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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248화 (248/313)

# 248

2부 45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후욱, 후욱.

비틀비틀 걸어가며 트럭까지 용팔이를 옮긴다.

녹진한 숨과 주변을 가득 메우는 어둠은 내 몸을 무겁게 만들었고 단내와 피 냄새가 진하게 섞인 입안은 삐거덕거리는 심장을 미친 듯이 박동 잘 시킨다.

쓰러질 것 같다. 몸과 옷에 묻은 피가 발목을 붙잡는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멈추는 순간 모든 극이 막을 내리고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광경을 더는 볼 수 없었을 것 같았으니까.

한 번 넘어지고 재빨리 일어난다. 두 번 넘어지고 재빨리 일어난다.

뒤에서는 노인이 놈을 묶어두는 폭발음이 미친 듯이 울리고 저 멀리서는 시체를 물어뜯고 있던 블랙 라인이 소리를 듣고 이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지옥문이 열렸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

폐부에 차오르는 피를 내뱉고 이를 악문다. 그러자 정신을 잃은 용팔이가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 - - - - -아아!”

포기할 수 없다. 나는 단말마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용팔이를 들어 올렸고 이내 트럭 짐칸에 무사히 태운다.

그리고 기계처럼 권총을 장전하며 짐칸 한쪽에 놓인 소총을 잡아 올렸다.

쾅-! 그러자 뒤에서는 3번째 폭발음과 함께 이를 악문 노인이 이쪽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었고 짙은 이명과 정신 속에 빨리 올라타라는 고함이 들려온다.

저 뒤에서는 놈이 화염에 휩싸인 채 버둥거리고 있었고 어두운 숲속은 노인이 만들어낸 화염으로 불타오른다.

모든 광경은 마치 꿈결처럼 몽롱하게 지나간다. 하지만 내 몸은 어느새 트럭 위로 올라타고 있었고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노리쇠를 힘껏 당긴다.

“동윤아!”

그리고 트럭까지 미친 듯이 달려온 노인은 피투성이 된 우리를 보며 이를 악물었지만 이내 냉혹한 현실을 빠르게 자각하며 나에게 유탄발사기와 탄두가 달린 가죽띠를 던졌다.

저 뒤에서 화염에 휩싸인 채 발광하고 있는 녀석, 하지만 그것이 시간 끌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유탄발사기를 받으며 다시 재장전을 마쳤고 동시에 운전석 문을 열고 들어간 노인은 엔진의 시동을 걸며 거침없이 액셀을 밟았다.

- - -부웅!

거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타이어와 한순간 뒤로 쏠리는 몸.

나는 장전을 끝낸 유탄 발사기를 옆에 내려놓으며 내 피인지 아니면 용팔이의 피인지 모를 끈적한 액체를 얼굴에서 닦아 내었다.

그리고 재빨리 손전등을 꺼내 한쪽에 쓰러져있는 용팔이를 향해 기어가자 트럭 바닥에 흥건하게 무리를 이루고 있는 피의 향연이 시야에 들어왔다.

턱하고 막히는 숨과 의료품을 찾아 정신없이 움직이는 손. 나는 손전등을 입에 물고 용팔이의 겉옷을 벗겼다.

“- - - - - -.”

피가 섞인 침을 삼키며 심장박동에 귀를 기울이자 미약하지만, 아직 붙어있는 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손전등을 비추며 살펴본 상처는 다행히 관통이 아닌 깊숙한 자상이었고 출혈만 잡으면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내 머리에선 폭죽이 터지듯 희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이곳에서 벗어나고 있는지 미친 듯이 흔들리는 트럭. 나는 용팔이가 튕겨 나가지 않게 꾹 누르며 가방에서 붕대와 지혈제를 꺼내 용팔이의 출혈을 잡기 시작했다.

멍청한 녀석, 미련한 녀석.

차라리 겁쟁이처럼 도망가지 또 나를 살리겠다고 여기까지 뛰어왔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얀색 지혈제를 뿌리며 미친 듯이 붕대를 감았고 의식을 잃어 완전히 창백해진 용팔이 얼굴에 피를 닦아 주었다.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와 저 뒤에서 느껴지기 시작하는 놈의 기운.

우리가 타고 있는 트럭은 지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어디인지 모를 낙원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있는 힘껏 붕대를 조여 용팔이의 출혈을 잡았고 이내 저 한구석에 뒹굴고 있는 유탄발사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 - - 키히힉- - -!”

내가 유탄발사기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트럭이 달려온 길 뒤로 끔찍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위험을 경고하듯 어둠 속에서 미친 듯이 흔들리는 나뭇가지들, 머릿속에 새겨진 위험 본능은 다시 한 번 꿈틀거리며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고 시선을 돌린 칠흑에는 얼굴에 증오를 담은 변종 놈이 트럭을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노인이 발사한 유탄을 맞고도 죽지 않는 변종은 자신의 몸을 태워버린 우리를 찢어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피와 그걸 삼기도 전에 터지는 고함. 나는 쉴 새 없이 핸들을 꺾으며 산길을 파헤쳐 내려가는 노인에게 외쳤다.

“따라와요!”

저 끔찍한 변종을 제외하고도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블랙 라인.

우리는 언제 전복될지 모르는 트럭 한 채를 동아줄 삼아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고 곧 길옆에 펼쳐지는 넓은 평야를 마주했다.

하지만 산과 빠르게 멀어지고 있음에도 마치 타오르는 불같은 놈의 존재감은 더욱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내 피부와 목덜미는 다가오는 위험에 반응해 찌르르 울려온다.

이 빠른 트럭을 따라붙고 있는 놈과의 거리는 겨우 200m. 나는 노인이 넘겨준 유탄발사기를 조준하고 거미처럼 네발로 기어오는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퐁,

쾅-!!!

맥 빠지는 발사음과는 반대로 땅에 떨어진 탄두는 격한 폭발음을 내며 다시 불의 꽃을 피웠다.

하지만 한번 유탄을 맞아본 영악한 녀석은 그 느린 탄두를 너무나 가뿐하게 피해 내며 불꽃을 헤치고 나왔고 웃는 것인지 화를 내는 것인지 모를 기괴한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친다.

절대 놓치지 않는다, 여기서 살려 보내지 않는다.

지구상 그 어떤 맹수보다 집요하고 악랄한 놈의 집착은 조용하기만 하던 밤을 끓어오르는 타르처럼 질척하게 만들었다.

- - -따다닥! 딱! 따닥!

하지만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정신을 잃은 용팔이를 몸을 가리며 소총을 꺼내 들었고 이내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놈을 향해 총알을 난사했다.

빛이 펑펑 터지는 총구와 감각이 없어진 몸, 유일하게 느껴지는 파동은 그뿐이다.

탄피가 나비처럼 날아가는 공간을 바라보는 눈은 점점 감기기 시작하고 손끝은 흘린 피와 더불어 차가워진다.

어디지?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거지? 이리저리 흔들리는 트럭 위에서 나는 총을 발사하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버텨!!!”

끼이이익-!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이제는 목소리가 완전히 쉬어버린 노인이 나에게 처절한 고함을 내지르며 핸들을 꺾었다.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 거대한 나무와 스키드를 남기며 비명을 지르는 타이어.

우리는 숲을 완전히 빠져 나와 양쪽에 커다란 평야가 나 있는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더 움직이지 않는 오른쪽 손을 짐칸 바닥에 내려찍으며 한 번이라도 더 장전하기 위해 발악했다.

이제는 100m 앞으로 다가온 변종과 폭발음을 따라 방향을 변경한 블랙 라인이 변종의 눈치를 보며 이쪽으로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사방에서 우리를 옥죄어오는 위험과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바닥에 고인 지옥 불.

나는 점점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바닥에 놓으며 미약한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숨소리만큼이나 작은 중얼거림이 트럭 짐칸 한구석에서 조용히 들려왔고 죽어가는 필라멘트에 마지막 뇌리를 불어넣듯 내 몸에 힘이 들어간다.

“- - - - 형, 형님.”

바닥에 깔린 피와 그 사이를 뒹굴고 있는 탄피.

내가 눈앞에 보이는 질척한 현실을 헤치며 고개를 돌리자 한쪽 눈을 겨우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용팔이에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혈제와 붕대가 제 역할을 했는지 점점 멎어가기 시작하는 출혈.

비록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충분히 소생 가능하다는 희망이 내 정신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마치 쥐가 난 듯 감각이 없는 오른손을 피가 날 정도로 물며 용팔이를 향해 기어갔고 이내 연신 물을 찾는 입에 얼마 남지 않은 물을 흘려주었다.

“쿨럭!”

하지만 정신없이 물을 마시던 용팔이는 얼마 있지 않아 거친 기침 소리와 함께 물을 내뱉었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나와 노인, 그리고 에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들의 이름.

용팔이가 보고 있는 것이 주마등일지 아니면 살고자 하는 의지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놈들의 살의와 종장을 향해 달려가는 트럭의 방향.

나는 탄두가 다 떨어진 발사기를 트럭 한쪽에 던져 넣으며 소총의 탄창을 교환했다.

부우우우웅-!

거친 산길을 파헤치고 내려오느라 트럭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분명 포장된 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더는 속도가 붙지 않는 트럭과 검은색 연기가 솟아오르는 보닛.

노인은 말을 듣지 않는 트럭에 화를 내며 액셀을 미친 듯이 밟았고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놈은 너무나 가뿐하게 총알의 비를 가로지른다.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변종의 흉측한 이빨과 저 멀리 평야에서 띠를 이루는 검은색 빛의 놈들.

나는 격동하는 심장과 주기가 짧아진 숨을 훅 훅 내뱉으며 마지막 탄창 교환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만 더 가면 빠져나가니까, 버텨!”

놈들은 어떻게 따돌린다고 해도 저 변종에게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며 백미러로 나와 용팔이에 상태를 확인하기 바빴다.

그래, 알고 있다. 언제나 목숨을 걸어야 했던 사선의 연속, 여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발목을 잡는 녹진한 밤.

나는 이제는 완전히 감각이 사라진 차가운 손을 내려다보며 눈을 감고 미약한 숨을 내뱉고 있는 용팔이에 모습을 조용히 교차한다.

저 멀리 산등성이에 주황빛 여명이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고난에도 절대 녹지 않았던 각오를 심장에 새긴다.

“……놈들을 따돌리고 빅벤드 마을에 의사를 찾아가요. 아프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으니까, 용팔이를 그냥 보내지는 않을 거예요. 만약 서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몰래 잠입해서라도 의사만 만나요, 알았죠?”

“뭐?”

마음이 가라앉는다. 쉴 새 없이 내뱉은 말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이질감을 눈치챈 노인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지만, 나는 마지막 탄창을 끼워 넣은 소총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좌

우로 미친 듯이 흔들리는 트럭에 맞춰 놈에게 총알을 난사했다.

몸에 감각이 없다. 하지만 정신은 또렷하다. 시야가 흐리다. 하지만 머리는 맑았다.

나는 마치 기나긴 종점에 도착한 듯 부정적인 요소를 모두 뱉어냈고 온몸에 뚝뚝 흐르는 피를 떨쳐내며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놈에게 모든 것을 집중했다.

“- - - - - -.”

이명이 고막을 가득 채운다. 아까 전부 타올라 버린 피가 다시 한 번 들끓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감각이 피부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느려진다, 더 느려진다. 검지가 방아쇠를 누르고 정렬된 총구는 점점 놈을 깎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리에 총알이 박혀도 아랑곳하지 않는 녀석은 자신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 나를 봐라. 트럭은 어느새 국도를 벗어나 트리니티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들어섰고 나는 저 아래에서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흐르는 강물을 통해 위기가 만들어준 분기점에 도착했음을 직감한다.

철컥-!

그리고 노도와 같이 놈을 저지하던 총알은 바닥을 들어냈는지, 빈 공이를 치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려왔다.

아무리 당겨도 나아가지 않는 총알. 나는 미련 없이 소총을 바닥에 던지며 짐칸에 실려 있는 장비 가방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점점 나빠지는 트럭 상황에 운전에 집중하는 노인과 정신을 잃고 늘어져 있는 용팔이.

나는 용팔이가 일어나기라도 할까, 조용히 피와 땀으로 물든 얼굴을 닦아 내리며 장비 가방에서 작살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점점 느려지는 트럭을 따라잡은 놈의 울음소리가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간다.

“히힉킥 힉-!”

드디어 잡았다! 놈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짜증과 적의는 어느새 환희로 바뀌어 있었고 불과 10m를 앞둔 거리는 내 머릿속에 경종을 완전히 깨부순다.

다시 한 번 느려지는 시간과 놈을 향해 뛰쳐나가는 나의 몸. 숨이 멈추고 눈은 번쩍 뜨인다.

동시에 왼손에 잡힌 대검은 앞으로 향하지만, 놈은 마치 하루살이를 쫓듯 내 몸을 강하게 쳐내며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저항할 수도 더는 버틸 수도 없다. 나는 숨이 끊어지는 충격과 함께 트럭 밖으로 떨어져 나갔고 너무나 덧없이 다리에서 벗어나 드높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른다.

저 아래는 지옥이다. 이 세상은 지옥이다. 나는 언제나 꿈속에서 봤던 그 풍경을 바라보며 허공에 떠오른 채로 작살총을 부여잡았다.

0.1초, 0.2초, 중력이 나를 끌어당기고 앞서 달려가는 트럭은 서서히 멀어진다.

하지만 처절한 각오가 나에게 허락한 유일한 기회는 단 한 번뿐인 찰나의 순간을 허락했고 나는 트럭에 올라타 미친 듯이 웃고 있는 놈에게 작살총을 조준했다.

모든 것이 느려진다. 온몸에 감각이 사라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방아쇠를 잡은 내 검지만큼은 단말마와 같은 부름에 응답해주었다.

방아쇠를 당긴다.

팡-!

“- - - - -?”

놈의 가슴팍을 정확하게 뚫고 들어간 털보 표 작살총은 그대로 칼 날개를 펼치며 놈의 살점을 부여잡는다.

앞으로 나아가는 트럭과 강물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매개체. 나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 작살총에 밧줄을 내 몸에 연결했고 놈은 그대로 트럭 밖으로 튕겨 나가며 나와 같이 강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 도로의 끝은 해가 뜨는 다음날이다. 모든 것을 씻어 내리는 강물이 밤을 집어삼키면 아침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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