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58화 (258/313)

# 258

2부 55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제이콥 부부를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으며 아까부터 말하는 할머님이란 사람의 정체는 누구인가.

갑작스러운 상황의 연속을 맞이한 나는 같이 가자고 권유한 소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얼굴에 묻은 오물을 대충 닦아낸 소년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했는지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대답해주었다.

“도착하면 할머님이 다 설명해주실 거에요.”

별다른 설명 없이 일단 같이 가자는 소년의 말.

함정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미쳤다고 잘 따라가겠냐마는 나는 아까 느꼈던 강한 이끌림에서 이 소년이 위험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임을 직감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었던 곽동윤의 본능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 나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소년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그러자 소년은 아까보다 미미하게 밝아진 얼굴로 나에게 손짓한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소년은 하수구 시설이 마비된 도시에서 광신도 놈들의 화장실 처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놈들에게 거짓으로 보여주는 표면상 모습인지, 소년은 자신이 오물을 옮길 때 사용하는 손수레를 풀숲에 망설임 없이 던져 넣으며 뒤따라오는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광신도 놈들이 주변에 깔리든 말든 집과 집 혹은 배수구로 이어지는 비밀통로를 능숙하게 사용한 우리는 곧 놈들의 포위망에서 빠져 나와 한 익숙한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덜컹-!

소년의 비밀통로로 사용되던 판잣집의 문이 열리자 메마른 풀들이 흩날리는 공터와 함께 한 낡은 콘크리트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난히 광신도들의 접근이 없었던 이곳, 제이콥이 위성전화기를 구하자고 가장 먼저 찾아온 이곳.

소년이 나를 데리고 온 곳은 릴리를 가장 처음으로 잃어버렸던 외다리 전당포였다.

마치 긴 항해 길을 돌고 돌아 다시 항구에 도착한 이 미묘한 기분에 나는 소년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설마 할머니라고 말하던 그 사람이 저 전당포의 주인인 노파였단 말인가.

하지만 소년은 내가 자신을 쳐다보거나 말거나 빨리 오지 않고 뭐하냐는 무뚝뚝한 얼굴로 공터를 가로질러 전당포로 향했다.

끼이익-! 딸랑, 딸랑!

그리고 소년이 자기 집인 것처럼 전당포의 문을 거침없이 열자 여전히 기름칠하지 않아 삐걱거리는 경첩의 비명과 적당히 듣기 좋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변함없이 풍겨오는 꿉꿉한 냄새와 어두운 실내.

도시가 이 난리가 났지만, 외다리 전당포만큼은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처음 봤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온 소년은 오물이 묻은 코트와 모자를 벗어 던지며 처음 노파가 모습을 드러냈던 방을 향해 들어가려고 했다.

“Mr. 곽……?”

하지만 그 순간 소년을 따라가려던 내 발걸음을 막은 것은 저 앞에 보이는 복도에서 반짝이는 촛불 하나와 내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놀라움과 반가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그 목소리에 나는 복도 쪽으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제이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치료를 받았는지 붕대와 거즈를 온몸에 붙이고 있는 제이콥은 떨리는 촛불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하하…….”

“무사하셨군요.”

비록 하루라는 짧은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선을 함께한 제이콥의 얼굴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제이콥도 나와 마찬가지인지 물기로 촉촉해진 눈가를 비비며 헛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건조한 내 인사와는 다르게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어 보이던 제이콥은 그대로 나를 끌어안으며 조용히 등을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이 잔혹한 세상을 살면서 생전 처음 받아보는 호의였을 것이다.

의심하지 않아도, 대가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순수한 호의.

길게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감정의 떨림은 스킨쉽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조차 절실히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또 고맙습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연신 감사 인사를 보내는 제이콥의 등을 살며시 두드려주며 짧은 인연의 행복한 마무리와 마주했다.

그리고 한 1분 정도가 지나고 나는 진정이 된 제이콥을 향해 물었다.

“릴리는 괜찮습니까?”

어째 릴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가뜩이나 연약한 몸으로 놈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하던 그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흘리던 마지막 눈물을 기억했던 나는 그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하는 마음에 걱정스레 물었다.

하지만 내 물음에 소매로 눈가를 북북 닦은 제이콥은 환하게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자신이 걸어온 복도를 가리켰다.

“아! 방에서 쉬고 있습니다. 제가 잠시 불러……. 응? 릴리?”

“- - - - -?”

처음 전당포에 있을 때도 내 감각에서 귀신같이 벗어나 전당포 밖으로 나가버렸던 릴리다. 그리고 그것은 우연이 아니었는지, 고개를 돌린 제이콥과 나는 복도 그림자에 조용히 숨어 어찌할 줄 모르는 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 제이콥이 밖으로 나올 때 따라 나오기라도 했는지 복도 구석을 서성이는 릴리. 제이콥은 그녀가 왜 저러는지 모르는 눈치였고 나는 얼굴이 멍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이는 릴리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괜찮아요?”

“미, 미안해요….”

어?

그냥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던진 가벼운 인사였다.

하지만 릴리는 어눌하기는 해도 분명 나에게 미안하다고 대답했고 안개 낀 하늘처럼 흐릿하던 눈동자는 뚜렷하게 변해있었다.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많은 것을 놓아버린 릴리였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일반 여성과 전혀 다른 바가 없었다.

그리고 정신이 멍해진 그 순간 옆에서 조용히 웃음을 짓고 있던 제이콥이 내 어깨 위로 먹먹한 감정이 느껴지는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오늘 아침부터 말하기 시작했어요.”

백치였던 그녀가 제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나는 감정이 벅차올라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고 있는 제이콥의 시선을 따라갔고 이내 복도 한구석에서 릴리의 손을 조용히 붙잡고 있는 한 꼬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눈과 이마를 완전히 가린 더벅머리지만 분명히 기억에 남아있는 체형과 기척.

그래, 저 아이는 릴리가 구했다가 난리 통에 갑자기 사라져 버린 꼬마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도망친 것이 아닌 우리 뒤를 몰래 따라오고 있었는지, 릴리의 오른손을 꾹 붙잡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감도는 정적, 나는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 - - - -아.”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언젠가는 아문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는 죽는 그 순간까지 짙게 남아 새겨졌던 상처를 떠올리게 했다.

부모를 잃은 채 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 먹고 살던 고아와 자식을 잃고 또 다른 심장을 마음속에 묻어야만 했던 어머니.

비록 피는 통하지 않았지만, 타인의 아픔을 알아본 그 둘은 서로를 말없이 끌어안으며 마음속에 남은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이끼리 서로를 보듬어주고 살피며 비로소 같이 일어나게 된 또 다른 희망의 광경.

나는 차가운 설원 속에 피어난 꽃처럼 다시 일어선 그 둘을 향해 살며시 웃음을 머금었다.

“Mr 곽.”

아, 잠깐 몰려오는 회상에 젖어서 넋을 빼놓고 있었다.

나는 채연이 생각에 먹먹해진 눈을 비비며 내 이름을 부르는 제이콥에게 고개를 돌렸다.

정체를 모르는 소년의 도움으로 포위망을 빠져나오고 제이콥 부부가 무사하다는 것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러니 이제 부부와 나를 도와준 노파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향후 행동을 결정해야 할 때였다.

그리고 제이콥 또한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한참을 우물쭈물하다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 저번에 말씀하신 캠프 있잖습니까.”

만약 살아남는다면 이 착해빠진 부부를 데리고 같이 캠프로 갈 생각을 하고 있던 나였다.

그러나 정작 그 이야기의 화두를 꺼낸 사람은 먼저 권유해야 하는 내가 아닌 미안한 듯 눈치를 살피는 제이콥이었다.

처음에는 분명 합류제안을 거절하던 제이콥 부부였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제이콥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망설이고 있었고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대충 눈치챈 나는 조용히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 캠프요.”

한국의 에덴이라는 둥지가 있다면 미국에는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든 캠프가 있었다.

비록 지금은 떨어져 헤매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일행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내가 대답을 하자 저쪽에서 조용히 눈치를 살피던 릴리가 아이를 꼭 붙잡으며 우리 옆으로 걸어왔고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제이콥은 결심이 섰는지 다부진 얼굴과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저번에 말씀해주신 거 말입니다. 혹시 마음이 변하지 않으셨으면…….”

“그럽시다.”

“네?”

“같이 갑시다.”

지옥 같은 땅에서 소중한 아이를 잃은 제이콥 부부는 심연과 같은 절망에 허우적거리며 살고 있었다.

차마 끊지 못해 유지하는 목숨, 그저 마지막으로 남을 배필을 위해서 숨만 붙인 채 사는 삶.

하루하루가 고통이었고 과거의 아픔은 부부를 끝없이 괴롭혔다.

하지만 내가 고시원에서 그랬듯 우연히 찾아온 한 줄기 빛은 때로는 절망 속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우고는 했다.

살고 싶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 두 문장이 주는 선한 욕망은 비로소 인간을 완성했고 죽은 눈으로 처음 나와 인사를 나누던 제이콥 부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지금 나를 마주 보고 그들의 눈빛에는 미래를 보고 있는 맹렬할 삶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       *       *

끼이익-.

소년의 도움을 받아 깨끗하게 씻고 따뜻한 음식도 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좋은 냄새가 풍기는 옷을 입은 나는 예의 바르게 손님 대접을 해주는 소년을 따라 노파가 기다리고 있다는 건물 2층으로 향했고 거기서 정말 딱 하나 있는 방문을 열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라는 전당포 노파.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제이콥 부부와 나를 살려주었는지, 그리고 이유가 있다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두 귀로 듣고 싶었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열자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인위적인 조명과 다섯 명의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왔구먼. 다리 아픈데, 이쪽에 앉아.”

꼭 초기 에덴 회의실을 보는듯한 방이었다.

사방에 보란 듯이 전시된 갖가지 골동품들과 방 중앙에 놓여있는 테이블.

그리고 정확히 6개가 준비된 고풍스러운 의자는 은은하게 빛나는 조명과 더불어 무언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꿉꿉한 약초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숨을 훅 내뱉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테이블 중앙에 앉아있던 노파가 주름 사이로 웃음을 매달고 나를 반겼다.

그리고 나는 유일하게 비어있는 의자를 향해 다가가 털썩 앉았다.

그리고 내가 앉음과 동시에 훈훈한 방안에는 불편한 침묵이 짙게 가라앉았다.

그저 웃으며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노파와 호기심 혹은 경계가 서린 얼굴로 나를 살피는 나머지 사람들.

하지만 나는 태연하게 그 시선을 넘기며 테이블 위로 손을 올려두었고 이내 호의를 베푼 노파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처음 매몰차게 우리를 내쫓았던 노파는 심경의 변화라도 생겼는지, 심하게 다친 제이콥 부부를 받아주었고 목숨이 오가는 위기의 순간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물론 그 의도를 알 수는 없었지만, 큰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내 감사 인사에 노파는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남녀 두 쌍으로 이루어진 나머지 사람들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전부 인디언 인종으로 보이는 이들은 아마 가족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잠시 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노파는 드디어 입을 열어 말했다.

“이 도시에서 동양인을 보는 건 흔치 않아. 거기다 보름 전에 떨어진 수배령 때문에 이 지역 이민자들도 완전히 씨가 말랐지.”

제이콥이 유난히 내 분장에 신경 써줬던 이유가 이곳에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교주가 캘리포니아 지역 전체에 내린 수배령.

덕분에 놈들에게 발견된 동양계 이민자들은 그 자리에서 죽거나 감옥으로 끌려갔고 광신도들의 중심지인 시더빌은 그 압박의 정도가 더욱 심했다.

하지만 영리한 제이콥의 꼼수 덕에 무사히 도시를 횡단할 수 있었던 나는 비교적 검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놈들에게 최대한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노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어. 아무리 교주와 광신도 놈들이 날뛰어도 그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고 말이야.”

꼭 중세 소설 속에 나오는 영웅의 이야기처럼 과장된 문장을 읊조린 노파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자 테이블 앞에서 느껴지는 이들의 시선과 온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익숙한 기분.

한참을 말없이 침묵을 지키던 노파는 곧 주름 사이에 묻힌 눈을 뜨며 나와 마주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로 손을 올린 채 노파의 신비로운 눈과 마주한 나는 이들이 제이콥 부부와 나를 구해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네가 죽인 그 저격수, 이 바닥에서는 인간 도살자로 유명해. 특수부대 현역 출신이었다가, 교주한테 투신한 사이코패스거든. 근데 그 악랄한 놈이 어제 건물 옥상에서 죽은 채 발견됐는데, 정확하게 오른쪽 눈이 뚫려있다고 하더라고. 그것도 구멍이 뚫린 조준경이랑 같이 말이야.”

입술을 오물거린 노파는 조용히 품속에서 노란색 위성전화기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사용하는 것에 위험이 너무 커 작은 대가로는 바꿔줄 수 없다고 말하던 그 전화기.

그것을 간절하게 바라던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로 향했고 노인은 보란 듯이 전화기를 나에게 밀었다.

그러자 전원이 들어와 있는 노란색 위성전화기는 내 앞에 멈추며 당장 자신을 잡아달라는 듯 두어 번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자네가 개구멍에 숨겨둔 소총에는 조준경이 달리지 않았어. 그런데도 250m밖에 있는 저격수의 오른쪽 눈을 단 한 발로 뚫었지. 그게 가능한 사람이 정말 있던가, Mr 곽?”

나는 손을 뻗어 내 눈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위성전화기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를 천천히 입력하며 먼지가 소복하게 쌓인 액정을 엄지로 살며시 닦아낸다.

까끌거리는 입안과 뻑뻑한 눈.

나는 숨을 길게 내뱉음과 동시에 다시 전화기를 내려놓았고 흐뭇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노파에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가 동등한 가치를 가진 물건을 주고받는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전당포의 규칙을 기억하며 노파에게 물었다.

하지만 노파는 내가 예상했던 대답이 아닌, 너무나 아련한 눈빛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가장 소중한 심장에 손을 올리며 고단했던 나의 삶에 경의를 표하듯 작은 인사를 건넨다.

“아무것도 없네.”

‘Mitakuye Oyasin.’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처음 들어보는 이 노파의 말은 그들에게 받아보는 첫 인사말이자, 이 도시에 떨어져서 두 번째로 받은 대가 없는 호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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