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2부 19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 - - -탕! 타탕!
저 멀리서 소음기를 착용하지 않은 총소리가 여명과 함께 찾아왔다.
‘시선을 이쪽으로 끌어 주마.’
라는 마지막 무전과 함께 초병에게서 노획한 AR를 거침없이 발사하는 노인.
덕분에 건물을 지키는 경계인원은 전부 그쪽으로 몰려 갔고 우리는 소방서 건물 뒤쪽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해가 뜨고 어둠이 사라진다.
나는 검은색 모자를 벗어던지며 권총을 가슴으로 끌어당기는 파지법을 취한 뒤 앞을 향해 재빨리 뛰어갔다.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총소리는 곧 서로에게 총알을 발사하는 교전소리로 바뀌었고 내가 지나치며 보았던 군인들은 저 멀리 교전 방향으로 재빨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캠프를 요란하게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침입자를 마주한 캠프에선 긴장감이라는 감정이 거칠게 뿜어져 나온다.
휙휙 지나가는 시야와 점점 좁아지는 풍경, 내 뒤를 따라오는 메리제인은 초조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며 나를 향해 외쳤다.
“……이 화력으로는 1분도 못 버텨요! 제가 남을 테니 도망가요!”
상대는 어떤 무기를 들고 있을지 모르는 중무장한 군인이고, 우리는 끽해야 9mm 권총을 들고 있는 침입자다.
인원과 화력에서 그 어떠한 우위도 점하지 못한 나와 일행들은 사실상 들킨 순간부터 이곳에서 죽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리고 현실적인 입장에서 모든 상황을 계산한 메리제인은 나에게 그 불리한 상황을 일깨워 주며 포로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그나마 높은 자신이 이목을 끌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저는 영감님을 데려올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서 용팔이랑 퇴로를 만들어 줘요.”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망설임 없이 무시하며 그녀에게 담담히 지시를 내렸다.
군인이 보는 시각과 생존자가 보는 시각, 어찌 보면 메리제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살았으면 나는 그날 고시원에서 죽었다.
낙오는 없다.
같이 들어온 이상, 같이 나간다.
마치 깨지기 직전인 살얼음의 감각이 발끝에 고이고 나는 또 다시 뛰어갈 준비를 했다.
“저기로 가면 다 죽는다고……!”
그리고 아까 전만 해도 얌전한 모습이던 그녀는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자 다시 걸걸한 성격으로 바뀌어 버렸다.
마더 퍽 뭐? 허나 그녀의 욕이 완성되기 전에 머리를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은 내 머리 한켠을 자극했고 본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러자 시야가 멈춘 그곳에는 그녀를 향해 총을 겨누는 한 군인이 있었다.
정말 찰나의 순간, 나는 엄폐물을 벗어나 몸이 완전히 노출된 그녀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당겼다.
“뭐, 뭐……. 꺄악-!”
멱살이 잡힌 그녀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닥에 파파박 하고 튀기는 흙먼지와 요란한 총소리.
그녀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날아와 꽂히는 탄의 궤적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진다.
하지만 내 반응은 느려진 공간과 반대로 빠르게 반응하며 엄폐물 밖으로 몸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 - - - -.”
이명이 귀를 가득 채움과 동시에 몸을 움직인 나에게 반응하는 군인의 몸짓이 보였다.
천천히 움직이는 방아쇠에 까닥거림 분명히 내 몸통을 향하는 라이플의 총구, 상대는 훈련된 군인답게 충실한 반응으로 나에게 대응했다.
하지만 그 군인과 내 사이에 있는 분명한 경계선은 누구에게 손을 들어줄지 이미 정해져있었다.
딱 딱- ! 딱!
방탄복을 입었다는 가정 하에 골반 양쪽에 9mm총알을 한 번씩 쏴 준다.
깔끔한 더블 탭과 내 예상대로 앞으로 꼬꾸라지는 군인.
허나 나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짧은 순간 무력화 되어 버린 군인 이마에 마지막 총알을 날려 주었다.
그리고 즉사한 머리를 맞아 즉사한 군인과 함께 주위에 누군가 더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메리제인에게 다가갔다.
“후우- 후우!”
그녀는 바닥에 넘어진 채 거친 숨을 내밀며 권총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많은 행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군인이 쓰러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초.
메리제인은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것과 그 짧은 순간 오고간 교전 때문에 잠시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그래도 용케 총을 잡고 있는 것을 보니 패닉상태는 아닌 모양.
나는 그녀를 멱살을 잡아끌며 신병을 교육하듯 말했다.
“내가 영감님을 데리고 올 동안?”
내 방식은 무례하고 거칠었다. 하지만 그동안 경험이 이것이 효과적이란 것을 말해주듯 나에게 멱살을 잡힌 채 눈을 마주한 메리제인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총알이 스쳤는지 피가 주르륵 흐르는 볼을 닦아낸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남쪽으로 간다.”
좋다. 나는 정신을 차린 미국산 병아리를 일으켜주고 용팔이가 퇴로를 확보하고 있을 남쪽을 향해 그녀의 등을 밀었다.
그리고 챙겨온 권총 탄창을 확인하며 머리에 총을 맞아 즉사한 군인을 향해 뛰어갔다.
이곳에서 오래 교전할 생각은 없었지만, 노인이 군인들에게 고립된 순간 피 터지는 싸움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죽지 마요!”
그리고 내가 군인이 가지고 있던 생소한 라이플과 탄창을 챙긴 그 순간 남쪽을 향해 뛰어가던 메리제인이 나를 향해 악을 쓰듯 고함을 질렀다.
물론 그 고함도 사방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종소리에 묻혀 버렸지만, 나는 분명 ‘아이가 기다리잖아요.’ 라는 뒷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쟁 영화를 너무 본 거 아닌가. 급박한 순간에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 * *
우리가 만들어 낸 여파는 마치 눈 위를 구르는 눈덩이처럼 서서히 그 몸집을 불려나갔다.
설마 이 삼엄한 경계를 뚫은 침입자가 생길 줄 몰랐다는 듯 허겁지겁 움직이는 군인들과 소란스러움의 혼란을 더하는 피난민들.
그리고 설상가상 이 소음을 듣고 기지의 경계면으로 몰려온 놈들은 군인의 전력을 어쩔 수 없이 분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또 다른 위기는 곧 상황을 타파할 기회였다.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놈들을 막기라도 하는지 사방에서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총소리와 분주함 발걸음.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총소리의 주기가 많고 짧은 곳을 향해 나는 거침없이 몸을 옮겼다.
밤사이 나를 숨겨주는 것이 짙은 어둠이었다면 해가 뜬 지금은 탁한 혼란이었다.
그러나 은폐하지 않은 빠른 발걸음은 어쩔 수 없는 잡음을 가져왔다. 내가 노인이 있는 방향으로 추정되는 길 한가운데를 뛰어가는 순간 한 낡은 창고에서 중무장을 마친 군인 두 명이 뛰쳐나오더니 나를 발견하고 고함을 질렀다.
“거기! 비상상황이니 피난 구역으로 돌아가세요!”
처음에는 피난민인줄 알고 다급히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리는 군인 두 명, 하지만 내가 소총을 들고 있는 걸 눈치챈 오른쪽 군인은 짧은 순간 경악이 서린 얼굴로 소총을 부여잡더니 이내 비명 같은 고함을 지르며 재빨리 총구를 들어올렸다.
“뭐, 뭐야! 이런 시발! 무기 내려놔!”
상황파악은 금방이었다. 그들은 민간인이 무기를 들고 있다는 것과 비상상황인 것을 알리는 종소리를 통해 내가 이곳에 침입한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빠르게 도출해 내었다.
뒷목을 찌르르 울리는 죽음의 신호.
나는 엄폐물 하나 없는 길가를 미친 듯이 돌아보다 순간적으로 근육을 폭발 시키며 폐차를 향해 재빨리 뛰어갔다.
탕-! 탕탕탕!!
조금만 늦었어도 머리통이 날아갔다.
그들은 내 낌새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자마자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엄폐물을 찾아야 한다는 순간의 판단은 내 목숨을 또 다시 살려주었다.
내가 지나간 곳에 그대로 날아오는 탄의 궤적과 금방이라도 피가 튀길 듯 신경을 자극하는 위기감,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착각 속에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려 폐차 뒤에 숨었다.
“후우…….”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거칠게 달아오른 숨.
그들이 발사한 총알은 연신 날아와 내가 엄폐한 폐차를 때렸고 깨진 유리창은 마치 안개처럼 사방으로 비산했다.
철에 구멍이 뚫리는 살벌한 소리와 고막을 미친 듯이 두들기는 총소리와 이명.
나는 미친 듯이 사방을 둘러보다 이내 숨을 훅 멈추며 총의 몸체를 조용히 잡았다.
상대는 두 명이고 시간은 촉박하다.
“- - - - - -.”
살짝 고개를 돌려 놈들의 위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몸을 재빨리 오른쪽으로 젖힌다.
그리고 조준선을 정렬한 틈도 없이 감각에 의존한 채 방아쇠위에 검지를 얹는다.
그러자 시야에 보이는 것은 다급히 탄창을 교환하며 엄폐물을 향해 뛰어가는 군인 하나와 그런 동료를 엄호하기 위해 앉아쏴 자세로 총을 발사하는 오른쪽 군인.
나는 총알이 머리를 관통할지 모르는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 -탕탕!
동료를 엄호하던 군인이 머리를 내민 나를 발견하고 총구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 손가락과 몸에 느껴지는 묵직한 반동이 내 손가락과 몸을 훑고 지나간다.
그러자 두발의 총성과 함께 엄폐물을 향해 뛰어가던 군인의 목에서 피가 튀겼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다시 폐차 뒤로 몸을 숨겼다.
“컥!”
그리고 내가 다시 엄폐를 한 순간 목구멍에서 피가 들끓는 단말마와 함께 군인이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목에 입은 총상.
그것은 당장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위중한 상처였다.
나는 차분히 눈을 감으며 한숨으로 범벅이 된 입을 조용히 앙 다물었다.
“올리버!!!!”
그리고 폐차를 향해 연신 총을 발사하던 나머지 군인은 깜짝 놀라며 쓰러진 군인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분수처럼 솟아나오는 피를 필사적으로 막으며 온몸을 움찔거리는 군인 올리버.
그들과 엄폐물의 거리는 불과 30m이었지만 저 군인들에게 있어 이 짧은 순간만큼은 죽음으로 가는 길보다 더 길게 느껴질 것이다.
“……젠장!”
5초, 10초, 15초.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갔고, 동료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빠르게 낭비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악랄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폐차에 처박혀 나오지 않았고, 엄폐물을 끼지 못한 군인은 내가 고개를 내밀지 못하도록 총을 발사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수적 우위라는 이점은 동료의 부상으로 인해 순식간에 족쇄로 바뀌었고 이상적인 이름의 전우애는 판단을 망설이게 하는 독으로 변했다. 망설임이 느껴진다.
그래, 당연히 고민될 것이다.
하지만 고민하는 그 순간에도 목에서 피를 뿜어내는 올리버는 죽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군인은 살짝 물기가 섞인 욕설을 거칠게 내뱉으며 나와 올리버가 있는 방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 살려……. 컥, 꺼억-!”
그리고 그런 군인을 향해 손을 뻗으며 구조를 요청하는 올리버는 삶과 죽음을 저울질하는 고민에 극적인 감정을 던져 넣었다.
스스로 엄폐물로 기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에게서 시선을 뗄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
결국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을 선택한 군인은 나에게 총을 난사하며 몸부림치는 올리버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 - - - -.”
시간이 느려지고 입안에 쓴 감정이 모인다.
죄책감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무뎌진 내 마음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뛰는 심장.
나는 군인의 뜀박질 소리가 들리자마자 눈먼 화망의 반대쪽으로 몸을 옮겼고, 재빨리 총구와 몸을 왼쪽으로 내밀며 숨을 훅 내뱉었다.
그러자 반듯한 일렬로 정렬된 조준선 사이로 올리버를 엄폐물로 끌고 가는 군인의 머리가 보였다.
올리버를 엄폐물로 옮기는 군인과 눈이 마주친다.
다급함, 절망, 공포. 두려움.
나는 허공을 감도는 그 감각을 조용히 삼키며 검지를 움직였다.
탕-!
그러자 차가운 총성과 함께 많은 감정을 담고 있던 군인의 머리가 뒤로 휙 꺾인다.
마치 필라멘트가 터지듯 사라지는 작은 빛과 속안을 파헤쳐 놓은 묵직한 반동.
내가 총구를 내리자 군인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
그 총성을 끝으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고, 내 바닥에 쓰러진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머리에 총을 맞아 즉사한 군인과 엄폐물로 옮기기 전 이미 죽었는지 움직임을 춘 올리버.
나는 그 둘을 내려다보며 탄띠에 꽂힌 탄창을 전부 회수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려 죽기 전까지 감지 못한 그들의 눈을 조용히 감겨 주었다.
입안에는 아직도 쓴 내가 남아 있었다.
펑-!
하지만 그 여운을 느낄 여유조차 주지 않는 현실은 교전지역에서 들려오는 폭파소리에 시나브로 묻혀 버렸다. 왼손에는 탄창을 쥐고 오른손에는 소총을 쥔다.
나는 노인이 기다리고 있을 북쪽 학교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