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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249화 (249/313)

# 249

2부 46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내가 한 걸음을 디디면 그 옆에 놈이 같이 한 걸음 디딘다.

내가 두 걸음을 디디면 또 다른 놈이 두 걸음 디딘다.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들처럼 밤 속을 거니는 놈들은 그렇게 하염없이 걸어만 다닌다.

그리고 멍청하게 걸음을 걷다가도 인간의 소리가 들리면 마치 혈관에 끓는 기름을 부어 넣은 듯 팔다리가 미쳐 날뛰기 시작한다.

죽여라, 찢어라, 먹어라. 들리지는 않지만, 분명 형체를 이루고 있는 그 속삭임은 따로 존재하되 같이 생각하는 군집을 움직이게 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걸까? 머리에는 노이즈가 끼고 시야는 흔들린다.

‘- - - - - - -!’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아파트에서 짙은 노이즈를 깨부수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간 아이만이 낼 수 있는 그 연약한 울음소리.

순간 미쳐 날뛰기 시작하는 팔다리 근육은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폭식 욕구로 들어찬 머리는 폭탄이 터지듯 하얗게 변한다.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아파트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한 무리.

나 또한 그 무리와 합세해 아기 울음소리를 쫓아 달렸다. 그리고 저 멀리 아파트 현관에는 이미 선객으로 온 검은색 물체들이 아파트 안쪽을 향해 들이치기 시작했다.

‘- - - - -.’

그리고 내 입에선 그놈들과 똑같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얗게 변한 정신 사이로 작은 의문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곧 몰려오는 식욕은 뚜렷한 정신조차 잡아먹어 버린다.

아이의 울음소리, 창문이 깨지는 소리, 여자가 우는 소리. 몸을 이리저리 흔들던 놈들은 그 소리가 들리는 하늘을 바라보았고 나도 그 군집을 따라 고개를 들러 올렸다.

눈이 부시도록 맑은 별과 어둠. 비록 먼지가 낀 망막 때문에 눈앞은 흐릿했지만, 흐릿함 사이로 보이는 맑은 은하수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감상도 잠시, 별빛 사이로 무언가가 버둥거리는 물체가 뚝 떨어졌다.

철퍽.

고기가 짓이기는 소리와 함께 무리 한가운데 떨어진 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아이와 그 엄마였다.

아파트 밖으로 몸을 던진 그들은 다행히 즉사한 듯 움직임이 없었지만 죽어버린 동공 사이에서 우리의 끔찍한 모습을 비쳤다.

하지만 주변에 즐비한 놈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곤죽이 된 시체로 달려들어 입안 가득 고기와 피를 밀어 넣었고 세상은 곧 핏빛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끔찍했다. 구역질이 났다. 그 불쾌함은 시체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닌 고깃덩이를 향해 식욕을 느끼는 나에게서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통제권을 잃었고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회색 도시는 낮과 밤이 반복되는 단조로운 곳이었다.

놈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쁨은 오로지 살아남은 생존자를 발견할 때만 느껴질 뿐이었고 하얗게 변하는 시야와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이 기분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안개가 가득한 빌딩 숲에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 - - -삐리리리리!’

모든 것이 녹슬고 재처럼 흩어진다.

하지만 멀지 않은 그 순간, 저 멀리 고시원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전화벨 소리가 깊은 공허에 빠져있던 나를 깨운다.

잠들어있던 회색 도시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그 소음, 군집들은 당연히 소리가 들리는 고시원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고 통제권을 잃은 내 몸도 흔들리는 시야만을 남긴 채 그곳을 향해 뛰어갔다.

또 어떤 생존자가 남아 먹이가 될까, 얼마나 같은 광경을 봐야지 이 악몽이 끝날까.

나는 흔들리는 시야에 넋을 잃은 슬픔을 담으며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고시원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내 걸음은 멈췄다.

‘- - - - - -아.’

한 겁쟁이가 고시원 창문을 빠져 나와 화단에 형편없이 쓰러진다.

발목을 삐기라도 했는지 비틀거리면서 어둠에 몸을 숨기는 겁쟁이.

하지만 그 의지만큼은 꺾이지 않았는지 그 남자는 몰려오는 놈들을 피해 차가 깔린 도로를 향해 뛰어갔고 등에 멘 작은 키티 가방을 이리저리 흔들며 빼곡한 차의 미로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한 아이가 숨어있는 새장을 향해 손을 내민 인간 곽동윤은 가장 먼저 스스로를 구하고 생전 처음 보는 타인을 구한다.

막혀있던 숨이 터져 나온다. 죽어있는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는 망막에 쌓인 어둠을 긁어내며 도망가는 그 둘을 향해 손을 뻗었고 주변에 즐비한 놈들은 나와 반대로 분노의 고함을 터트리며 그 남자의 뒤를 쫓아간다.

그리고 나는 이 회색 도시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자유의지를 달고 그 남자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무리를 빠져나온다. 숨이 거칠다.

뛰면 뛸수록 몸을 옥죄고 있던 족쇄는 떨어져 나가고 내 얼굴과 이마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기억을 방해하던 표피를 한 가닥, 한 가닥 회수해간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아이를 안은 남자는 계단을 넘고 또 넘어 별들이 헤엄치는 산으로 올라갔고 나는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 썩어 들어가던 내 몸을 확인한다.

그러자 놈들을 닮았던 팔과 다리는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고 썩은 시체 냄새만이 가득하던 품 안에는 따뜻한 아이가 안겨 내 차가운 체온을 덮어주고 있었다.

죽은 동공을 비춰 확인했던 내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회색 도시는 장벽 밖을 달리며 보았던 그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안은 겁쟁이는 그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산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그래, 아직 살아있다.

*       *       *

“- - - - -쿨럭.”

마치 블랙홀 같았던 트리니티강은 다리에서 떨어진 나를 단숨에 집어삼켰고 작살총에 의해 끌려 나온 변종 놈 또한 대자연의 힘 앞에 너무나 손쉽게 무릎을 꿇었다.

수영을 치지 못할 정도로 격한 조류 속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몸.

가뜩이나 지친 정신은 거칠게 휘둘리는 물에 모든 것을 맡기게 했고 나는 죽음을 직감하며 놈과 연결되어있는 밧줄을 꼭 붙들었다.

그리고 새까만 심해 속으로 의식과 몸이 사라질 무렵 나는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눈을 뜨자 몰려오는 것은 죽음의 공허함이 아닌 온몸에서 느껴지는 격통이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격한 숨을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고 하얀 막이 씌어있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온몸을 버둥거렸다.

그러나 양손에 묶여있는 무언가의 속박은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으며 대검이 있어야 할 허벅지는 허전하기 그지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왜 묶여있는 거지? 열심히 버둥거리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 나는 내 몸이 물속이 아닌 포근한 침대 위에 놓여있다는 걸 자각할 수가 있었다.

“어-! 아이어으아!”

그리고 내가 속박을 끊기 위해 힘을 주려는 그 순간 바로 오른쪽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어눌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진정하라는 듯 내 이마를 손바닥으로 조용히 덮은 그 여인은 연약한 손길을 움직여 버둥거리는 내 몸을 힘없이 부여잡는다.

말을 할 줄 모르는지 마치 원시인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그녀, 나는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놀라면서도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 - - - -.”

하지만 모든 게 당황스러운 그 순간에도 내 팔을 부여잡은 여인은 나에게 물을 주려고 하는지, 바짝 마른 입술 위로 시원한 물방울이 똑똑 떨어트려 주었다.

그러자 한순간 몰려오는 극심한 갈증과 이성을 뒤엎어버리는 본능.

나는 입을 쩍 벌리며 쉴 새 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물은 지체 없이 목구멍으로 넘겨 보낸다.

그러자 흐릿하던 정신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기 시작했고 나는 가장 먼저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앞을 확인했다.

“릴리, 물러나!”

하지만 내 눈앞에는 익숙한 오두막 풍경이 아닌 처음 보는 방안에 외관이 보였고 문을 박차고 들어온 한 털북숭이 남성은 여인을 릴리라고 부르며 나에게 산탄총을 겨누었다.

그러자 나에게 물을 먹여준 릴리는 또다시 어눌한 말소리를 내뱉으며 총구를 돌리라는 듯 산탄총을 밀어냈고 털북숭이 남자는 나를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내 양손을 침대에 속박해둔 두꺼운 밧줄과 온몸에 꼼꼼하게 감겨있는 붕대들.

정황상 이들이 강으로 떠밀려온 나를 살려준 것 같은데, 털북숭이 남자는 왜 저런 적대를 풍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가장 먼저 몸에 힘을 빼며 남자에게 진정하라는 듯 말을 걸었다.

“진정하세요. 손이 묶여있어서 본능적으로 그랬습니다.”

그들이 나를 왜 묶어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릴리라는 여성은 나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산탄총을 겨누고 있는 저 남성 또한 눈동자에 살의가 아닌 경계와 두려움을 품고 있었고 덜덜 떨리는 손은 사람을 전혀 죽여본 적 없는 순박한 사람이란 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싸울 이유가 없다. 저들은 목숨을 살려 준 은인이고 이런 오해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물음에 남자는 이를 아득 갈며 말했다.

“교주랑 무슨 관계야.”

교주? 무슨 교주? 나는 그 물음에 뜻을 이해할 수가 없어 멍청한 얼굴로 남성을 바라봤고 릴리라고 불리는 여성은 무엇을 그렇게 말하고 싶은지 있지도 않은 힘을 써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뱉어가며 남자의 산탄총을 밀어냈다.

하지만 자리에 서서 꿈쩍 않는 그 남성은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더욱더 의심이 가는지 총구로 내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을 강가에서 데려왔을 때 거의 반송장 상태였어. 나도, 릴리도 상처를 치료하면서 중간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겨우 이틀이야, 이틀! 이틀 만에 그 중상이 치료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시치미 뗀다고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마! 그 빌어먹을 광신도 교주랑은 무슨 관계야!”

알지도 못하는 신이 또 한 번 구해주었는지 물살에 떠밀려간 나는 사람이 왕래하는 강가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여기까지 나를 데려와 치료해준 사람은 저 남성과 릴리가 맞았다.

하지만 내가 억울한 변명을 하기도 전에 남자의 입에서는 또다시 광신도라는 집단의 이름이 나왔고 그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교주라는 존재가 내 고막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교주? 신도가 있으니 당연히 교주가 있을 것이다. 나는 순간 라디오에서 목이 찢어지라고 아버지를 울부짖는 그 남성의 목소리를 기억해내며 황급히 남자를 향해 대답하려고 했다.

“- - - - -부우우웅.”

“- - -끼이이익!”

하지만 그 순간 밖에서 불현듯 들려온 엔진 소리는 내 말문을 틀어막았고 창밖으로는 여러 대의 트럭들이 거친 스키드 소리를 내며 집 앞에 멈춰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나를 향해 씩씩거리던 남성은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채 황급히 산탄총을 서랍에 숨겼다.

그리고 트럭이 집 앞에서 멈추자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한 릴리는 황급히 남성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순간 두려움에 휩싸이는 안방과 저 멀리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고함.

다시 한 번 나에게 시선을 던진 남자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쿵쿵-!

“24601! 빨리 쳐 나와!”

그리고 남성이 나에게 화를 내기도 전에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현관문을 부실 듯 두드리며 죄수 번호와 같은 숫자를 호명했다.

그러자 남자의 품속에서 떨고 있는 릴리는 거의 경기를 일으킬 듯 떨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고 남자는 눈을 질끈 감으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마치 저승사자를 본 듯 심하게 반응하는 그들의 태도. 나는 주변 분위기를 살피며 조용히 창밖을 보았고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멈춰있는 트럭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 - - - - -.”

‘시치미 뗀다고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그 빌어먹을 광신도 교주랑은 무슨 관계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남성의 고함과 트럭에 새겨진 익숙한 문장.

나는 교회에서 광신도 놈들이 낙서처럼 그리던 그 문양을 단번에 기억해내었고 이내 저 순박한 부부가 이토록 떨고 있는 이유를 대략이나마 눈치챌 수 있었다.

언제 정신을 잃었냐는 듯 팽팽 돌아가는 머리와 힘이 들어가는 팔근육.

나는 조용히 눈동자를 굴리며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광신도 무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덮고 있는 이불을 소리 없이 치우며 현관문을 열기 위해 나가는 남성의 뒷모습을 조용히 살핀다.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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