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7
2부 44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허상이 아니다.
시야에 변종이 들어온 순간 터져 나오는 감각의 노도는 자신이 늦었다고 비명을 질렀고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죽음의 냄새가 내 코끝을 맹렬하게 강타한다.
팽팽 돌아가는 눈과 느려지는 공간, 하지만 용팔이는 그 순간에도 변종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길게 하품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반걸음, 반걸음, 그리고 또 반걸음. 더 빨리 가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마치 물속과 같은 공간을 해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을 놀렸다.
“- - - - - -.”
하지만 그 변종 놈은 느려진 공간 속에서도 나와 비슷한 속도를 내며 차 밑에서 기어 나왔고 이내 그 끔찍한 모습을 눈앞에 드러냈다.
오물인지 아니면 진물인지 모를 액체를 뚝뚝 흘려대는 검은색 몸체와 반대로 얼굴만큼은 하얀 기괴한 모습.
피를 발라놓은 듯 새빨간 입술은 올라가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이죽거렸고 얼굴에 박힌 검은색 눈동자는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는 용팔이에게 향하고 있었다.
머리에서 연신 울려 퍼지는 위험신호는 내 감각을 피해내는 저놈이 여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변종인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변종화 이후로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었던 처절한 생존본능이 지금만큼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도망쳐라, 저놈에게서 빨리 벗어나라. 아니면 죽는다.
“- - - -아아!!!”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리가 없는 나는 당장이라도 멈출 듯 딱딱하게 굳는 오금을 채찍질하며 본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고함을 내질렀다.
마치 물속에 갇힌 듯 양팔에 느껴지는 두려움의 저항감. 하지만 나는 모든 본능과 감각을 전면으로 부정하며 근육을 움직였고 가까스로 홀더에 들어가 있는 권총 손잡이를 붙잡았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발놀림에 그대로 중심을 잃는 몸, 하지만 그와 반대로 눈동자는 닭의 목이 움직이듯 변함없이 놈의 하얀색 얼굴을 직시하고 있었었다.
두 쿵, 두 쿵. 심장 소리가 온몸을 북처럼 울리고 진동이 널뛰기할 때마다 시야가 퍼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한다.
그토록 나를 힘들게 하던 변종화가 놈보다 더 빠르지 못할 거란 속삭임을 이겨내고 용팔이를 죽이기 전에 움직이게 해준 것이다.
“형님?”
- - -딱!!!
용팔이가 나를 부르고 0.2초. 거의 동시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나는 총구를 정렬했고 이내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조금만 조준을 잘못했어도 용팔이의 머리가 터졌을 아슬아슬한 상황, 하지만 내 총알은 용팔이에 머리가 아닌 그 옆에서 목을 자르려는 놈의 손으로 향했다.
그러자 목 옆을 지나가는 총알과 흉측한 손톱이 완전히 교차하며 더러운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놈의 손가락이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총구에서 흘러나오는 화약 연기처럼 코에서 내려지는 녹진한 숨, 성공적으로 놈의 공격을 저지했지만 내 본능은 더욱더 밀쳐 날뛰며 도망치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총을 놓지 않았다.
“어?”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데, 보통 인간인 용팔이는 오죽할까.
이 어두운 공간에서 겨우 놈의 존재를 발견한 용팔이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주춤거렸지만, 용케 전투 본능만은 잊지 않았는지 총을 꺼내 어둠 속에 가려진 놈을 조준하려고 했다.
“- - - - - -.”
하지만 총알에 의해 손가락이 날아간 변종 놈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날아간 자신의 중지와 검지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조용히 나머지 손가락을 까닥거렸고 얼굴에 고통의 호소도 두려움도 아닌 순전한 호기심을 담는다.
자신이 잡으려는 개미에게 물린 모습이 딱 이런 얼굴일까, 나는 머리에 연신 울려 퍼지는 경종에 이를 악물었고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는 놈을 향해 드디어 제대로 조준한 총을 발사했다.
딱-! 딱딱딱!
하지만 기괴한 웃음을 매달고 있던 놈은 붉은색 입술을 반대로 내리며 소름이 돋는 울상을 지었고 너무나 가뿐하게 트럭 아래로 내려가 총알을 피해낸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머리를 까닥이는 그 모습이 꼭 광대와 같았지만, 나는 그 소름 끼치는 울상에서 치명적인 살의와 본능이 보내오는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했다. 캠프로……, 캠프로 용팔이만큼은 살려서 보내야겠다고. 나는 목이 찢어지라고 고함을 지르며 다른 손으로 대검을 뽑아 들었다.
“- - 도망가!!!”
놈을 잡고 있을 동안 빨리 도망가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내뱉은 처절한 단말마가 끝나가는 그 순간 놈의 형체가 흐릿해지면서 흉측한 얼굴과 몸뚱이가 내 눈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놈이 화가나 목표를 바꿨다는 것에 안도를 느끼며 들고 있는 대검을 힘껏 앞으로 찔러 넣었다.
마치 돌을 쑤시듯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저항감과 놈의 머리통을 박살내기 위해 가슴팍으로 당겨오는 권총.
하지만 공격에 여파는 놈에게 충격을 입히는 것이 아닌 마치 딱딱한 콘크리트 벽에 몸을 들이박듯 치명적인 반작용으로 다가왔다.
“컥-!”
겨우 인지가 가능한 속도로 나를 공격하고 모든 것을 잡아내는 감각을 피해내는 움직임.
여태 만났던 변종의 능력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신 개체 앞에 나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녀석이 나왔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과는 반대로 시야는 거꾸로 뒤틀리며 붉게 물들었고 몸에 느껴지는 부유감으로 내 몸이 어딘가로 튕겨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형님!!!”
온몸에 느껴지는 격통에 순간 숨을 뱉으며 정신을 잃었다. 마치 필라멘트가 터지기라도 한 듯 사고를 멈추는 머리와 정신.
하지만 저 멀리서 찢어지라 나를 부르는 용팔이의 목소리에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팔은 본능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놈의 몸통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내 손의 칼인지 아니면 연장선인지 모를 대검을 놈에게 대못처럼 박아 넣으며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얼굴에 진득한 액체가 묻어난다. 나는 뜨기 힘든 필사적으로 눈을 뜨며 푸들푸들 입꼬리를 떨고 있는 놈과 마주했다.
속도에서도 밀린다. 힘에서도 밀린다.
승리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도 없는 강대한 적 앞에 나는 죽음을 각오해야 할 녹진한 숨을 내뱉으며 놈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온몸에서 터지는 피와 고통은 내 입에서 비명을 끌어냈고 손아귀에 쥐고 있는 대검은 고통을 원동력 삼아 움직이며 돌처럼 단단한 놈을 난도질한다.
“- - - - -!!”
하지만 그 순간 저 멀리서 다시 한 번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이명과 함께 들리더니 흐릿한 시야 사이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용팔이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함께 뒤엉키는 놈 때문에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는지 총 끝에 대검을 착검하고 뛰어오는 용팔이.
그래, 녀석은 항상 그랬다. 체구도 작고 겁이 많아 항상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동료를 위해서라면 망설임 없이 목숨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 모습이 너무나 미련하고 바보처럼 보여 나는 내 목을 물어뜯기 위해 입을 벌리는 놈의 머리를 밀어내며 고함을 질렀다.
“오지 마!! 가! 가라고!”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였는지, 놈에게 나는 지옥의 냄새는 내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 만큼 치명적이었다.
농축된 살의와 그저 죽이기 위해 태어난 존재. 흉측한 이빨과 날카로운 손톱을 피해내는 내 근육 다발을 비명을 지르며 끊겼고 놈과 함께 바닥을 뒹구는 몸은 피범벅으로 변해갔다.
용팔이나 노인이 덤빈다면 정말 1초도 되지 않아 목숨이 뺏길 놈의 위력.
나는 일행들이 트럭을 몰고 도망칠 동안 최대한 놈을 붙잡으며 이곳에서 멀어지기 위한 발버둥 쳤다.
“- - - - -.”
그리고 여전히 광대 같은 울상을 지은 채 내 몸을 난도질하는 그놈은 그간 변종에서 느낄 수 없었던 무 감정이라는 얼굴로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아무리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궤적과 필사적으로 피해 보려고 해도 몸에 새겨지는 상처.
그리고 이제 한계가 왔는지 내 오른쪽 어깨는 인지하지 못한 날카로운 손톱에 꿰뚫렸고 상처 부위는 타오르는 고통과 함께 붉은 피가 팍하고 터져 나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다리, 대검을 잡은 손에 힘이 풀리고 나는 붉게 변한 시야 사이로 내 목을 향해 날아오는 놈의 마지막 공격을 발견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권총과 대검, 나는 그 짧은 순간 죽음을 직감한다.
푹-!
“- - - - - -.”
살을 꿰뚫는 살벌한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내 입에서는 마지막 숨이 훅하고 빠져나갔고 미친 듯이 울리던 경종은 그대로 깨져버린다.
뚝 하고 흘러 내 머리 위에 떨어지는 검은색 피, 나는 눈가를 부들부들 떨며 살며시 눈을 떴고 완전히 무표정이 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놈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놈의 턱 아래 삐죽 솟아 나와 있는 대검의 칼날과 내 얼굴 위로 떨어지는 더러운 구정물의 피.
살을 가르고 들어가던 그 소리는 내 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놈의 목을 대검이 관통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용팔이가 있었다.
“흐으으…. 흐으…….”
변종들 앞에 인간은 그저 맹수와 마주한 초식동물일 뿐이다.
저항할 힘조차 없어 빠르게 도망가야만 하는 피포식자.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용팔이의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려왔고 얼굴은 죽은 송장처럼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녀석이 여기까지 달려오는데 얼마나 큰 각오가 필요했을까.
본능이 부르는 도주를 참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지만 용팔이는 나를 살리기 위해 여기까지 뛰어왔고 온 힘을 다해 돌처럼 딱딱한 놈의 목 위 뒤통수를 대검으로 찔렀다.
하지만 내 입에선 환호가 아닌 절망이 섞인 침음성이 터져 나왔다.
“안, 안돼…….”
용팔이는 그간 배운 훈련을 잊지 않았는지, 변종의 약점이라고 일컫는 목덜미 신경에 대검을 정확히 찔러 넣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공격으로는 놈이 죽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온몸을 버둥거리며 살의를 다른 방향으로 뻗으려는 놈을 막으려 했다.
대검, 권총. 잡혀라, 제발! 오른쪽 어깨에서 분수처럼 흘러내리는 피와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무기.
그리고 그 순간에도 얼굴을 찡그리는 놈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한 나는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무력함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제발 도망가, 제발 도망가! 그 외침은 긴 메아리처럼 입안을 맴돌다 너무나 덧없이 사라진다.
“안돼-!!!!!!!!!!!!!!!!!!”
- - - - -지이익, 푹!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용팔이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칠흑 같은 어둠에서 퍼져나오는 새빨간 선혈. 나를 덮친 놈은 어느새 상반신을 일으키며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뱉었고 성의 없이 휘두른 손톱 끝에는 내 비참한 마음만큼이나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야가 붉어진다. 숨이 막힌다. 그간 겪었던 모든 고통보다 더 격렬한 상실의 격동이 내 몸을 내려친다.
아아, 아아아! 나는 가슴팍에 피를 흘리며 주저앉은 용팔이를 향해 기어갔고 이마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핏물에도 눈을 감지 못했다.
아아…. 아…. 이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나는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필사적으로 뻗는 손끝에 고개를 떨구는 용팔이가 맺힌다.
“- - - -히이, 히, 히이.”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웃음소리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깨진 대검 날을 목덜미에서 뽑아내고 있는 놈의 흉측한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는지 목에서 끊임없이 검은 피를 흘리고 있는 변종 놈, 나는 온몸을 버둥거리며 바닥에 쓰러진 용팔이를 끌어당겼고 곧 흙 위에서 뒹굴고 있는 권총을 잡아 놈에게 겨냥했다.
이 숲에 깔린 어둠만큼이나 흐린 하늘과 붉은색 시야, 권총을 겨누고 있는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품에 안긴 용팔이는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어쩌면 종장이 다가온 걸지도 몰랐다.
“히힉킥 힉-!”
놈은 자신을 해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 품에 안겨있는 용팔이를 향해 고정된 시야와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는 고개.
내가 권총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녀석은 미친듯한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이쪽을 향해 달려왔고 나는 할 수 있는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해 놈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딱딱딱딱-! 하지만 놈 앞에서 빈약하기만 9mm 총알은 너무나 허무하게 막혀버렸고 빈 공이를 치는 찰칵거림이 이 빈 곳을 차지한다.
이를 악문다. 나는 마지막 박동일지도 모르는 심장과 대검을 부여잡고 용팔이를 내 뒤로 빼낸다.
하지만 그 순간 내 고막에선 무언가가 시원하게 뚫리는 소리가 죽음을 가로막으며 터져 나왔다.
퐁-!
“- - - - ?”
쾅-!!!
허공을 날아간 조그마한 탄두는 그대로 놈 몸체에 박혀 들어갔고 이 묵직한 어둠과 두려움을 단숨에 몰아내듯 큰 폭발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마치 모든 것을 정화하는 주황색 꽃처럼 피어오르는 불꽃. 아무리 많은 총알과 대검을 찔러 넣어도 멀쩡히 움직이던 놈은 인간이 만들어낸 공평한 반작용 앞에 그대로 뒤로 날아가며 비명을 질렀다.
코를 찌르는 화약 냄새와 익숙한 발걸음 소리. 용팔이를 꼭 끌어안은 상태로 고개를 돌리자, 빈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구식 유탄발사기를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 - -찰칵!
다시 탄두를 장전하고 유탄발사기를 들어 올린 노인은 바닥에 빈 담배를 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나는 피를 흘리고 있는 용팔이를 붙잡아 일으키며 피와 절망을 삼킨다.
트럭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살아있다, 아직 기회가 있다.
내가 놓지 않는 이상 아무도 죽지 않는다. 입에서는 피와 함께 아직 붙어있는 숨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