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
2부 54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마치 조각을 깎아놓은 듯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얼굴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곧게 뻗은 팔다리.
티끌 한 점 없는 하얀색 정장은 검은색 피부와 대비해 이유 모를 숭고함을 가지고 왔고 교주가 디디는 발걸음은 숨소리조차 삼키는 침묵을 퍼트린다.
마치 몇 천 년 만에 다시 찾아온 성자를 맞이하듯 고개를 숙이는 광신도 놈들.
그럴싸한 외관과 분위기는 두려움에 떨고 있던 주민들마저 매료시켰지만, 내 눈에서만큼은 놈의 진실이 보였다.
놈이 변종인 것을 눈치챈 순간 선한 웃음과 매력적인 목소리마저 모두 역겨웠다.
마치 살 한 점 없는 뼈들의 집합체가 인간의 거죽과 살을 뚫고 들어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같은 불쾌함.
구체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연기’라는 행위를 하는 놈의 모습은 소름과 동시에 내 마음을 미치도록 두렵게 만들었다.
가죽을 벗겨 난도질하거나 놈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놈의 실체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저 심연의 진실은 그 속을 혼자서만 들여다본 나에게 피부가 서늘할 만큼 차가운 공포를 느끼게 할 뿐이었다.
“- - - - - -!”
그리고 연출용인지 아니면 우연히 지나가던 한 주민의 자녀인지 모를 아이를 끌어안으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인 교주는 빼곡한 인파 사이를 천천히 가로질렀다.
그러자 광신도들은 기다린 듯 자리에서 교주의 뒤를 따랐고 묘한 분위기에 취한 주민들 또한 여운이 남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웅성거림과 피부의 닿는 사람들의 체온.
마치 거친 파도 한가운데 이리저리 힘없이 흔들리는 돛단배처럼 도태된 나는 품속에 있는 권총 손잡이를 꾹 잡으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죽여야 한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과 교주의 뒤통수에 고정되는 시선은 연신 내 손끝을 꿈틀거리게 했고 의지와 상관없는 본능은 당장 총을 꺼내라고 귓가에 속삭였다.
“…….”
하지만 나는 그 본능을 억누르며 마치 석고상에 갇힌 듯 딱딱해진 손을 권총에서 떼 낸다.
그래, 지금 총을 꺼내 들면 충분히 놈을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뒷일은? 광신도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교주가 갑자기 이 자리에서 저격을 당해 죽는다면 그 후폭풍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내가 이 먼 타국에 원정을 온 이유는 캘리포니아 생존자들을 위협하는 근본적인 적의 제거가 아닌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었다.
수적으로 유리하지도, 그렇다고 해서 가볍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닌 최악의 상황.
목숨을 담보로 걸어서까지 저 교주를 죽일 여유는 없었던 나는 꼭 무사히 돌아가겠다고 약한 채연이와 일행들을 생각하며 치솟아 오르는 본능을 애써 억눌렀다.
그러자 복잡한 생각과는 반대로 꿈틀거리던 온몸에 힘은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저 멀리 안개 속에 보이는 큰 뱀의 똬리를 애써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점점 교주 쪽으로 몰려가는 인파를 가로지른다.
그래, 제이콥 부부와 접촉하고 캠프로 돌아가는 것에 집중하자.
욱신거리는 상처와 그만큼이나 찜찜한 마음을 돌아간 고개에 날려버린 나는 교주에게서 시선과 감각을 완전히 뗐다.
아니, 떼려고 했다.
삐이이이-.
마치 무형의 존재에게 발목이라도 잡힌 듯 내 몸은 인파 사이에 우뚝 섰다.
주변에서 들리는 웅성거림도 광신도들이 치는 손뼉도 귀에 가득한 이명에 잡아먹혀 버린 무의 공간.
마치 실처럼 이어졌던 감각은 손목이 잡히듯 우뚝 멈췄고 머릿속에 있던 경종은 다시 한 번 격하게 울리며 위험을 알려왔다.
그래, 그것은 변종과 눈을 마주치거나 혹은 무언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 느껴졌던 목덜미에 싸늘한 한기였다.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 무언가와 눈을 마주쳤다.
“- - - - - -!”
그리고 그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으며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수많은 인파 속에 있는 나를 분명히 인지하고 노려보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저 60M밖에 떨어져서 아이를 안고 있는 교주였기 때문이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나는 교주를 보자마자 놈이 변종인 것을 단번에 알아냈다.
왜냐하면, 아무리 수많은 인파 속에 있어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그 더러운 기분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변종이라는 주홍글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하자면 내 몸에 흐르고 있는 피도 분명 변종의 일부였고 놈도 내 정체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치 동상처럼 딱딱하게 서서 놈과 눈을 마주했다.
“…….”
분명 시간은 5초도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느려진 공간은 그 5초가 5분처럼 느껴지게 했고 사람들이 파도에서 놈과 나는 시선의 외나무다리를 만들며 서로를 마주 봤다.
금방이라도 무언가 터지기라도 할 듯 흔들거리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1초가 지나 정확히 6초가 되었을 때 교주는 입술을 달싹이며 옆에 있는 광신도에게 무언가 속삭였고 곧게 선 검지는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다.
더 지체할 것 없다. 교주의 말에 깜짝 놀란 광신도들의 시선이 내가 있는 방향으로 향함과 동시에 나는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 - -꺅!”
“뭐, 뭐야!”
여태 인파 속에 잘 묻혀있었지만, 변종이라는 존재를 만난 이상 사람들 속에 숨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휘저으며 교주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헤쳐 나가기 시작했고 나와 부딪혀 나는 짜증과 비명을 저 이명 너머에 묻어버렸다.
도망쳐야 한다. 아니,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 순간 저 뒤에서 사람들을 밀치며 고함을 지르는 광신도들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고 도망치면 칠수록 심장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 - - -저기다!!!”
그리고 내가 큰길을 완전히 빠져나온 그 순간 인파 사이에서 나를 지목한 한 광신도로 인해 환영 행사는 순식간에 혼란으로 물들어버렸다.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사람들과 교주의 명에 충실히 나를 따라오는 광신도들.
그들은 아직 도망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음에도 거침없이 총을 꺼내 들었고 저 멀리 그것을 지시한 교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천천히 자기가 타고 온 차에 탑승했다.
마치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혹은 그게 너였냐는 듯한 진한 미소에 나는 이를 악물며 그대로 골목의 코너로 들어갔다.
탕, 타탕! 탕!
그리고 코너가 있는 골목을 향해 몸을 날린 그 순간 주민들이 주변에 있든 말든 총을 발사한 광신도들로 인해 콘크리트와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겼다.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뀐 본능의 경종과 목덜미를 핥고 지나가는 위기감.
제이콥 부부와 재회하기 전에 꼬여버린 상황은 터질 듯이 돌아가는 머리에 복잡한 감정을 더 해주었다.
하지만 복잡한 머리와는 반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내 몸은 그러거나 말거나 코너로 들어가 내 체격에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담을 훌쩍 넘게 했다.
그리고 사방에서 몰려오는 광신도들을 피한 나는 도시로 들어올 때 사용한 개구멍을 다시 한 번 빠져나가기 위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후욱, 후욱.”
하지만 부상의 여파 때문에 금세 지쳐오는 몸과 숨을 내뱉을 때마다 풍겨오는 단내는 몸과 정신을 더더욱 힘들게 했다.
최대한 조용히 왔다가 가려고 했지만, 전혀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등장한 교주라는 존재.
젠장, 빌어먹을. 정말 단 한 번도 편하게 무언가를 해본 적 없는 나는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욕설을 삼켰고 곧 사방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피해 또다시 담을 넘었다.
그리고 장벽으로 마지막 골목길을 가로질러 뛰어가려던 그 순간 나는 코너 앞에서 마치 미끄러지듯 바닥에 넘어지며 헛숨을 삼켰다.
“- - - - -!”
탁, 탁, 탁, 탁!
“도, 도대체 무슨 상황이랍니까? 교주님 오셨는데, 이게 무슨…….”
“몰라, 새끼야! 내가 알면 이렇게 뛰고 있겠냐!”
지친 몸과 마음 때문인지, 저 골목 앞에서 뛰어오고 있던 광신도들의 감지가 약간 늦었다.
하지만 그 약간의 여파는 마치 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처럼 불어나 앞길을 가로막았고 그대로 이를 악문 나는 뛰어왔던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부우우우웅-!
“- - - - -저쪽부터 - - - -!”
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또 한 번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운명의 장난인지 교주가 있던 큰길에서부터 나를 쫓아온 광신도 놈들은 나를 마지막으로 본 골목 바로 앞 큰길에 트럭들을 주차 시켜 놓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ㅋ’자 모양처럼 생긴 골목에 그대로 고립된 나는 도망치려던 걸음을 다시 한 번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큰길을 틀어막고 있는 놈들과 아까 저 앞에서 내 존재조차 모른 채 뛰어오고 있는 광신도 다섯 놈.
양쪽이 막혔다. 남아있는 나머지 한길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코너에 몸을 숨기며 권총이 있는 품속에 손을 넣었다.
저 멀리서 뛰어오고 있는 광신도 다섯 놈은 전부 자동화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며 내가 숨어있는 골목은 두 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찰 만큼 좁기 그지없다.
하지만 나에게 있는 건 소음기가 없는 권총뿐.
도시로 들어올 때부터 교전이라는 경우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던 나는 이런 식으로 총을 사용할 게 될 줄은 몰랐다.
여기서 총을 발사한 순간 놈들에게 위치가 들킬 것일 뻔하다.
완전히 양자택일이 되어버린 순간에 나는 무슨 선택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마치 열차가 바로 귀 옆에서 지나가듯 두쿵두쿵 뛰는 심장과 떨려오는 동공.
놈들은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도 시시각각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내 오른손은 선제공격을 위해 본능처럼 총을 뽑고 있었다.
“악-!!”
덜컹!
“- - - ?”
어쩔 수 없다. 나는 결국 권총을 조용히 장전하며 골목에서 싸울 준비를 맞췄다.
하지만 나에게 들려온 것은 적을 발견했다는 놈들의 고함이 아닌 저 앞쪽에서 무언가가 넘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액체로 이뤄진 진득한 것이 쏟아지는 소리였다.
촤르륵, 그리고 고개를 돌린 그 순간 멈춰버리는 놈들의 발걸음과 저 골목 앞쪽에서 맹렬하게 풍겨오는 역한 냄새.
그것은 옛날 재래식 화장실에서나 맡을법한 푹 삭은 구린내였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내가 코를 막은 그 순간 놈들의 발소리가 끊긴 방향에서 처음 들어보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았는지, 몹시 앳되고 겁에 질려있는 그 목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바닥에 엎어진 채 더러운 갈색 물체들을 황급히 치우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그리고 이 도시에 나는 분뇨를 치우기라도 하는지 더러운 똥통들이 담긴 손수레로 끌고 있던 소년은 실수로 통을 엎어 광신도들의 앞길을 똥 밭으로 막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당연히 이쪽을 향해 뛰어오던 놈들은 나처럼 코를 막으며 질색했고 굉장히 짜증나게 생긴 한 놈은 성질을 참지 못하며 손을 들어 올린다.
“이런 개새끼가……!”
“야! 그냥 가! 어차피 이쪽 길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던 광신도 한 놈은 똥 밭 한가운데서 허우적거리는 소년을 마치 더러운 쓰레기를 보듯 바라보다, 더 이상 구린내가 진동하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은지 짜증을 부렸다.
그러자 소년을 때리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린 남자는 불만스러운 듯 인상을 팍 찡그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소년에게 침을 퉤 뱉으며 뒤돌아선다.
오물과 침에 범벅된 채 바닥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소년.
광신도 놈들은 곧 방향을 바꿔 다른 골목으로 지나가 버렸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가 막히게 길을 틀어 막아준 소년 덕분에 정체 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빠져나갈 유일한 기회다 싶었던 나는 황급히 그곳을 지나가려고 했고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던 소년과 눈을 마주치며 감사 인사를 보냈다.
“- - - - - -!”
하지만 그 순간 엎드려 있던 소년은 겁에 질려있던 얼굴이 모두 연극이었다는 듯 날카롭게 눈을 반짝이며 뛰어가던 내 발목을 부여잡았다.
발목에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압박감. 나는 깜짝 놀라 품에 손을 넣은 채 소년을 뒤돌아봤다.
그러자 딱딱하게 표정을 굳힌 소년의 입에서는 아까 전 겁에 질린 목소리가 아닌 너무나 냉철하고 성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교주를 쉽게 보지 마세요. 벌써 장벽에 놈들이 쫙 깔렸어요. 아저씨가 파둔 개구멍으로 빠져나가면 벗어나기도 전에 죽는 거예요.”
“뭐……?”
오물에 뒹굴며 용서를 구하던 소년은 이미 없었다.
인디언 인종인지 까무잡잡한 피부와 신비로운 눈.
비록 오물 위에서 뒹구느라 온몸은 더럽기 그지없었지만, 소년은 마치 펄 속에 진주가 되기라도 하는 듯 미미한 빛을 머금고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얼굴로 교주와 개구멍의 이름을 언급하는 소년.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총을 뽑을 생각조차 못 하며 몸을 딱딱하게 굳혔고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나에게 말했다.
“제이콥 부부를 찾고 계시죠?”
“…….”
“저희가 안전하게 데리고 있어요. 그리고 할머님이 도시가 조용해질 동안 식사라도 한번 하시자는 데, 같이 가실래요?”
교주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장벽에 사람을 보내 도시를 봉쇄시킨 모양이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주변에서 시시각각 느껴지는 광신도들의 존재감은 내 고뇌에 채찍질하기 시작했고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에 마주한 정체 모를 소년은 제이콥 부부를 언급하며 의심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너무나 맑은 소년의 눈과 마주한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며 폐부에서 끌어 오르는 숨을 훅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이끌림은 곧 소년을 따라가라는 본능이 말하는 갈림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숨에 휩쓸린 바람은 나와 소년 그리고 도시를 폭풍우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이곳은 폭풍의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