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
2부 30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놈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먹어치운다.
물론 진화가 되어갈수록 인간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놈들에게 단체로 공격받는 야생동물들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트리니티 국유림은 다른 세상이 눈앞에 떨어지기라도 한 듯 정말 많은 동물이 평화롭게 서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뜨며 강가 옆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검은꼬리사슴을 조용히 노려보았다.
물을 먹고 있는 사슴의 검은 꼬리는 물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푸르르 떨렸고 마치 흑진주처럼 까만 눈동자는 연신 주변을 경계한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의 박동이 이곳까지 전해져오는 진한 생동감, 결코 인간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그 자연스러운 생동감은 나를 이 푸르른 숲과 동화하게 했다.
하지만 그 감상도 잠깐일 뿐, 내 옆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용팔이가 크로스 보우에 볼트를 재빨리 장전하며 나에게 내밀었다.
“- - - - - -.”
미약하게 유지하고 있던 숨을 완전히 멈춰버린다.
그리고 소리 한 점 새어나갈까 조심조심 크로스 보우를 견착하는 나는 볼트 촉을 사슴의 심장에 조준하며 방아쇠 위에 검지를 올려놓았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바닥을 짚고 있는 용팔이와 마치 환각을 보는 듯 좁아지는 공간.
나는 천천히 한쪽 눈을 감으며 버릇처럼 입술을 핥았고 이내 검지를 당겼다. 그러자 탄력 있는 시위가 텅하는 미약한 소리를 주변에 흩뿌렸다.
“끽!”
볼트가 살점을 뚫고 들어가 심장에 그대로 꿰뚫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물을 마시고 있던 사슴은 가슴팍에 느껴지는 고통에 펄쩍 뛰어올랐고 심장이 곧 멈춘다는 인지도 없이 재빨리 숲속을 향해 뛰어간다.
단말마처럼 울리는 미약한 울음소리, 그리고 그 순간 내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용팔이는 사슴이 뛰어간 방향을 향해 쏜살같이 뛰어가기 시작했다.
1시간이라는 시간과 볼트 한 발로 얻어낸 값진 고기.
내가 크로스 보우를 들고 일어나 잠시 기다리자 어수선한 풀숲에서 축 처진 사슴을 등에 업은 용팔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좀 말랐는데요?”
사슴을 강가 근처에 내려놓은 용팔이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래, 확실히 체구가 작고 마른 편이다.
하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사슴을 사냥할 수 있었다는 것에 좋은 의미를 두기로 했다.
용팔이는 재빨리 대검을 뽑아 강가에 눕혀둔 사슴의 피를 뽑기 시작했고 20분 내내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던 나는 몸을 일으키며 스트레칭을 했다.
아까 아침에 보였던 햇살은 어디 갔는지 짙은 구름이 끼어있는 하늘, 덕분에 날씨는 제법 쌀쌀했다.
“훈제할 거죠?”
“아니, 이건 오늘 저녁에 먹자.”
아이들이 말하길 사냥을 10번 시도하면 성공하는 횟수는 1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미숙한 사냥 실력 때문인 것 같은데, 매일 전투식량을 먹는 것도 고역이었을 터.
나는 오랫동안 고생한 아이들과 캠프 주민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능숙한 손짓으로 사슴의 피를 빼고 내장을 분리하는 용팔이는 우리가 오늘 저녁에 먹을 맛있는 부위들을 따로 챙기고 나머지 먹지 못할 잔재들은 서둘러 땅에 묻어버렸다.
[칙, - - - - 동윤아.]
그리고 수월하게 사냥을 끝낸 우리가 해체한 사슴고기를 챙기고 캠프까지 이동하려는 순간, 앞주머니에 꽂아둔 무전기에서 나를 부르는 노인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어딘가에 숨어있기라도 하는지 잔뜩 숨을 죽인 노인의 목소리.
나는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며 자세를 숙였고 이내 무전기 볼륨을 키워 노인에게 대답했다.
“무슨 일 있어요?”
우리가 사냥을 할 동안 메리제인과 함께 숨겨둔 험비를 수거하러 간 노인이다.
아마 지금쯤 험비를 수거하고 그 근방을 정찰하고 있을 노인과 메리제인 중위. 하지만 중간 과정에서 무언가 보고를 해야 할 일이 생겼는지 노인은 조금 이르게 무전을 보내왔다.
그리고 내 짧은 물음에 한참 잡음만을 내뱉던 무전기가 다시 한 번 노인의 목소리를 전달해왔다.
[산 아래에서 마을 하나를 발견했는데, 농사도 짓고 규모가 꽤 커. 근데 돌아다니는 놈들 꼬락서니를 보니 아무래도 광신도 놈들이 점거한 마을 같다.]
광신도 그놈들이 왜 안 나오나 했다.
메리제인과 레인저 대원들을 공격하고 이 근방에서 출몰하기 시작한 놈들은 마치 암세포처럼 우리도 모르게 그 세를 불려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다른 지역에서 넘어오고 있을지도 모르겠지.
놈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는 상황에서 하필 노인이 불러주는 좌표상 위치는 우리 캠프와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미간을 조용히 찡그리며 노인에게 말했다.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무조건 채연이부터 만나야 한다는 맹목적인 목표 때문에 잠재적인 적의 정체를 잠시 망각했다.
어쩌면 놈들의 주요기지일지 모르는 점거 마을, 나는 두 눈으로 놈들의 규모를 확인하고자 노인에게 적당한 좌표에서 만나자는 무전을 마지막으로 볼륨을 줄였다.
그리고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는 용팔이에게 먼저 돌아가라는 말을 하자 용팔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반문한다.
“들렸다가 저도 합류할까요?”
놈들이 마을을 점거하고 있다고 한다면 절대 소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공격이 아닌 단순 확인을 위한 정찰이었기에 우리 숫자가 많을 필요는 없었다.
셋으로 되겠냐는 용팔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캠프로 돌아가서 주변 경계부터 해. 사람들한테는 잠시 볼일 때문에 늦는다고 말해주고 해지기 전에 돌아갈게.”
캠프 위치가 몹시 은밀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적들이 못 찾을 것도 없었다.
나는 혹시 모를 위협을 대비해 용팔이에게 캠프 방어를 부탁했고 갈고리에 꿰어 들고 있던 사슴고기를 전부 넘겨주었다.
그리고 캠프를 빠져나올 때 챙겨온 탄약을 전부 인계해 강가에 내려두었던 가방에 챙겨 넣은 뒤 노인과 만나기로 한 장소를 향해 재빨리 뛰어갔다.
저 뒤에서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용팔이의 외침이 바람 소리를 따라 시나브로 흩어진다.
* * *
새벽에 다시 한 번 연락이 온 강 형사는 미국과의 협상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짧으면 일주일 길면 보름? 변종의 세세한 데이터를 포함해 전투팀의 영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입장에선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미국 펜타곤과 괜히 소동을 키울 필요가 없었다.
5살짜리 애도 아니고 괜히 심술을 부리는 미국에 시달려 에덴 팀 인사들이 밤낮으로 힘쓰고 있으니 이 사태도 캠프에서 버티고 있다 보면 어느새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캠프 근처에 즐비한 위험에 있었다.
식량이야 잦은 사냥과 수색으로 해결한다고 하지만 화기와 전투 인원이 모자란 우리에게 있어 광신도 놈들과의 전투는 조금 힘든 감이 있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이며 한 발짝 먼저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하는 것뿐, 아마 이 짙은 숲속과 드넓은 산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보다 든든한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상념과 지나가는 풍경이 완전히 멈출 때쯤 나는 조용히 무전기를 들어 뜀박질을 멈췄다.
“도착했어요. 어디에요?”
“이쪽이야.”
들려온 대답은 무전이 아닌 노인의 육성이었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자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는 노인이 땀으로 젖은 모자를 벗으며 나를 부르고 있었고. 그 뒤에는 상당히 지쳐 보이는 메리제인은 무슨 힘든 일이라도 있었는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조금 전 강가에서 떠온 시원한 물이 담긴 수통을 노인에게 내밀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수통을 받아든 노인은 뒤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메리 제인에게 물을 양보하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옷과 머리에 잔뜩 묻어있는 나뭇잎과 신발 바닥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녹진한 흙들. 한눈에 봐도 이 숲을 정신없이 뛰어다닌 것 같은 노인은 얼굴에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어휴, 이 새끼들 수색조를 얼마나 많이 꾸려놨는지 하마터면 잡힐 뻔했다.”
내가 여기까지 뛰어오는 사이 근처를 수색하던 광신도들에게 들켜서 도망친 모양이다.
노인이 싸우지 않고 도주를 선택할 정도면 놈들의 규모가 어떠할지 예상이 갔다.
나는 잡히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노인과 마주 보며 앉았고 상당히 지쳐 보이는 메리 제인에게 캠프를 나올 때 가져와 초콜릿 바를 내밀며 잠시 숨을 돌릴 것을 권했다.
그리고 나는 지쳐있는 노인을 향해 놈들이 점거하고 있는 마을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대략적인 방향이 어디에요?”
“왜? 혼자 다녀오게?”
“몸을 빼는 건 혼자가 편해서요.”
메리 제인은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고 노인도 나이를 생각해야 한다.
손목시계를 확인해보니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여유시간은 대략 2시간, 혼자서 거점을 확인하고 몸을 빼기에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 물음에 땀을 닦으며 한참을 고민하던 노인은 결국 작은 한숨과 함께 자신이 발견한 놈들의 거점 위치를 말해주었다.
“험비 챙겨서 먼저 캠프로 복귀하세요.”
“……조심해라.”
예전의 노인이었다면 혼자 움직이는 나를 극구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장벽에서의 2년과 서울에서 벌였던 탈환 작전을 옆에서 지켜본 노인은 나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동료의 유무가 아닌 동료 그 자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교전 상황에선 뒤를 지켜줄 동료가 필요했지만 혼자 수색을 하고 몸을 빼는 상황에선 모든 것이 짐. 노인은 깔끔하게 동행을 포기했는지 허리를 잡으며 앓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를 엿들으며 열심히 고개를 갸웃거리던 메리제인을 데리고 천천히 이곳을 벗어났다.
어느새 말을 튼 노인과 메리제인이 나누는 대화가 조용히 멀어지기 시작한다.
“grandfather! 우리만 먼저 가요?”
“그래, 그래. 양키 고 홈!”
* * *
나는 어떻게 하면 변종과 사람들에게서 잘 숨을 수 있을까, 라는 1차원적인 고민에 한참 빠져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며 노인은 맹수들이 나오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 나온 맹수들의 사냥법이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었다.
분명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수면에는 한 점 흔들림 없던 악어. 사냥감이 오기를 기다리며 완전히 어둠 그 자체가 되어있던 재규어. 나무 위에서 1시간 넘게 매복하다 순식간에 임팔라를 낚아채는 표범까지.
사냥감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그들의 공통점은 주변 풍경과 동화되어야 한다는 추상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 - - - - - -.”
그리고 나는 몸을 숨길 때면 그 다큐멘터리에서 나왔던 맹수들의 모습을 연상하고는 했다.
흙이 눈에 떨어지고 몸에 벌레가 기어갈지언정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 침묵의 동화.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모습을 연상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내 눈앞으로 딱딱한 워커를 신은 광신도 무리가 웅성거림과 함께 지나가기 시작했다.
“정말 여기가 맞아?”
“아니 2조 애들이 진짜 봤다잖아. 할아버지랑 젊은 여자 이렇게 두 명.”
광신도 무리가 꾸린 수색조는 역시 한두 개가 아니었다.
2조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 보니 자기들을 제외하고도 다른 수색조가 더 있는 모양.
나는 일렬로 걸어가는 12명의 광신도 무리를 조용히 관찰하며 참고 있던 숨을 살며시 내뱉었다.
광신도 수색조는 처음 계곡에서 마주했던 놈들과 마찬가지로 통일되지 않은 복장과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총인원을 숨기기 위해 일렬로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규칙적인 대열을 유지하는 것을 보니 광신도들을 이끄는 상관이 이 인간사냥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모양.
나는 빠르게 전의를 감추고 이놈들이 지나가기를 천천히 기다렸다.
“총까지 발사했는데, 놓친 걸 알면 어떡하지?”
“그냥 사살했다고 하자고.”
그리고 무리를 이끄는 광신도 두 놈은 자기들끼리 무어라 떠들며 이곳에서 한참을 서성이더니 이내 주변을 살펴보는 나머지 광신도들을 데리고 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노인과 메리 제인을 발견하고 이곳까지 따라온 모양인데, 결국은 찾지 않고 돌아가는 모양.
나는 놈들이 멀어지자마자 재빨리 풀숲에서 기어 나오며 참고 있던 숨을 몰아쉬었다.
“- - - - -후우.”
차가운 바람에 피마저 차갑게 식어 내린다.
피부와 접촉하고 있는 검은색 장갑에서는 연신 한기가 몰려왔고 해 한 점 없이 먹구름 낀 하늘은 흔들리는 나무들과 어울려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나는 몸을 잡고 있는 한기의 녹을 재빨리 털어내며 광신도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그대로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노인이 알려준 좌표의 방향과 놈들이 향한 방향이 정확히 일치하니 아마 그곳에 광신도들의 거점이 있을 것이다.
속도를 낸다. 뜀박질에 속력을 가한다. 나는 마치 물 위를 걷듯 울퉁불퉁한 산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가기 시작했고 주변 풍경은 0.1초 단위로 끊어진다.
눈앞에서 쉴 틈 없이 점멸하는 공간의 프레임과 온몸을 타격하는 수많은 나뭇가지.
하지만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는 내가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조용히 묻어버렸다.
“- - - - - -.”
빠른 속도로 내리막길을 가로지르자 저 앞에 넓은 평야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람이 불자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기 시작하는 드넓은 건초 밭. 그리고 노인의 말대로 종말 사태가 벌어지자 급히 농사도 겸업하는지 건초 밭 이곳저곳에 휴경지로 추정되는 삭막한 땅이 보였다.
제법 그 규모가 거대한 나무 창고들과 그 옆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미국 특유의 시골 마을. 나는 천천히 자세를 숙이며 드넓은 건초 밭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