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2부 36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동이 트기 전 하늘은 숲속에 남아있는 한 줌의 빛마저 전부 집어삼켰다.
옆 사람에 인기척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야 할 만큼 어두운 숲속에 일렬로 앉아있는 우리는 예정했던 시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서늘한 새벽 공기에 으스스 떨려오는 몸과 곧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에 서야 한다는 긴장감이 정신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침묵이 단내처럼 입안에 감도는 그 순간 한쪽에서 부스럭거림과 함께 손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 넣던 노인이 나무 사이로 해치고 나오며 고개를 드는 우리에게 조용히 읊조려 온다.
“5분 전, 다들 준비해.”
놈들의 동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던 노인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우리에게 드디어 놈들을 공격할 적절한 때를 알려왔다.
어깨에 묻은 새벽 공기를 털어내고 자리를 일어나자 내 주위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이슬을 디디고 일어난다.
어제 소탕 작전 중 다친 2명의 생존자를 제외하고 남은 인원은 총 8명. 비록 놈들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였지만, 그간 벌였던 소탕 작전과 노인의 말은 우리에게 신뢰를 주었다.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닌, 이기러 가는 것, 그 한줄기 믿음은 긴장감을 털어 내주는 좋은 방탄복이었다.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새벽이슬을 피해 덮어둔 위장막을 치우며 어젯밤 가져다 둔 총과 탄약을 챙기기 시작했다.
노획한 수많은 무기 중에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을 챙기고 탄약까지 넉넉하게 챙기는 여유로움.
나는 오랜만에 묵직한 탄약띠를 몸에 걸치며 깊게 숨을 내뱉었다. 해가 뜨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30분이다.
나는 수십 번이고 암기한 작전개요를 입으로 읊조리며 천천히 일행들 앞에 섰다.
사사삭- 사삭.
풀벌레조차 숨을 죽인 조용한 시간, 우리는 풀숲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건초 밭으로 접근했고 은폐물이 사라진 경계면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저 멀리 작은 횃불들이 일렁이는 놈들의 본거지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 뒤로는 빛마저 잡아 먹어버린 스카이라인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주황빛과 초록색 물감을 섞어 줄을 그은 듯 어둠에 걸린 여명의 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공격을 가할 최적의 순간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내가 재빨리 총을 뒤로 메며 손을 들어 올리자, 8명의 인원은 기다렸다는 건초밭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총알을 보급해주고 인질들을 데리고 나가줄 트럭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국유림에서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나간 수색조들도 덩달아 들어오지 않았다.
무전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총알에 머리가 박힌 시체가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
노인이 예상한 대로 거점에 틀어박혀 있는 광신도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상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고 그 미련함은 더딘 결정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지고 왔다.
80명이었던 대인원은 우리의 게릴라전으로 4~50명까지 줄어든 지 오래, 거기다 미지의 적이 언제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약에 취한 놈들의 이성을 손쉽게 갈취했고 우리는 공격할 시기를 정할 수 있다는 최고의 무기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노인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를 10분, 우리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인간이 언제 제일 방심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 - - - -!”
건초밭을 뛰자 산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이 초라한 건초와 뜀박질을 하는 우리의 몸을 강타한다.
그 바람은 마치 공격의 시작을 알리는 시발점의 신호탄과 같았고 나는 그 바람을 연어처럼 거슬러 오르며 여명의 띠와 등지고 있는 거점 앞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뒤를 따라오는 노인이 거점을 지키고 있는 초병의 위치를 정확하게 캐치하며 나에게 외친다.
“오른쪽 셋, 왼쪽 넷. 중앙에 다섯!”
역시 초병의 숫자가 적었다. 나는 작전이 성공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며 일행들에게 수신호를 보냈고 건초밭을 완전히 가로지른 나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작은 울타리를 넘었다.
공격을 받았던 낮부터 한밤중까지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경계했을 광신도 놈들.
하지만 우리는 놈들이 예상한 시간대에 절대 움직이지 않았고 손안에 쥐고 있는 타이밍으로 놈들의 페이스를 그대로 뺏어 왔다.
설마 동이 트기 직전 오겠냐는 생각을 그대로 깨부수는 한 수는 덩치만 큰 코끼리의 중앙을 파죽지세로 가르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로 대검을 뽑아 들며 노인과 함께 마을 중앙으로 파고들었고 내 수신호를 따라 오른쪽과 왼쪽으로 흩어지는 일행과 캠프 군인들은 뒤를 바짝 쫓아오기 시작하는 여명을 등지고 마을 안으로 진입한다.
이제부터는 신속하고 정확한 팀워크가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눈을 뜨자 너무나 뚜렷한 정면이 보였다.
마을 중앙에 들어서자 재밖에 남지 않은 장작불과 그 주위에서 어설픈 불침번을 서고 있는 다섯 명의 광신도가 보인다.
한밤중에 잠을 설쳤는지 모닥불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놈과 더러운 피부를 벅벅 긁으며 길게 하품하는 놈들까지.
놈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어둠에서 나와 노인이 접근하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며 이 지겹고 불안한 하루가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승사자의 출근 시간은 밤이 아니었다.
“- - - - -!!!”
대검을 들고 있는 오른손을 그대로 빼며 숨을 크게 들이킨다. 그러자 예열되어있는 근육이 거친 소리를 내며 폭발했고 나는 하나의 사선이 되어 손안에 느껴지는 대검의 그립감과 그대로 작별한다.
가장 첫 번째 목표는 그나마 불침번에 집중하고 있는 광신도 한 마리. 놈은 동료를 너무 믿고 있었는지 한쪽만을 바라보느라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뢰의 대가는 목 옆을 그대로 뚫고 들어가는 내 대검이었다.
“컥!”
이제는 익숙한 단말마가 귓가를 자극한다.
그리고 동시에 앉아 쏴 자세를 취한 노인은 미리 챙겨온 크로스 보우를 앞으로 조준했고 갑자기 쓰러진 동료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또 다른 놈의 머리를 뚫어버린다.
이제 남은 것은 꾸벅꾸벅 졸다 일어나서 제대로 된 사태파악을 못 하는 3마리뿐이다.
사방에선 초병들의 인기척이 하나씩 지워지고 있었고 어둠에서 등장한 먹물은 여명이 뜨기 시작한 거점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사방에서 튀기는 핏물과 살벌한 노인의 눈동자, 나는 자리에서 허둥지둥 일어나는 광신도의 목을 뒤틀어버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볼륨을 줄여두었던 무전기를 꺼내 일행들에게 읊조렸다.
“시작해.”
미리 건물의 쓰임을 알아놓은 것이 정말 요긴하게 쓰였다.
거점을 지키고 있던 초병들을 한 줌의 소음 없이 전부 처리한 일행들은 미리 말해두었던 작전 내용을 착실하게 수행하며 건물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큰 가방을 메고 달려온 용팔이는 뻘뻘 흘린 땀을 재빨리 닦아내며 우리에게 휘발유가 찰랑거리는 화염병을 내밀었다.
마치 불을 붙여달라는 듯 촉촉하게 휘발유를 머금은 천 구멍과 저절로 입술을 핥게 만드는 화염병. 나는 그대로 주머니를 뒤져 황동색 지포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퐁-!
“꽉꽉 눌러서 채웠냐?”
“영감님 주량만큼 채웠어요.”
청아한 울림과 함께 화염병 머리에 붉은색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목표는 놈들이 잠들어있을 숙소 중 하나, 초병을 믿고 깊은 잠에 빠져 들어있을 놈들을 맞이할 건 아침 해가 아닌 뜨거운 불길일 것이다.
그리고 바쁜 순간에도 노인과 용팔이는 재미없는 농담을 할 기운이 남아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건조한 웃음을 날린다.
하나, 둘, 셋. 우리는 예전 기억을 새록새록 되씹으며 놈들이 곤히 자고 있을 건물을 향해 화염병을 던져 넣었다.
쨍그랑-!
노인이 말술로 유명한데, 정말 그만큼 채워 넣은 모양이다.
지붕과 문 그리고 유리가 없는 창문에 그대로 들어간 화염병은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불길을 불러일으켰고 낡은 목조로 만들어진 숙소 건물은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건물 안에서는 인간이 지르는 끔찍한 비명이 고막을 찌르르 울리며 정막을 깨부순다.
“끄아아아악-!!!!”
“불이야!!!”
밖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낌새에 잠에서 깬 놈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 몸을 숨긴 채 밖을 살피고 있었을 조심스러운 놈들. 하지만 우리는 보란 듯이 건물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며 변수라는 존재 자체를 지워버렸다.
화르륵! 붉은 아가리를 벌린 채 목조건물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화염은 그 안에서 잠들어있는 쓰레기들을 태우기 시작했고 화염병을 모두 던진 우리는 바닥에 잠시 내려놓은 총기에 노리쇠를 당기며 숨을 훅 내뱉었다.
덜컹!
토끼굴에 불을 지르면 출구로 토끼가 나오는 법이다.
까만색 연기와 함께 마치 지옥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비명이 울려 퍼졌고 하나뿐인 문은 격렬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살았다는 기쁨을 힘껏 마시는 광신도 두 명과 빨리 비키라고 고함을 지르는 다른 광신도 놈들.
하지만 거친 기침과 뿌연 시야 사이로 보이는 건 평온한 아침이 아닌 불을 뿜으며 마지막 작별인사를 건네는 우리의 총구였다.
따다 다다닥-! 따다 다닥다닥!!!
조준할 필요도, 끊어 쏠 필요도 없다. 놈들이 쏟아져 나오는 문을 향해 총구를 돌린 우리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탄창을 가득 채운 자동소총에선 총알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버린 광신도들과 사방으로 튀기는 나무 조각들. 안에 있어도 죽고 밖으로 나와도 주는 현실의 지옥은 놈들에게 무척이나 어울리는 최후였다.
그리고 온몸에 불이 붙은 채 창밖으로 뛰쳐나오는 놈들을 조준 사격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캠프 군인들이 도맡아 처리하고 있는 건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 - - - -아악!!”
초병을 제압한 캠프 군인들과 메리제인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인질들이 있는 건물을 확보하는 것과 놈들의 무기고 앞을 틀어막는 것이었다.
숙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잠들어있다, 끔찍한 비명에 깨어나 허겁지겁 무기고로 달려간 놈들.
하지만 그 행동을 그대로 예상한 팀원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놈들을 향해 총을 발사했고 골목에는 총격을 받아 즉사한 광신도들의 시체가 이곳저곳에 너부러져 있었다.
“용팔아, 다른 쪽으로 합류해서 마무리 도와줘라.”
그리고 가장 쏟아져 나오는 놈들을 향해 두 탄창을 깔끔하게 비운 노인은 탄창을 교체하는 용팔이에게 지시를 내리며 건물로 접근했고 이내 한 마리도 남기지 않겠다는 얼굴로 확인사살을 시작했다.
서서히 줄어드는 놈들의 끔찍한 비명, 총소리의 주기는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고 잔뜩 달아오른 내 숨은 바닥에 떨어지는 빈 탄창처럼 뚝 하고 가라앉는다.
* * *
“여기! 이쪽에 붕대 좀 더 가져다주세요!”
전투가 끝이 났다. 광신도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사살했고 그나마 약에 덜 취한 놈들은 포로로 잡아 몸을 꽁꽁 묶어둔 채 머리를 쳐 기절시켰다.
그에 반해 우리 측 사상자는 메리제인과 올리버 중사가 팔다리에 입은 경상뿐, 당장 캠프로 돌아가 축배를 들어도 될 정도로 성공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우리는 축배 대신 물이 담긴 냄비와 의료도구를 들고 처참하게 방치되어있었던 인질들을 치료해주기 바빴다.
“Mr. 곽.”
그리고 왼쪽 눈이 인두로 지져져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한 남성의 응급치료를 끝낸 순간, 저 옆에서 이쪽을 지켜보고 있던 올리버 중사가 기다렸다는 듯 이쪽으로 다가와 나를 불렀다.
의무병 출신이던 클로에 병장을 필두로 포로들의 급한 상처를 치료해주는 고마운 캠프 군인들. 나는 이마에 묻은 피와 땀을 소매로 닦아내며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한숨 돌렸어요.”
나와 우리 일행들만으로는 절대 작전에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서먹했던 관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서로 협력하는 좋은 관계로 발전한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능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내 감사 인사에 서먹한 웃음을 지어 보인 올리버 중사는 나와 짧은 악수를 하다 이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나저나 클로에 병장이 붕대가 많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워낙 방치되어있는 부상자가 많아서…. 혹시 더 구할 방도가 없겠습니까?”
혹시 몰라 챙겨오기는 했지만, 사용 가능한 의료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급한 것은 출혈과 상처를 감싸줄 깨끗한 붕대. 나는 그 붕대가 부족하다는 소리에 미간을 찡그리며 잠시 고민하다, 이내 좋은 생각이 떠올라 올리버 중사에게 대답해주었다.
“커튼이랑 침대보를 뜨거운 물로 소독한 다음에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전부 수거해올 테니, 잠시 현장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제대로 된 의약품은 몰라도 놈들이 사용하던 침대보나 창문을 가리는 커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올리버 중사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라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는 중사와 멀어지며 웅성거림으로 분주한 마을 중앙을 가로질렀다.
시각은 오전 7시, 어느새 하늘에 뜬 노란색 여명은 내가 향하고 있는 교회 십자가 뒤에 성스러운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탁탁탁-!
다들 바쁘니 마음이 조급해지는 기분이다.
장로교회 안으로 뛰어 들어온 나는 풍비박산이 난 내부를 재빨리 둘러보며 붕대에 쓸 천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깨진 교회 창문에는 생각 외로 깨끗한 하얀색 커튼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 한 장 한 장 그 커튼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이정도 양이면 절대 부족하지 않겠지. 품 안에 커튼을 한 아름 안은 나는 기다리고 있을 올리버 중사를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 - - - - - - -Father! - - - - -glory - - !!]
그리고 그 순간 내 발길을 막은 것은 정말 조그맣게 들려오는 라디오 잡음이었다.
놈들의 조롱으로 풍비박산이 나버린 교회 내부, 성한 가구와 성물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벽 이곳저곳에는 붉은색 페인트들이 피 칠갑처럼 칠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유일하게 멀쩡한 책상 하나는 생전 처음 보는 문양 아래 서 있었는데, 그 위에는 작은 작음과 목소리를 내뱉는 낡은 서바이벌 라디오가 올려져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걸음을 멈추며 그곳에 시선을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