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
2부 9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뭐야 이봐, 애드리언. 여기 식당 주인 죽지 않았어 ”
문 아래로 손전등 불빛이 드리우며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그리고 문 앞까지 도착한 그들은 오랫동안 비어 있다고 생각한 식당 문이 잠겨 있자 조금 당황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찰칵, 총을 장전하는 소리와 식당 내부를 연신 비추는 손전등 불빛.
그리고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조잡하게 막아 둔 문이 덜컹거렸다.
“떠돌이들이 손댄 모양이지. 안에 아무도 없잖아 ”
우리가 들고 온 짐은 노인이 뒷문으로 가지고 나가 숨겼고, 트럭은 식당 뒤편 숲속에 주차시켜 두었다.
말 그대로 식당 내부에 사람이 있다는 흔적은 창문을 가리고 있는 조잡한 커튼밖에 없는 상태.
그리고 그들도 한참을 손전등을 안쪽에 비춰보다 아무도 없다고 판단했는지 있는 힘껏 문을 밀어 빈약한 잠금장치를 부숴 버렸다.
덜컹, 쿵-!
녹슬어 있는 잠금장치는 그들이 가한 힘에 너무나 손쉽게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바깥에 찬 공기와 정체불명의 그들은 우리가 쉬고 있던 식당 내부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다.
어둠속에 완전히 숨을 죽이며 눈앞에 드리우는 그림자는 바라보는 나와 용팔이.
숨소리는 서서히 잦아지고 심장의 뜀박질은 불어오는 바람에 모습을 감춘다.
“꼬리는 없었지 ”
“이 둘밖에 없었어.”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숨을 죽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복면을 쓴 5명의 남자로 구성된 중무장 인원.
그들은 포로 2명을 둘러싸며 연신 주변을 살폈고 적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3자의 미행을 걱정하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놈들이 데려온 포로중 하나가 몸을 버둥거리며 이를 갈았다.
“이 미친 광신도 새끼들아……! 컥!”
분명 아까 끌려오기 전 문밖에서 악을 지르던 그 여자였다.
하지만 말과 욕설이 끝나기도 전에 미친 광신도라고 불린 한 남자가 그대로 여자의 배를 발로 차 버렸고, 그녀는 숨이 넘어가는 격한 신음을 내뱉으며 거칠게 바닥에 엎어졌다.
목숨을 고려하지 않은 무자비한 폭력에 순간 식당 내부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선과 악의 구분이 희미해진 세상에서 섣부른 피아식별은 하지 않는다.
허나 그 짧은 순간 그들에게서 좋지 않은 기류를 읽어낸 나와 용팔이는 조용히 숨을 내뱉으며 자세를 숙인다.
광기와 혼돈, 너무나 익숙한 집단의 더러움이 피부로 느껴졌다.
“…….”
그리고 그 순간 내 옆에 잠자코 있던 용팔이가 조용히 고개를 까닥이며 바닥에 엎어져 있는 여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광신도라고 불렸던 놈들의 포로는 총 2명.
한 명은 흑인 남자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아까 배를 얻어맞은 백인 여성이었다.
허나 흑인 남성은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 심한 폭행을 당했는지, 미동은커녕 숨조차 쉬지 않고 있었고, 백인 여성은 명치에 제대로 공격을 맞았는지 아직도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그 둘을 바라보다 용팔이가 왜 턱짓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처음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저 둘은 분명 서로가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가벼운 검은색 티와 황갈색 위장 패턴인 바지. 그리고 진흙이 잔뜩 묻어 있는 저 신발은 군인들이 신는 군화가 분명했다. 그래, 저들은 이 땅에 발을 들이고 나서 처음으로 보게 되는 군인이었던 것이다.
“자, 이 개년아. 이번이 진짜 마지막 기회야.”
허나 내가 빠진 상념과는 별개로 광신도라 불린 집단은 목적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히스패닉 남자가 욕설과 함께 꺼내든 살벌한 대검.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은 바닥에 엎어져 있는 백인 여자와 흑인 남성을 둘러싸고 침을 뱉었다.
“정말 너희만 왔어 ”
마지막 기회, 군인, 임무, 폭력, 고문. 모든 단어들이 내 고막을 뚫고 지나가며 눈앞에는 부랑자라는 기억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생각에 빠진 그 순간에도 욕설을 내뱉은 히스패닉 남자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여자의 팔을 대검으로 그대로 그어 버렸다.
“끄으읍- - -!”
끔찍한 비명이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오려 했다.
허나 그 비명마저 허락하지 않은 남자는 재빨리 여자의 입을 틀어막았고 이내 붉은색 광기가 묻어나는 눈동자를 조용히 빛냈다.
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 소름끼치는 무언의 물음은 떨리는 여자는 동공과 교차했다.
“퉤!”
허나 죽음의 지척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은 여자는 남자가 손을 치워 주자마자 그들을 향해 피가 섞인 침을 내뱉었다.
퉤! 비열한 웃음을 지어 보이다 정면에 침을 맞은 남자는 그대로 입꼬리를 내렸고 칼날만큼 싸늘한 얼굴로 재빨리 여자의 볼을 붙잡았다.
분명 눈동자가 떨리고 있지만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악 다문 입.
여자는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차 버렸고, 자백은 더 이상 가망이 없음을 직감했다.
여자의 볼을 잡고 있던 남자는 천천히 손을 놓으며 옆에 있는 다른 동료에게 조용히 읊조렸다.
“죽여.”
그 단호한 음성이 대기를 뚫고 파르르 떨려온다.
여자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는지 울음을 꾹 삼키며 눈을 감았고,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러자 옆에서 조용히 칼을 꺼내든 한 남성이 뚜벅뚜벅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
그리고 칼날이 목에 드리운 순간 여자는 마지막 유언일지 모르는 구호를 조용히 읊조리며 숨을 내뱉었다.
무슨 뜻인지, 어디서 사용하는 구호인지 모를 그 마지막 읊조림.
허나 나와 용팔이는 그 뜻이 귓가에 닿기도 전에 기다렸다는 듯 서로에게 신호를 보냈다.
“- - - - -.”
휘파람소리 같기도 하고, 그냥 숨이 빠져나가는 소리 같기도 하다. 허나 내 입에서 빠져나온 그 신호음은 용팔이를 자동반사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신호 중 하나였다.
내가 오른쪽 너는 왼쪽.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마치 한 몸처럼 앞으로 뛰쳐나갔다.
내 손이 대검 손잡이로 향하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내 손아귀에 잡혔다.
착 잡히는 그립과 마치 물 흐르듯 올라가는 손.
나는 찰나의 사선을 위해 어둠속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여자의 목을 가르려는 놈의 뒤통수로 향해 시선과 손끝을 일자로 맞췄다.
“- - 컥!”
신속정확, 팽그르르 날아간 대검은 그대로 놈의 목을 관통했고 동시에 외마디 단말마가 터져 나온다. 그리고 그 죽음을 시작으로 재빨리 자세를 숙인 용팔이는 권총을 꺼내들며 민첩하게 방아쇠를 당긴다.
딱! 딱! 소음기에 막혀 죽음의 괴음을 지르지 못하는 권총. 하지만 그와 반대로 탁월한 살인의 성능은 순식간의 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뭐, 뭐야! 이런 시발……!”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정확히 머리에 사격을 가하는 용팔이의 신기와 같은 기술.
이제 둘밖에 남지 않은 그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허둥지둥 거렸고 이내 라이플을 우리에게 겨누며 발사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빨리 테이블 안쪽으로 파고든 나는 용팔이를 향해 총구를 돌리는 놈의 팔과 몸을 그대로 붙잡았다.
“……어 ”
끄드득-!
멍청한 탄성을 마지막으로 놈의 몸과 목이 내 손에 붙잡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팔에 힘을 주자 남자의 목은 돌아가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돌아갔고 이내 근육과 뼈가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드리운 몸체가 바닥에 엎어졌다.
턱, 20초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 안에 벌써 4명이라는 인원이 노크소리 없는 지옥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명은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넋을 놓았고, 이내 총을 바닥에 버리며 허겁지겁 문을 뛰쳐나갔다.
“…….”
조용히 권총을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용팔이와 피가 묻은 대검을 회수하는 나. 우리는 이 광경이 마치 익숙하기라도 한 듯 여유롭게 현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졸지에 우리에게 도움을 받은 여군은 다급한 눈으로 도망가는 나머지 한 놈을 바라보았다.
놓치면 안 됩니다! 버둥거리는 몸과 금방이라도 고함이 터져 나올 듯 뻐끔거리는 입은 분명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따닥-!
하지만 그 모든 다급함은 식당 지붕에서 들리는 단 한 발의 총성으로 전부 사라져 버렸다. 도망친 놈이 타고 온 차문을 여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방아쇠를 당긴 노인.
놈은 그대로 관자놀이에 총알이 박혀 바닥에 스르륵 쓰러졌고, 욕설과 고함으로 시끄럽던 식당과 숲속은 다시 침묵이라는 차가움을 머금었다.
그리고 조용히 손전등을 꺼내든 나는 여군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인식표는 어디 있습니까 ”
손전등으로 여군을 비추자 넋이 나간 얼굴과 상처투성이의 얼굴이 보인다.
허나 섣불리 속박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나는 그녀가 목에 차고 있어야 할 군번줄의 유무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한순간 정신이든 여군은 침을 꿀꺽 삼키며 쓰러져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나에게 목이 꺾여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즉사한 히스패닉계 남자. 붉은 광기로 물들였던 그 살벌한 눈동자는 죽음은 이겨 내지 못했는지 처량하게 비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죽어 있는 놈에게 천천히 다가가 묵직해 보이는 주머니를 뒤졌다.
“M J 당신이 메리제인 맞습니까 ”
여군의 말대로 죽어있는 남자의 주머니에선 인식표 두 개가 들어있었고, 그중 여군의 것으로 보이는 군번줄을 꺼내든 나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이름, 미들네임, 이니셜, 사회보장번호 등등 인식표의 내역을 하나둘 읊어 주자 여군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맞다고 대답했다.
“형님, 이 남자 죽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 조용히 이쪽으로 다가온 용팔이가 흑인 남성의 코 밑에 손가락을 올려두더니 이내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남성은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 이미 죽었는지 몸이 딱딱하게 굳어 가고 있었고 용팔이는 그 소식을 나에게 담담하게 알려 왔다.
그러나 그 남자의 전우였던 여자는 우리처럼 담담할 수가 없었다.
“빅, 빅샘!”
아까 죽음의 순간에서조차 담담하던 여군은 자신의 전우가 죽었다는 소리에 절규와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팔 다리가 묶인 상태에서도 기어코 남자를 향해 기어가 혹시 뛰고 있을지 모를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 죽어 버린 전우의 시체는 차갑기 그지없었고 여자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방금 처음 만나기는 했지만, 전우의 죽음을 보며 눈물을 터트리는 광경이 남일 같지는 않았다. 나는 눈을 감으며 임무 중 사망한 이 남자의 명복을 빌어 주었고, 용팔이는 조용히 흑인 남성의 눈을 감겨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식당 문이 열리며 노인이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미친 새끼들, 트렁크에 시체만 3구다. 부랑자랑 비슷한 새끼들 같은데…….”
우리가 이러고 있을 동안 혼자 놈들의 차량을 뒤지고 온 노인은 더러운 것을 봤다는 얼굴로 거친 욕설과 함께 침을 뱉을 뱉었다.
이 포로들 말고도 트렁크에서 따로 발견된 시체 3구와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부랑자라는 단어.
나는 천천히 모자를 벗으며 땀을 닦아 내었다.
“어디 소속입니까 ”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한 것 투성이었지만, 혼란스러운 지금은 교통정리가 살짝 필요해 보였다.
일단 나는 전우의 시체 앞에서 울고 있는 여군에게 천천히 다가가 그녀와 이 남자가 속해 있는 부대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동공이 풀린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본 여자는 용케 말할 힘이 남았는지 자신의 소속을 조용히 읊조렸다.
“레, 레인저 대원들……. 그리고 저는 SOAR 항공연대입니다. 상, 상부에 연락을…….”
75 레인저 연대와 SOAR 항공연대.
그 말을 끝으로 눈이 완전히 풀린 여자는 바닥에 쓰러졌고 깜짝 놀란 용팔이가 황급히 다가가 그녀의 숨을 확인했다.
허나 다행히 죽지는 않고 기절만 했는지 용팔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한동안 침묵이 감도는 식당 내부. 여자가 기절한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의문을 표했다.
“레인저 걔들이 여긴 왜 있어 남부로 간다며.”
나도 모른다. 분명 강 형사와 정부는 미 육군이 캘리포니아 남쪽을 향해 진출이라고 예상했다.
허나 뜬금없이 북부로 가는 길에 만난 이 레인저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에게 납치되어 한 명은 죽고 또 다른 한 명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육군특수작전사령부(ARSOC) 소속인 그들이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으며 그들을 납치한 저 정체불명의 집단은 도대체 누구인지. 허나 그 답을 알려 줄 마지막 생존자는 저렇게 기절해 있고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조용한 침묵이 우리 사이에 감돌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만히 앉아있던 용팔이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우리가 죽인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때 아닌 밤에 일어난 정신없는 사건. 허나 그 답을 알기 위해선 아침이 올 때를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