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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253화 (253/313)

# 253

2부 50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눈앞에서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퇴행증이 와버린 그녀는 마치 3살 먹은 아이처럼 항시 챙기고 돌봐줘야 했다.

하지만 나와 제이콥은 거래에 정신이 팔려 어둡고 칙칙한 전당포를 무서워하는 릴리에게 신경 쓰지 못했고 감정이 쉽게 변하는 그녀는 하늘에 뜨기 시작한 햇살을 따라 전당포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거래가 파탄이 나고 나서야 눈치챈 나와 제이콥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당포를 빠져 나와 휑한 공터를 보며 넋을 잃었다.

“릴리! 릴리!!”

휑하니 비어버린 공터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릴리의 모습.

비록 몇 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이미 이 공터를 벗어나기라도 했는지 우리의 육안으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반쯤 실성한 제이콥은 애타게 릴리를 부르며 날뛰었고 나는 그 옆에서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아까보다 인기척이 훨씬 많아진 시더빌의 길가를 살펴보았다.

시더빌 길가 곳곳에는 중무장을 한 채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2교대 광신도들과 거친 엔진소리를 내는 트럭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다.

노파가 말한 순찰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 나는 돌아다니는 광신도들을 보며 릴리를 찾을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를 악문 나는 허망한 얼굴로 릴리를 부르는 제이콥의 어깨를 꾹 잡으며 말했다.

“멀리 못 나갔을 거예요. 시간이 없으니 찢어져서 찾아요.”

너무 흥분하지 말자, 그래 봐야 100m 안쪽일 것이다.

나는 제이콥에게 패닉에 빠져 시간을 버리는 것보다 최대한 빨리 거리를 좁혀 릴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러자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제이콥은 다부지게 손을 꾹 잡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출발 신호는 필요 없었다.

제이콥은 망설임 없이 공터 오른쪽을 향해 재빨리 뛰어갔고 나는 그 반대쪽인 시가지를 향해 뜀박질을 시작했다.

걸리적거리는 거적때기를 바닥에 버리고 얌전히 잠에 빠져있던 다리 근육을 예열시키며 천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감각을 넓게 퍼트리며 멀리 가지 못했을 릴리를 찾기 위해 정신없이 고개를 돌린다.

“- - - - -.”

감각을 집중하자, 딱딱한 바닥은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최소한의 진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길을 뛰어가는 나는 마치 소금쟁이가 물 위를 떠다니는 이곳저곳에서 흔들리는 파동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지만, 갑자기 급증한 광신도들의 순찰 숫자 때문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자각한다.

거리는 100m 안쪽일 테지만, 반경은 그보다 넓다.

한참을 골목 사이를 뛰어다니는 나는 생각을 바꿔 높은 곳에서 시더빌을 내려다볼 수 있는 건물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아까는 제이콥을 안심시키기 위해 금방 그녀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성인 장정이 뭉쳐 다녀도 위험한 시더빌인데, 제정신이 아닌 릴리가 무슨 큰일을 당할지 어떻게 아는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거리를 헤매는 릴리와 그녀를 찾기 위해 애쓰는 제이콥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고 이 근방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교회를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 - - - -.”

사방에서 느껴지는 광신도들의 인기척과 큰길가를 돌아다니는 낡은 트럭들.

나는 놈들과 마주쳐서 좋을 것이 없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창틀과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붕 위에 조심스럽게 안착하며 예열되어 있던 다리 근육을 폭발시키자 균형이 맞지 않은 지붕 위에서도 내 몸은 금방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바뀌는 주변 풍경과 온몸을 강타하는 녹진한 바람, 시더빌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저 앞에는 내가 목표로 했던 교회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힘껏 발을 구르며 지붕과 지붕을 넘었고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가뿐하게 미끄러운 창틀에 안착했다.

마치 용수철처럼 부풀어 오르는 근육.

나는 온몸에 느껴지는 충격의 여파를 반동으로 이용해 교회 첨탑을 향해 손을 뻗었고 이내 길가 아래로 지나가는 트럭을 아슬아슬하게 뛰어넘었다.

손에 잡히는 뭉툭한 난간과 반쯤 불태워진 교회의 외관.

나는 혹시 누군가 보기라도 할까 재빨리 교회 벽을 기어 올라가며 십자가가 부러져있는 첨탑에 발을 디뎠다.

후우, 후우. 첨탑에 도착한 나는 먼지가 자욱한 벽에 등을 기대며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내뱉었다.

깔끔하게 비워지는 폐부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서 오는 욱신거림.

무리하게 벽과 난간을 잡았던 손톱은 반쯤 깨져 너덜거렸지만, 고생한 보람은 있는지 100m 반경으로 릴리를 찾을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었다.

나는 가장 먼저 저 멀리서 열심히 뛰고 있는 제이콥의 안위를 확인하며 골목 곳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역시나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광신도들이었다.

어딘가로 가기라도 하는지 마을 밖으로 나가는 수많은 트럭과 적어도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순찰대의 규모.

나는 이 도시를 헤매고 있는 제이콥 부부가 저 반경에 접어들지를 않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 번 릴리를 찾기 시작했다.

집중하기 시작하자 점점 잦아드는 심장 소리와 바싹바싹 말라가는 입안, 1시간 같은 1분이 지나고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숨을 훅 들이켰다.

그리고 눈동자를 바삐 움직인 그 순간 내 이목을 잡아끄는 한 광경에 나는 탄성을 내뱉었다.

“- - - - - -!”

찾았다!

릴리는 내 예상대로 얼떨결에 길을 잃어 공터와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일인지 우리를 찾거나 울고 있지 않았고 평소 얼빠진 모습 그대로 한곳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너무나 맥이 빠지는 그녀의 모습.

나는 제이콥의 진행 방향이 그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재빨리 교회 첨탑에서 내려왔다.

놈들을 피해 이동하는 제이콥보다 지붕을 뛰어넘어 직선 경로로 가는 내가 더 빠를 것이다.

나는 시시각각 도로를 순찰하고 있는 광신도들보다 빨리 그녀에게 가기 위해 다시 한 번 아찔한 공중곡예를 펼쳤고 지붕과 지붕을 뛰어넘으며 숨 가쁘게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가기를 2분, 나는 정면에 뛰어넘을 지붕이 더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바닥에 가볍게 착지해 릴리가 앉아있던 방향에 존재하는 마지막 담을 넘어가려고 했다.

“릴리!!!!!”

하지만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얼빠진 채로 앉아있던 릴리의 모습이 아닌 내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제이콥의 찢어지는 목소리였다.

릴리를 발견한 것인가? 하지만 왜 이리 목소리가 급해 보이지?

순간 담을 넘으려던 나는 주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제이콥의 목소리 속에 숨어있던 절박함을 읽었고 이내 무언가 일이 틀어졌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망설일 틈도 없이 손을 뻗어 담 위로 얼굴을 내밀자, 피부와 신경을 찌르릉 울리는 위험신호가 발끝에서 시작해 어김없이 뒤통수를 때린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이 개자식들아!!”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릴리는 어느새 이쪽으로 몰려든 광신도들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발로 밟히고 개머리판으로 맞으며 잔뜩 웅크리고 있는 릴리.

그 모습을 나보다 먼저 발견한 제이콥은 당연히 눈이 돌아 5명쯤 돼 보이는 광신도들에게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담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부와 놈들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오른쪽 손에서 권총 그립에 묵직함이 몰려온다.

“- - - - - -!!!”

고개를 들어 마주한 릴리는 그냥 맞고 있는 것이 아닌, 한 거적때기를 품 안에 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느려지는 시간 속에 그 거적때기가 평범한 물건이 아닌, 꼬질꼬질한 한 꼬마 아이인 것을 눈치챘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더러운 빵과 화가 난 광신도들을 교차해 바라보며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빠르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아까 교회 첨탑 위에서 이곳을 처음 발견할 때만 해도 릴리는 분명 무언가를 유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 앉아있던 릴리가 단순히 얼을 빼고 우리를 기다린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녀는 사실 넋을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닌 배가 고파 빵을 훔치던 고아를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수룩한 움직임에 금방 잡혀버린 고아와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을 릴리, 그 뒤는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불 보듯 뻔했다.

마치 어미 새가 알을 품듯 생판 모르는 아이를 보호하는 릴리의 모습을 목격한 나는 폐부에서 깊은 숨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심장을 옥죄어 오는 답답함과 뜀박질을 움직이는 이 순간에도 들려오는 처절한 제이콥의 외침.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놈들에게 밟히고 있는 릴리의 몸에서는 피가 터지고 있었고 근처까지 뛰어온 제이콥은 놈들과 격한 몸싸움을 벌이며 발악했다.

모든 것이 일촉즉발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나는 생각했다.

거리는 불과 50m. 이 속도라면 금방 부부에게 도착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곳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광신도 놈들은 전부 자동화기로 무장한 상태였고 이 근방에는 총소리를 듣고 달려올 수 있는 놈들이 수두룩했다.

호랑이굴 한가운데에서 호랑이에게 물린 상황, 여기서 싸우게 된다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 - - - - -.”

망설임이 생긴다. 비겁함이 물든다.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권총 그립을 잡은 오른쪽 손은 서서히 힘이 풀리기 시작한다.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지나가는 풍경과 교차하는 내 마음속에 거부감.

차라리 한 번이라도 그녀를 돌아볼걸, 아니, 절대 제이콥과 떨어지지 말라고 당부라도 해줄걸.

마음 한구석에는 과거를 탓하는 역겨움이 새겨지고 속 안에 묶여있던 나사 하나가 빠져버리는 기분이 탈력감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조금씩 느려지는 발걸음에 홀려가는 그 순간 나는 고개를 들어 놈들에게 맞고 있는 릴리와 눈을 마주했다.

‘미안해요! 바보처럼 행동해서 미안해요.’

잠시 제정신이 들었는지, 흐릿하던 그녀의 눈빛은 나에게 사진을 건넸을 때처럼 또렷하게 변해있었다.

하지만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는 상황에도 그녀는 무언의 눈빛으로 사과를 건네고 있었고 절절한 감정을 담고 있는 그 눈동자는 선명하다 못해 나와 채연이가 함께 보았던 밤하늘을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귓가에 속삭이는 무언의 형체가 심장을 콕콕 찌른다.

‘빨리 도망가세요.’

“- - - - - !”

순식간에 제압당해 바닥에 엎어진 제이콥과 뒤늦게 나를 발견한 광신도들의 고함이 이쪽을 향한다.

하지만 총구를 마주한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닌 온몸을 강타하는 역겨움이었다.

귀에는 짙은 이명이 끼고 발끝에서부터 뜨거운 피가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부끄러움이다.

나 스스로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는 위안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다.

왜 나에게 도움을 주었어요? 왜 생판 모르는 아이를 구했어요?

이곳으로 달려오는 내내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모든 물음은 거울이 눈앞에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 나에게 날아왔다.

‘왜 생판 모르는 아이를 구했어요?’

‘- - - - - - - -.’

차갑고 어두운 고시원에 갇혀 누군가 나를 구해주길 얼마나 기다렸던가.

고독함과 외로움에 파묻혀 사장될 뻔한 나에게 신이 구원의 손길을 보내길 얼마나 기다렸는가.

하지만 그 간절한 바람을 듣고 나를 구한 것은 신이 아닌 차 밑에서 떨고 있는 조그마한 아이였다.

구함으로써 내가 구원받는다. 손을 잡아줌으로써 스스로가 인간임을 자각한다.

소중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나를 옭아매고 있던 비겁함의 사고는 지금 이 순간 모두 풀려나갔다. 그리고 나는 어렵다고 생각하던 그 물음에 이제 대답할 수 있었다.

‘그래야 했으니까.’

철컥, 탕-!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 들고 방아쇠를 당기자, 온몸을 휘감고 있던 족쇄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앞을 가로막고 있던 자가의 거울은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 깨져나갔고 총구에서 뿜어져 나간 총알은 제이콥에게 총을 발사하려던 놈의 머리통을 깨부순다.

온몸을 강타하는 격발의 여운과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듯 달아오르는 머리끝.

나는 온몸에 번쩍거리는 전기신호를 부여잡으며 무언의 비명을 질렀고 이내 방아쇠와 조준선을 눈앞에 세운다.

탕탕-! 탕!

내 품에서 권총이 나올 줄 몰랐던 나머지 놈들은 찰나의 순간을 한 번 더 양보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나는 확대와 축소를 반복하는 동공의 두근거림을 따라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고 호주머니에서 황급히 총을 꺼내 들려는 두 놈의 목과 머리를 꿰뚫었다.

하지만 손이 모자란 상황만은 어쩔 수 없었기에 나는 이쪽으로 날아드는 총탄을 피해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허벅지와 오른쪽 어깨에 느껴지는 극심한 고통, 내가 총에 맞는 것을 확인한 순간 제이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놈들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피가 흐르는 부위를 재빨리 부여잡으며 입술을 악물었다.

“- - - - -끄윽.”

주변에 엄폐물이 없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일어나서 놈들을 죽여야 한다.

나는 마치 차에 치인 동물처럼 피 웅덩이 사이에서 미친 듯이 발버둥 쳤고 피를 흠뻑 머금은 땅을 손바닥으로 짚으며 균형감각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에 연장선이라도 된 듯 자연스럽게 잡힌 권총의 그립감과 함께 나머지 두 놈을 향해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탕, 탕!

두 발의 총성과 함께 쓰러지는 광신도들.

얼굴이 엉망진창이 된 제이콥은 넋을 놓으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웅크리고 있던 릴리는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슥 닦으며 내 상처 위에 손을 올려두었다.

난리가 난 도시와 사방에서 느껴지는 놈들의 발소리.

나는 그대로 손을 뻗어 망연자실하고 있는 부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갑시다.”

여기서 쓰러지기엔 각오가 아직 무뎌지지 않았다.

나는 심장에 강철을 심으며 바닥에 떨어진 소총을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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