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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살아있다-214화 (214/313)

# 214

2부 11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폐부에 가득 쌓여 있던 숨이 코를 통해 빠져나왔다.

마치 물안개처럼 자욱한 빗물과 코끝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

우비에 가려 한정된 시야는 도리어 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시선의 끝과 조준간에 형상이 정확하게 일치할 때 나는 구부리고 있던 검지를 펴 방아쇠위에 손끝을 올린다.

짜르르 울리는 신경과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당겨지는 검지, 이내 총성이 울렸다.

딱-!

[- - -칙, 명중.]

천천히 고개를 들자 앞주머니에 꽂아둔 무전기에서 거친 잡음과 함께 명중을 알리는 용팔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차량을 따라오고 있던 소형 변종 놈의 머리통이 팍 하고 터지며 도로 위로 더러운 뇌수와 검은색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허나 그 처연한 광경은 곧 빠른 속도로 달리는 트럭의 뒷면으로 서서히 사라져 버린다.

톡, 토톡.

잠깐뿐인 집중의 시간이 지나자 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이명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늘 점심부터 내리기 시작한 녹진한 빗소리였다.

나는 조용히 국방색 우비를 털어내며 다시 자리에 착석했고 조용히 총기를 챙기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우비를 뒤집어쓰고 트럭 뒤 칸에 앉아 있던 메리제인 중위가 나를 향해 조심히 물었다.

“혹시 특수부대 소속이십니까 ”

특수부대 그 물음에 나는 비슷하다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되었든 정부와 협력해 특수임무를 독자적으로 처리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 대답에 메리제인 중위는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나 진지한 얼굴과는 달리 말에는 묘한 흥분과 awesome이라는 단어가 남발되었다.

“웬만한 베테랑들을 봐 왔는데, 선생님과 일행 분들은 차원이 다르신 것 같습니다. 특별한 훈련이라도 받으셨습니까 ”

구덩이와 전성을 형성하고 있는 군 집단이라면 누구나 변종과의 전투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보통 놈들을 상회하는 육체능력과 자신이 불리하면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교활함까지.

특히나 전면전이 아닌 시가지나 숲에서 변종들이 펼치는 게릴라전은 보통 보병으로는 토벌할 수가 없는 골치 아픈 상대 중 하나였다.

허나 밤만 되면 마을이나 도시로 내려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내는 변종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군대는 어쩔 수 없이 도시와 산림의 재건을 포기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폭격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격변 초창기 때는 이런 방법으로 손쉽게 해결이 가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은 이것이 일방적인 소모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갈수록 파괴되는 도시와 산림, 하지만 변종들의 숫자는 줄어들기는커녕 더 많아짐과 동시에 진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결국 한계를 느낀 각국의 군대는 변종들을 처리할 다른 대체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허나 정답을 찾기에는 모범답안이 이미 존재하는 상태.

각국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시아 극동에 있는 한국으로 향했다.

전 세계 종말교본에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나라.

그와 동시에 세계 최초로 구덩이를 봉쇄하고 폭격과 인명피해 없이 변종들을 사냥하고 있는 나라. 그리고 그 시선에 끝에는 당연히 현장에서 활동 중인 팀 에덴이 있었다.

“……그냥 남들처럼 받았습니다.”

어떤 훈련을 받았는가 그냥 남들처럼 받았다.

무심한 대답처럼 보이지만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메리제인 그녀는 물론이고 각국에서 대 변종 훈련을 받고 있는 특수부대들은 전부 나와 에덴 팀의 영상을 베이스로 만든 훈련을 받고 있었으니까.

“…….”

메리제인 중위는 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무언가 말하기를 꺼려하는 내 짧은 대답에 조용히 눈치를 살피며 우비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에 천천히 눈을 감으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도로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날의 기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액션 캠이니 패턴분석이니 뭐니, 정부 인사가 삼일밤낮으로 나와 노인에게 빌어 촬영한 전투 영상은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각지로 보내졌고, 그 자료들을 베이스로 각 나라는 변종을 상대로 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물론 개인차이가 있겠지만, 우리의 영상이 도움이 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에덴 팀의 전투를 통해 매일 새로운 데이터를 갱신 받는 정부는 당연히 각국을 상대로 외교적 우위와 우호를 얻어내었고 이번 미국 원정도 별다른 잡음 없이 처리해 주었다.

물론 그 자세한 뒷이야기를 알 턱이 없는 메리제인 중위는 여전히 호승심 가득한 얼굴로 나와 우리 일행들을 훔쳐보았다.

하지만 그 불편한 시간도 잠시일 뿐 조용히 목적지를 향해 운전하던 노인이 짐칸과 이어진 창문을 열며 그녀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정말 이 길밖에 없는 거냐 ”

현지상황에 빠삭한 메리제인 중위는 우리가 처음 설정한 경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난색을 표했었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보다 더 심해진 캘리포니아 상황은 아예 도로를 폐쇄시키거나 지역 출입을 금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는데, 하필 우리가 가는 방향도 그 도로 중 하나였다.

허나 우리나 메리제인 중위나 무조건 북쪽에 있는 군사캠프에 가야 하는 건 매한가지.

결국 짧은 상의 끝에 위험하더라도 지름길을 통해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는데 하필 그 지름길이 구덩이가 발생한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모든 주민들이 대피해 완전한 유령도시가 된 그곳은 오로지 놈들과 끔찍한 변종들만이 득실거리는 지옥도였다.

그리고 때마침 우리가 지나가는 도로 옆으로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이 나지막이 지나갔다.

‘레딩시티까지 10마일 남았음.’

“아니면 서부로 빠져서 올라가야 하는데,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도로 사용여부도 불투명합니다. 그래도 원하신다면 다른 길을 알려 드릴게요.”

그 물음에 조용히 우비를 걷어 올린 메리제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여기로 가나 저기로 가나 어차피 사지로 들어가는 길은 매한가지. 무슨 선택을 하던 양자택일이었고 우리는 또 다시 익숙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 매번 그렇지 뭐.

조용히 고개를 돌린 나는 다시 제자리에 앉았고 조수석에 있는 용팔이는 아무 생각이 없는지 창밖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노인은 태연한 우리를 보며 짙은 한숨을 내뱉다 이내 오디오 볼륨을 올려 버렸다.

비오는 소리와 함께 차량 오디오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두운 사막의 도로 위, 머리로는 찬바람이 스치고 콜리타스의 은은한 향이 공기 중에 퍼져가고 있었지.

호텔 캘리포니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말 포근하고 끝내주는 곳이죠.

나는 조용히 노래를 읊조리며 총기를 손질했다.

*    *    *

“…….”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알싸한 휘발유향.

차량주유를 끝마친 노인은 조용히 통 입구를 닫으며 우리와 눈을 마주쳤다.

차의 기름을 가득 채우고 총기에는 모두 실탄을 장전했다. 묘한 긴장감과 함께 각자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민감한 신경은 전의와 조용히 교차했다.

“중간에 안 멈춘다. 그냥 무조건 밟을 거야.”

수없이 많은 위기와 고난을 넘어오며 나와 일행은 강해졌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라는 일상이 강해진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하고 아무리 혹독하게 훈련해도 항시 그림자처럼 붙어 다가오는 위기의 사선.

그것은 영원히 떼 놓을 수 없는 생존의 주홍글씨였고 동시에 자만하지 않게 해 주는 나의 초심이었다.

우연에 익숙해지지 마라. 위기와 공포에 적응하는 순간 우리는 죽는다.

고시원을 처음 빠져나올 때 느꼈던 그 각오와 기분을 언제나 잃지 않고 다시 살았다는 소중함을 조용히 품는다.

나와 노인 그리고 용팔이는 조용히 눈을 맞추며 오늘도 외줄을 타고 넘을 것이다.

“운전은 내가, 용팔이는 조수석에서 유리창 못 가리게 견제해 줘. 후방은 동윤이만 믿는다. 아, 그리고 그쪽은 절대 죽지 말고 꽉 붙잡고 있어.”

언제나 그렇듯 중무장을 한 노인이 운전석에 올라타며 짧은 브리핑을 끝냈다.

정면 조수석은 용팔이, 뒤 칸 후방 담당은 나. 물론 만난 지 하루밖에 안된 메리제인에게는 별다른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가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잘 둘러대었다.

그리고 우리를 모두 태운 노인은 조용히 시동을 걸며 트럭을 잠시 숨겨둔 중고차 매장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아까보다 더욱 거세게 오기 시작하는 비와 점점 차가워지는 우리의 피부.

나는 조용히 입김을 내뱉으며 트럭 뒤 칸에 조용히 웅크렸다.

부웅-.

마치 눈치를 보듯 천천히 이동하는 트럭은 곧 1차선 도로를 빠져나와 옆에 존재하는 큰길로 들어섰다.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전 미리 도로를 비워 뒀는지 달리기 좋게 펼쳐진 큰길.

허나 아이러니하게도 빗물로 가려진 흐릿한 도로는 더욱 불안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큰길에 들어선 트럭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황소처럼 거친 엔진소리를 내포했다.

하지만 노인은 무언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는지 도로를 서행하며 우리가 통과해야 할 도시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땀과 뒤섞인다.

“- - - - -.”

이제 초입을 넘어 레딩 시티의 중심지였다.

양쪽에 길게 늘어진 가로수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싸늘한 건물들 그 순간 우리는 트럭을 잡아먹을 듯 조여 오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에 노인은 기다렸다는 듯 트럭의 천천히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부웅-!

시야에 보이는 풍경이 빠르게 휙 휙 지나간다.

그리고 그럴수록 엔진과 동화되어 뛰는 심장이 폐부에 묵혀 있던 숨을 서서히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느낀다, 들린다.

일행 중 가장먼저 놈들의 존재를 느낀 나는 본능이 이끄는 방향으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사, 사람! 사람들 아닙니까 ”

그리고 그것을 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쪽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메리제인은 사람으로 보이는 남자를 발견하자마자 깜짝 놀라 외쳤고 나는 고개를 흔들며 입 닥치고 있으라는 손짓을 취했다.

토독 톡, 내 피부를 때리는 빗물 사이로 이명이 섞였다.

5층으로 이루어진 다주택 건물.

1층은 유리창이 깨진 식당이 즐비했고, 그 위로는 수없이 많은 창문들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열려 있는 창문마다 존재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달리는 트럭을 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였다.

생존자가 있는 걸까 아니, 미처 대피하지 못한 생존자들은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 창틀에 기대고 있는 그들이 이 도시에 남아 있는 마지막 생존자였을 테니까.

귀 아래까지 말려들어간 입꼬리와 마치 분을 칠한 듯 창백한 얼굴.

입은 웃고 있음에도 눈은 경악과 공포로 물들어 있는 그들은 기괴함을 넘어선 인외의 장식품을 보는 것 같았다.

퉁-!

“밟아요!”

그것을 전부 확인한 나는 그대로 운전석으로 향하는 작은 창문을 쿵 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내 고함과 함께 순식간에 바뀌기 시작하는 기류와 몸이 쏠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트럭.

한쪽에서 멀어지는 건물을 바라보던 메리제인은 깜짝 놀라 작은 비명을 질렀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입고 있던 우비를 벗어재꼈다.

그래, 알고 있다.

저건 생존자들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머리통을 잘라 입을 찢어 놓은 것이다.

꼭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생한 얼굴과 표정.

허나 저 안으로 들어가 본 사람은 백이면 백 곧 깨닫게 되었다. 저긴 변종의 둥지고 자신도 그 머리통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 - - - - -히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몰아치는 비바람 사이로 검은색 물체가 휙 지나갔다.

흔들리는 가로수들과 그림자가 지나갈 때마다 들리는 웃음소리.

나는 재빨리 총구를 들어 올려 그곳을 조준했고, 이내 기괴한 방향으로 꺾인 팔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기어오는 놈을 발견할 수 있었다.

180도로 돌아간 머리와 바닥에 질질 끌리는 머리카락.

마치 관절이 고장 난 인형처럼 바닥을 훑고 지나오는 놈은 소리 한 점 내지 않으며 트럭을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래로 향하며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는 머리통에는 기괴한 웃음과 함께 텅 빈 눈동자가 달려 있었다.

- - - - 아히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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