심하는 환호성이 기지 중앙에서 들려왔다.

“- - - 와아-!!!!”

빗소리마저 뚫어내는 거대한 함성.

나는 광신도 놈들이 지르는 광기 어린 함성에 신경이 쭈뼛 서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얼떨결에 시선을 던진 소리의 진원지에서 밧줄에 묶여 끌려 나오는 사람 다섯과 그런 그들을 향해 돌과 오물들을 던지는 광신도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야만스럽고 더러운 광신도 놈들답게 마치 놀잇거리처럼 포로들에게 조롱을 던지는 놈들.

그리고 이 짧은 쇼에 마지막은 잔인한 처형인지, 공터 중앙에는 조잡한 나무와 밧줄로 만든 처형기구가 늘어져 있었다.

“죽여라!”

“이교도! 배교자! 죽여라!”

그리고 처형기구로 끌려가는 포로들을 향해 증오와 욕설을 내뱉는 광신도 놈들은 단 한 가지 외침, ‘죽여라.’를 외치며 그들에게 마지막 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운 좋게 죽지 않고 잡혀 온 다섯 명의 포로는 힘없이 처형대 앞으로 끌려가 빗물에 젖어 너무나 차가운 밧줄을 목에 건다.

놈들에게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지 붉은색으로 잔뜩 칠해진 처형대와 밧줄.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곳을 향해 자석처럼 이끌려가며 모든 감각과 신경을 처량하게 서 있는 포로를 향해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그 순간 내 입에선 풍선이 터지듯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

안돼, 안돼, 안돼! 귀를 가득 채우는 이명과 발작이라도 일어난 듯 떨리는 팔다리.

나는 지금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광경에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아래 힘든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눈앞이 하얗게 변한다. 피가 말라버린다.

머리는 어지럽고 굳건하기만 하던 정신은 핑핑 돌기 시작했다.

마치 끝없는 낭떠러지를 마주한 절망 앞에 나는 저항할 힘조차 뺏겨버리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이마에 떨어져 콧잔등을 타고 흐르는 빗물, 그리고 내 눈동자를 투영하는 그 빗물 사이에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목에 밧줄이 걸리는 노인이 있었다.

동윤아, 동윤아, 동윤아.

내가 잘못된 길로 빠지고 고통스러운 길로 들어갈 때면 언제나 내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잡아주던 노인이다.

언제나 곁에서 뒤를 지켜줄 것 같은 사람, 내가 다시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도와줄 것 같은 파트너.

하지만 그런 노인 저 광신도 놈들에게 잡혀 처형대 앞에 서 있었다.

꿈일까, 이게 정말 현실이 맞은 걸까. 모든 것이 믿기 힘들었다.

“- - - - - - -”

항상 굳건할 것 같던 노인의 얼굴은 멍들어있었고 비에 홀딱 맞은 백발은 처량했다.

하지만 얼굴에 달린 미소만큼은 모두를 살려서 여한이 없다는 듯 후련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그래……. 다 살렸구나. 내게 약속한 대로 다치는 사람 없이 전부 무사히 살려 대피시켰구나.

나는 힘없이 웃고 있는 노인의 얼굴을 통해 나머지 일행들이 무사히 도망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볼 위로 마치 눈물 같은 빗줄기가 떨어지고 나는 노인을 향해 뛰쳐나갔다.

‘놈들이……. 내 손녀를 잡아갔어.’

‘앞으로 얘가 대장이야, 알겠어?’

‘이제 괜찮아, 이제 그만해도 돼…….’

‘살아서 나가자, 동윤아.’

죽음의 순간이 다가온 것 같다.

눈앞에는 끊임없이 주마등이 스쳐 지나가고 언제나 바른길로 그리고 옳은 길로 이끌어줬던 노인의 말이 빗소리를 대신한다.

고마웠다, 같이하게 돼서 정말 행운이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준 노인에게 그 한마디조차 하지 못 해주었다.

뛰쳐나간다. 뛴다. 소총을 내팽개치고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경각에 달한 숨, 염산이 들어가기라도 한 듯 따끔거리는 심장.

제발, 제발 한 번만 더. 지금 이 순간 후회만 남은 죽음이 찾아올지라도 한 번만 더 나에게 기회를 다오.

덜컹-!

그리고 노인이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의자가, 비열한 웃음을 머금고 발을 놀린 광신도 놈으로 인해 떨어져 나간다.

팽팽해지는 밧줄과 노인의 목을 조여가기 시작하는 둥그런 밧줄.

저 뒤에선 죽음을 찾아온 검은색 사신이 인사를 건네고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검은색 오로라를 찰랑거렸다.

내 거리는 멀기만 했다. 이야기의 끝이 찾아온다. 동화가 아닌 현실에 죽음이 찾아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노인의 동공에 빗속을 뚫고 있는 내가 비친다.

그리고 나는 절규와 같은 비명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 - - - - - 아아아아!!!!!!!!!!”

분노, 증오, 살의, 뺏긴다는 두려움.

생에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검은색 분노가 억눌린 막을 찢어내고 터져 나온다.

그리고 가슴 속에 응축되어 있던 그것은 끓는 물속에서 쉴 새 없이 방울이 터지듯 내 심장을 멈추게 했다. 딱딱하게 경직되는 근육과 심연 속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듯 검게 변하는 시야.

절망의 그 순간 내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준 것은 신도 하늘도 아닌 웅크려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던 변종의 피였다.

“- - - - - - -”

정신과 몸이 통제를 벗어나 무의식으로 빨려 들어간다.

손은 어느새 허벅지에서 단검을 뽑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단검을 손에 쥐자 차갑게 식은 그립이 손에 잡힌다.

빠르다, 아니 더 빠르게. 시간은 느려지고 내 오른팔은 어느새 앞으로 뻗어있었다.

궤도, 속도, 거리, 방향, 모든 것을 계산한 머리가 비명을 지르고 동공은 터질 듯이 움직이며 허공을 꿰뚫는다.

완전한 무의식에 공간. 휙, 바람을 가르고 대기를 가르고 사선을 가르는 단검이 앞으로 날아간다.

서걱-!

변종의 귀에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미약한 노인의 숨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내 손을 떠난 단검은 숨결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던 사신의 목덜미를 끊고 정해진 운명마저 끊어버린다.

사르르, 날에 녹아 갈려버리는 팽팽한 밧줄.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리에선 분노의 폭죽이 터지고 노인이 살았다는 확신이 온몸을 강타한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인지하기 힘든 속도로 권총을 뽑아 들었고 눈앞에서 일렁이던 검은색 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다.

거친 비가 나를 씻어 내린다.

콧잔등에서 인간의 정수를 담아두었던 물방울이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나는 사르륵 한쪽 눈을 감으며 숨과 함께 총성을 뱉어냈다.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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