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2부 35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저희는 왜 안돼요?’
이번 작전만큼은 캠프의 구성원인 아이들에게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어젯밤 선제공격에 관한 내용을 나지막이 아이들 앞에서 꺼냈고 우리가 없는 동안 겁먹지 말고 캠프를 잘 지키고 있으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능숙하게 총을 챙겨왔고 우리를 따라오며 자신들은 무슨 일을 하면 되냐는 질문을 해왔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총기에 탄창을 끼워 넣던 채연이와 아이들. 나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그 모습에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듯 머리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살기 위해선 총을 들어야 하고 어떨 때는 적을 향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길 줄 알아야 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냉혹한 세상, 어쩌면 채연이와 아이들은 그 법칙에 충실하게 따라 어엿한 생존자로 성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머리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은 이해하면서도 정작 두 눈으로 목도하게 된 현실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한참 책가방을 들어야 하는 어깨에 탄약을 메고 교과서를 쥐어야 하는 손으로 총을 잡는다.
만약 아이들이 그 지옥과 같은 현장에 나가게 된다면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살인과 핏물을 그 여린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노인이 시키는 체력 훈련까지는 막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총을 잡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괴물과 살인자가 되어가는 아픔을 그대로 겪었고 그 지옥 같은 공간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했는지 봐왔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자의 눈을 마주쳐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던 나날의 연속, 아이들만큼은 결코 나처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한참을 혼난 채연이는 자신이 왜 혼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착해빠진 아이는 아빠에게 한마디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렸고 이내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풀썩 내려놓으며 오두막집으로 뛰어가 버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수련은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채연이를 급히 따라갔으며 아이 중 유일하게 성인이 된 이연경은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정적이 감돌던 조용한 공터, 채연이가 울면서 뛰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나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는 그 자리에서 바보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떤 고통으로도 찢어지지 않던 심장이 그날 처음으로 짓눌려 뭉개지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 아이들만큼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내 각오와 그간의 고통이 모두 무용지물인 것 같아서, 그리고 내 노력과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서 마음이 찢어질 만큼 아팠다.
흉터가 새겨질수록 삐걱거리는 몸과 어느새 머리카락을 서서히 채우고 있는 백색의 흰머리.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시간이라는 바늘이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다는 불안감은 나를 더욱 조급하게 만든다.
내가 얼마나 더 싸울 수 있을까? 내가 아이들이 총을 잡지 않아도 될 마지막 순간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머리를 가득 채운 상념은 들려오는 무전기 잡음과 함께 흩어져버렸다.
[온다.]
주변을 지키고 있는 침묵만큼이나 묵직한 노인의 목소리가 낙엽 속에 파묻혀있던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내 몸을 가리고 있는 위장막과 갖가지 나뭇가지들, 나는 잠과 같은 상념에서 깨어나 뻑뻑한 눈을 재빨리 비비며 옆에 내려둔 총을 잡았다.
그리고 노인의 목소리가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침묵을 깨우는 거친 엔진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놈들의 트럭이 이동하는 길가에 개인 위장막을 설치하고 기다린 지 20분, 포로들을 태우기 위해 거점으로 향하는 트럭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며 손을 들어 올렸다.
- -부웅.
고르지 못한 산길을 덜컹거리면서 올라오는 낡은 트럭 한 대. 그곳에는 운전석을 포함한 총 6명의 광신도가 탑승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이닥칠 총격을 예상치도 못한 채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점점 커지기 시작하는 엔진 소리와 풀숲 사이로 뚜렷하게 보이는 놈들의 존재.
나는 조용히 속으로 시간을 재며 최적의 타이밍을 기다렸고 이내 내가 있는 방향을 주시하고 있을 올리버 중사를 향해 수신호를 보냈다.
딱-!
그러자 손도끼로 두꺼운 밧줄을 끊는 소리와 함께 숲속에선 깜짝 놀란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란 광신도들은 서로의 얼굴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새들이 날아오는 숲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에 들어온 지 오래였다.
쿵-!
끼이이익-!
숲의 침묵을 깨는 큰 소음과 함께 길가 옆 숲에서는 거대한 나무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길 한복판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거대한 나무를 발견한 운전자는 경악이 서린 얼굴로 급정거를 밟았고 짐칸에 오순도순 앉아있던 광신도들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쏠려 나가며 자기들끼리 몸을 부딪친다.
부탁대로 적절한 시기에 길을 틀어막아 준 올리버 중사.
나는 그대로 총을 붙잡으며 숨어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내 주변에선 부스럭거리던 위장막이 들춰지며 노인과 용팔이, 그리고 메리제인이 동시에 총구를 들어 올린다.
따닥- 딱!
급정거한 운전자는 본능적으로 기어를 변경해 후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느새 광학 조준경에 시선을 돌린 노인은 섬광보다 빠르게 방아쇠를 당겼고 운전석에 앉아있던 광신도는 그대로 관자놀이에 총알을 맞아 머리가 터져 버린다.
유리창에 산딸기 케이크처럼 퍼져 나오는 뇌수와 피. 그리고 보조석에 앉아 있다가 얼굴이 피범벅이 된 광신도는 허겁지겁 산탄총을 꺼내 들었지만, 우리의 조준 사격에 운전자와 똑같은 신세가 되어버리고 만다.
“오른쪽, 오른쪽이! 컥-!”
그리고 짐칸에 자기들끼리 뒹굴며 버둥거리던 놈들은 자신들이 습격을 당한 것을 인지했는지 재빨리 무기를 꺼내 들며 뛰쳐나가거나 몸을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우리 일행들은 가장 먼저 상황을 대응 사격을 하려는 놈부터 쏴 죽였고 이내 전의를 잃어 사방으로 도망치거나 트럭 안에 웅크리고 있는 광신도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피 지우고 현장 정리해. 딱 두 번만 더하고 숲속으로 들어갈 거야.”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자 위장막을 뛰쳐나온 노인은 능숙하게 현장을 지휘하며 올리버 중사 일행이 숨어있는 방향을 향해 손짓했다.
습격을 가하여진 지 1분도 되지 않아 적을 전부 제거한 매복 현장, 재빨리 수풀에서 뛰쳐나간 용팔이는 운전석에서 머리를 박은 채 죽어버린 광신도를 끌어내리며 시동을 껐고 메리제인도 용팔이를 도와 시체를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을 등에 메며 트럭 위에 발을 올린 노인은 짐칸에 실린 포대자루를 옆으로 치웠다.
“정말로……. 어디선가 탄약을 보급해주고 있었군요.”
그리고 교전 지역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올리버 중사는 어느새 이쪽으로 다가와 작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왜냐하면, 놈들의 시체와 포대자루를 치우자 트럭의 짐칸에선 우리가 사용하기에 충분한 탄약과 비교적 깨끗하게 정비된 민수용 총기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탄약들은 재생 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총알 한 발이 아까운 지금은 짐칸에 실린 탄약들이 마른 땅 위에 내리는 단비처럼 보였다.
거점을 공격하기 전 놈들의 보급로를 끊어 전력을 소모하게 하고 동시에 트럭에 실린 총기와 탄약을 노획하자는 노인의 정공법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1차원적이면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작전, 하지만 그만큼 성과를 보장하는 정공법이었기에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얼굴이 밝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공의 여운도 잠시일 뿐, 노인이 뭐하고 섰냐는 잔소리를 하자 주변에 모인 일행들은 재빨리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넋 빼놓고 뭐해?”
그리고 안전장치를 건 총을 부여잡고 조용히 나무에 기대고 있자 사람들을 지휘하던 노인이 조용히 다가와 내 어깨를 치며 물었다.
무심한 듯 묻는 것 같았지만 얼굴 한구석에 자리를 잡은 걱정. 노인도 어제 채연이와의 이야기를 들은 모양인지 나를 대하는 모습이 조금 조심스러워 보인다.
그래……. 한참 중요한 시기인데, 이게 무슨 꼴인가. 나는 수척해진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내리며 숨을 크게 들이켰고 여전히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대답했다.
“미안해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빨리 다음 장소로 이동할게요.”
노획한 탄약과 총기는 트럭을 운전할 생존자 한 명과 함께 우리 캠프로 복귀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 남은 나머지 인원은 아까와 같은 작전을 몇 번 지속한 뒤 국유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소수의 광신도 수색조들을 처리할 예정이었다.
거점에 처박혀 약만 빨고 있는 광신도 대부분을 밖으로 끌어내려는 노인의 중요한 사전작업.
그리고 그 일에 경중함을 알고 있는 나는 머리에 가득한 상념을 억지로 지워내며 지친 몸과 함께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옆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노인은 정리되기 시작한 현장을 조용히 바라보며 나에게 말했다.
“애들이 참 빨리 크지?”
“....”
빈 허공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동자에는 지나가 버린 세월과 그 속에 남은 후회가 진하게 묻어있었다.
노도와 같이 흘러가는 시간과 눈 깜짝할 사이에 나이를 먹은 우리. 총을 잡은 양손은 이미 수세미처럼 거칠어졌고 고생이 쌓인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우리의 아이들을 앙증맞은 새싹을 넘어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언젠가는 푸릇푸릇한 포말을 일으키며 우리 품에서 떠나갈 내 아이. 나는 그날이 올 걸 알고 있으면서도 허공을 뻗은 미련은 차마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치 담배 연기처럼 숨을 뱉은 노인은 나를 스쳐 지나가며 이야기해주었다.
“그래도 나중에는 다 이해해줄 거야. 그렇지?”
채연이가 들고 있던 총을 평소 얼마나 관리를 잘해왔는지, 오래된 연식에도 불구하고 광택이 나고 있었다.
도움을 받는 자리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그날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갈고 닦았을까.
그리고 그걸 몰라주고 자신을 혼내는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던 채연이의 얼굴을 회상하며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피곤함에 삐걱거리는 내 몸은 어느새 앞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총을 잡고, 오늘도 사람을 죽인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평온의 여정은 아직도 앞에 존재하고 있었고 고통에 대한 변명은 삶을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 이해해줄 거야. 내가 조용히 입속으로 속삭이자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르는 바람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 바람 앞에 너무나 부끄러워 하늘이 보이지 않도록 모자를 눌러썼다.
* * *
“동윤 씨?”
채연이가 잠들어있는 오두막 문을 조심히 열자 작은 촛불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던 강수련이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다들 잠들어있을 시간인데, 나를 기다리느라 잠자리에 들지 못한 모양.
나는 서둘러 이쪽으로 다가오는 강수련에게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채연이가 누워있는 침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강수련은 짙은 한숨과 함께 자신의 양쪽 손을 꼭 잡으며 나에게 말해주었다.
“온종일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어요.”
나에게 혼난 게 많이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들어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진 강수련이 조용히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온종일 밖에 있느라 이야기를 제대로 나누지 못한 강수련은 한동안 나랑 캠프에 관해 이야기했고 순간 목에 감긴 붕대를 발견했는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다쳤어요?”
총 3대의 보급 트럭을 탈취하고 국유림에 퍼져있는 2개의 수색조를 몰살시켰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장비와 탄약들을 노획했으며 에덴 팀을 신용하지 못하던 클로에 병장과 일부 생존자들은 입증된 능력 앞에 순수히 수긍하며 작전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제 남은 것은 소란스러운 거점기지를 공격하고 그곳에 있는 포로와 물자를 구하는 일뿐.
노인은 놈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전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면서 동이 트기 전 공격을 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렸고 우리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대략 5시간 반. 나는 노인의 배려로 따뜻한 식사와 장비를 챙기기 위해 캠프에 잠시 들렸다.
“살짝 긁혔어요.”
나는 내 목에 상처를 보며 호들갑을 떠는 강수련의 어깨를 꾹 붙잡아주며 캠프에 두고 왔던 가방을 받아들었다.
동이 트기 전 정확한 공격을 위해 우리 공격조는 지정한 장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향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잠들어있는 채연이의 얼굴을 확인했고 내가 가야 한다는 걸 눈치챈 강수련과 조용히 얼굴을 마주했다.
차가운 숲속의 공기와는 반대로 너무나 향긋한 가족의 살 냄새. 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강수련을 꼭 끌어안았고 그녀는 깜짝 놀라 볼을 붉혔다.
“다녀올게요.”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안에 남아있는 쓴 내와 피곤을 모두 삼켜내었다.
돌풍이 불어오는 설원을 해매다 잠시 집안으로 들어온 이 기분, 나는 그 기분을 속 안에 조용히 간직하고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소중한 일상과 잠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내가 인사를 건네자 채연이가 누워있는 침대가 살짝 움찔거렸지만 나는 그것을 못 본 척 가방을 메고 오두막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