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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223화 (223/313)

# 223

2부 20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 - - - 꺄악!”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나와 반대방향으로 도망치는 피난민의 밀도가 급증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학교가 있는 방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짙은 연기, 노인은 분명 저곳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무전응답이 없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길이 없었다.

허나 그만큼 급박한 상황이라는 생각에 나는 미친 듯이 발을 놀린다.

거칠게 타오르는 숨과 코끝을 자극하는 탄내.

나는 아무런 의심 없이 쏟아지는 피난민의 강물을 마치 연어처럼 가로지르며 학교 건물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때쯤 반파가 되어 있는 학교 정문과 침입자를 제압하기 위해 몰려든 군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총의 궤적과 고함소리, 아까부터 시작된 교전은 한창이었다.

“- - - - - -!”

노인이 건물을 끼고 있다고 해도 한 손이 열 손을 이겨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다수는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은 점점 나빠질 것이 분명한 사실, 하지만 노인은 힘겨워 보이는 상황을 자신의 노련함과 가공할 실력으로 모두 맞받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담에 몸을 숨긴 그 순간 저 앞쪽에서 찢어지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 - - 진입해! 엄호할 테니까, 진입하라고!”

진전이 없는 교전 상황에 초조함을 느낀 한 장교 하나가 사병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며 건물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노인의 노련하다 못해 고여 버린 전투능력은 수많은 학교 창문에서 신출귀몰 머리를 총구를 들이밀며 입구를 향해 달려오는 군인들을 하나둘 저지하고 있었다.

엄호가 무색할 정도로 정확히 날아가는 총알과,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닌 하반신을 적중해 기동력을 앗아가는 악랄한 사격술. 주변은 아비규환으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대치상황도 결국 탄약의 부족으로 끝으로 보이기 시작했는지 노인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주기가 점점 길어졌다.

학교를 둘러싸며 분주한 움직임을 취하는 군인들과 시끄러운 무전기 소리, 기지 내 혼란이 정리가 된다면 정문에서 그들이 지니고 있던 중화기가 모습을 드러낼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최악의 순간은 면했다는 생각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학교 뒷길로 들어가는 담 옆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쏴 자세를 취하며 노인이 있는 건물을 향해 연신 고함을 지르는 장교 하나를 사병들 사이에서 발견했다. 겨우 장교 하나 죽는다한들 명령체계가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첫 번째 목표로는 적당해 보였다.

끼릭- - - - 탕!

숨이 멈추고 총구가 정렬된다.

시야가 완전히 좁아져 눈앞에 통로가 있다는 착각에 빠질 때쯤 방아쇠는 묘한 떨림과 함께 당겨진다.

그러자 귀를 아릿하게 울리는 총성과 동시에 내가 노린 군모 한가운데 붉은색 구멍이 펑하고 터져 나왔다.

“옆쪽! 옆쪽에도 있다-!”

건물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무의식속에 빠져 있던 군인들은 사각지대에서 예고 없이 날아온 총알에 순간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그 혼란은 한순간 전열을 무너뜨리기 충분했고, 엄폐물에 숨어 있던 군인들은 허겁지겁 고함을 지르며 재빨리 총알이 날아온 곳을 경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총알이 이쪽으로 쏟아지기 전에 이미 학교로 향하는 담을 넘은 상태였다.

[야 이놈아, 먼저 가라니까!]

담을 넘자마자 내가 온 것을 눈치챈 노인이 답답함이 묻어나는 무전을 보내왔다.

툴툴거리는 노인 특유의 잔소리, 하지만 나는 그 고함 속에서 역시 올 줄 알았다는 믿음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입에 은은하게 그려지고 양손은 바삐 빈 탄창을 교환해 낸다.

그리고 나는 매번 그렇듯 평온한 목소리로 무전에 답했다.

“빠져나올 수 있어요?”

우리에게 총구를 들이미는 저들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닌 분명한 군인 집단이다.

그렇다는 것은 일이 꼬였다는 걸 직감한 순간 당장 총을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란 말이었다.

그리고 노인도 좋지 못한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지 정말 오랜만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으며 무전기 너머로 지친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조금 어렵겠는데.]

온몸에서 짙은 격통이 느껴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을 경고하는 날선 감각이 머리를 왕왕 울린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침착해지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찢어진 입술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통증, 아마 나는 노인을 따라 후련한 너털웃음을 내뱉었던 것 같다.

“산으로 갔대요. 숲이 짙어서 겉으로 보이지도 않고 근처에 강이 있어서 식수 조달도 수월하겠죠. 아마 우리가 가기 전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이곳으로 몰려오는 군인들을 곁눈질하며 노인이 가장 궁금해 하고 있을 채연이네의 소식을 알려 주었다.

물론 지금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말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이 소식을 기다렸을 노인이었기에 나는 싸우기 직전 마지막 말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노인은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환한 기색을 되찾으며 기분 좋게 대답했다.

[아주 좋아 죽네, 시집은 어떻게 보내려고 그러냐?]

“하하, 못 보내요.”

우리가 싸우는 이유이자 한 걸음 더 걷게 해 줄 영혼의 연료, 수없이 넘긴 죽음의 위기와 아슬아슬하게 지속되는 내일의 연속이 속안에 꽉 들어찬다.

두려움과 공포라는 단어는 항상 내 발밑에 자욱하니 끼어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그걸 밟고 넘어서는 다짐을 한다.

내 손과 노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피곤은 사라지고 우리를 움직이게 해 주는 형체 없는 희망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자, 멀지 않은 곳에 여정의 끝이 보인다.

[1층으로 들어온다!]

“탄창은 있어요?”

[두 탄창!]

노인은 우리가 한숨 돌리는 사이에 증원 병력이 1층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소지하고 있는 탄약은 바닥을 드러냈는지 노인이 그들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주기는 늘어져만 간다.

노인과 접촉을 해야 하나? 머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판단이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과 눈앞에 어지럽게 날아다는 수많은 경로들, 하지만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개머리판으로 창문을 깨며 학교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쨍그랑!

창문을 넘자마자 사방에서 비산하는 유리조각과 더러운 발자국으로 점철이 된 복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함소리와 2층에서 놈들의 진입을 막는 노인의 연발사격.

나는 발자국 소리를 쫓아 재빨리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일렬로 접근하는 군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드르르르륵!

조준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연발을 갈겨 버린다.

피와 함께 튀기는 살점과 마치 박을 깨지듯 팍 소리를 내며 부스러지는 머리.

계단을 일렬로 걸어가던 군인들은 목적성을 잃은 총알에 너무나도 가볍게 나자빠졌다.

그리고 3명의 목숨을 방아쇠를 누름과 함께 뺏어간 그 순간, 내가 넘어온 창문과 담에서 찌르르 울리는 위험신호가 전해져 왔다.

탕! 탕탕탕!

- - - - - 핑- 삐이이이- - -

그리고 위험신호를 따라 시선을 황급히 돌린 그 순간 번쩍이는 총구와 함께 내 오른쪽 귀에서 찢어지는 이명이 들려왔다.

어느새 굴러 총알의 궤적을 피하는 내 몸과 이리저리 정신없이 뒤흔들리는 시야.

넘어온 창문에는 담을 넘어 도망친 나를 따라온 군인들이 이쪽을 향해 연신 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한시도 방심할 수 없다.

총알은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는지 뜨거운 피가 볼을 따라 흘러내렸다.

나는 총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탕- - -탕탕탕- - -!

교실문 옆에서 숨을 돌리는 와중에도 놈들은 나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며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행위를 지속했다.

녹진한 총성과 함께 연신 엄폐물로 날아오는 총알과 정신없는 발소리들.

콘크리트 파편은 가루가 되어 터져 나가고 나는 고개조차 내밀지 못한 채 고립되어 있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따라 총을 잡고 있는 내 손이 떨려왔다.

[동윤아, 괜찮냐!]

그리고 2층 계단을 사수하고 있는 노인은 내 쪽으로 놈들이 진입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무전기로 재빨리 소식을 물어왔다.

하지만 나는 거칠어진 숨과 급박한 상황 때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고 놈들이 다가오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진입을 허용한 이상 머리를 내밀어도 죽고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

소수와 다수의 싸움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가 당장 내 목줄을 쥐고 있는 결과의 답을 요구했다.

“영감님, 2층 창문!”

하지만 더 이상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키며 몸과 순간의 판단이 도출한 결론을 짧게 입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아까 군인에게서 노획한 세열 수류탄 하나를 재빨리 꺼내들며 핀의 구멍 안에 검지를 집어넣는다.

마치 뿌리를 뽑는 느낌과 함께 검지에 걸리는 핀과 손을 놓으면 떨어져 나갈 안전 손잡이.

그 순간 시간이 천천히 느려지고 저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군인들의 발소리는 마치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했다.

핑-!

손을 놓자 안전손잡이가 떨어져나간다.

튕겨 나온 격철이 뇌관을 누르는 작은 떨림이 손에서 느껴지고 나는 그 순간 숨을 멈추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커다란 폭음과 함께 터질 수류탄을 복도를 뛰어오는 군인들이 아닌 내가 숨어있는 문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수류탄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놓이는 순간 초시계가 머리의 신경을 타고 움찔거린다.

군인들의 거친 숨결과 발소리가 지척에서 느껴진다. 나는 근육을 폭발시키며 저 앞에 보이는 교실 창문을 향해 재빨리 뛰어갔다.

- - - - 쿵!

“……Shit! 놓치지 마!”

그리고 내 예상대로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군인들은 이곳에 숨어 있을 나를 찾아 정신없이 총구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일 뿐, 눈이 분노로 물든 군인 4명은 창문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빠르게 발견한다.

등 뒤에서 터지는 욕설과 총성, 그리고 내 머리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총알 궤적.

온몸에 소름이 곤 듯 서고 금방이라도 뒤통수를 뚫을 살기가 내 피부를 핥고 지나갔다.

똑, 딱, 똑, 딱. 1초, 2초, 3초.

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창틀을 손으로 짚은 내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눈앞에서 안개처럼 흩날리는 유리조각과 내 의지와는 반대로 밀려 나가는 몸.

그리고 나에게 총을 발사하던 놈들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던 수류탄에 반응조차 하지 못하며 파편의 벌집이 되었다. 귀를 가득 채우는 이명과 함께 어깨와 허벅지에서 짙은 고통이 느껴진다.

나는 그대로 교실에서 빠져나와 유리조각이 즐비한 바닥을 굴렀다.

허억-!

한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여파가 몸에 짙게 남았다.

나는 꼭 마지막 숨을 내뱉는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켰고, 이곳이 어디인지 내 몸은 어떤지에 대해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는 지경에 달했다.

격통, 고통, 숨 막힘, 이명.

나는 한동안 헛짚음을 집으며 바닥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저 위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가 나를 잡아끌었다.

“동윤아!!!!!!”

아까 창문 밖으로 몸을 날리기 전 외쳤던 짧은 문장에 의도를 재빨리 눈치챈 노인은 어느새 내가 보이는 2층 창문에서 로프 하나를 던지며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래, 역시 알아들을줄 알았다. 나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속으로 삼킨다.

그리고 노인이 부르는 목소리가 이명을 걷어내자 나는 피와 잔재가 묻은 손을 뻗어 로프를 붙잡았다.

“꽉 잡아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필사적으로 잡고 발을 박찼다.

그러자 노인은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근육을 뽐내며 로프를 끌어당겼고, 나는 순간 중력을 무시하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눈을 감고 뜨자 어느새 눈앞에 보이는 2층 창문.

얼굴이 땀과 피로 범벅이 된 노인이 내 멱살을 붙잡으며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하하, 미친놈! 기어코 여길 따라 오냐!”

멱살이 잡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나는 노인을 따라 웃으며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군인들을 상대로 포위에서 빠져나와 고립된 노인과 접촉했다.

물론 우리가 살 확률은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고 있었지만 둘이 한 공간에 있다는 요소가 나를 안심시켜 준다.

노인을 위해 한가득 가져온 탄창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진한 격통. 나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메리제인하고 용팔이한테 부탁한다고 무전해 줘요.”

못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용팔이를 밖으로 내보냈으니 걱정은 없었다. 지나친 이상 뒤에 남은 미련한 현실.

나는 조용히 상반신을 일으키며 탄창을 확인했고, 이내 밖을 빼곡하니 채우고 있는 군인들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허나 이상하게 노인은 내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조용히 무전기를 내밀고 있었다.

“들어봐.”

“……네?”

무전기 볼륨은 줄여 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끄럽게 울려오는 잡음은 퇴로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용팔이가 무언가 다급하게 외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뜬금없이 무전기는 왜?

나는 노인이 내미는 무전기를 조용히 받아들며 연신 시끄럽게 울려 대는 볼륨을 천천히 올렸다. 그러자 용팔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 이 미친 여자야!! 앞에! 앞에에에!!!]

무언가 격하게 흔들리는 소리와 제발 살살 몰라고 외치는 용팔이의 고함이 들린다.

미친 여자? 메리제인과 만난건가? 하지만 왜 무전기에서 엔진소리가 들리는 거지?

나는 순간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실실 웃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노인은 명확한 대답대신 창밖을 가리키며 그쪽을 바라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고개는 검지를 따라 천천히 돌아갔다.

군인이 포위하고 있는 주차장과 담, 허나 그곳에는 군인들 말고도 내 눈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땅을 긁는 스키드와 괴물 같은 고함을 내지르는 엔진소리. 저 멀리 학교 운동장에선 갈색 군용 험비 하나가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용팔이 미친놈, 기어코 험비를 훔쳐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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