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27화 (227/313)

# 227

2부 24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절망이 인간을 약하게 만들었다면 종말은 인간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범죄와 부정적인 집단을 이루는 부랑자들. 일부 인간들은 스스로 타락하기를 선택했고 나중 가서는 자신 그 자체가 종말이 되어 이 아포칼립스의 일부를 자처했다.

과연 이 종말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신이 태초의 잘못을 물어본다면 나는 적어도 인간이 피해자라고 고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도 놈들과 같아질 때가 있었으니까.

“- - -끄으읍!!!”

입안을 가득 채운 천들만 없었어도 남자는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비명을 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아까 우리가 캠프를 발견할 때부터 고문인지 의식인지 모를 끔찍한 짓을 당하고 있는 중년 남성.

어째서 쇼크사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잔혹한 고문은 주변에 묶여있는 포로들을 벌벌 떨게 했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는 챙겨온 가방들을 전부 수풀에 숨겨두고 지금 사용할 장비들만 꺼내 서둘러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크게는 민수용 총부터 작게는 날카로운 근접무기까지. 광신도들은 규격화되지 않은 복장과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람 한 명쯤은 충분히 죽일 수 있는 광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을 충분히 경계한 노인은 우리를 향해 절대 방심하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고 이내 검은색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총기 레일에 착용 가능한 광학 조준경을 하나 꺼내 들었다.

관리가 생각보다 귀찮아 따로 광학 장비를 챙기지 않은 나와 용팔이와는 달리 이번 원정에서는 꼭 쓸 일이 생길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노인은 가져온 조준경을 드디어 총기 레일에 장착하며 보란 듯이 나와 우리 일행들을 쳐다보았다.

항상 한결같을 것 같던 노인도 지나가는 세월은 무시하지 못하는지 대략 1년 전부터 직접적인 근접전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하지만 그 뛰어난 사격술은 어디 가지 않았기에 노인은 작전 때마다 우리의 후방을 든든히 지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노인이 뒤에서 엄호를 해주는 이상 눈먼 총알에 맞을 걱정은 없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남은 탄창을 확인하며 완전히 비명이 사라져버린 캠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끔찍한 고문 행위는 끝이 났는지 광신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계곡. 나는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기 전에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마쳤고 이내 용팔이와 메리 제인에게 첫 지시를 내렸다.

“중위는 노인이랑 같이 움직이세요. 그리고 용팔이는 따라와.”

섬멸이 아닌 인질 구출이라는 힘든 작전이다.

아직 손발이 맞지 않은 메리제인은 노인과 함께 비교적 간단한 엄호에 집중시키고 용팔이는 나와 함께 계곡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자세한 작전을 세우기에는 조금 촉박한 시간, 나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의 팀워크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시선을 비명이 들리기 시작하는 계곡으로 돌렸다.

그리고 내 지시가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사방으로 흩어지며 단시간에 작전을 마칠 준비를 끝냈다.

먹구름이 흐리다.

*       *       *

“- - -No!!! Please No!!!”

남자의 육체를 전부 분해해 피 칠갑이 된 십자가에 걸어둔 놈들은 또 다음 희생자를 찾아 인질 가운데를 서성였다.

그리고 찰나의 고민도 없이 가장 어려 보이는 소녀의 머리채 거칠게 잡아끌며 아까 남자의 몸을 산채로 뜯어낸 현장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러자 그 옆에 소녀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찢어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 애원한다. 그녀의 눈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침착해.]

치익, 그리고 숲속에 엎드린 상태로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노인도 혹시 있을지 모를 우리의 동요를 무전으로 경고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알고 있다. 비록 속에서 불쾌함을 끄집어낼 끔찍한 광경일지라도 한순간 감정의 동요 때문에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소란스러움을 이용해 어느새 캠프 근처까지 접근한 나와 용팔이는 조용히 인상을 찡그리며 권총 방아쇠 위에 올려둔 검지를 까닥였다.

“- - - -악!”

자식을 지키려는 부모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날 앞에서도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잔혹한 단어는 소녀의 엄마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게 했고 그녀는 곧 바닥에 털썩 쓰러지며 부여잡고 있던 소녀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모두가 공포에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소녀는 무력하게 끌려가며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려 했다.

천천히 뛰는 심장, 나는 놈들이 완전히 보이는 텐트 뒤까지 이동하며 살며시 눈을 감는다.

“후…….”

딱-!!

내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빠져나오는 그 순간 저 멀리 숲속에선 기다렸다는 듯 웅크리고 있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소음기 사이에서 입을 쩍 벌리는 치명적인 총성. 그것은 고막을 짜르르 자극하고 온몸에 근육을 불러일으키는 출발 신호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소녀의 머리채를 끌고 가던 광신도 남자의 관자놀이가 펑 하고 터지며 공포와 광기로 가득했던 공간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와 용팔이는 숨어있던 텐트를 빠져 나왔다.

에덴 표 인질 구출 작전. 사실 거창한 문장과는 반대로 내용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위험이 될 만한 인물을 먼저 제거하고 근접전에 능숙한 사람을 투입해 인질을 확보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각자의 재량에 맡긴다.

여태 우리를 가르친 교관이 듣는다면 입에 게거품을 물겠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간단한 게 제일 좋은 거라고 우리의 방식은 꽤 좋은 효율을 자랑한다.

딱! 따닥! - - -딱!!

노인이 조준경으로 확인하길 총 21마리의 광신도 중 절반밖에 총기를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도 오랜 침체기로 무기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분명한 상황. 더군다나 자동화기는 고사하고 사냥용 라이플을 들고 있는 놈들도 있었기에 노인과 메리 제인의 목표는 엇갈리지 않았다.

숨죽인 총성이 들릴 때마다 총을 들고 있는 놈들이 바닥에 픽 픽 쓰러진다.

“습, 습격이다!!”

숲으로 인해 시야가 한정적이고 소음기에 쌓인 총성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총알의 궤적과 총염만으로 적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약자를 죽일 줄만 알았지 싸울 줄 몰랐던 놈들은 금세 혼란에 빠지며 엄폐물을 찾기 바빴다.

그리고 우리는 노인과 메리제인의 엄호를 받으며 텐트들이 즐비한 캠프 중앙에 빠르게 진입했고 이내 바닥에 납작 엎드려 벌벌 떨고 있는 인질들을 시야에 담았다.

하지만 그 순간 계곡 바위에서 큰 고함이 터져 나왔다.

“- - - - Motherfucker!!”

더러운 수염과 얼굴에 사람의 피를 덕지덕지 묻힌 한 광신도 남성.

그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엄폐물에 숨어있다가 저 멀리서 인질을 향해 접근하는 우리를 발견했는지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에게 적의 위치를 알리며 자기 오른쪽 허벅지에 꽂혀있는 자동권총을 뽑아 들었다.

자기가 무슨 갱이라도 되는지 엿 같은 파지법을 하며 나를 겨누는 광신도 남자. 나는 그대로 엄폐물에 몸을 숨기며 용팔이에게 외쳤다.

“인질 쪽으로 가!”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 소총 대신 권총을 들고 왔더니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놈은 들고 있던 자동권총을 제대로 조준조차 하지 않은 채 방아쇠를 당겼고 내가 몸을 숨긴 바위와 허공에 쉴 새 없이 총알을 날려댔다.

저절로 헛웃음이 튀어나오는 미숙한 사격 실력.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히 몸을 숨겼고 용팔이는 공터에서 벌벌 떨고 있는 인질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 바닥에 쓰러진 광신도는 총 6명. 성공적인 습격 앞에 나는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달랬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며 잠시 눈을 감는다.

탕-! 탕탕탕! 탕! 탕! 철컥, 철컥.

흥분했는지 눈먼 총알을 계속해서 날리는 광신도 남성.

하지만 목표를 잃은 총알은 내가 숨어있는 엄폐물만을 때릴 뿐 어떠한 해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 놈이 발사하는 총성의 숫자를 세며 천천히 때를 기다렸고 이내 공이가 빈 허공을 치는 소리가 들린 순간 눈을 번쩍 뜨며 권총과 함께 엄폐물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이, 이런 젠장!”

그리고 내 예상대로 놈은 총알이 나가지 않자 당황한 얼굴로 권총 탄창을 교체하고 있었다.

잔혹함과 노련함을 별개라는 것을 손수 보여주는 광신도 남자. 나는 그대로 오른쪽 눈과 총구를 정렬시키며 얼굴이 공포에 물든 채 엄폐물로 숨어드는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딱! 작은 총성과 함께 반동이 일어나고 놈은 그대로 바위에 죽어버린 머리를 처박는다.

“끄아아아-!!”

허공을 날아가는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뒤에서는 한 남성이 지르는 고함이 들려왔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인질들을 확보한 용팔이가 자신을 향해 정글도를 들고 달려오는 한 광신도 남자를 때려눕히고 있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의 체구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남성을 손쉽게 제압하는 용팔이의 모습. 그곳에는 에덴 막내 용팔이가 아닌 손속의 자비를 두지 않는 노련한 생존자의 모습이 있었다.

“- - - -아악!”

‘야 이 새끼들아. 나보고 뭐라고 했어? 뭐? 그거 챙기느니 라면이나 하나 더 챙겨가자고?’ 아마 노인이 우리 옆에 있었다면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만큼 기계식 조준기가 아닌 광학 장비의 힘은 대단했고 놈들은 엄폐물에 고개를 내미는 즉시 머리통이 뚫려 하나둘 죽어가기 시작했다.

총을 든 광신도들은 전부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그 총기를 들기 위해 달려가는 놈들도 그대로 쓰러져 죽는다.

바닥에 흘러내리는 피와 뇌수, 나와 용팔이는 얼굴에 묻은 총을 조용히 닦으며 노인의 학살극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       *       *

“책에 쓰인 이야기가 조금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요.”

메리제인은 넋이 나간 얼굴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며 읊조렸다.

헬기 조종사이긴 하나 이름 있는 특수부대 소속인 메리 제인. 일반 보병보다는 자신이 더 잘 쏜다고 호언장담하던 그녀는 옆에서 노인의 학살극을 지켜본 뒤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내가 네 명 용팔이가 한 명 메리 제인이 두 명.

그렇다면 나머지 광신도는? 그래, 전부 노인이 죽였다.

용팔이는 익숙한 일인 듯 시체를 치웠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메리 제인의 등을 툭 툭 쳐주었다.

“도망친 놈은 없냐?”

그리고 우리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저 멀리서 뒤처리를 끝낸 노인이 이마에 묻은 땀을 닦아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정확한 정체는 모르지만 이미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광신도들.

혹여나 한 놈이라 놓친다면 우리의 정보를 가져다 바치는 것이었기에 절대 도망치게 놔둬서는 안 되었다.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던 나는 교전 막판, 풀숲으로 이동해 몸을 숨기고 있다가 노인의 총격을 피해 미친 듯이 도망치는 놈들을 끝까지 추격해 잡아내었다.

그리고 한두 명 정도는 포로로 잡을까 하는 마음에 손속에 자비를 두었다.

하지만 공포에 질려있던 놈들은 나에게 잡히는 순간이 오자 표정을 광기로 물들이며 동귀어진을 시도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놈들을 전부 살인 멸구 하며 1시간 동안 이어진 교전을 종료했다.

꿀꺽.

그리고 내가 상념에 빠진 그 순간 아무런 조치 없이 캠프 공터에 모아둔 인질들 사이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구출할 때 팔다리에 묶인 밧줄을 다 풀어냈지만, 우리의 눈치를 보며 찍소리도 못하고 있는 그들.

나는 그런 그들의 눈빛을 바라보며 조용히 뒷머리를 긁적였고 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다가갔다.

“묻고 싶은 게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전에 제 질문에 먼저 대답해주세요. 혹시 이곳으로 잡혀 오기 전에 어디서 거주하시고 계셨습니까?”

자신들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선다면 우리를 향해 많은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전에 우리가 그들을 구출했던 이유를 상기하며 잡혀 오기 전 거주하고 있던 마을이나 캠프의 위치를 물었고 내심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행들과 어깨를 마주했다.

하지만 노인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 남성이 내뱉은 말은 실망 그 자체였다.

“저, 저희는 매클라우드라는 호수에서 잡혀 왔습니다. 그곳에서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 대부분이 같은 마을 사람입니다.”

남자는 절망이 섞인 얼굴로 열심히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매클라우드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우리의 표정은 실망으로 가득했고 열변을 토하던 남자와 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표정을 의식했는지 점점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나는 가방에서 조용히 지도 하나를 꺼내 남자가 잡혀 왔다는 호수의 위치를 찾아내었다.

“거주지가 혹시 리클스 마을 맞습니까?”

그 호수 앞에 존재하는 마을은 리클스가 유일하다.

내가 지도위에 마을을 짚어주자 남자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꾹 다물었다.

국유림에서 캠프를 차린 이들이 아닌, 국유림 아래 호수 사람들. 나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저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리고 이 포로들의 대표 격으로 보이는 남자는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했는지 내 쪽으로 재빨리 기어오며 자신들의 거취를 물어보았다.

대부분이 영양실조에 걸리기라도 한 듯 깡마른 마을 사람들. 아마 우리가 이곳에서 구해줬어도 돌아다니는 광신도들이나 거친 자연에 휩쓸려 목숨을 잃게 될 게 뻔했다.

굉장히 간절해 보이는 그들의 눈빛. 나는 조용히 뒷머리를 긁으며 한숨을 내뱉었고 이내 남자에게 대답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어?

아니, 대답하려고 했다. 잠깐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눈 나는 남자의 간절한 눈빛에 못 이겨 무심결에 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입을 열어 그들의 거취를 말하려는 그 순간 아까 광신도에게 머리채를 잡혔던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봤던 소녀는 정신적 충격이 크기라도 했는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로 엄마 품에 안겨 덜덜 떨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을 뺏은 것은 그 처량한 모습이 아닌 소녀의 목에 걸려있는 아주 조그만 일회용 카메라였다.

내가 저것을 어디서 봤을까? 한국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 일회용 카메라는 오랜 세월의 풍파와 충격 속에서 제 기능을 잃었는지 외관이 이미 너덜너덜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분명 렌즈 옆에 쓰여 있는 흐릿한 한국어는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 - - - -.”

소녀는 그게 소중한 보물이라도 된다는 듯 품에 꼭 끌어안고 있었고 경계가 어린 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눈동자와 마주한 그 순간 내 기억 속에 숨겨져 있는 한 뇌리의 조각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동윤 씨, 우리 같이 사진 찍을래요?’

채연이와 아이들이 너무나 예쁘게 노래하던 학예회 날, 카메라를 든 채 수줍게 다가오던 강수련의 웃음이 기억과 함께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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