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34화 (234/313)

# 234

2부 31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 - 부우우웅.

저 멀리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그리고 바닥에 엎드림과 동시에 길옆으로 광신도들을 태운 트럭 한 대가 지나갔고 엔진의 여운이 두근두근 뛰는 심장 소리에 맞춰 조용히 공명한다.

나는 살며시 고개를 돌려 내 앞을 빠른 지나가는 트럭의 외관을 관찰하였다.

트럭 위에는 4명 정도로 보이는 광신도 무리가 탑승하고 있었고 짐칸에는 잡혀 온 생존자들로 보이는 인질들이 팔다리가 묶인 채 마치 짐짝처럼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달리는 트럭은 바퀴 옆 흙먼지와 함께 저 멀리 사라져버린다.

저들을 과연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나는 짧은 상념과 함께 입에 붙은 흙먼지를 퉤 뱉어내었고 이내 멀어지는 트럭과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역시 미국답게 건초밭은 넓고 광활했다. 하지만 대부분 수확을 끝냈는지 밭은 거의 평야라고 해도 무방했고 밭 위에 내가 몸을 숨길만 한 은폐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해가 떠 있는 시간대에 건초밭을 가로지른다는 건 놈들에게 죽여주십시오 하고 목을 떠미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

나는 어쩔 수 없이 1시간이나 걸려 우회로를 찾아내었고 놈들이 점거한 마을로 향하는 길옆에 우거진 숲을 따라 천천히 마을로 접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을로 접근할수록 생각보다 큰 놈들의 규모 앞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이 길옆을 지나간 트럭만 몇 개란 말인가? 하나같이 화기로 무장한 광신도들은 이 근방에서 잡아 온 생존자들로 보이는 포로들을 태우고 어딘가로 수송하고 있었고 국유림을 수색하는 인원만 해도 30명은 가뿐하게 넘어 보인다.

메리 제인이 중부 전역에서 발생했다는 살인사건을 대입해본다면 이 광신도라는 놈들은 어떤 무장집단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규모가 거대했고 규격화된 행동 패턴과 명확한 명령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집단이 한 목적을 위해 능숙한 움직임을 보인다? 광신도들을 단순 부랑자라고 생각했던 나는 놈들의 정체를 빠르게 재정립했다.

처음에는 그저 주변만 살펴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온 김에 모든 걸 뜯어봐야겠다.

놈들의 규모, 무장 상황, 그리고 안쪽에서 계속 쏟아져 나오는 포로들의 상황까지. 노인과 채연이에게 금방 간다는 거짓말을 해서 미안했지만, 지금은 살짝 무리할 필요가 있었다.

부웅.

그리고 나는 1시간꼴로 마을에서 나오는 트럭을 마지막으로 확인하자마자 냅다 풀숲을 빠져 나와 뛰기 시작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는 대략 5명으로 보이는 초병이 존재했고 하나 같이 민수용 화기로 무장하고 있다.

하지만 초입을 제외한 주변에는 별다른 장벽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우회해서 돌아간다면 잠입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나는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가축우리를 손쉽게 넘으며 마을에 빼곡한 조경수에 몸을 엎드린다.

“- - - - -”

마을 곳곳에서 광신도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나는 거칠게 솟아오른 숨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몸을 웅크렸고 이내 마을 내부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외부에선 보지 못했던 교전의 흔적이 마을 곳곳에 짙게 남아있었고 불에 탄 목조주택부터 포장도로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탄피들이 내 시선을 낚아챈다.

서서히 바닥을 향해 떨어지는 주황빛 황혼 너머로 느껴지는 음울한 마을의 분위기. 노인의 예상대로 이곳은 이미 점거를 당한 모양이다.

“- - - 아악!”

그리고 그 순간 마을 중앙에 홀로 서 있는 장로교회에서 한 남성이 내뱉는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나는 넣어두었던 권총을 반사적으로 꺼내 손을 쥐었고 비명이 들리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피인지 붉은색 페인트인지 모를 것으로 덕지덕지 낙서 칠이 되어있는 교회 외부.

놈들은 교회를 태우는 대신 그들이 믿는 신을 조롱하기를 선택했는지 십자가나 교회 창문에는 말로 형용 못 할 모욕적인 단어들이 붉은색 글자로 쓰여 있었다.

쿠당탕!

그리고 비명이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덜너덜 흔들리던 교회 문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열렸고 피와 오물이 덕지덕지 붙은 양복을 입고 있는 남성 목사가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무언가에 머리가 찍히기라도 했는지 철철 흘러내리는 피와 연신 살려달라 외치는 처절한 목소리, 하지만 교회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온 광신도 두 명은 그런 목사를 향해 욕설을 내뱉으며 신을 향한 조롱을 아끼지 않았다.

조용하던 마을 내부는 순식간에 시끄러워졌고 바닥을 기는 목사 근처로 주변을 걸어 다니던 광신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쥐새끼 같은 새끼!”

“제, 제발….”

눈치를 보아하니 교회 어딘가에 숨어있다 걸린 모양.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야구 방망이를 들어 올린 한 광신도는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목사의 가슴팍을 걷어찼고 이미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목사는 그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그런 목사를 향해 몰려드는 광신도들은 얼굴에 번들거리는 광기를 머금고 그 역겨운 조롱을 낄낄거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놈들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터져 나오는 비명과 살과 피가 터지는 소리가 내 고막을 간지럽힌다.

놈들에게 잡히기 전부터 이미 중상을 입고 있었는지 바닥에 고이는 핏물과 부들부들 떨리는 목사의 팔다리.

하지만 그 주변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광신도들은 목사에게 편안한 죽음 따위는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그 떨리는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교회 십자가를 향해 파르르 떨리는 목사의 손끝과 단말마조차 내뱉지 못하는 그 참혹한 공간.

나는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움찔거리는 근육을 씹으며 익숙해질 수 없는 불쾌감을 조용히 내포했다.

그동안 해치워온 수없이 많은 부랑자와 불순 무장 단체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욕망과 이득을 위해 생존자들을 죽여 왔고 자기들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먼 타국에 와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욕망의 찌꺼기들은 형용할 수 없는 분노를 입안에 고이게 했다.

목사는 죽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믿는 신이 구원해주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 나는 목사를 위한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불쾌함만은 절대 잊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나는 소란스러움 속에 조용히 몸을 숨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가장 먼저 체크해야 하는 건 놈들의 숫자였다.

나는 20채쯤 되어 보이는 목조 건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마을에 점거하고 있는 놈들을 하나둘 확인했고 마지막으로 초병까지 합해 24명이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에서 나간 트럭이 총 4대, 유동인구와 수색조까지 고려해본다면 이들의 인원은 대략 80명이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 앞에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놈들은 전부 교전이 가능한 전투 인원이고 조잡하지만, 무기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우리 캠프의 전투 인원은 그 반절도 되지 않았고 심지어 화기조차 부족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에 나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캠프로 돌아가는 즉시 노인과 강 형사에게 조언을 구해 적절한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채비를 마친 뒤 몸을 돌렸다.

“- - - - - - -”

어?

그리고 걸어온 방향을 향해 몸을 돌리는 그 순간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중얼거림에 나는 반사적으로 자세를 숙였다.

온몸에 삐쭉 솟는 소름과 미친 듯이 뛰는 심장.

분명 누군가 접근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분명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중얼거림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뭐지? 들키고 만 건가? 마침 황혼도 다 져가는지라 주변은 자욱하니 어둠이 깔리고 있었고 몸을 숨어있는 수풀도 어둡기 그지없었다.

또르르 돌아가는 눈동자와 잠시 움찔하는 검지 끝. 나는 재빨리 오른손에 쥐고 있던 권총을 양손으로 파지하며 중얼거림이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총구를 돌렸고 동시에 숨을 훅 들이켰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코끝을 자극하는 썩은 내.

처음에는 괴물 놈들이 내 뒤를 밟은 줄 알았지만, 주황빛 황혼에 그늘진 그것에 정체는 놈들이 아니었다.

내 허벅지만 한 조그마한 체구에 아무런 움직임 없이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그것.

검지는 총구를 당기려는 순간 멈췄고 나는 눈동자를 재빨리 굴려 나와 마주하고 있는 그것에 정체를 훑어냈다.

“- - - - m…….”

그리고 주황색 황혼이 무언가를 비추자 나는 그것이 조그마한 꼬아 아이인 것을 알게 되었다.

잔뜩 엉겨 붙은 머리에 얼굴에 검은색 때들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더러운 얼굴.

엄지를 입에 넣고 나를 향해 무어라 웅얼거리는 그 꼬마는 권총이 무섭지도 않은지 흐릿한 눈동자로 총구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치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에 권총을 내려야 할지 그대로 겨누고 있어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기척을 숨기고 은밀하게 이동했다. 20명이 넘는 광신도들이 나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신경 써서 숨어 다녔는데, 이 꼬마는 어떻게 나를 발견한 것일까?

그리고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연신 중얼거린 꼬마는 갑자기 몸을 돌려 건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골목으로 도도도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더니 어떠한 예고도 없이 도망가 버리는 아이.

나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재빨리 권총을 내리며 그 뒤를 쫓는다.

혹시 광신도의 아이일까? 아니, 그렇다고 보기에 아이는 너무 말라 있었고 방치된 것 같은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마 아까 그 목사처럼 놈들에게 살아남아 숨어있었던 생존자로 보이는데, 나는 아이가 광신도들에게 들키기 전에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본능적으로 그 아이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살릴 수 없는 것과 살릴 수 있는 것에 차이는 크다.

적어도 내가 손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저 아이와 혹시 광신도들의 눈을 피해 숨어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들을 돕는 게 맞았다.

그리고 흔들리는 수풀을 빠져 나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붉은색 페인트로 칠해진 곡식 창고 바닥으로 아이가 기어들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뒤를 밟으며 재빨리 담장을 넘었고 창고 벽에 몸을 기댄 채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다 그대로 창고 안으로 몸을 욱여넣었다.

“- - - -흐.”

창고 안으로 들어간 그 순간 코끝을 찌르는 독한 분뇨 냄새에 나는 본능적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수확한 곡식들을 보관하는 장소가 아닌 인간과 가축의 분뇨를 모아둔 것 같은 이 창고.

사방에는 파리와 벌레들이 날아다녔고 코끝을 찌르는 역한 냄새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본능을 유발했다.

그리고 나는 가늘게 뜬 눈 사이에서 창고 구석에 누워있는 한 여성과 그 옆에 쪼그려 앉아 나를 바라보는 꼬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 -.”

창고 안으로 들어온 나를 보자마자 다시 한 번 무어라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리는 꼬마.

역시 내 예상대로 광신도들의 눈을 피해 숨어있는 생존자가 있었다. 역한 분뇨 냄새 때문에 이 곡식 창고를 제대로 살피지 않았을 광신도들.

그 덕분에 아이와 그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은 이곳에 무사히 숨어있을 수 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권총을 집어넣으며 가만히 누워있는 여성과 아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다른 생존자 캠프에서 왔습니다. 혹시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밖은 벌써 해가 지고 있었지만, 놈들에게 잡혀있는 포로들의 위치는 확인조차 못 했다.

그래도 이 두 명 정도는 어둠을 틈타 충분히 데려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아이와 엄마 옆에 조용히 자세를 숙이며 걸을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 - - - - -.”

하지만 내 물음에 들려온 대답은 오직 고요한 침묵뿐이었다. 정자세로 누워 배 위에 양손을 가지런히 올리고 누워있는 여성.

혹시 잠이 들었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늘에 상반신이 가려진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고 아이는 기다렸다는 살며시 물러나며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손전등이 켜지자, 그늘로 가려져 있던 상반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Mummy…….”

아까는 알아들을 수 없었던 아이의 중얼거림을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입에 검지를 물고 끊임없이 자신의 엄마를 불렀을 그 아이는 이미 죽어버린 시체 옆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몸에 남아있는 총상과 이미 바닥에 말라붙어있는 갈색 피 웅덩이, 아이를 이곳에 숨기고 천천히 죽어갔을 여성의 주마등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썩어가고 있는 눈을 감겨주며 그제야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에게 물었다.

“도와달라고 부른 거니?”

내 옆에서 웅얼거린 뒤 그대로 도망치던 아이.

그것은 겁에 질려서 한 행동이 아닌 마을을 돌아다니는 나에게 보내는 구조신호였다.

자신의 엄마를 도와달라고, 오직 역겨움과 어둠뿐인 이 공간에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보내는 침묵 속에 아우성.

그리고 내 물음에 아이는 공허뿐인 눈망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 없는 울음을 터트렸다.

혹여나 놈들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히끅히끅 소리를 삼키는 아이에게서 나는 진한 현실과 참혹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항상 이런 식이었다. 산채로 목사를 난도질한 광신도들과 엄마의 시체 옆에서 울고 있는 아이.

이 참혹한 현실은 항상 이런 모습으로 내 옆을 떠돌아다닌다. 주황색 황혼이 사라진 하늘과 창고로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

나는 손을 뻗어 홀더에 넣어둔 권총을 꺼내 들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실린더를 당기자 총알이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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