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아직 살아있다-224화 (224/313)

# 224

2부 21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험비, 미군의 현대 소형 전술차량을 대표하는 녀석 중 하나다.

그리고 10만대가 넘게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답게 캘리포니아 방위대 또한 그 험비를 소지하고 있었다. 물론 연비가 욕 나올 정도로 좋지 않아 자주 운용하긴 힘들겠지만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완벽히 정비가 험비의 모습은 위풍당당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멋있는 험비를 열심히 정비한 군인들이 아닌 어디서 뜬금없이 나타난 얌생이가 몰게 된 것에 있었다.

대기를 찌르는 거친 엔진 소음과 운동장 한가운데서 폭풍처럼 일어나는 흙먼지의 향연.

학교를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은 깜짝 놀란 얼굴로 총구를 내리며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험비를 멍청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남쪽에서 퇴로를 확보하라고 보내뒀더니 부대 차고에서 험비를 훔쳐 기어코 이쪽으로 따라온 용팔이가 쉬어빠진 목소리로 무전을 보냈다.

[1층으로 내려와요, 형님! 정문에 들이박을 거예요!]

용팔이의 무전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앞길이 막막하려던 찰나,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등장해 준 용팔이.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들자 나는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노리쇠를 당겼다.

그리고 군인들을 막느라 탄약을 모두 소모한 노인에게 탄약 꾸러미와 수류탄 몇 개를 재빨리 건네주며 내 어깨에 생긴 출혈을 대충 막아낸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척척 움직이는 우리의 몸짓에는 더 이상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서서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팔뚝과 금방이라도 스프링처럼 튕겨질 듯 까닥거리는 검지의 움직임.

나는 그대로 교실 창문을 개머리판으로 내려치며 밖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군용전술차량이라고는 하나 군인들의 집중사격을 받으면 위험하다.

용팔이와 메리제인이 이곳까지 무사히 올 수 있도록 우리는 시선을 분산시키는 엄호사격을 해줘야했다. 그리고 내 행동의 의도를 재빠르게 눈치 챈 노인이 유리창을 주먹으로 깨부수며 군인들을 향해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조준선을 뭉뚱그려 발사하는 난폭한 난사, 총알의 궤적이 비처럼 그려졌다.

“- - - - - - - !!”

총알이 스치고 지나간 곳에 피가 튀기고 총을 맞은 자들의 입에선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당기는 방아쇠. 짧은 소강상태는 한순간 격한 교전으로 바뀌어버렸고 살의는 답답한 대기 공기를 더욱더 조이기 시작했다.

유리조각은 짙은 화약연기를 따라 사방으로 비산하고 바닥에는 탄피와 운 좋게 지나간 죽음의 사선이 굴러다녔다.

탕, 탕, 탕! 삐이이이. 귀는 이미 이명으로 가득 차 주변 소리를 자욱하니 틀어막는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우주 공간 같은 무의식속으로 빠져들었다.

총구가 정렬하고 사람이 죽는다, 방금 머리 옆으로 총알이 지나가고 나는 기계처럼 엄폐물에 머리를 숙였다.

익숙한 총의 반동,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검지의 감각.

죽음과 위기가 넘나드는 총알 사이에서 조용히 교차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걸까? 아니면 숨이 나를 잡고 있는 걸까?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신기루처럼 보이는 아이의 모습과 바닥을 굴러다니는 탄피가 교차한다.

그리고 그 순간 차량의 격한 스키드 소리가 노인의 고함과 함께 내 이명을 잡아먹었다.

“동윤아!”

끼이이이이이익-!!!!!! 쾅!!!!!!!!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체감상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과 30초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불현 듯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군인들의 견제를 피해 운동장 한가운데를 이리저리 질주하던 험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새 학교 앞 바리케이드를 박살낸 용팔이의 험비는 커다란 굉음을 내며 유리문을 박살냈다.

진짜 들이박을 줄 몰랐다는 듯 사방으로 몸을 날리는 군인들과 운전석에서 선글라스를 쓴 채 핸들을 꺾는 메리제인의 모습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인다.

용팔이가 달리는 내내 미친 여자라고 칭하던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학교 건물에 험비를 처박고 만 것이다.

그리고 나와 노인은 그대로 계단을 향해 몸을 날리며 험비가 들어온 1층으로 향했다.

드르륵-! 드르르륵!!

1층으로 내려오자 자욱한 콘크리트 가루들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끼어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사이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용팔이가 총을 연사하는 모습이 영화처럼 시야에 담긴다.

학교 1층 현관에 떡 하니 놓여있는 험비와 그런 우리를 막기 위해 밖에서 몰려오는 군인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운전석이 덜컹 열리더니 선글라스를 쓴 메리제인이 고함을 질렀다.

“뭐해요?! 빨리 타요!!”

어쩌다보니 이렇게 또 다시 뭉치게 되었다. 노인은 험비 안으로 냅다 몸을 욱여넣었고 나는 용팔이를 따라 남은 잔탄을 전부 쏟아내었다.

그리고 이곳을 향해 진입하려고 하는 군인들을 향해 소지하고 있던 수류탄을 전부 내던지며 빈 탄창을 허공으로 뽑아낸다.

동윤아! 그러자 노인이 나를 부르며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출발! 출발해요! gogo!”

텅텅!

그리고 내가 노인의 손을 맞잡은 순간 순식간에 탄창 두 개를 비워낸 용팔이가 차 몸체를 텅텅 치며 운전석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내가 던진 수류탄으로 인해 잠시 동안 가려진 시야와 군인들의 파상공세.

운전대를 잡은 메리제인은 지금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엑셀을 밟았다. 그러자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바퀴가 미친 듯이 돌아갔다.

끼기기기긱-!! 쨍그랑!!!!

학교 앞문을 부시고 들어와 뒷문을 부수고 나간다.

학교 교장이 봤다면 뒷목을 잡았을 광경에 험비는 위풍당당 유리문을 깨부수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차체와 차 후방에서 미친 듯이 쏟아지는 총알세례. 방탄유리는 이미 거미줄처럼 금이 가있었고 뒷바퀴 한쪽은 터져 버린지 오래였다.

하지만 터프한 험비는 그 강철의 태풍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앞을 향해 뻗어나갔으며 우리는 곧 경계구간의 철조망들이 보이는 길 한가운데를 달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다급히 내 어깨 출혈을 잡아주며 용팔이를 향해 물었다.

“다른 차량은!”

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탈출한 우리다.

사실상 적이라고 규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방위대의 추격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 점을 빠르게 캐치해낸 노인은 용팔이에게 또 다른 차량의 존재를 물었다.

하지만 연신 사방을 경계하던 용팔이는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뒷좌석에 붕대를 던져주며 대답했다.

“휘발유 죄다 빼놨어요!”

아까 전 상황에서 왜 무전이 없나했다.

용팔이는 우리가 정신없이 돌아다닐 동안 분주히 움직이며 제일 멀쩡한 험비를 강탈했고 군인들이 아껴두었던 연료까지 전부 유기해버렸다.

가뜩이나 한정된 자원에 몸서리치던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연료조차 우리에게 뺏겨버리고 만 것이다.

노인은 양손이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 껄껄 웃었고 나는 어이가 없어 웃다가 이내 어깨에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총알세례를 피해 기지 한가운데를 돌파하던 우리는 트리니티 강 옆으로 나있는 길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많은 군인들이 철조망 근처로 몰려들고 있었고 곧 이곳으로 다가올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속도를 낼수록 점점 가까워지는 길과 온갖 총구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살의.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며 총을 붙잡았다.

“어, 어쩌죠?! 그냥 돌파해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화기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대전차 무기나 구경이 큰 중화기는 우리에게 커다란 위협이었고 그 점을 걱정한 메리제인은 초조한 얼굴로 운전석을 잡은 채 나를 향해 물었다.

사면초가, 사방에는 오직 위협이 되는 것 투성이었지만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려야하는 중요한 판단, 나는 내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는 노인과 침을 꿀꺽 삼키는 용팔이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던지다 이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기관총석을 향해 손을 뻗으며 메리제인에게 대답해주었다.

“최고속도로 밟아요.”

강해돌파밖에 답이 없었다. 메리제인은 잔뜩 긴장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험비의 몸체는 미친 듯이 덜컹거리며 앞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방에 퍼지는 흙먼지와 점점 가까워지는 철조망. 나는 기관총석 손잡이를 꾹 부여잡고 그대로 머리를 밖으로 내밀었다.

경계방어를 위해 가져갔는지 험비에 달려있어야 할 기관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기관총석을 보호하기위해 만든 방탄 모듈은 내 양옆과 뒤를 훌륭하게 가려주고 있었고 나는 노인이 내미는 탄창과 총을 받아 그대로 들어 올려 견착했다.

화력이 버텨줄까? 점점 끓어오르기 시작한 생존본능은 두려움과 한계에서 벗어나 서서히 시야를 좁아지게 한다.

부아아아아앙-!!!!!!!!!

“머리 숙여!!”

메리제인이 속도를 냄과 동시에 급조한 바리케이드에 군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방어준비를 서둘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바리케이드 거치대에 걸려있는 경기관총 한 대.

그것을 빠르게 발견한 노인은 앞좌석에 있는 용팔이와 메리제인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경고했고 나는 재빨리 총구와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 - -드르르르륵! 드륵!

그리고 신경이 잡고 있는 소름이 쭈뼛 선 순간 거치대에 설치된 경기관총 총구에서 미친 듯한 총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소나기를 마주한 듯 날아오는 강철의 폭풍. 다행히 추가 방탄이 달린 험비 모델이라 바로 전복되지는 않았지만 앞바퀴가 전부 터지고 차량 전면에선 심상치 않은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총알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메리제인과 흔들리는 차안에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과 용팔이.

하지만 나는 흔들리는 차체 안에서 마치 고요한 물 위를 걷듯 온몸에 힘을 주고 자세를 유지했다.

차가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내 심장은 언제나 그렇듯 조용히 검지를 들어 올리며 침묵을 지켰다. 시야가 좁아지고 이명이 귀에 가득하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요소가 내 환상 속에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 - -스읍- - - 후우- - -.

숨을 삼키자 고개를 내리라고 소리치는 노인의 목소리가 사라진다.

그리고 숨을 내뱉자 미친 듯이 흔들리는 총구가 닭의 머리처럼 평형을 유지한다. 너무나 익숙한 집중의 공간, 허나 쉽게 찾아오지 않는 역전의 기회.

나는 모든 신경으로 그 시간을 끌어당기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을 훑어낸다.

그리고 그 전율의 전기신호는 조용히 방아쇠 위에 놓인 검지 끝으로 고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느려지고 내 숨은 멈췄다.

보인다. 100m의 거리가 마치 코앞까지 다가온 듯 확대되어 보인다.

경기관총 총구에서 반짝이는 불빛, 황동색 머금고 허공으로 날아다니는 탄피, 그들의 움찔거리는 입술과 그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숨결이 느껴진다.

그리고 나는 마치 물위에 부초처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눈 위에 동공을 움직여 경기관총 근처에 위치한 군인을 바라보았다.

M72 LAW. 연식이 오래된 대전차 무기지만 무게가 가볍고 가성비가 훌륭해 여러 후방 부대에서 아직도 운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우리를 저지하고 있는 그들도 어디선가 급히 챙겨왔는지 M72 LAW 전용 적재함에서 로켓탄환을 꺼내들며 달려오는 험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기관총조차 피해가야 하는 상황에서 나타난 대전차 무기, 저것이 발사되는 순간 험비는 그대로 폭발하거나 전복될 것이다.

죽는다. 그 짧은 단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마치 주마등처럼 아른거리는 선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종장의 그 순간은 과연 후회였을까 아니면 미련이었을까. 아니, 단연컨대 나는 최후의 그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마치 흑백 러프처럼 그려진 선들이 가리키는 방향, 그곳에는 험비를 향해 M72 LAW를 들어 올리는 한 군인이 보였다.

“- - - - -.”

두쿵, 두쿵. 커다란 기차가 내 옆을 지나가는 듯한 큰 심장소리가 고막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심장이 뛸 때마다 나의 모든 요소는 그 군인 옆에 놓인 적재함을 향해 모이기 시작했고 주변의 실선은 시야를 따라 모여 공간의 외곽을 가득 채웠다.

총알의 태풍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시야가 붉게 물든 무렵 나는 검지를 움직여 방아쇠를 당겼다.

탕-!

요즘 흰머리가 많이 생겼다. 수염도 많이 기른 것 같고 보기 싫은 흉터도 온몸에 가득하다.

아이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지만, 내 옷에는 총알구멍과 핏자국이 가득하니 문득 걱정이 된다. 아이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혹시 이 긴 시간이 나와 아이를 바꾸게 만든 건 아닐까?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걱정은 떠나간 총알처럼 한순간 흩어져버렸다.

왜냐하면 내 품에 안겨있는 키티 가방이 그날의 기억을 조용히 상기시켜줬으니까.

그리움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 - 쾅!!!!!!!!!!!!!!!!!

내가 날린 단 한발의 총알은 그대로 로켓탄 적재함에 박혀 큰 폭발을 일으켰다.

폭사하는 기관총 사수와 군인들, 그리고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는 사방으로 비산하며 거친 파편들을 날렸다.

정신이 서서히 흐려지고 내 몸은 흘린 피로 범벅이 된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건 기관총석에서 나를 끌어내리는 노인의 얼굴이었다.

짙은 피곤이 암전과 함께 몰려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