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2부 58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엔진이 거친 괴성을 지르자 순식간에 몸이 앞으로 쏠려 나간다.
나는 한 손으로는 트럭의 차체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총을 잡으며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시야에 담았다.
열심히 핸들을 돌리며 큰길로 빠져나가는 제이콥과 불안한 듯 아이를 꽉 끌어안는 릴리.
다행히 트럭은 평소 잘 정비해 두고 있었는지, 별문제 없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폭발음으로 시작된 도시의 혼란스러움은 마치 도미노가 넘어지듯 이곳저곳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 -탕- - -탕!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는 막 해가 뜨기 시작한 격변의 아침을 알려왔다. 그리고 집단의 공격을 받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던 초병과 광신도 놈들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알과 공격에 깜짝 놀라 허겁지겁 건물을 뛰쳐나온다.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과 함성.
지난 세월 터전을 잃었다는 분노와 허탈감을 삭이고 있던 시더빌의 주민들은 큰길 한가운데 울려 퍼지는 트럭의 엔진소리를 따라 거리를 뛰쳐나왔고 내가 들고 있는 무전기에선 쳰이라고 불리던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르신이 후문으로 달리시랍니다!]
도시 외곽과 중심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주민들의 공격은 마치 불개미가 나무를 좀먹듯 시더빌 이곳저곳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술집에 자빠져 잠을 자다 칼을 맞은 놈, 언제나처럼 음식을 강탈해 가다 식당 주인이 쏜 총에 맞아 죽는 놈, 거들먹거리며 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나타난 주민들에게 난도질당해 죽는 놈까지.
평화와 무저항에 취해 있던 놈들은 하루아침에 바뀐 주민들의 태도에 불벼락을 맞은 듯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이 순간만을 기다린 주민들은 그간 당했던 분노를 토해 내며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쨍그랑-! 화르륵!
놈들에게 강탈당했던 휘발유는 화염병이 되고 사람들을 짓누르던 광기의 징표는 자유라는 이름 앞에 불타오른다. 그리고 순식간에 격변하기 시작한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트럭은 마치 흑백과 컬러를 구분 짓는 꼭짓점이라도 되듯 큰길 한가운데를 질주한다.
시끄럽게 울리는 무전기는 이명이 되고 부르릉 떨리는 엔진은 생동감 있는 심장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시더빌을 죽은 도시라고 평가했던 과거를 조용히 반성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정신없이 달리는 풍경만을 바라보던 내 시야로 섬광과 같은 뇌리가 내리꽂혔다.
“엎드려요!”
끼이이익-!!!
곱게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예상에 충실히 대답해 준 위험에 제이콥은 쥐고 있는 핸들을 급격하게 옆으로 틀었다.
트럭을 향해 날아와 연신 차체를 때리는 총알과 거친 소음을 유발하며 사방을 튀는 불똥.
제이콥 부부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고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트럭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소총을 들어 올린 나는 저 앞에서 트럭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광신도 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타타당-! 탕탕탕!!
이대로 넋 놓고 있다간 트럭이 걸레짝으로 변할 것이다.
나는 시시각각 목숨을 위협해 오는 총알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며 방아쇠를 당겼고 대기를 찢어발기는 난사가 엄폐물 하나 없는 놈들의 몸을 관통했다.
중심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핸들을 꺾는 제이콥과 아이를 꼭 끌어안는 릴리의 모습이 느리게 보이고 사방으로 흩날리는 유리조각과 탄피는 그 공간에 배경을 이룬다.
총알이 파고들자 허공에 뿜어지는 붉은색 안개.
제이콥은 더는 총알이 날아오지 않자 침착하게 트럭의 중심을 잡으며 액셀을 밟았다.
[괜찮습니까?! 저희도 그쪽으로 가는 중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죽지 않았으니 괜찮은 게 맞을 것이다. 나는 하도 힘을 주느라 후들거리는 다리와 허리를 움켜잡으며 앓는 소리를 냈고 어느새 비워진 탄창을 망설임 없이 뽑아 허공에 던진다.
이 길을 그대로 따라 2분만 달리면 보일 후문.
노파의 일가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리는 우리를 엄호하기 위해 이쪽으로 전진하고 있었고 사방에선 검은색 연기와 함께 주민들과 광신도들이 벌이는 소규모 교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 -막아!
그간 놈들의 감시를 피해 하나둘 숨겨 놓기라도 했는지, 주민들은 각양각색의 총을 들고 광신도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산탄총과 동물을 잡을 때 사용하는 소구경 총으로는 제대로 무장하고 있는 놈들의 화력을 이겨내기 힘들었기에 주민들은 어찌어찌 숫자로 밀어붙이며 아슬아슬한 양상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만 볼 수 없었던 나는 마치 소총을 기관총처럼 거치시키듯 차 머리 위에 올려 두며 달리는 트럭 위에서 엄호를 자처했다.
“- - - - - - -!”
워낙 빠르게 달리는 트럭이었기에 조준 사격할 짬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빗자루로 먼지를 훑어내듯 놈들이 보이는 족족 총알을 흩뿌렸고 들끓고 있는 변종의 피는 대책 없는 난사를 보정해 주며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보탰다.
얼굴에 피와 먼지를 묻혀 가며 트럭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들과 빠르게 후문으로 접근하는 트럭. 그리고 잠시 뒤 저 멀리 검은색 연기를 뿜으며 타오르는 후문이 모습의 시야에 들어오자 무전기 너머로 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쳰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쪽에서도 보입니다.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조금만 천 - - -어? 어어!? 피해!!]
“쳰씨? 쳰씨, 무슨 일 있습니까?”
하지만 무전을 보내던 쳰은 무언가에 공격을 받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큰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무전기 너머에선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과 함께 뼈가 깎기는 것 같은 묵직한 총성이 울려 퍼졌고 나는 그것이 중기관총에서 터져 나오는 총성인 것을 빠르게 눈치챌 수가 있었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점이 터져 나가고 사람이 분쇄되는 보병의 악몽.
이쪽으로 접근하는 일가 사람들은 본대가 가져갔다고 생각한 기관총을 마주한 것이다.
“동, 동윤 씨! 어쩔까요?”
제이콥은 겁먹고 있는 릴리와 아이를 좌석 밑으로 숨기며 나에게 다급히 물었다.
후문까지 쭉 뚫려 있는 도로와 반쯤 타버려 들이박기만 해도 박살 날 것 같은 허술한 바리케이드.
이대로 속도를 낸다면 무사히 도시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쳰이 보낸 마지막 무전을 엿들은 제이콥은 어정쩡한 속도를 유지하며 내 얼굴을 살폈고 귀를 기울일수록 느껴지는 묵직한 중기관총의 총성에 몸을 흠칫한다.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가 사람들이 공격을 받고 있다. 귀를 어지럽히는 이명의 연속과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간지럽히는 붉은 피, 탈출구를 마주한 내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차 돌려요!”
이렇게 나 혼자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적어도 놈들이 화력이 존재하는 진지를 기점으로 뭉치기 전에 단독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진형을 흩트려놔야 했다.
그리고 내 단호한 목소리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크게 대답한 제이콥은 거침없이 핸들을 꺾으며 우리가 돌아왔던 길을 다시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코를 찌르는 탄내와 화약 냄새가 머리를 어지럽힌다.
나는 트럭 짐칸에 잔뜩 굴러다니는 탄피들 사이에 털썩 주저앉으며 조금 일찍 사용하게 된 장비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그리고 총알이 가득한 탄창을 총에 끼워 넣음과 동시에 저 멀리서 교회 첨탑에서 끊임없이 총알의 궤적을 쏟아 내는 기관총 사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젠장!”
그리고 나는 사수를 발견하자마자 소총을 견착해 재빨리 총을 발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첨탑의 위치가 워낙 높고 사방을 막은 모래주머니 때문에 사격을 가할 수 있는 각이 나오지 않았다.
허술한 병신들이라 생각했던 광신도 놈 중 하나가 나에게 한 번 당하고 나서 제대로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트럭에 실어 둔 장비를 최소한만 챙기며 불안해하는 제이콥 부부에게 소리쳤다.
“저 내려 주고 안전한 곳으로 잠시 피해 있으세요!”
교회 첨탑까지는 차가 갈 수 없는 골목 천지다. 그리고 나는 좌석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릴리를 생각해서라도 제이콥에게 다른 곳으로 가 있으라 일렀고 제이콥도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흔들리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 깨져 떨어진 차 유리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 나는 그대로 트럭 밖으로 뛰어내리며 격전지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 - 두두두두두 두-!
중기관총은 미국이 군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버전보다는 살짝 전의 단계 같았지만, 그 살벌한 위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소총과 궤를 달리하는 유효사거리와 벽 정도는 가볍게 뚫어 버리는 관통력.
더군다나 교회 첨탑이라는 높은 곳에 거치된 중기관총은 도시에서 시가전으로 벌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소수의 광신도는 서서히 화망을 구사하며 첨탑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습격의 이점이 서서히 흐릿해지고 있다. 기관총 사수가 가하는 공격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한 주민들과 이미 바닥에 피를 뿌리며 쓰러져 있는 시체들.
힘들더라도 탈환이 가능할 거라는 희망이 놈들이 숨겨 놓은 무기 하나 때문에 박살 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내 심장은 바닥에 흩어진 그 조각들을 모으며 첨탑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 다리 근육에 모든 힘을 모아 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뀌는 풍경과 무호흡의 공간. 모든 시야가 픽셀 단위로 찢어지기 시작했고 변종의 감각은 첨탑 위에서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는 두 명의 사수를 인지해 낸다.
“- - - - -.”
몸이 이끄는 대로, 본능이 신호하는 방향으로.
나는 무거운 소총을 짚들이 쌓여 있는 통을 향해 던지고 노파가 대검 대신 사용하라고 준 예리한 단검을 뽑아 들었다.
물론 내가 사용하던 군용 대검보다 날이 작지만, 갈고 또 갈았을 노파의 단검은 그동안 참고 있던 울분과 분노를 내포하는 것만 같았다.
마치 주인을 화답하는 개처럼 손에 착 집히는 느낌과 줄었다, 늘어나기를 반복하는 동공.
다시 한 번 끓어오른 변종의 피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골목을 가로질렀다.
“뭐, 뭐……! 컥!”
한 놈, 한 놈, 한 놈, 또 한 놈. 중기관총이 등장하자 좋다고 첨탑 쪽으로 몰려오는 놈들의 몸을 움켜잡고 울대에 단검을 찔러 넣는다.
나에게 총을 겨누다 자신이 죽었는지도 모른 채 넘어지는 놈과 나를 향해 변종이라 외치며 자빠지는 놈.
눈앞에 안개를 이루는 피 분수는 서서히 나를 예열시켰고 느려진 회색으로 이루어진 담의 숲속에서 놈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갔다. 그리고 내 손과 얼굴이 새빨간 피로 물들 때쯤 나는 어느새 교회 건물을 오르고 있었다.
일부로 총소리를 내지 않고 모여드는 놈들의 뒤를 따라왔다. 그 덕분인지 기관총 사수들은 내가 교회 첨탑을 기어오르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신나게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총구가 바닥을 한 번 훑을 때마다 쓰러지는 주민들과 몰아치는 피 안개.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빨라지는 속도를 느끼며 이에 물고 있는 단검 날을 아득 씹었다.
가까워진다. 총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마지막 벽돌을 잡은 순간 내 몸은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어?”
운이 좋으면 고통도 못 느끼고 죽었을 텐데, 하필 바닥에 쌓인 탄피를 치우고 새 탄약통을 가지고 오던 부사수가 나와 눈을 마주친다.
갑자기 아래에서 솟구친 나를 보며 인지 부조화가 와 버린 광신도 한 마리.
방아쇠를 당기며 광기에 젖은 사수가 빨리 총알을 가지고 오라고 소리치지만, 무감각한 내 눈과 마주친 놈은 마치 메두사를 마주친 듯 딱딱하게 굳는다. 그리고 1초라는 짧은 시간이 마침표를 찍자 놈의 삶은 어느새 내 손을 떠났다.
“- - - - -!”
단검을 쥐고 손을 휘두르자, 놈의 경동맥과 울대에 붉은 선이 새겨지며 피 분수가 쏟아져 내린다. 마치 이 모든 과오와 악행을 책임지라는 듯 탄피 위로 쏟아지는 붉은 피.
나는 목을 잡은 채 죽어가는 놈과 마지막까지 눈을 마주쳤고 이내 이마에 묻은 피를 슥 닦았다. 그러자 총알이 전부 떨어져 가는지 신나게 방아쇠를 당기던 사수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 나를 발견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린다.
입에서 나온 마지막 단말마, 어?
우두둑-!
즉사도 아깝다. 나는 단숨에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방향이 아닌, 최대한 고통을 받을 수 있게 목을 꺾어 놨다. 그러자 놈은 마치 차에 치인 야생동물처럼 온몸을 버둥거렸고 자신들이 믿는 그 미친 신에게 한 발짝 다가선다.
고통, 고통, 고통, 고통. 나는 그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을 놈이 천천히 죽어가도록 발로 밀어놓으며 중기관총에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잔탄을 아래서 뛰어다니고 있는 놈들에게 조준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놈들에게 역전의 발판이었던 중기관총은 순식간에 상황을 종결시킬 무기로 변했다.
나는 그대로 주민들에게서 총구를 돌려 첨탑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는 광신도들을 겨냥했고 손아귀에 있는 힘껏 힘을 주며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팡팡 터져 나가는 불꽃과 두 눈에 보이는 묵직한 총알의 궤적.
놈들은 마치 꼬리에 불붙은 쥐새끼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지만, 날아간 총알은 표적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제자리에 앉아 한 탄창을 전부 비운 나는 참고 있던 숨을 그제야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 - -.”
도시에 작열하는 태양과 피딱지가 잔뜩 말라 버린 입안.
나는 탄피 위로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상황을 완전히 정리하고 있는 시더빌의 주민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저 멀리서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나를 태우고 도시 밖으로 빠져나갈 제이콥의 트럭이 태양을 등지고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손과 축 늘어진 심장. 그리고 얼굴을 쓸어내린 나는 저 아래서 태양과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리움과 눈을 마주쳤다.
내 마음은 길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