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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215화 (215/313)

# 215

2부 12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녀석이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아랫입술을 깨물며 한쪽 눈을 감았고 조준간 사이로 점차 거리를 좁혀 오는 놈을 주시했다.

여전히 기괴한 모습과 가공할 정도의 신체능력.

허나 변종 아히이의 무서운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으으으…….”

아니나 다를까 고막을 스치고 지나가는 신음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다리가 풀린 메리제인 중위가 트럭 짐칸 한구석에 주저 앉아 있었다.

창백해진 얼굴과 마치 힘줄을 끊어 놓듯 흐느적거리는 팔다리.

그리고 실금을 하기라도 했는지 군복 바지는 살짝 젖어 있었고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것처럼 굳어 있었다.

마주하는 순간 오금이 저리가 팔 다리가 풀려 오는 압도적인 공포.

귀에는 이명과 죽음의 속삭임만이 가득할 것이고 저항은 불가항력으로 바뀌어 버린다.

변종 아히이가 입 밖으로 내뱉는 고주파의 울음소리는 인간을 한순간 무력화시키는 녀석의 치명적인 무기 중 하나였다.

“동윤아!”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냥감에게나 해당되는 법칙.

이미 종의 피라미드를 거슬러가 수없이 많은 놈을 사냥해 본 우리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놈의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 노인은 그놈인 것을 직감했는지 다급하게 나를 불렀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용팔이는 재빨리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트럭 뒤쪽을 바라보았다.

“멈추지 말고 계속 밟아요!”

그리고 나는 대답대신 고함을 지르며 트럭 뒤쪽에 앉아 쏴 자세로 사격을 준비했다.

숨을 크게 들이킨다. 연신 좌우로 움직이는 트럭과 갈라진 도로에 인해 덜컹거리는 신체.

하지만 내가 앞으로 조준한 총구는 마치 닭의 모가지처럼 한 방향을 향해 고정하고 있었다.

두 번의 심장울림이 들렸고 빗물이 고여 있는 검지를 털어내며 방아쇠를 당겼다.

딱-!

희열이 느껴지는 얼굴로 트럭을 따라오던 놈은 그대로 대가리에 총을 맞고 바닥을 굴렀다.

사냥감이라고 생각한 나에게 일순간 당한 공격. 우리에게서 살아남지 못한 모든 변종들이 그렇듯 놈도 똑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온몸을 베베 꼬기 시작했다.

부아아앙-!

그리고 백미러로 놈이 자빠진 것을 확인한 노인은 힘껏 엑셀을 밟으면 낡은 엔진을 혹사시켰다.

이러다가 엔진이 퍼지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 만큼 빠른 속도. 허나 달려오는 놈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이상 속도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긴다.

“영감님, 앞에! 앞에!!!”

그리고 그 순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용팔이가 얼굴이 허옇게 질려 소리를 질렀다.

마치 사자가 사냥을 끝내기를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낸 하이에나 놈들이 우리가 나아가야할 도로를 마치 방파제처럼 꽉꽉 틀어막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앞뒤가 막혀 있는 사면초가의 상황, 이를 악문 노인은 재빨리 핸들을 왼쪽으로 틀어 트럭의 방향을 꺾었다.

끼이이익-!

바퀴는 스키드를 남기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나와 메리제인은 짐칸 한구석으로 날아가 몸을 박았다.

으아악!

이상한 고함을 내지르며 재빨리 창문을 잡는 용팔이와 넋이 나가 있는 상태에서 새된 비명을 지르는 메리제인.

마치 곡예와 같은 드리프트 턴을 끝낸 노인은 몰려오는 놈들을 피해 비포장 길을 후진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덜컹!

“- - - - -!!”

트럭이 앞뒤로 미친 듯이 흔들리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착각에 빠진다.

후진하는 트럭 정면으로 보이는 끔찍한 광경. 우리가 빠져나옴과 동시에 도로에 몸을 던진 놈들은 마치 파도가 부딪히듯 회색 포말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의 잡을 뻔한 트럭을 놓쳤다는 사실에 입을 적 벌리며 고막이 터질 것만 같은 끔찍한 괴음을 내질렀다.

마치 터져버린 물 풍선처럼 큰 도로를 꾸역꾸역 기어 나오기 시작한 놈들.

트럭을 향해 뻗은 손과 서로가 서로를 밟으며 몰려오는 그놈들은 똑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생물체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몸이 왼쪽으로 급격하게 쏠리며 시야가 돌변한다.

“꽉 잡아라!”

후진으로 달리던 노인은 다시 한 번 핸들을 꺾으며 순식간에 차체를 앞으로 돌려 버렸다.

그리고 시간은 다시 제자리를 찾음과 동시에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던 엔진이 거대한 고함을 내질렀다.

부아아앙-!

사방에 비산하는 흙탕물과 마치 몰려오는 해일처럼 우리의 뒤를 쫓아오는 수만 마리의 그놈들. 메리제인은 그런 인외의 광경을 바라보며 입술을 떨었다.

끼이이익-!

허나 그런 찰나의 두려움조차 느낄 시간이 없는 현실은 우리를 끊임없이 몰아쳤고, 노인은 다시 한 번 핸들을 꺾으며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향해 트럭을 몰았다.

저 앞에 펼쳐지는 광활한 새크라멘토 강은 내리는 빗물을 머금으며 심연의 아가리와 같은 황토색 물을 뱉어냈다.

“으아아-! 영감님, 안전운행! 안전운행!”

“안전운행 좋아하면 택시를 타지 그랬냐! 이 새끼야!”

나무와 장애물을 피해 연신 곡예운전을 펼치는 노인과 차 천장에 머리를 박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용팔이.

이 둘은 위급한 와중에도 만담할 기운이 남아 있었는지 서로에게 고함을 내지르며 이상한 발악을 했다.

그리고 트럭은 비포장 길을 빠져나와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초입으로 들어섰고 우리를 쫓아오는 놈들은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 - -후우.”

트럭은 진흙탕으로 범벅이 되었고 숨을 몰아쉬는 우리 꼴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한번 위기를 넘겼다고 해서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왜냐하면 저 다리 너머에는 우리가 달려온 길보다 배는 복잡한 번화가가 존재했고 트럭을 따라오던 놈들이 멀어졌다는 사실은 진짜 맹수가 접근하고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녀석은 아직 사냥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신 차려요.”

그리고 트럭이 다리를 지나 번화가에 접어들 무렵 나는 짐칸 한편에 멍하니 앉아 있는 메리제인을 부르며 어깨를 꾹 잡았다.

웬만하면 그냥 내버려두고 싶지만, 지금은 놀고 있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총을 메리제인에게 쥐어주며 똑똑히 기억하라는 듯 어깨를 힘 있게 잡았다.

“이쪽은 제가 맡겠지만, 반대쪽까지 커버하기는 힘듭니다. 놈이 오면 데미지를 입히는 것보다 방향을 알리는 것에 집중해 주세요. 여기서 트럭이 멈추면 당신도 죽는 겁니다.”

그녀는 내가 힘껏 잡은 어깨가 아픈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고통 뒤에 오는 명령은 흐린 정신을 잠시나마 맑게 만들어 주었고, 메리제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총을 받아들었다.

그래도 군인이라고 쉽게 상황을 받아들인 모양. 나는 한동안 그녀와 눈동자를 마주하다 이내 바닥에 내려놓은 총을 들며 주변을 살폈다.

완전히 번화가에 들어서자 좁은 도로와 빽빽한 건물이 길게 늘어졌다.

이곳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남은 거리는 5~6마일.

어떤 길을 통해 갈지 모르기에 시간은 예상할 수 없다. 특히나 길옆에 서 있는 빽빽한 가로수들은 주변을 살피는 우리의 시야를 방해했고, 그 뒤로 존재하는 건물은 언제 습격을 좋아하는 놈에게 너무나 유리한 공간이었다.

부웅-!

허나 발을 빼기에는 이미 깊은 늪지로 들어온 상황.

아까부터 트럭은 위 아래로 덜컹거리고 엔진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났지만 노인은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올리며 번화가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메리제인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고 내 이마에 흐른 물방울은 땀과 함께 섞여 코끝에 맺힌다.

1분, 2분, 3분. 터지기 직전 폭탄을 마주한 듯 긴장된 시간은 느리게만 흘러갔다.

휙 휙 바뀌는 시야와 똑같은 건물 똑같은 가로수.

비바람에 휘날리는 나뭇가지가 왠지 그놈 같았고 고개를 돌리면 목이 잘릴 것 같았다.

무엇이 허상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요소.

그것은 바로 습격할 시기를 정할 수 있는 맹수의 가장 큰 무기중 하나인 것이다.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좁아진다.

하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실체를 마주하고 놈이 우리 총구에 대가리를 들이미는 그 순간만을 기다려라.

그리고 쓰디쓴 인내가 지나가자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공간과 시간이 몸과 영혼을 강하게 투영했다.

마치 박하사탕이 내 몸을 통과해 지나가는 것 같은 탈력감과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긴장으로 멈춰 있던 사고는 깨끗한 물처럼 정수되었고, 시야를 스치고 지나가는 현실의 풍경은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내 신경을 어지럽히는 비바람 소리는 거짓말처럼 이명으로 바뀌어 버리고 그날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내용이 기억을 스치고 지나갔다.

[놈들이 무슨 생명체인지 규정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윤 씨를 면역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웃기는 상황이에요. 왜냐하면 동윤 씨 몸에 항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변종 성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니까요.]

[동윤 씨는 말 그대로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놈들처럼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어요. 심폐기능, 근육밀도, 민첩성, 동체시력, 모든 게 일반이라는 범주를 뛰어넘은 거죠]

[하지만 제가 장담컨대, 그놈들하고 동윤 씨는 달라요. 연구결과와 이론으로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다르다고요. 요즘 중국에서 연구 중이라고 하죠 신체적 강인함 특수한 능력 아니, 통제하지 못하는 그 능력들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명심하세요, 동윤 씨. 동윤 씨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야성의 절제입니다.]

똑, 딱, 똑, 딱.

신체시계가 돌아가고 귓가를 맴돌던 최철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멈춘 공간과 멈춘 동공.

내 오른손은 어느새 소총의 견착이 아닌 허벅지에 달린 권총 홀더로 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 중 가장 빠른 것. 몸을 뒤로 돌리고 내가 상대를 인지하기 전에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시야는 이미 돌아가 있었다.

“…….”

가장 높은 대형마트 건물 옥상에서 트럭을 향해 몸을 날린 아히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몸놀림이 얼마나 빠른지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녀석의 몸체.

놈의 목표는 우리 중 가장 반응이 느린 메리제인의 목과 트럭을 달리게 만들어 주는 오른쪽 바퀴였다.

가장 약한 사냥감부터 노리고 우리가 도망치게 만들어 주는 기동력을 차단한다.

본능과 지능이 적절히 혼합된 타고난 사냥꾼.

나는 그 짧은 순간 이 모든 걸 분석한 녀석의 교활함과 영리함에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속에서 끓어오른 힘이 힘차게 몰아치는 피를 따라 팔 다리로 옮겨진다.

코와 입에서 터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는 머리에 차가운 냉정을 만나 방울이 맺혔고 나는 그대로 홀더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백미러에 비추는 나와 녀석의 모습.

숨을 죽이고 있던 방아쇠가 당겨지자 총구를 빠져나온 청아한 총소리는 숨 막히는 침묵을 깨부쉈다.

딱-! 딱-!!

더블 탭. 순식간에 총구를 떠난 9mm 총알 두발은 놈의 양쪽 어깨로 날아가 박혔고 메리제인과 바퀴를 공격하려는 시도는 허무하게 막혀 버렸다.

허나 내가 가한 저지력에도 놈은 포기하지 않았는지 길쭉한 손톱으로 차체를 내려찍었고 이내 트럭위로 미친 듯이 기어올랐다.

따닥!딱딱딱딱!

허나 그걸 보고만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양쪽 어깨에 박힌 총알 두발로 잠깐 흠칫한 녀석을 향해 그대로 권총 탄창 하나를 순식간에 비워 버렸고 허공에 떠오르는 빈 탄피를 배경삼아 급격하게 기울어지는 트럭 칸에 등을 기댔다.

끼이이익-!!!

트럭에 붙은 놈을 떨어트리기 위해 핸들을 재빨리 꺾는 노인과 놈을 향해 연신 소총을 발사하는 용팔이.

허나 우리가 가진 총으로 놈에게 데미지는 줄 수 있을지언정 목숨을 끊어내는 치명타는 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놓은 소총을 향해 재빨리 손을 뻗는 그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묵직한 그립감이 번뜩 떠올랐다.

“초록색 가방 안에! 빨리!”

나는 흔들리는 트럭 짐칸에서 연신 굴러다니는 메리제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한국에서 가져온 초록색 짐 가방.

그곳에는 정체불명의 무리들에게 노획한 무기 한 자루가 있었다.

그리고 바닥을 구르면서도 용케 내 지시를 알아들은 메리제인은 눈을 반짝 빛내는 미친 듯이 바닥을 기었고 이내 초록색 가방에서 총 한 자루를 꺼내들었다.

매끈한 몸체 안으로 들어가는 12게이지 탄.

누운 상태에서 능숙하게 장전을 꺼낸 끝낸 메리제인 중위는 멋들어지게 펌프액션을 당기며 나에게 산탄총을 던졌고, 내 왼손은 정확히 산탄총의 그립을 잡았다.

묵직함과 총구의 차가움이 느껴질 때쯤 내 이명은 끝이 났다.

총구가 놈의 머리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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