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46화 (246/313)

# 246

2부 43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발아래에서 느껴졌던 미세한 떨림은 분명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진동이었다.

더글러스 시티에서 얼마나 큰 폭발이 일어났는지, 한참 거리가 먼 이곳까지 그 여파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내분? 광신도들의 습격인가?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보는 나의 머리에선 모든 경우의 수가 빠르게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리는 작은 비명과 웅성거림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욱더 흐리게 만든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의 빠른 수습과 주민들의 침착함으로 캠프는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이연경을 향해 물었다.

“혹시 다른 진동이나 소음이 들린 적 있어?”

“아, 아뇨…. 들렸으면 가장 먼저 말씀드렸을 거예요.”

비교적 캠프와 떨어진 외곽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이연경이라면 다른 진동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연경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고 나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상한 기색이 보였으면 이연경이 진즉에 보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처음으로 감지한 것은 소음이나 진동이 아닌 하늘에서 흩어지고 있는 연기였고 여기까지 당도한 폭발의 여파는 방금 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온 검은색 연기와 그 뒤에 느껴지는 폭발의 여파.

한순간 일어난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요소들은 더글러스 시티가 화재와 같은 단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추측하게 만들어줬다.

“공격당한 것 같아요.”

결론을 내린 내가 읊조리자 노인도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용팔이는 불안한 얼굴로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점점 지기 시작하는 황혼과 하늘 사이에 걸려있는 검은색 띠.

이제 곧 해가 완전히 사라진 차분한 밤이 찾아오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한동안 입을 다물고 주먹을 쥔 나는 짙게 깔린 침묵 속에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장비 좀 준비해주세요.”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광신도 놈들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내가 시티의 실상을 정찰하겠다는 말을 꺼내자 노인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옆으로 튀어나와 나를 다그쳤고 그 옆에 서서 내 팔을 붙잡은 용팔이와 이쪽을 향해 몰려드는 군인들도 위험하다는 말과 함께 부정적인 의견을 내세웠다.

그리고 가만히 내 의견을 따라주던 마을 주민들조차 이쪽을 향해 웅성거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 - - - -.”

그래, 이미 척을 진 더글러스 시티의 군인들이 공격을 받든 말든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더군다나 더글러스 시티의 실상을 목격한 당사자들이 대부분인 이 캠프는 시티를 사실상 적이라고 보고 있었고 어쩌면 이번 공격으로 저들이 힘을 잃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용히 총을 잡은 내 손아귀에 힘은 꺾이지 않는 단호한 결정처럼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총을 등에 둘러매며 노인과 사람들에게 말하는 목소리에는 여태 보여주지 않았던 진중함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나는 몸을 돌려 의문이 가득한 눈동자와 이쪽을 바라보는 그들과 한 명 한 명 마주보기 시작했다.

“더글러스 시티는 광신도 놈들 영역 한가운데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시티가 놈들에게 대대적인 공격을 받은 적이 없다는 걸 기억하셔야 해요.”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답을 내뱉은 그 순간 주변에서 웅성거리던 소리는 일시에 멈춰버린다.

마치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자리에 서서 내가 내뱉은 말을 헉하고 삼키는 캠프 사람들.

당연히 광신도들의 공격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에게 던지는 의문은 마치 잔잔히 퍼져나가는 파동처럼 눈길을 끌어 모았고 나는 명령이 아닌 설득을 위한 말을 조곤조곤 이어가기 시작했다.

“광신도 놈들도 정규군을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는 게 일방적인 전력 손실인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거점을 뺏긴 그들이 이렇게 조급히 움직일 리가 없어요.”

울타리가 없는 산에는 손쉽게 잡아먹을 수 있는 양들이 뛰어놀고 있는 마당에 광신도 놈들이 굳이 자신의 목숨을 걸어가며 호랑이를 사냥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더글러스 시티를 공격한 것이 광신도를 제외한 제3의 존재라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캘리포니아가 완전히 봉쇄되어버린 이상 외부 유입의 짓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세력이 더글러스 시티를 공격한 것일까?

정규군을 공격해 큰 폭발을 유도할 만큼 전투력을 가진 세력은 우리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분명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존재를 언급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놈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 - - - -아.”

내 말을 이해한 사람들에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지옥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이자, 잠깐의 평화로 한동안 잊고 지내고 있었던 괴물 놈들.

이 지역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준수한 화력을 가진 군인들을 다짜고짜 공격할 수 있는 존재는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그놈들밖에 없었다.

“……면목이 없다, 잠깐 잊고 있었어.”

노인은 모자를 벗으며 나에게 진심이 묻어나는 사과를 건넸고 한동안 평화라는 꿈에 빠져 끔찍한 지옥의 모습을 잊고 살았던 사람들은 딱딱한 표정으로 냉혹한 세상이라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노인에게 양보했던 선두 자리에 조용히 걸어가며 스스로 둥지를 만들어야 할 생존자들과 눈을 마주쳤다.

“놈들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40마일 정도는 가뿐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변종 놈들의 영역은 그 두 배가 넘고요. 물론 무리로 이동하는 놈들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쳐온 여러분들이라면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금방 이해하시겠죠.”

당신들 너무 안심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안심하고 있었을 사람들에게 잊고 있었던 진실을 알려주었다.

지형이 좁은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 출몰한 놈들은 무리, 아니 검은색 띠(Line)라고 불리는 대형을 이루며 대륙 곳곳을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바닥을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큰 띠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뭉치는 놈들 때문에 운만 좋다면 그 틈새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었지만, 정말 운이 나빠 놈들의 띠에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마을은 순식간에 지도 위에서 지워질 만큼 위협적이었다.

그래, 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더러운 놈들로 이루어진 그 블랙 라인이 국유림을 넘어 채연이의 캠프를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광신도 놈들이 시티를 공격했다거나 자체적으로 내분이 일어나 화재가 생긴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모든 정보와 머리를 울리는 위험의 경종은 무언가 거대한 위협이 우리에게 오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고 나는 이 두 눈으로 다가올 위협을 직시하고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끝나자 나에게 설득당한 인원들과 어느새 오두막에서 나온 아이들은 선두에 서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살아 숨 쉬는 그들의 숨결과 요동치는 심장 소리, 익숙하면서도 가슴이 묵직한 이 시선에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켜며 심장에 강철을 심었고 뜨거운 숨과 함께 침착한 명령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저희 에덴팀은 해가 지는 즉시 더글러스 시티로 이동해 현지 상황을 확인할 겁니다. 군인분들과 나머지 생존자분들은 완전 무장을 한 채 캠프에서 도망갈 준비를 해주세요. 만약 정말로 블랙 라인이 다가오는 거라면, 방어벽과 화기 따위는 쓸모가 없습니다. 최대한 빛과 소리를 숨기시고 저희 연락을 기다려주세요.”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조차 블랙 라인의 정황을 항시 주시한다.

그런데 이제 막 캠프 건설을 시작한 우리가 그것을 막는다? 아무리 수많은 고난을 넘기고 살아남을 우리라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내가 우려한 일이 현실로 벌어진다면 놈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거나 최악의 경우 이 국유림에서 도망쳐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 - - - -후.”

나는 한순간 찾아온 위험에 순간 두려움으로 찌들어버린 사람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한숨을 내뱉었고 이내 이쪽을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 채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잠시 주변을 둘러볼 시간도 없이 몰아치는 현실의 노도는 내 거친 감정을 천천히 깎아내리는 것 같았다. 입안이 너무나 쓰다.

*       *       *

끼익!

노인은 조용히 운전하던 트럭의 브레이크를 밟고 하나뿐인 야간 투시경을 벗었다.

그리고 조심히 엔진을 끄자 어둠뿐인 길옆에는 불어오는 바람과 숨죽인 풀벌레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캠프에서 출발한 지 1시간, 우리는 더글러스 시티까지 걸어서 5분 거리에 차를 멈추고 재빨리 트럭에서 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매캐한 탄내에 나와 일행들은 길가에서 벗어나 재빨리 능선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 - -!”

그리고 능선을 넘어 더글러스 시티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올라서자, 어두운 숲들 사이로 불꽃이 일렁이고 있는 기지의 모습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다.

마치 지옥이 현세에 강림하기라도 한 듯 더글러스 시티 주변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놈들과 폭발의 여파로 타오르는 건물들.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총소리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린 방어벽들은 공격이 이제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 더글러스 시티를 공격한 것은 그토록 아니길 빌었던 블랙 라인이었던 것이다.

마치 산처럼 쌓인 놈들의 시체와 그 산을 넘어 쏟아져 내리는 검은색 파도.

살아남은 잔존 병력은 탈출하기 위해 기를 쓰며 총알을 갈겼지만, 그들이 가진 총알 숫자보다 숲속을 밀물처럼 쏟아져 내리는 놈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생지옥이 주는 두려움의 신기루와 건물에 갇힌 민간인들의 울부짖음이 이 먼 곳에서도 느껴진다.

용팔이는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돌렸고 노인은 들고 있던 망원경을 내려놓으며 나에게 말했다.

“……진행 방향이 어디일까.”

입술이 바싹 마를 만큼 거대한 규모의 놈들이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만큼 나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고 항상 냉철한 모습을 보이던 노인조차 생각을 멈췄는지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더글러스 시티는 국유림에 들어오는 초입에 있는 지역. 만약 놈들이 진행 방향을 이쪽으로 잡는다면 우리 캠프는 물론이고 이 지역에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세기말의 현장을 조용히 지켜보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노인에게 대답했다.

“아침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을 거예요. 그때까지 지켜보고 놈들이 또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때 가서 판단해야 해요.”

놈들이 만약 캠프 방향으로 진로를 잡는다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다른 곳으로 유인해야 했다.

그리고 적절한 내 대답에 동의를 표한 노인은 캠프에서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에게 조용히 무전을 보냈고 용팔이는 슬금슬금 트럭으로 돌아가 언제든지 몸을 뺄 수 있게 준비를 한다.

저 생지옥에서 아직 벌어지고 있는 발악과 놈들이 진행할 포식을 전부 지켜봐야 하는 고통, 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녹진한 긴장감에 천천히 수풀에 몸을 숨겼다.

“- - - - - - -!”

그리고 1시간이 지나자 급조한 마지막 방어선이 결국 뚫리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민간인들과 그들을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뛰어가는 그놈들이 기지 내부를 빼곡하게 수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군인들은 민간인들을 미끼 삼아 숲속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사방에서 몰려오는 놈들에게 잡혀 곧 산채로 배가 뜯어지고 내장이 먹혔다.

불타오르는 학교 건물과 그 옥상에서 비명을 지르는 수십 명의 사람, 구원을 원하지만 도와줄 수 없는 그곳은 마치 수없이 많은 죄인이 고통받는 지옥과 같았다.

그리고 나와 노인은 숨을 쉬는 것조차 까먹은 채 그 광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봤고 혹시 다른 움직임을 취하는 놈들이 없나 바삐 망원경을 움직였다.

피폐해져 가는 정신과 완전히 말라버린 입안, 억지로 돌아가려는 눈동자를 붙잡기 수십 번, 억겁 같은 시간은 서서히 흘러가 어느덧 2시간이 지났다.

끼기긱- - - -끼이익- - !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고 더글라스 시티는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기어코 모든 사람을 찢어 죽인 놈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기괴한 울음을 내뱉기 시작했고 이내 모든 살육의 종착점인 포식을 위해 열심히 턱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피라냐 떼처럼 시체 하나에 붙어 몸을 기괴하게 꼬는 놈들. 멀쩡하던 건물은 피 칠갑을 한 채 기어 올라간 발자국으로 가득했고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놈들의 그림자는 소름이 끼칠 만큼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서 조용히 포복하고 있던 노인이 나에게 말했다.

“몸이 얼음장이야. 앞으로 한두 시간 더 걸릴 것 같으니까 용팔이랑 교대해서 몸 좀 녹이고 있어.”

땅바닥에서 올라온 한기는 내 몸을 차갑게 만들었고 긴장감으로 흘러내린 식은땀은 어느새 다 메말라 있었다.

침 삼키는 것조차 까먹을 만큼 정신없는 두려움. 나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노인에게 대답했다.

“……십 분만 있다가 올게요, 그때 저랑 교대해요.”

놈들은 게걸스럽게 사람의 살코기를 먹지만, 욕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소화 능력은 포식 시간을 길게 만들었다.

공격이 다 끝났다고 해도 사방에 널려있는 시체들을 전부 먹어야 하는 놈들의 욕심은 한두 시간을 더 기다리게 할 것이 분명한 상황.

하지만 산등성이에서 시나브로 불어오는 찬 바람은 사람을 병들게 하기 딱 적당했고 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전에 저체온증으로 기절해버릴지도 모를 판국이었다.

그리고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고 있는 두꺼운 코트를 노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금방 오겠다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용팔이가 지키고 있는 트럭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하기는 했지만, 움직일 수 없는 몸은 일행들에게 방해만 될 뿐이다.

나는 찬바람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온몸을 미친 듯이 비비며 풀벌레조차 숨죽인 수풀을 지났고 저 멀리 용팔이가 지키고 있는 트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춥지 않게 운전석에 들어가 있으면 좋으련만, 또 미련하게 짐칸에 앉아 사방을 지켜보고 있는 용팔이.

나는 작게 혀를 차며 주머니에 있는 핫팩을 조몰락거렸고 이내 트럭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 - - - - -.”

달조차 어두운 칠흑 같은 숲에 또다시 불어오는 찬 바람.

주변에 자욱한 나무들은 마치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 듯 팔랑팔랑 흔들렸고 을씨년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은 풀숲이 흔들리는 소리와 어울려 걸음 소리를 파묻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짐칸에서 보초를 서던 용팔이는 트럭을 향해 다가오는 나를 발견했는지 깜짝 놀라 총구를 들이밀다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대략 두 시간.

그동안 챙겨온 따뜻한 물을 마시며 몸을 녹이려는 생각에 발걸음은 서서히 빨라지기 시작했다.

입에서 나오는 싸늘한 숨과 아무리 핥아도 부드러워지지 않는 입술, 나는 피곤한 한숨을 훅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고 이제 10m도 남지 않은 용팔이를 불렀다.

아니, 아마 부르려고 했던 것 같다.

- - - - - - - - -?

교대하자는 말은 목 끝에 턱 하고 막혔고 종종걸음으로 걷던 발걸음은 메두사를 만나기라도 한 듯 돌처럼 굳는다.

순간 뻑뻑해지는 눈과 어둠 속을 파헤치는 시야. 머리에선 예상치도 못했던 경종이 울리고 저 밑에 잠들어있던 생존본능은 자신이 늦었다고 비명을 지르며 목덜미를 뻣뻣하게 만들었다.

내가 왔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짐칸에 앉은 용팔이. 그리고 그 주변은 오직 흔들리는 나무들과 어둠이 풍경을 자처하고 있었다.

“- - - - - - -아.”

하지만 자연스러워야 하는 그 공간은 마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이질적인 존재에게 턱하고 막혔고 천천히 굴러간 눈동자는 녹슨 톱니바퀴처럼 삐거덕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 나는 용팔이가 앉아있는 트럭 밑에서 조용히 무릎을 모은 채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분을 칠한 듯 하얀 얼굴과 오직 까만색밖에 존재하지 않는 눈동자.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무언가는 마치 광대처럼 붉은 입꼬리를 기괴하게 끌어올리며 볼에 붙은 주름을 푸들푸들 떨었다.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눈동자와 빠른 속도로 흔들리는 놈의 모가지, 그건 내 감각에 잡히지 않은 변종이었다. 시간은 느려지고 내 몸은 용팔이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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