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2부 8화 나는 아직 살아있다.
“형님, 괜찮아요 ”
짐칸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작은 창문이 열리며 용팔이가 나에게 시원한 물이 담긴 수통을 내밀었다.
좋지 않은 도로사정에 아까부터 멀미를 호소하던 용팔이.
나는 그런 용팔이를 대신해 짐칸에 앉아 주변을 살폈고, 이내 창문 사이로 삐져나온 수통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물로 입술을 살짝 적시며 하늘을 바라보자 점점 먹색으로 변하는 구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북부로 올라갈수록 점점 서늘해지는 날씨와 피부로 전해지는 습도.
장시간 운전과 트럭을 따라오는 놈들을 따돌리느라 우리의 컨디션과 체력은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
“영감님, 적당한 자리 보이면 말씀해 주세요.”
시각은 오후 6시.
야간 주행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기에 우리는 적당한 은신처를 찾아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과 용팔이에게 수통을 다시 되돌려주며 가방에 넣어 둔 캘리포니아 지역 지도를 꺼내들었다.
캘리포니아! 땅 넓이는 더럽게 넓고 길은 또 어찌나 많은지, 아마 에덴에서 준비해 준 현지 지도가 없었으면 진즉에 길을 잃고 태평양에 머리를 꼴아 박았을 것이다.
그리고 복잡한 지도에 혀를 찬 나는 조용히 이마를 긁으며 우리가 이동해 온 거리를 빨간 팬으로 슥 그었고, 이내 그려진 붉은 선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목적지위에 검지를 올려두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캘리포니아 독립 방위대가 있는 생존자 캠프.
채연이와 강수련이 있는 그 캠프까지 남은 거리와 현지 도로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하루에서 이틀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 나와 노인의 판단이었다.
지도위를 수놓는 붉은 선들과 하루라도 빨리 그들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내 마음이 조용히 교차했다.
“형님, 그나저나 걔들은 어디로 가고 있대요 ”
그리고 내가 조용히 지도를 집어넣으려는 그 순간, 수통을 갈무리한 용팔이가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걔들 아, 아마 이쪽으로 진군한다던 미 연방 육군을 말하는 것 같았다.
출발하기 전 내가 알려 준 미 육군 소식에 생각보다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던 노인과 용팔이.
허나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아군이라고 볼 수 있는 그들의 소식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마 유전이 있는 곳으로 먼저 가겠지.”
허나 그 질문에 대신 대답해 준 사람은 나와 용팔이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노인이었다.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지금 사실상 무역이라는 건 없다고 봐도 되는 상황.
당연히 유전은 각 나라가 촉각을 곤 듯 세우고 있는 중요한 자원이었고, 그것은 국방비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캘리포니아 남부에 존재하는 베이커스필드를 우선적으로 확보할 것이라고 추측되는 상황에서 그 반대인 북부로 향하는 우리와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에 용팔이는 도움이나 좀 받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지 조용히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리고 그 대화를 끝으로 저 멀리 뻗어진 도로를 향한 주행이 계속되었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차체와 점점 어두컴컴하게 변하는 하늘. 그리고 도로가 좁아지는 구간에 들어서자 노인은 약속이라도 한 듯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로 양옆으로 짙게 깔린 나무들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한 미국식 식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밤을 보낼 장소가 필요하다는 소리에 노인은 이 길고 긴 도로에서 숨겨져 있던 건물을 용케 찾아낸 것이다.
가게 앞 도로에는 영업 중이라는 간판이 처연하게 달랑거리고 있었지만, 당연히 영업 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무거운 침묵이 우리 사이에 퍼지고 나와 용팔이는 조용히 총기를 챙기며 조정간을 옆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고 찰칵거리는 소리를 출발신호 삼아 다시 엑셀을 밟은 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식당을 향해 트럭을 몰았다.
그리고 식당 앞 도로까지 차를 운전한 우리는 조용히 총기를 꺼내들고 차 밖으로 나왔다.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게 시동을 유지시켜 둔 트럭.
나와 일행은 천천히 자세를 숙이고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해 사방을 경계했다.
“……용팔아.”
이제 건물과의 거리는 50m안팎.
자리에서 멈춘 우리는 서로의 등을 맞대며 조용히 숨을 내뱉었고, 노인은 기본적인 짐을 들고 있는 용팔이를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용팔이는 재빨리 가방을 뒤져 한 구형 녹음기를 노인에게 내밀었다.
끽, 끼긱, 끽끽.
그리고 노인이 용팔이에게 건네받은 녹음기가 켜자 마치 철이 깎이는 소리가 터져 나오면 혹시 숨어 있을지 모를 놈들의 신경을 자극했다.
단순한 본능을 넘어, 이제는 참을성이라는 걸 가지게 된 놈들에게 가장 필요한 유인도구.
구역을 일일이 확보하는 것보다 근처에 숨어 있을 놈들의 본능을 자극해 밖으로 빼내는 것이 기본적인 시가지 전투 방법 중 하나였다.
허나 서로에게 등을 맞대고 놈들의 공격을 기다리기를 10분.
연구소에서 특별 제작된 이 소리에 광적으로 반응을 하던 놈들은 이상하게 단 한 마리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유인도구를 조용히 갈무리한 노인은 바짝 당긴 총구를 내려놓으며 나를 향해 물었다.
“……뭐 느껴지냐 ”
“아뇨, 아무것도 없어요. 버려진 지 오래된 모양이네요.”
놈들은커녕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이 식당은 먼지가 잔뜩 쌓인 외관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왕래가 오랫동안 없었던 모양이다.
이제 완전히 어두워진 하늘과 저 멀리 사라져 가는 황혼.
우리는 놈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일렬로 걸어 식당 문을 열었다.
끼익-.
다행히 잠기지 않은 출입문을 열자 미국 영화에서 봤을 법한 그 특유의 식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문을 열자 코와 눈을 어지럽히는 먼지가 확 하고 풍겨져왔고 선두에 서 있던 노인이 재빨리 손전등을 꺼내 앞을 밝혔다.
어두운 내부와 먼지가 잔뜩 쌓인 가구들.
우리는 모든 건물 내부를 수색하고 나서야 놈들이 완전히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괜찮아 보인다는 내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노인은 트럭을 몰아 건물 뒤편에 숨기듯 주차했고 용팔이는 모든 짐을 가져와 식당 한쪽에 쌓아 놓았다.
문을 잠그고 창문은 천이나 신문지로 가린다.
수천 번이고 했을 그 작업에 우리는 지시가 없어도 각자 할 일을 찾아 재빨리 은신처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밖이 완전히 어두워진 것을 확인한 나는 일행들과 함께 조용히 자리를 깔고 자리에 앉는다.
벌써 저녁 7시를 넘어가는 시간.
세상은 마치 괴수에 입속에 들어가기라도 한 듯 어두컴컴해졌고 눈앞에는 자신의 팔다리를 제외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나 우리는 그 어둠이 너무나 익숙해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을 빼 버린다.
하늘에 여명기가 보이면 바로 출발해야 하는 촉박한 일정.
나와 일행들을 약속이라도 한 듯 가방을 베고 누우며 모든 세포를 휴식이라는 행위에 집중했다.
식사는 잭슨이 준 마른 옥수수알과 현지에서 정제한 생수 한 통씩.
비록 맛은 없지만 내일 있을 여정을 생각하면 억지로라도 먹어야 했다.
그리고 조용히 물을 마시던 노인이 나를 향해 말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놈들 움직임이 한국하고는 많이 달라. 이따 밤에 강 형사랑 연락이 닿으면 기록한 거 다 보여 주고 우리 위치 말해 줘.”
우리가 한국을 출발하기 한 달 전부터 에덴과 정부에서 파견된 수많은 전문가들이 상황에 맞는 매뉴얼과 교본을 만들어 주며 혹시 모를 위기상황을 대비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연구제안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안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만약 놈들의 습성이 한국과 다르다면 어떨까 ’ 라는 가설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말도 안 된다는 몰매를 맞다가 나와 노인의 관심으로 급물살을 타 연구를 하게 되었는데, 결국은 ‘그럴지도 모른다.’ 라는 결론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이 이상 현상이 어쩌면 지난 2차 격변의 원인을 밝혀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우리에게 현지 데이터를 수집해 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낮에 잡은 머리귀신부터 한국과는 전반적으로 다른 놈들의 분포에 우리는 그 연구결과가 진짜였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틀간 기록이 적혀 있는 수첩을 건네주는 용팔이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자리에 눕는 노인.
우리는 강 형사와의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꿀맛 같은 휴식시간을 가졌다.
* * *
‘형님! 할아버지! 이쪽으로 와서 사진 한 번만 찍어요!’
앳된 용팔이의 목소리가 감고 있던 내 시선을 저절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뜨자 너무나 그리우면서도 공허한 회색 도시가 눈이라는 기억을 맞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어카 위에 올라가 있는 에덴 팀과 나를 부르며 손을 흔드는 용팔이와 두식이. 그리고 내 옆에는 담배를 물고 있는 노인이 흐뭇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자, 웃어요!’
그리고 사진기를 들고 밝게 웃고 있는 김창식이 우리 앞에서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침을 묻혀 머리를 정리하는 용팔이, 멍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두식이, 예쁘게 자세를 잡는 김혜정과 박다혜. 그리고 어깨동무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강 형사와 노인은 나에게 천천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비어 있는 중앙, 내 자리, 내 사람들, 나의 에덴.
‘아빠!’
채연아.
“형님.”
나는 용팔이가 속삭이는 소리에 놀라 재빨리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나자, 눈앞에 일렁거리던 회색 도시와 사람들은 아지랑이처럼 사라지고 오직 짙은 어둠만이 시야에 가득하다.
그리고 나를 깨운 용팔이는 재빨리 어깨를 흔들어 주며 이것이 현실임을 자각시켜 주었다.
불침번 순서는 나, 노인, 그리고 용팔이.
나는 노인에게 불침번을 넘겨주고 잠이 들었고 마지막 순서인 용팔이는 동이 틀 때까지 불침번을 설 것이다.
하지만 아직 창문 밖으로는 빛이 보이지 않고 있었고, 용팔이의 얼굴은 굉장히 다급해 보인다.
그래,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영감님.”
나는 버둥거리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잠기운을 빠르게 몰아냈다.
그리고 어느새 내 오른손에 잡혀 있는 총기를 들어 올리며 탄을 가득 채운 탄창을 끼워 넣는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초. 노인도 내 부름을 듣자마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구석에 세워 둔 총을 붙잡았다.
“- - - - -”
“- - - - - -!”
그리고 그 순간 창밖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시동이 걸린 엔진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용팔이가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아도 사태파악이 가능한 상황.
나는 우리가 잠들어 있는 이 식당에 누군가 차를 끌고 접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붕.”
일사불란하게 자세를 숙이고 포지션을 잡는 나와 일행들.
내 옆에 있는 노인은 재빨리 자세를 숙이며 나에게 지붕에서 엄호하겠다는 짧은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짐들을 챙겨 뒤쪽 식당 문으로 빠져나가는 노인과 탄약을 점검하며 신호를 기다리는 용팔이.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천들이 가리고 있는 식당 테라스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살폈다.
“- - - - !!!”
그리고 내가 천을 살며시 옆으로 치우며 밖을 살피자 웅성거림은 더욱 커져 잠자코 있던 내 고막을 관통했다.
나와 용팔이의 그림자를 스치고 지나가는 손전등빛.
우리가 달려온 도로에는 트럭과 승용차 한 대가 시동을 끄지 않고 주차되어 있었다.
한 명, 두 명, 세 명 아니, 총 7명.
5명은 갖가지 무기로 무장하고 있고, 체구가 왜소해 보이는 2명은 차에서 억지로 끌려 나오고 있었다.
사방이 흐릿하고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으며 조용히 방아쇠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무장인원 5명은 차에서 끌려 나오는 2명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그 순간 천천히 내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숨과 용팔이의 침성.
놈들은 무자비한 폭력을 한동안 가하다 이내 우리가 있는 식당으로 2명을 질질 끌고 왔고, 용팔이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숨죽여 불렀다.
“형님, 저 뒤쪽이요.”
조용히 나를 부르며 노인이 나간 뒤쪽 구석을 가리키는 용팔이.
그곳은 유난히 달빛이 들지 않는 주방 뒤 어두운 공간이었다. 은폐를 한 상태에서 습격을 가하기 최적의 공간.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을 향해 용팔이를 이끌었다.
“놔-!”
“- - - 조용히 해, 쌍년아!”
우리가 주방에 몸을 숨기는 동시에, 잠가 둔 문이 덜컹거리며 한 여성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장인원을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때리기라도 했는지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걸걸한 남성의 욕설이 들려왔고 완전한 어둠속에 몸을 숨긴 우리는 놈들이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조용히 심장이 가라앉는다.