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
2부 52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오랜만에 속 시원하게 갈겼더니, 놈들 때문에 고통받았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이상 총알이 나가지 않는 총구를 내려다보며 주변에 자욱하게 퍼져있는 화약 연기를 손으로 쫓아냈다.
그러자 눈앞에는 총알로 한쪽 면이 걸레짝이 되어버린 트럭과 바닥을 나뒹굴며 피를 흘리는 광신도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빈 탄창을 탄피들 사이에 던지며 피가 흐르는 하반신을 부여잡고 신음하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 - - - 조장님? 조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조장님?]
역시 간부가 맞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져 시끄럽게 울리는 무전기를 조용히 주웠고 눈치를 살피며 권총을 뽑아 들려는 놈의 오른쪽 손을 지르밟았다.
그러자 놈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려 입을 쩍 벌렸지만, 내가 이마에 들이민 총구는 놈의 입속으로 들어가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막아버렸다.
고통과 두려움에 찌든 눈동자를 또르르 굴려 이쪽을 바라보는 남성, 나는 검지를 입술에 올리며 여전히 시끄럽게 울리는 무전기를 머리맡에 조용히 내려두었다.
“……도시 동쪽으로 향했다고 해.”
한두 차례는 더 날뛰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놈들에게 혼란을 줘야 했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 만난 광신도 간부에게 보란 듯이 노리쇠를 당기며 총을 장전했고 무언의 눈빛으로 머리맡에 놓은 무전기와 총구를 번갈아 바라본다.
바보가 아니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광신도 간부는 간을 보기라도 하는지 주춤주춤 눈치를 보다 입술을 비틀어 웃는다.
“미, 미친 새끼…. 여기 깔린 애들만 수백 명이야. 몇 명이 지랄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살아서 빠져나갈 - - - -끄으으으읍!!”
혓바닥이 길다. 나는 시끄럽게 떠드는 놈의 목구멍까지 총구를 밀어 넣으며 총알구멍이 뚫린 허벅지를 지르밟았다.
그러자 눌린 고기처럼 일그러진 허벅지에선 물이 빠지는 소리와 새빨간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리고 얼굴과 눈알이 시뻘게진 상태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남자는 온몸을 버둥거리며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허벅지와 어깨를 밟고 있는 발은 놈에게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해주었다.
깔끔한 포마드 머리는 핏물에 젖어 망가지고 재수 없게 웃던 놈의 얼굴은 흉측하게 일그러진다.
그리고 잠시 뒤 비명을 틀어막고 있던 총구를 빼낸 나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기 시작한 놈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동쪽으로 도주.”
내가 부랑자와 싸우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이런 놈들은 자신이 불리해지면 꼭 혓바닥을 놀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귀가 썩을 것 같은 욕설이든 아니면 훗날 두고 보자는 협박이든 놈들은 위기의 순간이 오면 하나같이 시끄럽게 떠들며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 듣는다면 주눅 이들만큼 서슬 퍼런 협박, 하지만 장막을 들추고 시꺼먼 지옥을 본 적이 있는 나는 그것이 귀에도 닿지 않는 벌레의 꿈틀거림인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놈과 눈을 마주치며 손가락 3개를 들어 올린다.
“- - - - - -.”
협상하지 마라. 시간 끌지 마라. 살려 보내지 마라.
노인이 새내기 대원들을 상대로 가르치는 이 3원칙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너무나 잘 들어맞는 조언이었다.
3초다. 1초가 지날 때마다 내가 들어 올린 손가락은 하나씩 접어지기 시작했고 이마에 총구를 마주한 놈은 내가 들어 올린 이 손가락이 무슨 뜻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마른침과 부들부들 떨리는 눈동자.
신념과 목숨 사이를 끊임없이 사선의 상상은 인간을 비겁하게 만든다. 그리고 3번째 손가락이 접히며 방아쇠가 반쯤 당겨질 때쯤, 놈은 소리를 치며 버둥거렸다.
“할게! 할 테니까, 제발!”
간부라는 놈이 밑에 부하들보다 겁이 많다.
놈은 죽음의 위기와 통증에서 오는 두려움에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목숨을 구걸했고 내가 총구로 끌어온 무전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이쪽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총이 발사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다른 놈들이 몰려오기 전에 빨리 끝내라는 듯 차가운 눈동자를 빛낸다.
그러자 이성을 잃은 남자는 연신 잡음이 울리는 무전기를 향해 소리쳤다.
“놈, 놈을 놓쳤어. 동쪽으로 도망갔으니까, 빨리 이동해!”
[ - - - -네?]
“애들 끌고 동쪽으로 가라고 이 덜떨어진 새끼야!”
남자가 내뱉은 마지막 말과 함께 무전기 너머에선 다급한 대답과 엔진소리가 크게 울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시시각각 내 감각을 간지럽히던 놈들의 기척이 멀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남자에게 겨눈 총구를 치우며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다.
운 좋게 명령권을 가진 간부를 잡아 시간을 벌었다.
그렇다면 이 좋은 기류를 타고 일을 확실하게 처리할 차례였다.
나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여기저기에 널린 시체에서 장비가 매달린 탄띠와 함께 여분의 탄창을 챙겼고 동쪽과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자 뒤쪽에서 안도의 한숨이 달려왔다.
“- - - - -아.”
생각이 많아서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다.
나는 한숨을 내뱉은 남자 때문에 노인이 알려준 3원칙 중 하나를 기억해낼 수 있었고 홀더에 챙겨둔 권총을 빼들며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나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기어가고 있던 놈은 얼이 빠진 얼굴로 총구를 바라보다 황급히 비명 같은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총알은 사람 말에 대답을 잘 해주지 않는 편이다.
탕! 단말마는 묵음으로 변해 들리지 않았고 나는 피와 탄피들을 뒤로하며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 * *
금방이라도 내 목을 조여 올 듯 좁혀지던 포위망은 명령체계의 혼란으로 이곳저곳에 구멍이 생겼다.
분명 광신도들을 사살한 침입자가 있지만, 그것이 누구고 도대체 몇 명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놈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멍을 이용해 재빠르게 포위망을 벗어난 나는 도시에 가라앉은 혼란을 최대한 분산시키기 위해 소규모로 이동하는 놈들을 습격하거나 도망치는 모습을 드러내는 등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 - - -커억!”
그리고 그 순간 귀를 자극하는 뜀박질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이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놈의 목을 그대로 낚아챘다.
그러자 놈은 중심을 잃으며 의미 없는 헛숨을 삼켰고 동시에 다른 쪽 손으로 머리를 잡아 옆으로 꺾자 손끝에서는 목뼈가 부서지는 여운이 찌르르 울려왔다.
단 한 번의 습격으로 사그라드는 단말마.
나는 그대로 즉사한 놈의 시체를 한쪽에 던지며 거친 숨을 훅 내뱉었다.
골목과 골목을 누비며 게릴라전을 펼치기를 수차례.
처리한 놈들의 숫자가 두 자릿수를 넘기기 시작하자 내 몸은 모래주머니를 단 듯 점점 무거워졌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는지, 시더빌의 광신도들은 우리 중 일부가 숨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며 형체가 없는 나를 끊임없이 쫓아다녔다.
그러나 나는 놈들이 몸이 달아오르면 오를수록 최대한 몸을 사리며 도시 이곳저곳으로 이동했고 기회가 생기면 놈들을 습격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녹진하게 숙성된 혼란을 바라보던 나는 이제 그만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직감한다.
“- - - - - -!!”
된통 당하기만 해 이성을 잃은 광신도 놈들은 주민들 사이를 이 잡듯 돌아다니는지 도시 이곳저곳에는 비명이 섞인 소란스러움과 함께 하늘로 향하는 검은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더 있다가는 처음 설계했던 계획이 실패로 끝날지 모른다.
나는 놈들에게서 뺏은 장비들을 하나둘 가방에 넣으며 도시를 떠날 준비를 했고 가장 빠져나가기 쉬울 거라 생각되는 외곽 장벽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엇차.
처음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가면 갈수록 적응이 된다.
나는 보는 눈이 많은 길목을 피해 일부로 지붕으로 올라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갔고 향상된 신체 능력은 입체적인 움직임에 시너지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창틀과 난간을 밟고 올라선 마치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지붕 위로 올라선다. 탁 트인 시야와 이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해.
아마 장벽에서 목격자를 만들고 도망친다면, 다음날 배수구에 숨은 제이콥 부부는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을 마친 나는 탈출 계획에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무거운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탁탁탁!
그나저나 일단 급한 위기는 잘 넘겼다.
하지만 원래 목표였던 위성 전화기는 여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고 내 몸에 부상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벌써 4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중간에 떨어진 일행들의 안위조차 모르는 상황.
분명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음에도 마음은 그렇게 편치 않았다.
그리고 안색이 어두워진 나는 저 멀리 장벽이 가까워지기 시작했음에도 후련함은커녕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걱정이 몰려옴을 느낀다.
- - - - -삐이이.
“?”
하지만 그 순간 깊은 상념 속에 들려온 대답은 내가 걱정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이 아닌 갑자기 고막을 차지하는 짙은 이명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몰려오는 무언가의 쏠림과 내 자의와 상관없이 느려지는 시간.
나는 마치 허공에 뜬 것처럼 지붕 바닥을 밟았고 사방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를 느끼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이러지? 나는 갑자기 심장을 옥죄어오는 생존본능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그 순간 내 다리 근육은 알 수 없는 본능에 이끌려 흔들리던 시야와 함께 그대로 고꾸라졌다.
피융- - - -팡!
그리고 내가 바닥에 넘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허공을 가른 총알은 내가 뛰고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날아와 박혔다.
순간 소름이 끼치는 목덜미와 뒤늦게 들려오는 총소리는 내가 저격을 당했음을 자각하게 했고 나는 인지가 끝나자마자 기우뚱거리는 몸에 중심을 잡으며 경사가 있는 지붕 바닥에 재빨리 엎드렸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나를 정확하게 노린 저격이다.
어째 쉽게 보내준다고 했더니, 이런 보루를 가지고 있었나.
나는 정말 오랜만에 겪어보는 상황 앞에 심호흡을 거칠게 하며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광신도로 추정되는 저격수는 멀리서 나를 노렸는지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으로는 정확한 위치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략적인 방향만 추측할 수 있었던 나는 날아온 총알의 궤적을 통해 놈이 나보다 지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곁눈질을 통해 확인한 저격 포인트만 수십 곳이 넘는다.
그리고 이동을 지체한 나는 저 멀리서 들리는 트럭 엔진 소리에 이를 악물며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에덴에서 받았던 노인의 훈련법 중 하나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언제, 어떤 상황이 와도 총을 든 사람과 싸울 수 있도록 해준 수백 시간의 노하우.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코트를 벗어 놈이 나를 노리고 있는 방향을 향해 내밀었다.
피융! - - - - - - - -탕.
그러자 나를 노리고 있는 저격수는 기다렸다는 듯 방아쇠를 당겼고 바람에 나풀거리던 코트는 뒤로 휙 쏠리며 총알의 여파에 그대로 휩쓸린다.
저것이 만약 나였다면, 아무리 변종의 피가 있다 해도 중상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몰려오는 긴장감.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지붕 난간에 다시 엄폐했고 노인이 에덴에서 귀에 박히도록 말했던 훈련 내용을 기억해낸다.
‘저격수를 찾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긴 한데, 양키들은 이걸 그냥 크랙썸이라고 불러.’
‘그게 무슨 뜻인데요?’
‘크랙은 총알이 날아와 벽에 부딪히는 소리고 썸은 그 뒤를 따라오는 총소리를 말하지. 그리고 이 두 개를 이용해서 저격수와의 거리를 알아내는 방법인데, 요즘은 영화나 게임에서도 많이 나오잖아? 물론 실제로 맞아보면 좆도 생각 안나지만.’
총알이 코트를 꿰뚫고 지나간 순간을 기준으로 시간을 잰다.
똑딱똑딱, 분명 초바늘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묵직한 총소리가 뒤늦게 따라왔고 그 간격은 정확히 1초 내외다.
나는 바싹바싹 말라가는 입술을 핥으며 계산식을 머리에서 굴렸고 저격수의 위치가 200m 안쪽인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좁혀지는 저격 포인트는 3개. 나는 곁눈질로 그 포인트를 확인하며 노인이 마지막으로 알려주었던 말을 상기한다.
‘그리고 거리를 알아냈다 싶으면 놈이 있을법한 곳에 냅다 거울을 들고 비춰봐.’
‘망원경이 아니고요?’
‘미쳤냐, 머리를 내밀게? 그냥 손거울 같은 거로 살며시 들어서 살펴, 그럼 알아.’
생생하게 기억나는 노인의 마지막 말.
나는 마치 일행들이 옆에 있는 것만 같은 든든함을 느끼며 주머니에서 작은 손거울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손을 엄폐물 밖으로 살며시 내밀고 저 멀리 보이는 3개의 저격 포인트를 비추기 시작했다.
- - - - - -꿀꺽.
손거울이 엄폐물 밖으로 나온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구름에서 벗어난 태양은 얼굴에 작열했고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껄끔거리는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보이는 저격 포인트.
나는 이를 악물며 안고 있는 소총을 꼭 끌어안았다.
반짝-!
그리고 구름 사이로 가려져 있던 태양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5층 대형할인점 건물 옥상에서는 그토록 찾던 빛 반짝임이 내 눈동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총에 착용한 고배율 조준경이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이는 빛 퍼짐.
내가 저격 포인트라고 생각한 대형할인점 옥상에는 바닥에 쪼그려 앉은 저격수가 내가 제풀에 지쳐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저기다.
나는 조용히 손을 움직여 소총에 달린 기계식 조준기를 끼릭끼릭 돌렸고 조심스럽게 지붕을 타고 내려가며 소총을 들어 올렸다.
탕-!
그리고 나는 마지막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유유자적 지붕을 내려왔고 이내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을 향해 조심스럽게 뛰기 시작했다.
구름이 다시 태양을 가린다.
총성은 메아리조차 만들지 못했고 내가 떠나간 자리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시더빌 장벽에서 내가 도망쳤다는 목격자 두 명을 만들고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