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2부 13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팡-!
방아쇠를 당기자 총성과 함께 탄환을 격발시킨 여운이 그대로 그립을 타고 올라왔다.
찌르르 울리는 손끝과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작은 화염.
순간 멈칫하고 나와 산탄총을 바라보던 녀석의 오른쪽 머리통은 그대로 곤죽이 되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나는 홀더에 권총을 집어넣으며 제대로 된 견착 자세를 취했다.
철컥, 퐁-!
펌프를 당기자, 붉은색 탄피가 허공을 날았다.
주변을 흑백 러프처럼 가린 빗줄기와 내 코끝을 타고 내리는 땀.
짐칸 바닥에는 탄피와 함께 놈의 뇌수가 굴러다녔고 주변 공간은 멈추기라도 한 듯 고요하기만 했다.
그리고 오른쪽 머리 일부분이 날아간 놈은 아가리를 쩍 벌리며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아아아-!
공유된 놈과의 감각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수많은 감정의 노도.
그중에는 두려움, 놀람, 분노, 당황이라는 감저의 찌꺼기들이 회오리처럼 요동쳤다.
그러나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변종들의 마지막 의문은 하나 같이 똑같았다. ‘내가 죽는다고 ’ 그리고 그 물음에 맞다고 대답해 준 것은 방아쇠를 꾹 당긴 내 검지였다.
탕! 철컥, 탕! 철컥, 탕-!!!
녀석이 반사적으로 얼굴을 막아 보지만 쏟아져 내리는 탄알 앞에서는 너무나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나는 방아쇠를 당긴 상태에서 연신 펌프 액션을 당겼고, 마치 연발처럼 날아가는 샷건 탄환은 녀석에 팔과 머리에 박혀 들었다. 한 발에 놈의 오른손이 날아가고 또 다른 한발에 뻥 뚫린 양쪽 눈이 날아간다.
놈의 입에서 단말마와 같은 비명이 터져 나온다.
몸에서 머리를 아예 떼 놓거나 뇌라는 기관자체를 박살내지 않는 이상 변종들은 죽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들은 위험에 처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현장에서 도망쳐 버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잘 모르는 많은 대원들이 이 마지막 순간에 긴장을 풀고 놈들에게 당하거나 도망치는 발버둥에 치여 부상을 당하고는 했다.
허나 척하면 척이라고, 이 비명을 들은 일행들은 본능적으로 감각을 곤두세우며 마지막 순간을 대비했다.
지금 이 모습은 놈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이 아닌, 맹수가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을 노련한 사냥꾼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용팔아!!”
“알고 있어요!”
마지막 순간이 왔다.
노인은 잽싸게 핸들을 꺾으며 고함을 질렀고, 창밖으로 다시 고개를 내민 용팔이는 기다렸다는 화답했다.
그리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용팔이의 손에는 글렌 마을에서 머리 귀신을 잡을 때 사용한 거대한 작살 총이 들려 있었다.
파앙-!
“- - - -끼기기긱!”
도망 못 친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트럭을 부여잡고 있던 놈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재빨리 손을 놓고 도주하려고 했다.
하지만 절묘한 타이밍에 핸들을 꺾은 노인의 운전은 녀석을 트럭 유리에 미끄러트렸고 용팔이는 그때를 기다렸다는 놈의 상반신에 작살 총을 날려 버렸다.
정확히 가슴에 박히는 작살과 옆으로 기우뚱 거리는 트럭.
나는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철컥, 퐁-!
산탄총에 들어가 있는 마지막 두 발! 펌프를 당기고 밀자 연기와 함께 탄피가 빠져나왔고 그 소리와 코끝에 어리는 화약연기는 감미롭기 그지없었다.
느려지는 시간과 마지막 순간 100%로 끌어올린 집중력이 트럭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순간에도 총구를 고정시켰다.
탕! 철컥, 탕!
머리를 지탱하고 있는 목을 쏘자 검은색 피와 더러운 신경다발이 끊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놈의 아래턱을 쏘자 흉측하고 거대한 머리통이 허공으로 부웅 떠올랐다.
몸체에서 놈의 머리를 완전히 떼 놓는 완벽한 마무리.
노인은 그대로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용팔이는 꽂아 놓은 작살 총의 밧줄을 황급히 자르며 머리를 집어넣었다.
끼익-! 쿵!
급브레이크를 밟자 즉사해 버린 놈의 몸체가 우리 앞길에 떨어졌다.
바닥에 호수처럼 고이는 검은색 핏물과 부들부들 떨리며 서서히 죽음으로 잦아드는 놈의 몸체.
허나 노인은 그대로 엑셀을 밟았고, 길가에 놓인 살코기를 향해 트럭이 전진했다.
덜컹-
고기를 짓이기는 소리와 함께 트럭이 한차례 덜컹거렸다.
그리고 빠르게 속력을 내기 시작한 트럭 앞으로는 우리가 빠져나갈 도시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온몸에 몰려오는 탈력감과 속이 뻥 뚫리는 통쾌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한 치의 실수도 없었던 완벽한 호흡.
노인은 핸들을 잡으며 조용히 웃었고 용팔이는 눈치 없이 작은 환호를 내질렀다.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깐족거림. 하지만 조용히 웃고 있는 나와 노인은 오늘만큼은 용팔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저, 저 선생님……. 혹시 남는 바지 있습니까 ”
고개를 돌리자 짐칸 한쪽에는 몰골이 말이 아닌 메리제인이 이상한 자세로 넘어져 있었고 동시에 나를 향해 새로운 바지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 까먹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자존심을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사 모두 그렇듯 처음이 가장 힘든 것이다. 나는 변종을 처음 마주한 그날을 기억하며 부지런히 바지를 찾았다.
* * *
“쯧, 이제 못쓰겠네.”
도시를 가로지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트럭이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덜덜 거리는 소리와 함께 멈췄다.
차 보닛 사이로 뭉게뭉게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트럭 바퀴에서 들리는 심상치 않은 소리.
급발진과 급브레이크, 그리고 아히이에게 실컷 박살난 충격의 여파는 결국 트럭을 망가트리고 만 것이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녀석의 백미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한 30마일정도 남은 것 같은데……. 일단 자리를 잡자.”
일몰이 다가오는지 주변은 어느새 어두컴컴해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하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걸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노인이 내놓은 의견을 받아들이며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저 한쪽 나무 뒤에서 바지를 갈아입고 온 메리제인이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고장 난 트럭을 향해 다가왔다.
“잘 맞습니까 ”
우리 중 체구가 가장 작은 용팔이의 바지를 빌려줬는데, 메리제인은 그것도 조금 큰지 떨떠름한 얼굴로 펄럭거리는 바짓단을 보여 주었다.
두세 번 접었음에도 불구하고 긴 기장과 펄럭거리는 바짓단.
하지만 바지가 마르기전까지 입고 있어야 했기에 불편해도 어쩔 수 없었다. 노인은 피식 웃었고 메리제인은 뒤통수를 북북 긁으며 고개를 숙인다.
“형님, 찾았어요.”
그리고 우리가 고장 난 트럭과 챙겨온 짐들을 정리하는 동안 밤을 머물 곳을 찾으러 떠났던 용팔이가 풀숲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불렀다.
우리가 지금 위치한 곳은 더글라스 시티로 향하는 299번 도로.
주변은 온통 숲뿐이라 이슬을 맞으며 비박을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용팔이가 용케 건물을 찾은 모양이다.
그 부름에 나는 용팔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챙겨 들었고 떠날 준비를 끝낸채 나를 바라보는 메리제인과 노인을 천천히 이끌었다.
매섭게 내린 비로 인해 축축하게 젖은 우비와 양말.
온몸은 진흙탕과 변종의 피로 찌들어 있었고 정신과 신체에선 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허나 익숙한 고난은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그렇게 한 10분가량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을까, 저 멀리서 하이킹 출발지라는 낡은 표지판과 함께 숲으로 들어가는 작은 흙길이 보였다.
이 근방 대부분이 그렇듯 사람들의 왕래가 끊긴 이 흙길은 작은 동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용팔이가 안내하는 흙길을 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겼고 이내 숲속에 홀로 서 있는 등산용품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 * *
“보통 이 거리면 얼마나 걸렸지 ”
“무리해서 걸으면 10시간이요.”
잠깐 보닛을 열고 살펴본 트럭은 고쳐서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주변에 멀쩡하게 작동하는 차량이 없는 이상 결국 도보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299번 도로를 쭉 타고 걸으면 캘리포니아 방위대가 있는 더글러스 시티까지 반나절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 중간 위험요소가 존재하겠지만 숲을 가로질러 가다 길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양호한 상황이다.
나는 나침판을 조용히 옮기며 지도위 299번 도로에 붉은색 볼펜을 칠했고, 우리가 고생하며 지나온 길을 조용히 주시했다.
채연이를 만나기 위해 떠난 여행길이 어느새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형님, 영감님. 이쪽으로 와서 커피한잔 하세요.”
그리고 나와 노인이 내일 이동할 경로의 확인을 끝내자, 용팔이가 텐트 문을 열며 커피물이 다 끓었음을 알렸다.
빛이 새어나갈 것을 염려해 조그마한 버너불로 노심초사 끊이는 커피.
물론 밖에서는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흔한 물건이었지만 이런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 뜨거운 커피는 사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귀했다.
그리고 마침 따뜻한 것이 간절했던 나와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등산 매장 안에 쳐 둔 5인용 텐트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등산품 매장에서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하자 시간은 어느덧 저녁 8시.
커피를 마시며 내일 있을 일정을 브리핑을 할겸 텐트 문을 열자 훈훈한 열기와 함께 은은한 커피 향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쪽 구석에 박혀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고 있는 메리제인과 우리가 먹을 뜨거운 커피를 정성스레 준비하고 있는 용팔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천천히 발을 들인 나는 입가에 작은 웃음을 머금으며 조그마한 텐트 한쪽 자리를 차지했고 노인도 익숙하다는 듯 안으로 들어와 불꽃이 일렁이는 버너 옆에 앉았다.
목숨이 오고가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뒤 커피와 함께 찾아온 잠깐뿐인 휴식은 시나브로 다가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천천히 녹였다.
한 모금, 숨 한 번. 두 모금, 숨 한 번.
양손으로 커피를 감싸 안고 한동안 입을 꾹 다문 우리는 그렇게 노곤한 몸을 달랬다.
그리고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조용히 입맛을 다신 노인이 말을 꺼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내일 해 뜨자마자 출발해서 채연이네랑 합류하자.”
짧지만 많은 감정을 담고 있는 노인의 브리핑에 나와 용팔이는 눈을 감으며 성취감이라는 여운을 조용히 만끽했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들고자 쉴 틈 없이 뛰어다녔던 지난 난들과 이 원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해야만 했던 수많은 고난들.
이제 내일이면 그 고난과 인내를 넘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여운이 잠긴 침묵이 지나자 용팔이는 촉촉하게 젖은 눈가를 슥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노인은 하하 우냐 라는 농담과 함께 용팔이를 따라 텐트 밖으로 나갔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나도 일행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메리제인 중위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도착하면 부대랑 연락할 수단을 빌려드릴 테니, 무사히 복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메리제인 중위가 아니었다면 캘리포니아 방위대에 위치를 몰라 한참을 헤맬 뻔했다.
허나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그녀 덕분에 가장 빠른 길로 도착할 수 있었고 아까 변종과의 전투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
내가 천천히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얼굴이 수척해진 제인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맞잡는다.
“아, 아니요……. 제가 더 감사하죠.”
우리 원정팀이 채연이네와 함께 한국으로 떠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타국의 군인이다.
하지만 이런 비정한 세상에서도 자신의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는 메리제인 중위는 참 보기 드문 군인 중 하나였고, 개인적으로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하는 선한 생존자였다. 그리고 나와 악수를 나눈 메리제인은 시원섭섭한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과 일행 분들도……. 아, 아니죠.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
생각해보 니 급박한 상황에 만나 통성명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나를 정중하게 sir이라 칭하던 메리제인 중위는 말을 정정하며 우리의 이름을 물었고 나는 흔쾌히 내 이름 석 자를 불러주며 그녀와 맞잡은 손을 조용히 흔들었다.
“저는 곽동윤입니다. 그리고 저쪽에 계시는 어르신은 엄재형, 그 옆에 우리 막내는 최용팔이에요. 그냥 편안하게 성으로 부르세요.”
간단히 내 이름 석 자와 일행들을 소개한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천천히 악수한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와 맞잡은 오른손에 느껴지는 강력한 악력에 깜짝 놀라 얼떨결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사슴처럼 큰 눈망울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메리제인이 악수한 손을 꽉 붙잡고 입을 헤벌린 채 조용히 내뱉었다.
“지져스, 동윤…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