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
2부 33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발끝에서 시작한 파동이 내가 디딘 땅을 삼키고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들려오는 소리를 집어삼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의 숲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죽여야 하는 목적이 생기자 내 본능은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치켜들었다.
마치 지옥의 구덩이에서 산자를 잡기 위해 손을 뻗는 흰색 파도처럼, 내가 지나가는 길은 그 역행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
억누른다, 넘쳐흐른다. 억누른다, 다시 넘쳐흐른다. 피를 내뱉으며 몇 백 번이고 연습한 그 야성의 한계점이 타오르는 횃불처럼 눈앞에 맺힌다.
“빨리 쫓아 이 병신들아!!”
그리고 들려오는 놈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주변 광경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눈앞에서 일렁이는 놈들의 횃불과 손전등, 심장과 함께 뛰고 있는 내 몸은 마치 본능처럼 그 빛을 피해 무리의 주위를 감돌기 시작했다.
이건 바람 소리일까? 나와 아이를 쫓아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온 놈들은 허겁지겁 자리에 멈추며 스스로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내 눈에는 그런 놈들의 욕설이 마치 심연으로 끌려가기 직전인 부표가 끊임없이 맴도는 소용돌이에서 뱉는 마지막 침묵 같았다.
“뭐, 뭐야…!”
상상은 공포를 만들고 공포는 또 다른 상상을 만든다.
목덜미가 삐쭉 서고 피부에 맺히는 소름, 어둠 속에 무엇이 웅크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놈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정체되는 광기와 자리에 멈춰 주변을 둘러보기 바쁜 광신도들, 하지만 선두를 이끄는 광신도 한 놈이 미지의 두려움을 애써 떨쳐내며 주변에 멈춰선 광신도들을 재촉했다.
“뭐해! 흩어져서 찾아!”
이질적인 기분에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헤매던 다른 광신도는 우두머리에 질책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며 허겁지겁 추적을 계속했다.
하지만 무리가 흩어지는 그 순간만을 기다렸던 내 몸은 짙은 어둠을 지나쳐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고 손에 잡힌 대검의 묵직한 그립감이 사살의 시작 신호를 알렸다.
대검을 허공에 놓는다. 핑그르르, 묵직한 손잡이가 손끝에 긁히고 아름다운 사선을 그린 날이 그대로 우두머리 목에 박힌다.
“횃, 횃불 가져…. 컥!”
예고 없는 무음, 허공에서 나타난 대검은 정확히 놈의 목에 박혔다.
그리고 울대를 가르고 들어가는 칼날에 막혀 놈은 말 대신 피를 울컥 뱉어낼 수밖에 없었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인지하지조차 못하는 찰나의 시간이 허망하게 지나가 버린다.
“끅, 컥….”
한순간 죽음보다 차가운 침묵이 주변에 안개처럼 가라앉는다.
그리고 피가 들끓는 소리를 꺽 꺽 내뱉던 놈은 목에 박혀있는 대검 손잡이를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피를 양손으로 틀어막는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새빨간 선혈. 그 무의미한 발버둥을 조용히 지켜본 나는 그대로 놈에게 접근해 손잡이를 비틀어 대검을 빼낸다.
“- - - - - -.”
대검을 빼내자 이마에 튀기는 뜨거운 핏물. 그리고 뚫린 구멍에서 흘러내린 선혈은 조용히 바닥을 적셨고 놈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의식 속에 박혀있던 광기를 지워낸다.
두려움, 고통, 억울함, 증오.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놈의 눈동자에서 나는 많은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줌의 동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역겨운 존재 앞에 나는 놈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다.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죽어버린 여성의 얼굴과 아이의 허망한 눈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놈의 얼굴이 흑백화면으로 천천히 대비된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뒤에서 횃불을 든 광신도 하나가 경악이 서린 고함을 내지르며 나와 눈이 마주친다.
“여기다!!! 여기 놈이 있다!!”
마치 귀신을 본 듯 얼굴이 허옇게 질린 광신도는 찢어지는 고함을 지르며 허둥지둥 횃불과 권총을 나에게 겨누려고 했다.
이리저리 튀는 불똥 속에 너무나 느리게 보이는 그 장면, 나는 놈의 총구를 침착하게 주시하며 목이 뚫려 죽어버린 시체가 쓰러지기 전에 멱을 끌어 잡았다.
그리고 내가 민수용 방탄복을 입고 있던 우두머리에 시체를 방패막이로 내세운 그 순간 나에게 총구를 겨눈 놈이 별별 욕을 다 뱉으며 방아쇠를 당긴다.
탕-! 탕탕탕탕!
파지법도 엉망이고 조준조차 하지 않는다. 저항하지 않는 약자만을 상대해왔던 광신도는 미지의 적 앞에 이성을 잃고 총알을 쏟아부었다.
어두운 밤중에 연신 번쩍이는 총구, 하지만 민수용 방탄복을 입은 우두머리의 시체는 나약하고 목적성 없는 9mm 총알을 전부 막아주었고 나는 총소리가 난무하는 그 순간에도 놈이 방아쇠를 당기는 숫자를 정확하게 세었다.
침착하게 7발, 8발, 9발. 그리고 놈이 빈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찰칵 울린다.
“어?”
- - -딱!
놈이 멍청한 소리를 냄과 동시에 총알로 난도질 난 시체 사이로 권총을 뻗어 놈의 대가리를 날려버린다.
이마에 정확히 새겨지는 조그마한 총알구멍과 뒤로 확 젖혀지는 놈의 머리. 정말 한순간 벌어진 일은 내 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오기 전에 놈이 바닥에 쓰러지며 끝이 났다.
그리고 총격의 여운이 손끝에 짜르르 남는 그 순간 내 신경은 다급한 경종을 울리며 위험신호를 보내온다.
나는 그대로 너덜너덜한 시체를 던지며 커다란 나무를 향해 몸을 던진다.
텅!!! 텅-!!!
총소리를 듣고 몰려온 광신도들의 거친 욕설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본능이 이끄는 방향으로 몸을 날리자마자 내가 서 있던 자리에는 두 발의 산탄총 탄이 쏟아져 내렸고 코를 매캐하게 만드는 알싸한 화약 연기가 위험을 경고하며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닥에 박힌 납탄 세례와 푸스스 소리를 내며 흩어지는 부스러진 낙엽들.
판단이 0.5초만 늦었어도 그대로 즉사했을 거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이상하게 심장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퐁! 산탄총의 펌프를 당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나에게 사격을 가한 놈은 내가 숨은 나무를 손전등으로 가리키며 위치를 알린다.
“- - - - - - -!”
그리고 놈들은 바닥에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동료와 어둠에서 오는 압박감에 이성을 잃었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욕설을 내뱉으며 내가 숨어있는 나무에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빗발치는 총성과 사방으로 흩날리는 나뭇조각들. 나는 볼 옆으로 날아가는 총알에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고 이내 몸이 기억하는 행동을 취하며 재빨리 바닥에 엎드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입술이 마르고 촉촉하게 젖어있던 감성도 말라버린다.
나는 그대로 나무를 등지고 빠른 속도로 기어 놈들이 가하는 화력망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어두운 숲속을 모두 밝히기에는 놈들이 가지고 있는 손전등과 횃불은 너무나 빈약했다.
그리고 그 점을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빗발치는 총알 속에 침착히 움직이며 이리저리 어둠을 밝히는 불빛을 피해낸다.
결코, 놈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어둠을 등에 업은 나는 다시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만 보이는 먹물에 스며들었다.
대검 손잡이에 잔뜩 묻은 끈적한 피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놈의 핏물을 식은땀처럼 흘러내려 긴장감을 대신했다.
놈들은 아이를 안고 도망가는 나를 적잖이 우습게 봤는지 숲속까지 쫓아온 추격조는 겨우 7명이었다.
2명은 내가 처리했으니 이제 남은 인원은 5명. 나는 어두운 숲속에서 훤히 보이는 놈들의 얼굴을 주시하며 내가 숨어있던 나무와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이내 놈들의 옆쪽으로 접근하며 손에 묻어있는 끈적함을 바짓단에 닦는다.
그리고 대략 10초 뒤, 정신없이 나무를 향해 총을 난사하던 놈들은 흥분과 광기로 가득한 숨을 내뱉으며 자신들의 얼굴을 마주 보기 시작했다.
그래, 이 지랄을 해놨으니 완전히 죽어버렸겠지. 흥분에서 오는 가설은 그간 학살의 경험과 어울려 확신으로 변했고 놈들은 천천히 총구를 내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벌집이 된 나무를 향해 걸어가는 놈들의 무방비한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본 나는 딱 한발만 사용한 권총을 들어 올린다.
딱-! 따닥-!
가장 먼저 나에게 산탄총 탄을 날리던 놈의 뒤통수를 날려버린다.
번쩍하는 총구와 동시에 9mm 탄두가 뚫고 나와 박살이 나버린 광신도의 머리.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추격조 중 유일하게 자동소총을 들고 있던 놈도 그 자리에서 끝장내버린다.
순식간에 2명이 죽어버린 상황, 내가 이미 빠져나온 나무를 향해 다가가던 나머지 놈들은 허겁지겁 엄폐물을 찾아 흩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사격연습을 하듯 방아쇠를 당겼다.
딱딱딱-! 딱! 따닥!
“으아아아-!”
두려움의 비명을 지르다 그대로 목을 뚫려 엎어진 놈, 그런 동료가 죽는 순간을 이용해 손전등을 집어 던지며 어두운 숲속을 향해 뛰어가다 등판에 총알구멍이 나 엎어지는 놈.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나무 뒤에 숨어 벌벌 떨다 노출된 장딴지에 총을 맞은 놈.
나는 그런 쓰레기들이 지르는 비명과 단말마를 가볍게 무시하며 녹진한 화약 연기 같은 숨을 훅 내뱉었다.
그러자 어느새 실과 같은 변종의 시야는 너무나 고요한 숲속으로 변해있었다. 하늘에는 꼭 숲속에 흐를 것만 같은 은하수들이 빼곡하다.
“끄아아아악-!! 아아악-!”
사박사박.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내린 나는 피가 철철 흐르는 장딴지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살아남은 광신도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사람의 피부를 산 채로 벗겨 도축장처럼 가둬 죽여 버리는 놈들이 겨우 장딴지에 총을 맞았다고 이런 끔찍한 비명을 지른다니, 나는 목사가 맞아 죽었을 때 느꼈던 그 더러운 기분은 속 안에서 끄집어내며 발버둥 치는 놈 앞에 선다.
“으흐흐 억…. 흐윽…. 이런 시, 시발….”
바닥에 엎어지며 기어가던 놈은 천천히 다가오는 나를 발견하자 경기를 일으키며 온몸을 버둥거렸다.
얼굴에서 추잡스럽게 흘러내리는 콧물과 눈물은 죽기 직전 발버둥 치는 쓰레기의 존재를 더욱 역겹게 만들었다.
그리고 놈은 들고 있는 리볼버로 나를 겨누며 연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아까 전 난사로 인해 비어버린 실린더는 허무한 찰칵 소리만 낼뿐, 죽음 앞에서 치는 발버둥처럼 무의미하다.
- - -찰칵.
나는 보란 듯이 권총을 들어 올리며 빈 탄창을 빼냈다. 그러자 놈은 더러운 눈물을 질질 흘리며 미끈거리는 실린더를 열어 탄피를 빼냈고 덜덜 떨리는 손을 청바지 주머니로 가져간다.
퀵로더 하나 없이 한 발 한 발 장전해줘야 하는 비효율의 극치.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위선적인 놈들을 상대로 싸웠는지 이제야 실감이 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 때문에 총알 한 발을 겨우 넣으며 놈이 다급히 실린더를 닫으며 환희라는 감정을 얼굴에 담는다.
놈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좋아, 살 수 있다!
철컥, 딱-!
하지만 나는 놈이 장전을 끝내기 직전 권총에 탄창을 끼워 넣으며 그대로 환희가 담긴 얼굴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총성, 이마 정중앙에 박히는 총알과 함께 그대로 죽어버린 마지막 쓰레기. 놈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헛된 희망에 빠져 몸부림치다 눈조차 감지 못하고 즉사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훈련한 대로 움직인 나는 조정 간을 안전에 맞추며 아이가 숨어있을 나무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간다. 나이를 먹었나, 몸이 쉽게 피곤하다.
* * *
교전 장소를 대충 정리하고 놈들이 가진 화기와 탄창을 전부 가방에 챙겼다.
그리고 광신도들의 소지품 중 마약으로 보이는 약품들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어쩌면 그 광기의 원인도 이 마약이었을지도 모르는 일.
나는 미련 없이 마약을 숲속에 집어 던지고 노인에게 보여줄 약간의 표본만을 챙겼다.
그리고 썩은 뿌리 동굴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아이와 함께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캠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 걸을 수 있다고 눈치를 보던 아이를 등에 업고 나는 발자국이 남을 수 있는 숲길을 피해 일부러 바위가 즐비한 계곡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내 신발 두 짝을 들게 한 뒤 맨발로 차가운 계곡 바위들을 밟으며 산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듣기 좋은 풀벌레 소리와 졸졸졸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 숲은 언제 그런 격전을 머금었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고 아이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어느새 잠들어있었다.
“아저씨!!”
그리고 캠프 근처에 접근하자 항상 감시 나무에서 망을 보고 있던 이연경이 총을 겨누다 말고 깜짝 놀라 나무에서 내려왔다.
처음 볼 때와 마찬가지로 얼굴에 진한 위장크림을 바르고 있는 연경이, 말없이 다가오는 나를 보고 놀라기라도 했는지 단체장이 아닌 다른 칭호로 나를 부르며 다급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태연한 얼굴로 이연경을 향해 물었다.
“저녁 먹었니?”
맛있는 사슴고기를 들려 보냈는데, 저녁에 맛있게 먹었나 궁금했다.
지금 시각은 저녁 8시, 나는 애매한 시간에 도착했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고 이연경은 뜬금없는 질문에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걱정하고 있었는데, 할 말이 겨우 그거뿐이냐는 표정. 하지만 나는 그 표정을 가볍게 무시하며 등에 업고 있는 아이를 이연경에게 넘겼다.
캠프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친구가 되어줄 새 식구가 한 명 늘어난 것이다.
“이, 이게 무슨…. 아저씨! 아, 아니 단체장님!”
그리고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나에게서 아이를 받아든 이연경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으며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볼일이 있다는 핑계로 해가 지고 나서도 돌아오지 않는 나. 아마 노인의 말이 아니었다면 채연이와 이연경은 혼자서라도 나를 찾아 숲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이연경은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으며 나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거점 기지의 규모를 확인했고 놈들이 포획한 인간을 밖으로 빼돌리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인질들이 잡혀있는 구체적인 장소까지 알아냈으며 이 아이는 그 증거 중 하나로 무사히 구출을 완료한 상태다.
추격조를 뿌리치기 위해 탄창 하나와 총알 한 발을 소비했으며 그 외에 부상은 없다.
머리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간 총알과 손에 가득 묻힌 피의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나는 잠시 자리를 멈추며 이연경에게 대답해주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